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7화 (207/212)

떨리는 음성으로 놈의 이름을 내뱉은 순간.

“크워어어어어억―!”

마치 정답이라는 듯, 엄청난 괴성이 또 한 번 천지를 뒤흔들었다.

날개에 이어, 큼지막한 주둥이가 핵 바깥으로 쑤욱 튀어나왔다.

놈이 기다란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튀어나온 대가리를 버둥거렸다.

꼭 좁은 알 속에 갇힌 몸을 빼내려는 새와 같은 몸짓이었다.

실제로도 놈은 핵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갔던 정신이 번쩍 되돌아왔다.

“아니, X발! 진짜 가지가지 하네!”

나는 치오르는 욕설을 삼키며 서둘러 내달렸다.

분명 내 손으로 죽였던 마룡이 대체 어떻게 다시 살아나서 이곳으로 기어 나오려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지금 상황에서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이대로 고대 마룡이 핵에서 빠져나오면, 이제 나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겐 더 이상 죽지 않는 버프가 없기 때문에.

놈을 죽이려면, 내 모든 생명을 다 바쳐서 [진정한 희생과 헌신] 스킬을 써야 했다.

하지만 난 그 스킬의 발동 조건도 모르고, 밑도 끝도 없이 내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빠져나오기 전에 핵을 파괴하는 게 최선이야.’

다행히 마물의 핵 바로 아래 주차된 차 한 대가 있었다.

돋움닫기를 위한 발판이었다.

타다다닥! 쿵―!

빠르게 달리던 나는 속도를 멈추지 않고 그대로 차의 보닛을 밟고 뛰어올랐다.

그리고 들고 있던 루미에카르를 힘껏 치켜들어서, 그대로 검은 결정체 위로 꽂아 넣었다.

콰직―!

파열음과 함께, 핵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치던 마룡의 움직임이 뚝 멈췄다.

‘됐어.’

파즛, 파즈즈즛.

검이 꽂아둔 자리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이제 핵 결정체가 산산조각이 나기를 기다리면 끝이다.

마룡을 겨우 막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찰나였다.

“찾…… 았…… 다.”

별안간 익숙한 음성이 귀를 울렸다.

나는 흠칫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대가리만 툭 튀어나와 있는 기괴한 꼴의 마룡과 그대로 시선이 마주쳤다.

놈은 쭉 찢어진 검붉은 눈으로 나를 고요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몸부림치던 것이 무색할 만큼.

왜인지 그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감각과 함께.

“……카셀?”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곧 후회했다.

‘그럴 리가 있겠냐고.’

아무리 꿈이라 한들, 너무 개막장이지 않은가.

‘죽음’이었던 마룡이 카셀일 리가…….

그럼에도, 그럴 리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놈과 정신이 동화된다는 건, 다시 말해서 통제할 수도 있다는 소리겠지.”

그가 했던 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하필 지난밤에 꾼 불길한 꿈까지 오버랩 돼서…….

“……내가 말했지. 통제할 수 있다고.”

“진짜…… 당신이에요?”

흔들리는 눈으로 마룡을 바라보던 그 순간이었다.

콰르르르르!

“악!”

별안간 핵이 산산조각이 나면서 마룡이 사라지고, 검에 매달려 있던 내 몸 또한 훅 아래로 떨어졌다.

쿠웅!

“으윽!”

검은 결정 가루들과 함께 허공에서 떨어진 나는 그대로 자동차 위를 나뒹굴었다.

“아야야, 나 죽네……,”

스킬은 쓸 수 있어도 방어력은 적용되지 않는 건지, 부딪힌 어깨와 팔에 통증이 엄습했다.

그나마 핵이 높게 떠 있지 않아서 다행이지,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다.

아픈 부위를 부여잡으며 간신히 몸을 일으킬 즈음, 나는 주변이 묘하게 고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꼼짝 마!”

“칼 내려놓고 손들어!”

“당신을 흉기 소지 및 특수 손괴 혐의로 긴급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병원 입구를 막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는 한 무리의 경찰들.

영화에서나 듣던 미란다 원칙에 일순 머릿속이 하얘졌다.

“특수 손괴……?”

흉기 소지는 그렇다 치고, 특수 손괴는 뭐란 말인가.

나는 경찰들을 황망히 바라보다가 허공을 손가락질했다.

“저기요. 제가 방금…… 괴물 나오는 이상한 결정체 부순 거 못 보셨어요?”

“조용히 해!”

“칼 버리고 손들어!”

미약한 내 자기변호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경광봉은 물론 공기총까지 꺼내 들고 겨누는 경찰들 보자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리 씨, 일단 진정하시고요. 서에 가서 같이 얘기 나누시죠.”

게다가 무슨 협상가로 보이는 사람까지…….

검을 버리고 손을 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지?’

물론 저들의 눈에 내가 이상하게 비칠 만도 하다는 건 충분히 이해했다.

검을 휘두르고 초능력 같은 스킬을 마구 쏴댔으니, 당연히 뭐 하는 인간인가 의심이 들 테다.

하지만 내가 마물을 때려눕히는 것을 본 목격자들도 많지 않았던가?

저질 체력으로 용써가며 기껏 핵까지 파괴했는데.

왜 이딴 범죄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억울함과 막막함이 울컥 치솟았다.

‘……적어도 그쪽 세계였다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텐데.’

영웅으로 떠받들었으면 떠받들었지, 말도 안 되는 죄명을 갖다 붙이며 체포부터 하진 않았으리라.

불쑥 나도 모르게 든 생각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러는 사이, 병원 입구에 몰리는 경찰들의 수는 점점 더 늘어났다.

“한 번 더 반복한다. 당장 칼 버리고, 투항해!”

어느덧 확성기까지 동원하여 나를 완전한 범죄자 취급하는 그들의 모습.

나는 고개를 저으며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피가 날 만큼 허벅지를 꼬집었지만, 꿈에서 깨지 않았다.

믿기 어렵지만, 현실이었다.

“……싫어!”

이대로 잡혀갈 수 없었다.

나는 결국 현실을 외면한 채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도, 도주한다! 잡아!”

느닷없이 줄행랑을 치는 내 모습에, 당황하던 경찰들이 허둥지둥 나를 뒤쫓기 시작했다.

우습게도 그들을 피해 병원 부지를 빠져나오는 건 쉬웠다.

입구와는 달리 뒷문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헉, 헉…….”

병원을 등진 채 나는 무작정 달렸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이성이 집 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속삭였지만…….

정신 차리니, 어느덧 집으로 가는 대교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곳.

본의 아니게 투신해서 처음 게임에 갇혔던 곳 말이다.

‘아니, 처음은 아니지. 두 번짼가.’

이 와중에도 그런 거나 따지고 있는 나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러자마자 시야가 흐려졌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이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도무지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분명 엔딩을 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모든 게 다 잘될 줄 알았다.

그것 하나만을 바라보며 그곳에서 버텼는데…….

내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엉망진창이었다.

부모 없는 천애고아에, 친구는커녕 친하게 지내는 동료 하나 사귀지 못하고 사회에서 겉도는 아싸.

그도 모자라 이제는 범죄자까지 돼서 잡혀가게 생겼다.

‘대체 뭘 위해 기를 쓰고 돌아온 걸까.’

개고생만 하던 그곳과 아무리 비교해도, 뭐 하나 나은 점이 없었다.

그토록 돌아가길 고대했던 내 원래의 삶이 사실은 별 보잘것없다는 게.

그게 가장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다.

“……이거 맞아?”

나는 어느 순간 술 취해서 뛰어내렸던 그날처럼, 난간에 매달린 채 강물에 대고 물었다.

“이렇게 사는 거 맞냐구!”

이제 누구한테 답을 받고 싶은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아버지인 건지, GM들인 건지.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멀리서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굳이 보지 않아도, 나를 잡으러 오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범죄자가 되어 잡혀가는 건 무섭지 않았다.

정말로 무서운 건, 잠에서 깨어나도 이어지는 이 악몽 같은 현실에서, 도무지 벗어날 방법을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원한 삶은 이런 게 아니었는데.

어디에도 도망칠 곳이 없었다.

숨이 막혔다.

“제발…… 나 어떻게 좀…….”

엉엉 울며 누구에게 비는지도 모를 말들을 쏟아낼 때였다.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아직 사용하지 않은 보상이 남아 있습니다.」

「[GM아리]의 보상 - 최후의 선택」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보상을 사용하시겠습니까?

YES /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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