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6화 (206/212)

‘나 지금 꿈꾸는 건가?’

나는 한 손을 들어 더듬더듬 눈을 비볐다.

내 눈이 잘못되지 않은 이상, 공중에 떠 있는 저것은 마물의 핵이다.

그리고 거기서 마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이게…… 이게 말이 되나?’

좀처럼 믿기지 않는 상황에 버벅대고 있을 즈음.

“키이이이익―!”

“꺄아아아악!”

선두에 서 있던 리저드 한 마리가 훌쩍 뛰어올라 도망치던 여성의 뒤를 덮쳤다.

“사,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날카로운 비명에 퍼뜩 정신이 돌아왔다.

공격을 당한 건 여자뿐만이 아니었다.

주변은 이미 느닷없이 출몰한 도마뱀 떼로 아수라장이었다.

리저드는 크기가 작고, 개체별로 공격력이나 방어력이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속도가 매우 빠르고, 무리 지어 다니며, 순식간에 먹잇감을 갉아 먹는 특성이 있다. 마치 피라냐처럼.

나는 다급히 마물의 핵을 바라보았다.

시커먼 아우라를 풍기는 거대한 결정체에서 리저드들이 우박처럼 바글바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지금 이 상황이 꿈인지, 현실인지 가늠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대로라면 이 근방에 있는 생명체들은 모두 리저드 떼한테 갉아 먹힐 테니까.

‘어, 어떡하지?’

나는 이도 저도 못 한 채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애석하게도, 나는 더 이상 스킬을 자유자재로 쓰는 만렙이 아니었다.

죽지 않는 NPC는 더더욱 아니었고.

그냥 회사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

게임으로 따지자면 아무 힘도 능력도 없는 일개 평민 1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이라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지금이라도 도망치는 게 더 이로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이 아수라장 속에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 같다는 의구심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설마 며칠 전에 불길한 꿈을 꿔서……?’

GM 놈들이 말하지 않았나.

이방인들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상상하는 대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내가 다른 차원에서 온 영혼 상태였으니까 그런 거잖아.’

애써 반박을 펼쳐봐도, 한번 피어오른 죄책감과 두려움은 가시질 않았다.

‘미친X아. 그러니까 내가 잊고 살자고 했잖아! 생각 안 했으면 됐는데, 왜 자꾸 그때를 떠올려서……!’

끔찍한 무력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제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사이.

“키이이이익!”

리저드 몇 마리가 순식간에 내가 있는 쪽까지 당도했다.

나를 노려보며 이를 드러내는 괴수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주춤, 뒷걸음질 친 순간.

두근!

갑자기 가슴팍에서 강한 고동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품에 끌어안고 있던 커다란 쇼핑백이 보였다.

‘루미에카르.’

그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떠올림과 동시에 선두에 서 있던 리저드 놈이 펄쩍 허공으로 도약했다.

앞뒤 더 따져볼 새도 없었다.

“아악!”

나는 즉시 쇼핑백에서 검을 꺼낸 후 비명을 지르며 휘둘렀다.

쐐액!

날카로운 검날이 바람을 가르는 게 느껴졌다.

솔직히 제대로 베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다.

얼뜨기처럼 눈을 질끈 감고 휘두른 검이 작고 날쌘 마물을 적중했을 리가.

“키엑!”

그러나 다시 눈을 뜬 순간.

두 동강 난 채 절명해 있는 리저드를 발견할 수 있었다.

“……미친.”

나는 바닥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이게 말이 돼?’

마구잡이로 휘두른 눈먼 검에 맞아 죽을 수가 있다고?

난 더 이상 만렙 능력자도, NPC도 아닌데?

두근, 두근, 두근.

하지만 손에서 느껴지는 박동만은 진짜였다.

검이, 루미에카르가 내게 공명하고 있었다.

“키기기기긱!”

동료의 죽음을 목격해서일까.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던 리저드들이 별안간 움직임을 멈추고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무언가 자신들만의 신호를 주고받던 놈들이 이윽고 모조리 내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익!”

“키에에에엑!”

하지만 왜일까.

더는 두렵지 않았다.

망할 만렙 무기가 내 손에 쥐여 있어설까.

오히려 지금 이 느낌, 이 상태로는…….

어쩌면 스킬을 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그 즉시 소리쳤다.

“섬멸!”

화르르르륵!

가장 앞서 달려오던 놈의 몸에 불길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필두로 화염이 들불처럼 리저드 떼 전체로 번져나갔다.

때아닌 불꽃놀이를 구경하듯, 한마디로 장관이었다.

“끼에에에에엑!”

마물들은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순식간에 타들어 갔다.

“이게 되네…….”

나는 그것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리저드 떼를 처치하는 것은 한번 해본 경험이 있어서 크게 놀랍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게, 이게 진짜 현실이 맞는 걸까? 또 개꿈 꾸는 게 아니고?’

마물들이 타들어 가고 남은 재를 바라보며 몸 이곳저곳을 꼬집고 있을 때였다.

짝.

어디선가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변을 돌아보자 정신없이 도망치던 사람들이 어느덧 걸음을 멈춘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짝, 짝, 짝, 짝.

한, 두 명이 시작한 박수 소리가 점점 커졌다.

“세상에! 저, 저 여자가 괴물들을 모조리 없앴어요!”

“불은 뭐지? 화염방사기를 쏜 건가?”

“아까 보니까 들고 있는 저 검으로도 괴물을 베던데…… 코스프레 같은 거 하는 사람일까요?”

“오타쿠?”

‘X발, 아니거든요!’

곳곳에서 들리는 웅성거림에 발끈하던 순간이었다.

“아우우우우우―!”

거리 한복판에 또다시 불길한 울음이 울려 퍼졌다.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허공에 떠 있는 마물의 핵에서 이번에는 라이칸들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크르르르르! 크헝!”

“저, 저기 또 괴물들이……!”

리저드보다 훨씬 크고 살벌하게 생긴 마물의 외형에 사람들이 다시금 패닉 상태에 빠졌다.

라이칸은 리저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훨씬 더 레벨이 높고 강했다.

“위험하니까 여기서 빨리 다 도망가세요!”

나는 다급히 인파를 향해 소리쳤다.

“꺄아아아악!”

웨에에에에엥. 위용, 위용.

끼이이익!

누군가 신고를 했는지 멀리서 경찰차가 보였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지르는 비명, 괴수들의 하울링, 사이렌 소리까지 더해진 도로는 다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미치겠네, 진짜.”

나는 환장할 상황에 머리를 거칠게 쓸어 올렸다.

애석하게도,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알고 있었다.

마물의 핵을 파괴하지 않는 이상, 마물들은 계속 쏟아져 나올 것이다.

경찰이나 소방관들이 몰려와 더 많은 피해가 속출하기 전에 빨리 해결해야 했다.

나는 검을 고쳐 잡으며, 이쪽으로 달려오는 라이칸들을 노려보았다.

스킬을 쓸 수 있는 이상, 놈들을 처치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이 이후에 내 현생은 어떻게 되냐는 건데…….’

도심에 나타난 영웅이랍시고 집이고, 직장이고 다 까발려지게 되는 걸까.

어쩌면 초능력자로 분류돼서 연구소에 끌려갈지도.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을 가정하며, 다가올 라이칸들과의 격돌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빠르게 달려오던 라이칸들이 갑자기 이상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은.

“꺄아아아악!”

“아악! 살려줘!”

도망가는 사람들을 덮친 놈들은, 공격을 가하지 않았다.

킁킁, 킁킁.

개처럼 사람들의 냄새를 맡고 다닐 뿐.

냄새를 맡은 후 실신한 남자 한 명을 바닥에 내팽개친 라이칸 한 마리가 번뜩 고개를 들고 두리번거렸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드라진 주둥이가 스르르 벌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아닌.

“샤…… 리…….”

내 이름이었다.

“무슨…….”

나는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아무리 개꿈 좀 꿨기로서니, 두 번이나 내 이름이 거론되는 건 좀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샤리 아즈라엘…….”

“찾아야 해…….”

“냄새를…….”

다른 놈도, 또 다른 놈도, 또 다른 놈도.

속속 내 이름을 거론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착각이 아니었다. 놈들은 나를 찾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 꿨던 꿈처럼.

‘그러고 보니…… 리저드 떼도 바로 사람들을 공격하진 않았어.’

잊고 있던 두려움과 불안감이 다시금 치솟기 시작했다.

저 빌어먹을 마물 놈들이 대체 왜 나를 찾는단 말인가?

아니, 애초에 이게 현실이 맞긴 해?

개꿈이라 해도, 무슨 이런 지독한 악몽을……!

그때였다.

“사리…… 크르르…… 사리 송!”

유달리 몸집이 거대한 라이칸 한 마리가, 포효하듯 내 이름을 정확히 내뱉었다.

‘X발! 꿈이고 뭐고, 이러다 영웅이 아니라 괴물 몰고 다니는 미친X 되겠다.’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당장 저 새끼들의 입을 틀어막아야 했다.

“스턴!”

나는 진저리를 치며 스킬을 영창했다.

파즛, 파지직!

푸른 스파크와 함께 근방에 있던 라이칸들이 픽, 픽 쓰러졌다.

끼이이익!

운명의 장난처럼, 라이칸들이 쓰러지는 것과 동시에 마침맞게 경찰차가 도착했다.

“이봐요! 거기 가시면 안 됩니다! 이, 이봐요!”

누군가 내게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물의 핵이 떠 있는 병원 입구로 달렸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그 망할 곳에서 기껏 탈출했더니.

현실까지 쫓아온 거면 정말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스턴! 스턴! 스턴!”

나는 끝없이 쏟아지는 라이칸 놈들에게 가차 없이 스킬을 내리꽂았다.

“케엑!”

“큭!”

놈들은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쓰러져 나갔다.

리저드들처럼 섬멸로 모조리 궤멸시킬 수도 있는데.

왜 고작 스턴으로 기절시켰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나를 찾아 마물들을 움직이는 존재가 누구인지, 본능적으로 알 것만 같은 기시감 때문일까.

마구잡이로 스킬을 남발하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마물의 핵 바로 아래에 도달해 있었다.

“스턴!”

막 뛰어내리던 놈들마저 조져버리자, 마침내 핵이 잠잠해졌다.

하지만 방심하긴 일렀다.

[어둠의 숲]에서 겪어본 결과, 이건 다음 마물 떼를 준비하기까지의 일종의 쿨타임에 불과했으니까.

이런 것까지 세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내가 한심하고 지긋지긋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나는 치를 떨며 마물의 핵을 향해 외쳤다.

“보내 준다며! 근데 왜 여기까지 따라와서 지X이냐구―!”

“…….”

“나도, 나도 좀 평범하게 살아보자. 어?!”

GM이든, 고대 영웅이든, 누가 대답 좀 해줬으면 좋겠다.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어떻게 해야 그 세계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수 있는 건지.

이게 현실이 아니라 꿈이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깨어난 직후의 나는 또 얼마나 이 잔상에 시달려야 할까.

“크워어어어어억―!”

그때였다.

그런 나를 비웃듯 마물의 핵으로부터 고막이 터져나갈 것 같은 괴성이 쏟아졌다.

“윽!”

반사적으로 귀를 틀어막은 나는, 이윽고 내 눈을 의심했다.

펄럭!

새까만 결정체에서 튀어나오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용의 거대한 날갯죽지였다.

“고, 고대 마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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