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9화 (209/212)

‘……왜?’

나는 골목 어귀에 우두커니 선 채 남자들에게서 전해 들은 말들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여기서는 3년이란 시간이 지났다지만, 내게는 고작 그저께 겪은 일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그때의 그 기억이 생생하다는 소리다.

‘분명 모두 다 밴 해제했잖아.’

심지어 실수라도 할까 봐, 카셀은 가장 마지막에 불렀다.

그를 제외한 다른 용사들은 모두 돌아왔다는 것을 보면, GM들이 그들을 무사히 되돌려놓은 게 틀림없었다.

그런데 카셀은, 왜 혼자만 돌아오지 못했단 말인가.

대체 왜…….

“아.”

하염없이 이유를 찾던 나는, 불현듯 떠오른 장면에 숨을 멈췄다.

게임을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자마자 꿨던 불길한 꿈.

느닷없이 병원 앞에 생긴 마물의 핵.

그리고…….

“찾…… 았…… 다.”

핵에서 빠져나오려던 마룡의 속삭임.

경찰에 쫓기느라 깊이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건 분명.

카셀의 목소리였다.

‘설마…… 통제할 수 있다더니, 정말로 죽음과 동화해서 힘을 가진 건가?’

그것 말고는 마물의 핵이 나타난 이유를 설명할 수 없었다.

리르의 서재에서 본 책에 따르면, 마물은 ‘죽음’이 탄생시킨 존재였으니까.

게다가 두 세상을 모두 넘나들 수 있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처럼 혼수상태에 빠져 유체 이탈하게 된 인간들이, 꼭 내가 사는 현실에서만 존재한다는 보장도 없었다.

만약 내가 떠난 직후, 기어이 불면 포션을 마신 카셀이 상태 이상에 빠져 영혼 상태로 나를 쫓아온 거라면.

그리고, 동화된 ‘죽음’의 힘으로 나를 찾기 위해 마물을 푼 거라면…….

그럴듯한 가정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러나 나는 이내 마구 도리질을 쳤다.

“미친 거 아니야? 기껏 저주 없애 놓고, 나를 왜 쫓아와?!”

그럴 리 없을 것이다.

매사 냉정하던 그가, 그렇게 바보 같은 짓을 했을 거라곤…….

하지만 자꾸만 섬뜩한 느낌이 드는 이유를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일단 아담을 만나봐야겠어.’

나는 그 생각으로 기사 행렬이 사라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채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내가 샤리 아즈라엘이란 걸 어떻게 증명하지?’

지금 내 모습은 그들이 알고 있을 ‘샤리 아즈라엘’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물론 루미에카르가 있긴 하지만, 아담에게 확신을 줄 때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는 동안 카셀에게 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그는 아직 내가 이곳으로 돌아온 것을 모르고 있을 테니까…….

‘차라리 니세에게 가는 게 나을까?’

나는 재빨리 또 다른 메인 캐릭터를 떠올렸다.

하지만 아담도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판에, 무려 교황이나 되는 인간을 쉽게 만날 수 있을 리가.

‘일레인은…….’

가장 만만한 놈은, 애석하게도 어디 있는지 모른다.

“아오, 이 쓸모없는 새끼들!”

나는 좀처럼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분통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어쩌면 다 내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아리가 보상을 준다고 했을 때 조금 더 고민해 보았을 텐데.

그나마 내 아이템들이 남아 있을 도버 마을로 돌아가고 싶어도, 빌어먹을 돈이 없었다.

이동 스크롤을 살 돈. 아니, 이동 수단을 잡아탈 돈조차…….

“하…… 알거지나 다름없네. 이제 하다못해 구걸도 해야 하냐고…….”

빌어먹을 GM 놈들. 솔직히 코인 정도는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좌절하던 순간이었다.

“잠깐.”

번뜩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나 이동 수단 있잖아.”

내게는 돈도 안 들고, 스크롤 못지않은 최고의 이동 수단이 존재했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나는 곧장 인적이 드문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곧장 손가락을 모아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1초, 2초, 3초…….

“꾸웨에에에엑!”

채 5초가 지나기 전, 창공에서 돼지 멱 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어서 거대한 그림자가 순식간에 머리 위를 덮쳤다.

쿠웅―!

골목길이 꽉 찰 만큼 큼지막한 마물이 내 앞에 내려앉았다.

“천둥아!”

반가움에 나는 한달음에 놈에게 달려갔다.

솔직히 반쯤은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달라진 내 외양도 그렇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 않은가.

“천둥아. 나, 나 알아보겠어?”

“꾸웨에에엑!”

그러나 천둥이는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달라진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제 얼굴을 마구 비비며 온몸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못 본 새, 더 돼지가 됐네…….”

“꾸웩!”

이 반항 어린 눈빛까지.

내게는 얼마 지나지 않은 재회였지만,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그러나 그도 잠시.

“쉬잇, 쉿!”

나는 서둘러 흥분한 놈을 진정시켰다.

나를 알아볼 사람도 없는 마당에.

수도 한복판에 마물이 출몰했다는 게 알려지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이미 천둥이가 몇 차례 울부짖은 터라 그 소리를 들은 이들이 분명 존재할 터.

그렇기에 나는 서둘러 천둥이의 위에 올라탔다.

“빨리 가자.”

“꾸웨에에엑!”

펄럭!

천둥이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다행히도 우리는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수도를 벗어났다.

나는 천둥이를 끌고 도버 마을로 향하지 않았다.

사실 이동 수단이 생긴 이상, 다른 아이템들은 딱히 필요 없었기 때문이다.

우선 카셀을 찾아보고 난 뒤, 그때 가서 도버 마을로 돌아가도 늦지 않았다.

‘그런데, 카셀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카셀이 있을 거라 짐작되는 곳으로 향하는 내내, 불쑥불쑥 드는 불안감을 털어내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다.

만약 그곳에 카셀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어디 가서 그를 찾을지.

물어볼 GM들조차 없는 이 세상은 제법 막막하고 두려웠다.

“꾸웨에에엑!”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귀신같이 천둥이가 울었다.

때마침 울려 퍼지는 돼지 멱따는 소리에 나는 퍼뜩 상념에서 깨어났다.

“워워, 여기선 좀 천천히 가.”

아래를 본 나는 서둘러 천둥이의 속도를 줄였다.

발밑에 거대한 숲이 펼쳐져 있었다.

어느덧 [어둠의 숲]에 도달한 것이다.

고도를 낮춘 천둥이가 무성한 나무 위를 유유히 비행했다.

덕분에 나는 [어둠의 숲]을 속속들이 볼 수 있었다.

아담을 비롯한 용사들이 주기적으로 수색에 나서는 것이 사실인 듯, 숲은 곳곳이 뒤엎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카셀은 없었다.

마물의 핵이 있었던 숲의 중심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예상했던 바였기에, 딱히 실망하지는 않았다.

굳이 내가 직접 숲으로 들어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저렇게까지 헤집고 다녔는데도 찾지 못한 거면, 이곳엔 확실히 없다는 소리니까.

“천둥아. 이제 다시 속도 높여.”

그렇게 나는 미련 없이 [어둠의 숲]을 지나쳤다.

그리고 얼마쯤 더 하늘을 날았을까.

갑자기 천둥이가 빠르게 활강하기 시작했다.

“읏!”

그와 동시에 뜨거운 열풍이 훅 몰아쳤다.

‘화산 근처까지 왔나 보네.’

위치를 가늠하기 무섭게, 천둥이가 울부짖었다.

“꾸웨에에에엑!”

마치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듯한 놈의 울음소리에, 나는 서둘러 아래를 확인했다.

우리는 시뻘건 용암이 들끓고 있는 까마득한 구덩이.

화산의 분화구 위를 날고 있었다.

“미안, 많이 뜨겁지.”

“꾸에엑!”

“조금만 고생해줘.”

나는 천둥이의 목을 쓰다듬으며 연신 미안하다고 중얼거렸다.

이 광활한 구덩이 속에서 카셀을 찾으려면, 나 혼자서는 무리였다.

그나마 빠르게 날 수 있는 천둥이라면 둘러보는 것 정도는 가능하리라.

“꾸웨에에엑!”

이윽고 천둥이가 분화구 속으로 낙하했다.

그와 동시에 이제껏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뜨거운 열기가 우리를 덮쳤다.

천둥이와 함께라면 둘러보는 것 정도는 금방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취이이이이익…….

높이 튀어 오르는 마그마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시뿌연 연기.

주인이 없는 빈 레어임에도 불구하고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분화구를 반쯤 돌았을 즈음, 나는 진이 다 빠진 상태였다.

고렙 마물을 탄 나조차 이럴진대, 아담과 용사들이 이곳을 샅샅이 수색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터.

아니, 어쩌면 수색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멀쩡한 인간이라면, 여기서 3년 동안 살아남았을 리 없으니까.’

나도 반쯤은 도박을 거는 심정으로 온 것이었다.

3년이면 [어둠의 숲]과 [태초의 고원]은 물론 이 근방은 다 쥐 잡듯이 뒤졌을 텐데.

그럼에도 찾지 못했다면, 남은 곳은 고대 마룡의 레어였던 여기뿐일 테니까.

그러나 분화구 속에서 헤맬수록, 그 도박 같은 희망도 점점 사그라들었다.

아무리 이 세계의 남주 같은 존재인 카셀이라도, 이 용암 구덩이 속에서 살아남기란 요원해 보였다.

“……천둥아, 고생했어. 그만…….”

힘없이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말하려던 순간이었다.

치이이이이익…….

내내 시야와 호흡을 흩트리던 수증기 한 뭉텅이가 가시고.

시뻘건 용암 바다 한가운데에, 꼭 용이 고고하게 밟고 잠들 법한 판판한 바위 하나가 드러난 것은.

그 위로 얼핏 보이는 사람의 형체에, 나는 일순 숨을 멈췄다.

“처, 천둥아!”

“꾸웨에에엑!”

채 그곳으로 가자고 말하기도 전에, 천둥이가 곧장 그곳으로 쏜살같이 하강했다.

쿠웅!

그리고 곧이어 천둥이의 두 발이 바위 위에 내려앉았다.

그와 동시에 나 또한 허겁지겁 뛰어내렸다.

“카셀!”

나는 멀지 않은 거리를 단숨에 달려갔다.

“이, 이게…….”

마침내 카셀의 몰골을 확인하게 된 나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바위 위로 얼굴만 삐죽 나와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생매장이라도 당한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그를 삼킨 것이 바위가 아닌, 새까만 액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망할 새끼야! 아직도 안 뒤졌냐고!”

분명 GM들이 ‘죽음’은 잠들었다고 했는데.

여전히 이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검은 슬라임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철퍽!

나는 카셀을 꺼내기 위해 망설임 없이 액체 속으로 한 손을 집어넣었다.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또 나를 삼키려 들면, 루미에카르로 족족 베어내는 수밖에.

“어……?”

그런데 놀랍게도, 검은 액체는 내 팔을 옭아매지 않았다.

그에 더해 카셀마저 제법 수월하게 들어 올려지는 게 아닌가.

“꾸구국.”

내가 멱살 잡고 반쯤 끌어 올린 카셀의 뒷덜미를 천둥이가 물어서 마저 끌어 올려주었다.

촤아아악!

마침내 완전히 검은 액체 속에서 빠져나온 카셀은, 꼭 물에 빠진 사람처럼 흠뻑 젖어 있었다.

나는 서둘러 그를 검은 액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눕혔다.

내려다본 그의 얼굴이 죽은 사람처럼 창백했다.

차갑게 느껴지는 체온에 쭈뼛 소름이 돋았다.

서둘러 코 밑에 손도 대보고 가슴 위로 귀도 대 보았지만, 그가 호흡을 하고 있는 건지 좀처럼 알 수 없었다.

“전하, 정신 좀 차려 보세요.”

나는 울먹이며 카셀을 세게 흔들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미동하지 않았다. 덜컥 겁이 났다.

‘도버 마을에 들러서 포션 몇 병이라도 챙겨 왔어야 했는데.’

왜 그렇게 멍청하고 생각이 짧았을까.

뒤늦은 후회가 빗발쳤다.

‘내가…… 내가 너무 늦은 거면 어떡하지?’

고대 마룡의 모습을 하고 마물의 핵에서 빠져나오려 할 때까지만 해도 분명 살아 있었는데.

대교에서 최후의 선택을 한답시고 고민하던 그 짧은 사이가, 카셀에게는 최후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끔찍한 절망이 찾아왔다.

“전하! 전하! 일어나 보시라고요!”

“…….”

“카셀!”

나는 엉엉 울며 카셀의 가슴팍을 마구잡이로 내려쳤다.

어떻게 해야 그를 깨울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차오르는 눈물과 두려움에 눈이 먼 나는, 그의 눈꺼풀이 조금씩 움찔거리는 것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

“꾸웨에엑!”

그런 내 몸부림을 멈추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천둥이였다.

“흐윽, 천둥아……?”

“꾸룩, 꾸웨에에엑!”

천둥이가 우는 날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부리로 카셀을 가리켰다.

“……으읏.”

그때였다. 미약한 신음과 함께.

“샤리…… 아즈라엘?”

남자가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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