“크워어어어어어―!”
마침내 등장한 고대 마룡이 창공을 찢어발길 듯 울부짖었다.
“읏!”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는 사이, 놈이 분화구에서 완전히 튀어나온 채 허공에서 날갯짓을 했다.
휘이이이이잉―
강한 돌풍이 연신 몰아쳤다. 그것을 타고 뜨겁고 불길한 열기가 피부를 스쳤다.
후우우우웁.
놈이 곧장 이쪽을 향해 주둥이를 쩍 벌린 채 깊은숨을 들이켰다.
‘드래곤 브레스.’
마룡의 등장과 동시에 뿜어지는 드레곤 브레스는 시스템 상 정해진 순서였다.
이미 한차례 그것을 겪은 나는 재빠르게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마력 포션을 매만졌다.
‘적당한 때에 마시고, 방어 아티팩트를 발동시켜야 해.’
지금이라도 튀어 나가 수도에서처럼 놈의 턱을 후려갈길까도 했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카셀이 후방에 있으라고 명했기에, 분화구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는 상황.
나는 거대한 용의 등장에도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카셀을 흘끔 곁눈질하며 튀어 나갈 타이밍을 쟀다.
방어 아티팩트와 내 로브 방어력으로, 드래곤 브레스가 뿜어지는 10초 중에서 첫 1, 2초 정도는 막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내려.”
그때였다.
카셀이 별안간 드레이크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내게 말했다.
“……네?”
나는 바보처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내리라고.”
그런 내게 한 번 더 같은 말을 반복한 그는, 내릴 틈도 주지 않고 내 쪽으로 팔을 뻗었다.
그리고 두 손으로 내 양 허리춤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려 드레이크 위에서 훅 끌어 내렸다.
“으읏! 무, 무슨…….”
예기치 못하게 땅을 밟은 나는 중심을 잃고 휘청거렸다.
“위치로!”
그때였다.
마룡을 피해 분화구에서부터 도망치던 용사들이 속속들이 나와 카셀이 있는 쪽으로 도착했다.
“쿠오오오!”
그리고 드레이크들이 천천히 움직여 그런 일행의 주변을 감쌌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리자, 어느 틈에 내린 건지 니세가 선두에 선 채 드레이크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에 마법계 용사들이 일제히 방어 마법진을 펼치고 있었다.
4마리의 드레이크와 마법사들이 펼친 방어막이 방공호처럼 일행을 감쌌다.
‘이게 대체…….’
순식간에 완전한 방어 태세를 갖춘 진형에 어리둥절 해하는 사이, 아담이 거칠게 외쳤다.
“각자 방어 아티팩트를 발동해라!”
용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아티팩트를 꺼냈다.
멀뚱히 서 있던 나는 그 지휘에 덩달아 휩쓸려 아티팩트를 꺼내려 했다.
“넌 마력 포션이나 준비하도록.”
하지만 카셀이 내 곁에 바짝 다가서며 그런 나를 저지했다.
그가 발동시킨 듯한 방어 아티팩트의 보호막이 나를 감쌌다.
그뿐만 아니었다. 용사들이 제각각 발동시킨 보호막들이 겹겹이 중첩된 채 서로를 견고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멍청하게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드레이크를 이런 식으로 쓸 줄…….’
정말이지 생각지도 못했다.
맨몸으로 마룡의 앞을 막아설 생각이나 하던 나 자신이 우스울 만큼, 카셀의 전략은 뛰어났다.
후우우우우웁!
그 순간이었다.
용사들이 방어 태세의 진형을 갖춤과 동시에 끊임없이 휘몰아치던 돌풍이 멈췄다.
반사적으로 앞을 보자, 마룡의 쩍 벌어진 주둥이에 시뻘겋고 커다란 구체가 맺혀 있었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아악―!
엄청난 화력을 지닌 불꽃이 지체 없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쿠우우웅.
일직선으로 쏘아진 드레곤 브레스가 이중, 삼중으로 쳐진 방어막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화르르르륵!
“쿠어어어어!”
그 바람에 여러 갈래로 갈라진 불길이 방어막 전체를 뜨겁게 감쌌다.
방패 역할을 하는 드레이크들이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그러나 방어막은 제법 견고하게 버텼다.
드레이크들의 방어력이 워낙 높은 데다가, 선두에 있는 마법사들이 온 총력을 기울인 덕분이었다.
“약제사님! 포션 좀……!”
5초 정도 지났을 즈음, 그들이 다급히 뒤를 돌아보며 나를 찾았다.
나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졌다.
[S급 마력 증폭 포션]˟10개
내게서 건네받은 포션을 차례대로 들이켠 그들은 다행히 금방 안정된 얼굴로 방어진을 유지했다.
콰아아아아아악!
그렇게 영원 같았던 10초가 지나고, 마침내 드래곤 브레스가 끝났다.
카셀은 용의 입이 다물어지는 것을 확인하는 동시에 검을 뽑아 들고 달려 나갔다.
“공격하라.”
“와아아아아아!”
숨죽인 채, 용의 공격을 버티던 용사들이 함성을 지르며 그를 뒤따랐다.
아담도, 일레인도.
조금 전까지 방어 마법을 펼치고 있던 마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역시 마룡의 공격 패턴을 잘 알고 있는지, 카셀은 다음 드래곤 브레스가 쏟아지기 전 쿨타임 사이에 최대한 공격을 퍼부어 놓을 요량인 듯했다.
“쿠워어어어어억!”
인간들의 공격에 몸부림치며 거대한 발톱을 휘두르는 용과 조금도 물러섬 없이 무기를 휘두르는 용사들이 격돌했다.
나는 여전히 멀찍이서 떨어진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주먹을 꽉 쥐었다.
부상을 입고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몸이 연신 움찔거렸다.
지금이라도 로브를 벗고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는지,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괘, 괜찮아요, 천사님?”
그런 내 어깨에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흠칫 고개를 돌리자, 나와 같이 남겨진 니세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어디 다친 곳이라도…….”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포션을 건네준 게 다인데, 다친 곳이 있을 리가.
“교황님이야말로, 괜찮으세요?”
나는 오히려 그에게 되물었다.
전방에 배치되었던 드레이크 두 마리가 새까맣게 탄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한 탓이었다.
“이, 이 정도는 별것 아니에요. 헤헤.”
내 물음에 니세는 볼을 붉히며 웃었다.
「[22대 교황 니세]가 당신의 관심에 기뻐합니다.」
이 와중에 눈치 없이 떠오른 시스템 창에, 왜인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던 나는, 이윽고 고개를 돌려 아직 남아 있는 드레이크들을 확인했다.
다행히 측면에 배치된 나머지 두 마리는 죽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체력이 절반 넘게 깎여 있었다.
‘드레이크를 데리고 오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어.’
나는 최종 보스답게 엄청난 공격력을 지닌 마룡에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미리 계획해 둔 카셀의 치밀함에 또 한 번 감탄했다.
“쿠워어어…… 후욱, 후욱.”
나는 부상당한 드레이크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급 힐링 포션]을 꺼내 놈들에게 뿌렸다.
[445 / 500]
그러자 놈들의 깎여 있던 피 통이 전부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복구됐다.
다 채우려면 S급을 쓰면 되겠지만, 부상당한 용사들을 위해 최대한 아껴야 했다.
‘이제 두 마리뿐인데, 이 정도로 될까.’
나는 불안한 눈으로 드레이크와 여전히 한창 격전이 진행 중인 분화구 쪽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곧 쿨타임이 끝나면 다시 드래곤 브레스가 쏘아질 터.
“포션을 더 쓰는 게 좋을까요?”
결국 니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러자 내 행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니세가 배시시 웃었다.
“이, 이렇게 채우면 되죠.”
그는 품에서 작은 바늘 하나를 꺼내 익숙하게 제 손가락 끝을 콕 찔렀다.
그리고 솟아오르는 핏방울을 드레이크들의 입속에 떨어뜨렸다.
“뭐 하는 거예요!”
말릴 틈도 없이 벌어진 일에 나는 당황하여 벌컥 그의 손을 낚아챘다.
그러나 조금 비어 있었던 드레이크의 체력이 이미 꽉 찬 후였다.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리자, 니세가 내 눈치를 보며 의기소침하게 중얼거렸다.
“나, 나중을 위해 포, 포션은 되도록 아끼는 편이 좋잖아요…….”
“포션은 충분합니다. 그리고 설령 부족하더라도, 만들어 내는 게 제 일이에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으로선 그깟 포션보다 교황님의 안위가 더 중요하다는 거 왜 모르세요. 다음 공격에 또 드레이크들을 조종하셔야 하잖습니까.”
싸움도 안 하는 마당에, 이런 류는 모두 내가 할 일이었다.
그런데도 무모하게 행동하는 니세가 이해 가지 않았다. 그것이 나를 챙기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처, 천사님이 걱정해주니까…… 너, 너무 좋아요.”
그러나 내 이런 타박에도 불구하고, 니세는 바보처럼 웃으며 은빛 눈을 반짝였다.
“무슨…….”
“다, 다시 만난 뒤로 계, 계속 모르는 사람처럼 대해서 서운했어요.”
“…….”
“우, 우린 공범이잖아요.”
듣는 사람도 없건만, 내게 몸을 기울인 채 마지막 말을 속삭이는 그의 모습에 정신이 혼몽해졌다.
「[22대 교황 니세]가 당신에게 강한 신뢰를 느낍니다.」
「[22대 교황 니세]가 당신에게 강한 호감을 갖습니다.」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는 참을 수 없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왜? 내가 뭘 했다고.’
머릿속이 미칠 듯 복잡해졌다.
여기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메인 캐릭터가 내게 신뢰를 느낄 거리가 전혀 없다는 소리다.
게다가 저 호감은 또 뭔가.
‘이제 와서 친밀도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나는 이렇게 남주와 용사들의 등에 업혀 엔딩을 보고.
이곳을 나가 다시는 영영 보지 못할 사람인데.
그때였다.
“크워어어어어억―!”
용의 끔찍한 울부짖음과 더불어 다시금 뜨거운 열풍이 몰아쳤다.
쿨타임이 끝나고, 놈이 또다시 드래곤 브레스를 내뿜을 준비를 하는 것이다.
“위치로!”
용사들이 나와 니세가 있는 쪽으로 재빠르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일격을 퍼부은 카셀이 아슬아슬하게 합류하면서 아까와 같은 진형이 빠르게 갖춰졌다.
다만 드레이크 4마리가 사면을 둘러쌌던 전과는 다르게 양 측면이 비고, 그 자리를 마법사들이 채웠다.
나는 그들에게 또다시 [S급 마력 증폭 포션]을 건넸다.
“감사합니다, 약제사님!”
허겁지겁 그것을 들이키며 그들이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하지만 나는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마력 증폭 포션이 부족해.’
[S급 마력 증폭 포션]은 여타 포션 중에서도 가장 제작이 까다롭고 희귀한 편이라, 많이 가져올 수 없었다.
그나마 30개 남짓 챙겨왔지만, 그건 모두 내가 쓸 것들이었다.
애초에 이렇게 장기전을 예상한 적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마룡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수도에서와 같은 방법으로 해치울 작정이었다.
아직 ‘진정한 희생과 헌신’이 뭔지 알아내지 못했긴 했지만…….
‘그러고 보니, 카셀은 마룡의 심장이 어디 있는지 아는 건가?’
앞서 겪어 본 바로는, 마룡의 심장은 드래곤 브레스를 뿜는 순간에만 볼 수 있었다.
‘언질을 줘야 할까? 하지만 분명 특별한 계획이 있다고 했는데…….’
어느덧 용사들 틈바구니를 비집고 용케도 내 옆에 바짝 붙어 선 카셀을 흘끔거리며 올려다본 순간.
“……온다.”
누군가 읊조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아악―!
다시금 엄청난 열기를 지닌 불꽃이 우리를 덮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