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4화 (194/212)

역시, 드레이크 2마리의 부재가 영향을 끼친 걸까.

제법 잘 버티던 방어막은 5초가 넘어가자 조금씩 흐트러지며 불길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2초 정도를 남겨 놨을 때쯤, 기어이 한쪽에 구멍이 뚫렸다.

“아아아아악―!”

후욱!

누군가의 비명과 함께 전열이 완전히 흐트러졌을 무렵, 가까스로 드래곤 브레스가 멈췄다.

하지만 2초, 그 짧은 시간 동안 방어 마법이 뚫리고 불길에 노출된 마법사 한 명이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말았다.

“이레네!”

“으윽, 아아악! 내 팔! 내 팔이……!”

뼈가 드러날 정도의 끔찍한 열화상에 용사들이 동요했다.

그러나 부상당한 부하가 보이지 않는 건지, 카셀은 무뚝뚝하게 명령을 내렸다.

“돌격하라.”

그 말에 넋을 놓고 있던 용사들이 하나, 둘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화상을 입은 마법사와 친한 듯한 몇 명은 선뜻 움직이지 않았다.

되려 울컥함이 서리는 얼굴을 본 나는 다급히 [S급 힐링 포션]을 꺼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기필코 원상 복귀시켜놓겠습니다.”

전투 중에 냉정을 잃지 않는 남주는 분명 귀감이 될 모습이었다.

하지만 자칫 반발심을 살 수도 있었다.

예컨대, 승리를 위해 몇 명의 희생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인식이 박히면, 당연히 사기가 꺾일 터.

“흐으으윽…….”

그들의 주위를 환기하기 위해 재빨리 힐링 포션 여러 개를 부상자에게 들이부었다.

다행히 환부가 조금씩 아물기 시작했다.

“부디 최선을 다해 보살펴주십쇼. 부탁드립니다, 약제사님.”

그제야 나머지 용사들 또한 안심한 얼굴로 마룡을 향해 달려갔다.

안도의 한숨을 돌릴 무렵이었다.

“적당히 해.”

쌩하니 찬바람을 일으키며 카셀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앞서 당부하던 용사들과는 완전히 상반된 말을 내뱉고서 말이다.

「[황태자 카셀 루크비히]가 당신을 약간 못마땅해합니다.」

그와 함께 떠오른 시스템 창에 나야말로 불만이 가득 차올랐다.

“저게, 지 곤란해질까 봐 대신 나서줘도 X랄이네.”

“풉.”

내 중얼거림을 들은 건지, 문득 옆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니세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22대 교황 니세]가 당신의 언행에 재미를 느낍니다.」

나는 머쓱한 기분에 애써 시스템 창을 외면하고 고개를 돌렸다.

부상자를 확인하자 그는 어느덧 기절해 있었다.

다행히 포션을 여러 개 들이부은 환부는 느리지만 꾸준히 아물었다.

하지만 아무리 최상급 포션이라고 한들 만능은 아니었기에, 안타깝게도 큰 흉터가 남을 게 분명했다.

그 잠깐 노출된 것으로도 이렇게 되는데.

정면으로 드레곤 브레스를 맞으면 ‘순삭’ 된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니었다.

‘이제 쿨타임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방패 역할을 해주던 2마리 드레이크마저 죽어버렸으니, 다음 공격 때야말로 내가 나설 차례일지 모른다.

지금까지 섣불리 움직이지 않은 이유는, 카셀에게 분명한 전략이 존재해서였다.

그러나 이제 준비한 패들을 거의 다 꺼내 쓴 상황.

HP도 더럽게 많고, 심지어 잘 깎이지도 않는 마룡을 이제 어떻게 상대하려는 건지.

막막한 시선으로 카셀의 자취를 더듬던 찰나였다.

[HP 782 / 990]

문득 보이는 흰 글씨에 나는 눈을 부릅떴다.

“마룡의 피가…….”

생각보다 많이 깎여 있었다.

분명 천둥이와 힘을 합쳐 총력을 기울였을 때도 그저 찔끔 깎이고 말았었는데.

‘아무리 최종 보스라도, 쪽수엔 장사가 없는 건가?’

두 번의 공격 기회 동안 어느덧 훅 줄어 있는 마룡의 피통을 믿기지 않는 눈으로 바라볼 때였다.

나는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카셀을 비롯한 모든 용사들이, 한 부위만을 노려 집중 공격을 하고 있었다.

그곳은 바로…….

‘심장 부근이야.’

매섭게 휘둘러지는 카셀의 검 끝이 연달아 찌르고 베는 곳은 마룡의 심장이 위치한, 목과 몸뚱이가 이어지는 경계뿐이었다.

‘역시. 그곳이 약점인 걸 알고 있었어.’

이번에야말로 안도의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두 번의 방어 태세 동안 언제 말해야 할지, 말해도 되는 건지 내내 전전긍긍했다.

대뜸 약점이 목 끝이라고 우길 수도 없고.

어차피 내가 직접 나설 거면 굳이 알려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생각보다 잘 싸우네.’

사납게 포효하는 마룡, 그리고 놈을 피해 능히 싸우는 용사들.

그리고 조금씩일지라도 꾸준히 깎이는 마룡의 피통을 보자니, 또다시 기분이 묘해졌다.

이대로만 간다면, 머지않아 놈을 완전히 해치울 가능성도 보였다.

‘어쩌면, 내가 나서서 단번에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도 오만일지 몰라.’

굳이 내가 힘을 보태지 않아도, 카셀을 비롯한 메인 캐릭터들은 알아서 엔딩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

분명 다행이고, 감사할 일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 사실이 너무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졌다.

내 손으로 끝내는 게 아닌 엔딩은, 내가 끝까지 두 손 놓고 있을 거라는 상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어서일까.

“으아아아악!”

그때였다.

마룡이 휘두른 발에 맞은 대여섯 명의 용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으윽…….”

멀리 처박힌 그들은 괴롭게 신음하며 서둘러 체력 포션을 꺼내 마셨다.

죽은 건지, 기절한 건지.

그러지 못한 이도 있었지만, 서로를 챙길 여력조차 없었다.

전투가 길어질수록 부상을 입고 쓰러지는 자들이 속출했다.

잘 싸우고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온전한 내 착각일지 모른다.

‘끝내야 해.’

그 모습에 누군가 머리 위로 찬물을 들이부은 것 같았다.

카셀의 명령 하나에 바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절부절못하던 나는 그제야 결심이 섰다.

실행으로 옮기기 전에 한 발자국 떼던 순간이었다.

“가, 가면 안 돼요, 천사님!”

누군가 내 허리춤을 와락 끌어안았다.

“니세.”

나는 놀란 눈으로 온몸으로 나를 막아서는 니세를 내려다보았다.

“뭐…… 하는 거예요?”

“가, 가서 싸우려는 거죠?”

내 생각을 정확히 간파한 듯한 니세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니세는 간절한 얼굴로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덧붙였다.

“화, 황태자 전하께서 천사님…… 아니, 샤리를 절대로 전투에 나서지 못하게 하라고 제, 제게 명령하셨어요.”

“전하께서…… 요?”

생각이 뚝 멈췄다.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니세에 그런 명령을…….

아니, 그 전에 어째서 내가 당연히 나설 거라 생각했을까.

나는 버벅대며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간신히 물었다.

“전하께서 왜 교황님께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겁니까?”

“그건 아마…….”

니세는 난감한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샤리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

“무슨…….”

“매, 매번 자신은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남을 구하려고 무턱대고 뛰어들곤 했잖아요.”

“…….”

“저, 저를 구하기 위해 삼색이에게 삼켜졌을 때도 그렇고…….”

그때를 고스란히 기억하는지, 맑은 은빛 눈이 나를 또렷이 응시했다.

“샤리를 보고 있으면 꼭, 위험해질 걸 알면서도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아요.”

묘한 비유였다. 나는 멍하니 니세를 바라보았다.

“아마, 황태자 전하께서도 샤리의 그런 점을 알고 계시니, 제게 그런 명령을 내리신 게 아닐까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는 퀘스트를 할 때마다 위험한 상황이라는 것을 잘 알았고,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넘겨왔다.

때로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다치는 것도, 더 나아가 죽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내게 ‘죽지 않는 NPC 버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보면서 메인 캐릭터들이 니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게다가, 그런 점에 있어 카셀의 명령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더 이상하잖아.”

“네? 뭐가…….”

내 혼잣말에 니세가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나는 재난처럼 들이닥치는 혼란스러움에, 어느덧 존대도 집어치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카셀은 너와 달리 내 본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그게 문제였다. 나는 아직 카셀에게 정체를 들키지 않았다.

평범한 약재상인 내가, 타국의 왕녀를 사칭하고 수차례 사고를 치고 다닌 ‘사리 송’이라는 것을 그는 몰랐다.

“게다가 카셀은 내가…….”

리르의 서재에서 죽은 줄 알고 있을 텐데…….

새된 비명처럼 그 말을 중얼거리던 순간이었다.

“끼루루루룩―!”

별안간 멀찍이서 익숙하고도 불길한 기러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와 니세는 동시에 휙 고개를 돌려 소리의 근원지를 찾았다.

한참 마룡과 용사들이 치고받고 싸우고 있는 부근의 뒤.

간헐적으로 용암이 치솟는 분화구에서, 또다시 와이번 떼가 우글우글 기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황급히 마룡의 남은 HP 게이지를 확인했다.

[HP 599 / 990]

니세와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마룡의 피통이 훌쩍 깎여 있었다.

하지만 전혀 기뻐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마룡의 등장 직전에 이어, 또다시 몰려나오는 와이번 떼 때문이었다.

와이번 떼가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2페이즈!’

마룡의 공격이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는 전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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