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정신을 차린 나는 곧장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본 의사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틀간 혼수상태였던 사람치고 몸이 너무나도 멀쩡했기 때문이다.
‘망할 GM 놈들, 최소한 양심은 있었나 보지?’
깨끗한 뇌 CT 사진을 보며 나는 시큰둥하게 생각했다.
솔직히 깨어난 직후, 아직까지도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그 빌어먹을 망겜 속에 갇혔던 기억들이 정말로 내가 겪은 일인 건지, 아니면 단순히 무의식중에 꾼 꿈에 불과한 건지 헷갈렸기에.
‘꿈이라기엔, 기억이 이렇게 선명할 수가 있나?’
그렇다고 현실이라고 치부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천국이라 불리는 곳에 갔다가, 멸망 직전이었던 그 세계를 구하고 돌아왔다고 말하면 지나가던 개가 웃을 것이다.
하루 종일 병원 곳곳을 순회하던 내 마지막 종착지는 정신과였다.
“사리 씨, 투신 시도는 어쩌다가 하게 되셨을까요?”
오늘 만난 모든 의사들이 물은 질문이었다.
정신을 잃은 사이, 나는 이미 한강에서 자살 시도한 인간으로 낙인찍혀 있었다.
그런 취급에 이력이 난 나는 힘없이 답했다.
“술 먹고 실수한 거라니까요…….”
“혹시 평소 우울증을 앓고 계셨다든지…… 이상 증세는 따로 없었을까요?”
“네.”
내 대꾸에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차트를 넘겼다.
그리고 이어진 질문에 나는 순간 멈칫했다.
“15년 전에 사고로 장기 입원하신 기록이 있으시던데…….”
“…….”
“그 이후에 따로 상담 치료 같은 건 안 받으셨나요?”
반사적으로 어딘가 고장이 난 것 같다고 느꼈던 찰나가 떠올랐다.
긴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이미 사고로 다쳤던 몸은 다 회복된 후였다.
내 병원비를 감당했던 큰아버지는 나를 짐 덩어리처럼 바라보며 깨어났으면 가자는 한 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잠시 회상에 잠겼던 나는 이내 고요히 되물었다.
“……받아야 했을까요?”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좋았겠죠. 사고 후유증이라는 게 꼭 몸에만 나타나는 게 아니잖아요.”
의사는 내재된 우울증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상담 치료를 권했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얼버무리며 거절했다.
게임에 갇힌 게 꿈인지 현실인지도 제대로 구분 못 하는 지금의 내 상태는, 단순히 우울증 치료를 받는다고 해결될 것 같지 않았기에.
‘게임에 갇혔던 기억을 얘기하면, 진짜로 정신병자 취급당하려나.’
망상 장애, 조현병 등 진단받을 만한 질환들을 떠올리며 상담실을 빠져나올 때였다.
“아.”
문득 벼락처럼 깨달음이 찾아왔다.
‘그때였구나.’
“후배여, 그대는 이전에 이곳에서 살았던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용사들과 이방인들을 보았다네.”
“모든 건 다 샤리 님의 기억 속에 있습니다.”
제작자 놈들이 하는 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내가 언제 또 그 망할 게임 속에 갇혔었던 건지.
15년 전, 사고를 당해 혼수상태였던 그 기간에 나는 그 빌어먹을 세상에서 살았던 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그때의 기억을 되찾자, 놀라움보단 허망함과 어이없음이 앞섰다.
‘망할. 그럼 거기서 2년만 살았던 게 아니잖아.’
몇 달 동안 혼수상태였으니, 그곳에서 거의 평생을 NPC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친. 그 정도면 공략법을 모를 수가 없잖아.’
게임이 아닌 건 그렇다 쳐도, 커뮤니티나 남의 플레이를 잘 알고 있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유저들의 게임 시작점에서 평생을 NPC 노릇하며 살았으니, 자연히 수많은 정보를 습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브로 가리고 산 건…… 어쩌면 늙지 않아서였던 건가.’
이어서 든 생각에 나는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그 세계에서는 영혼 상태로 있었으니, 아마도 시간이 무의미했을 것이다.
진짜 영락없는 게임 속 NPC처럼, 늙지도 병들지도 않은 채로 살았다고 생각하니 오싹 소름이 끼쳤다.
‘참…… 교묘하게도 이어 붙여놨네.’
나는 내 기억을 잘도 이용해먹은 제작자 놈들에게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그 정보들 때문에, 현실이 아니라 게임 속이라고 나 자신을 세뇌시키기가 용이했다.
“……그대가 이 무거운 짐을 감당하기엔, 너무 어린 소녀였거든.”
뒤이어 세라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하…….”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세상을 구하는 역할을 맡기기에는 노련미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을 빗대어 말하는 건가 했는데.
“진짜 어린 나이였잖아…….”
아빠를 죽음에 이르게 했던 그 사고가 일어날 당시.
나는 고작 11살에 불과했다.
* * *
검사 결과 모두 정상이라는 진단이 내려지자, 퇴원 절차는 금방 이뤄졌다.
퇴근 중에 벌어진 일이라 챙길 짐도 별로 없었다.
“송사리 님!”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서는데, 간호사 한 명이 나를 다급히 불렀다.
“놓고 가신 물건이 있는데, 잠시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놓고 간 물건이요?”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간호사를 따라 데스크 뒤쪽으로 갔다.
창고로 쓰이는 듯한 협소한 공간으로 나를 이끈 그녀가, 캐비닛에서 무언가를 은밀히 꺼내 건넸다.
“저, 이거…… 응급실에 실려 왔을 때부터 꽉 쥐고 계시던 거예요.”
나는 간호사가 건네는 기다란 물건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미친!’
날개 달린 시커먼 물체는 바로, 루미에카르였다.
“이, 이게, 이게, 왜…….”
“그…… 처음엔 장난감인 줄 알았는데, 진짜 검이더라고요? 좀 위험한 것 같아서 따로 보관해뒀어요.”
입을 떡 벌린 채 넋이 나간 나를 보며 간호사가 어색하게 웃었다.
하지만 눈빛에는 수상함이 역력히 서려 있었다.
하기야 나 같아도 수상하다 못해, 미친년같이 볼 것이다.
듣도 보도 못한 괴상한 검을 쥔 채로 강물에 뛰어든 여자라…….
“하…… 정말 죄송한데, 혹시 비닐이나 쇼핑백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친절한 간호사의 도움으로 나는 그 망할 검을 숨길 수 있었다.
혹시라도 누가 볼까 봐 검이 든 쇼핑백을 품에 꼭 안은 채로 걷는데, 기분이 너무 이상했다.
‘제길…… 대체 이건 왜 여기 있는 거지?’
그쪽 세계 아이템인 루미에카르가 대체 어떻게 여기까지 딸려 온 것일까.
그럼 그 기억들이 꿈이 아니라, 모두 현실이라는 말인가?
폭풍이 휩쓸고 있는 것처럼 머릿속이 온통 혼잡했다.
무슨 정신으로 수납처로 가서 병원비를 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마침내 모든 퇴원 절차가 끝나고 병원 입구로 향할 무렵이었다.
북적북적한 로비를 가로지르는데, 별안간 섬뜩한 기운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휙 고개를 돌렸다.
“츠츠츠츠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로, 시커먼 무언가가 모퉁이 너머로 빠르게 기어가는 게 보였다.
“……어먹지?”
나는 한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눈을 한 번 깜빡이자 시커먼 물체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나는 [어둠을 먹는 지네]의 환영이 사라진 모퉁이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럴 리가 없지.’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그 망할 게임 때문에, 내가 정말로 미쳐가나 보다.
마물의 환영까지 다 보고 말이다.
한동안 로비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는 이내 진저리를 치며 그곳을 벗어났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회사에 연락부터 취했다.
이틀간 연락 두절이었으니 잘릴지 모르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걱정과 염려가 담긴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 푹 쉬고 월요일에 봐요, 샤리 님. 병가 더 필요한 상황이면 말씀해주시고요.
현실에서 듣는 ‘샤리’라는 이름에 나는 또다시 이상한 기분에 휩싸였다.
사리, 샤리.
회사 내에서 본명 대신 불릴 영문명이 필요해서 대충 지었던 이름이었다.
그런데 그 망할 게임 속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니…….
‘그러고 보니 실명도 다 밝혔잖아.’
생각은 카셀에게 처음 본명이 까발려졌던 순간까지 뻗어져 나갔다.
솔레니아의 왕녀로 위장하여 경기장을 통과하던 때.
급히 이름을 지어내야 하는데, 떠오르는 게 내 이름뿐이었다.
‘아오. 그렇다고 사리 송이 뭐냐, 사리 송이.’
나는 그 한심한 과거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어차피 일회성이고, 그 세계에선 퍽 이국적인 이름일 테니 당시엔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
“사리 송은 본명인가?”
하지만 그렇게 수치스럽게 알려질 줄 알았더라면…….
“제발! 그만 생각해!”
그 순간에 느꼈던 당황스러움과 쪽팔림까지 고스란히 떠올린 나는 비명을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자꾸 되새겨서 어쩔 거란 말인가.
어차피 과거일 뿐이고, 내겐 당장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일만 남았다.
“잊자. 제발 그냥 잊어.”
그렇게 되뇌며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쓴 뒤, 늘 그랬듯 악착같이 외면하길 택했다.
잊으라는 말을 수없이 되새기던 나는,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었다.
* * *
“…… 리…….”
누군가 희미하게 나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퍼뜩 눈을 떴다.
“어? 여긴…….”
눈앞에 있는 건물에 당혹스러움이 몰려왔다.
낮에 퇴원한 병원 앞이었기 때문이다.
한밤중인지 불이 모두 꺼져 있는 컴컴한 병원 건물은 음산한 기운을 물씬 풍겼다.
“샤…… 리…….”
그때였다.
나를 깨운 희미한 부름이 어디선가 또다시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낮에 느꼈던 불길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저 멀리서 시커먼 덩어리가 휙 스쳐 지나갔다.
“츠츠츠츠츠…….”
나는 홀린 듯이 그것을 쫓아갔다.
정신을 차리자 나는 어느덧 병원 뒤편, 흡연 구역에 홀로 서 있었다.
어둠이 자욱이 내려앉은 구석에서 시커먼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사…… 리…….”
그것은 전보다 명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사리인지, 샤리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무의미한 구분이었다.
둘 중 뭐든, 나를 지칭하는 건 변함 없었으니까.
“너 뭐야.”
나는 잔뜩 긴장한 채 컴컴한 어둠을 노려보았다.
“누군데 내 이름을…….”
그 순간, 꿈틀거리던 형체가 차차 커졌다.
“무, 무슨…….”
반사적으로 뒷걸음질 치던 순간.
탁!
어둠 속에서 커다란 손이 튀어나와 내 손목을 움켜쥐었다.
“악!”
“크르르르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어느새 늑대의 형태를 한 마물이 내 앞에 서 있었다.
“……라, 라이칸?”
“……내가 말했지. 통제할 수 있다고.”
라이칸이 짓씹듯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손목을 붙든 힘이 더욱 강해졌다.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올 만큼.
“으읏! 이거……!”
놓으라고 소리치려는 찰나.
내 손목을 쥐고 있던 짐승의 손이 점점 새까만 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눈 깜짝할 새 검은색 액체 형태로 변했다.
슬라임 같은 그것이 내 팔을 타고 느릿느릿 기어오르며 나를 옭아맸다.
“포기해, 샤리 아즈라엘.”
머리 위로 들리는 익숙한 음성에 다시 앞을 올려다본 나는 스르륵 입을 벌렸다.
라이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그 자리에.
“네가 어디로 도망치든 간에.”
“…….”
“지옥 끝까지 쫓아가서, 다시 내 옆으로 끌고 올 생각이거든.”
시뻘건 눈을 가진 거대한 용이 나를 형형히 노려보고 있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