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1화 (211/212)

* * *

마물 토벌을 떠났다가 실종됐던 황태자가, 3년 만에 기적적으로 되돌아왔다.

혼란스럽기 그지없던 황궁과 수도의 정세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토벌 영웅들을 견제하던 귀족들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고, 듣도 보도 못한 사생아를 후계자로 내세우던 황제는 칩거에 들어갔다.

호사가들은 곧 황좌의 주인이 바뀔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카셀은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토벌에서 죽은 용사들의 추모식부터 열었다.

광장 한가운데에 비석을 세우고, 분수대 위로 그들의 용맹한 모습을 담은 동상을 세웠다.

토벌에 참여한 30여 명의 용사 중 죽은 이들은 총 4명이었다.

마룡이 내뿜은 드래곤 브레스를 맞고 죽은 1명, 정체불명의 검은 액체에 삼켜진 2명. 

그리고…….

“어때, 마음에 드나?”

동상이 세워지던 날.

만사를 제쳐두고 굳이 굳이 행차하신 황태자가 흘끗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요!”

나는 진저리를 치며 동상을 손가락질했다.

“왜 제가 가운데인데요?!”

“왜냐니. 주인공은 원래 중심에 위치하는 법이야.”

“그러니까, 제가 왜 주인공이냐고요! 비석 세운다고만 했지, 이런 말은 안 했잖아요!”

어쩐지.

뭘 보여주려고 천으로 눈까지 가려가며 데리고 가나 했더니.

‘이런 흉악스러운 걸 보여주려고 그랬던 거냐고!’

그렇다.

광장에 설치된 영웅들의 동상 중 정가운데 위치하게 된 동상은 바로, 나.

샤리 아즈라엘이었다.

현대의 외양으로 이곳에 돌아오게 됐기에, 이전의 샤리 아즈라엘은 사망 처리하기로 했다.

이제 와 살아 있다고 하기에는 바뀐 외양도 그렇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혼동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대신 이 모습으로는, 화산으로 모험을 떠났다가 정신을 잃은 황태자를 우연히 발견하고 목숨을 살려준 은인으로 대접 받는 중이다.

‘뭐, 틀린 말도 아니긴 하지.’

이제 빼도 박도 못하도록 비석에 동상까지 세워진 나를 보자, 기분이 무척 이상했다.

로브를 어깨 위에 반쯤 걸쳐 입은 채, 루미에카르를 힘껏 치켜든 동상의 모습은 당장이라도 뛰쳐나올 것처럼 생생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이 싱숭생숭해진 나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게 뭐냐고요…….”

카셀이 멈칫하며 그런 나를 돌아보았다.

이윽고 웃음기를 거둔 그가 내 눈치를 살피듯 조심스럽게 물었다.

“……마음에 안 들면 부수고 다시 만들라고 할까?”

“허. 저게 마음에 들고, 자시고 할 일이에요?”

“그럼 뭐에 그렇게 화가 난 거지?”

“당신이……!”

버럭 대꾸하려던 나는, 가까스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실 동상은 핑계였다.

내가 느끼는 이 미미한 실망과 차오르는 불만의 이유는 바로…….

‘난…… 난 프러포즈라도 하는 줄 알았지, 이 새꺄!’

그런 게 아니라면, 며칠 내내 묘하게 들뜬 얼굴로 무언가를 숨기는 내색은 왜 하고 다녔단 말인가.

왜 그 삿된 얼굴로 사람을 홀려서 밤낮없이 설레게 만들었느냐 이 말이다.

“후…….”

차마 치오르는 말들을 내뱉지 못한 나는, 바짝바짝 타오르는 속을 삭이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하긴. 프러포즈는 무슨…….

함께 수도로 돌아온 지 이제 한 달째였다.

아직 보위에 오르지도 않았는데 국혼이라니, 어불성설이었다.

‘김칫국 한번 거하게도 들이켰다, 송사리.’

뒤늦게 몰려오는 민망함과 쪽팔림에 시무룩해져 있을 때였다.

“사실 나도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아.”

카셀이 입을 열었다.

“뭐라고요? 그, 그럼 왜…….”

저 망할 동상은 왜 세웠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보자, 카셀이 흘깃 동상을 턱짓했다.

“……일면식도 없는 놈들이 저걸 보고 떠들어 댈 걸 생각하니,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거든.”

“무, 무슨…….”

“꽤 오래전부터였다. 다른 놈들의 눈깔을 파내서라도, 로브 속은 나만 아는 것으로 두려 했었지.”

마치 그 말의 대상을 찾듯, 카셀이 섬뜩한 눈으로 광장 주변에 몰린 군중들을 한차례 훑어보았다.

분명 끔찍하고, 인성 폐급스러운 말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쩐지 얼굴이 확 붉어졌다.

“……매번 빌어먹을 로브 어쩌구 하면서 잡아당겼잖아요.”

그로 인해 강제 헤드뱅잉은 또 얼마나 많이 당했던가.

나는 소심하게 그의 말에 반박했다.

그러자 그가 무형의 적을 찾는 듯한 시선을 거두고 나를 돌아보았다.

“생각해 봐.”

“뭘…….”

“내가 한 번이라도 네게 로브를 벗고 다니라고 명령했던 적이 있는지.”

나는 그의 말에 반사적으로 과거를 더듬었다.

그러나 아무리 떠올려 봐도, 그가 그런 명령을 내린 기억은 없었다.

“심지어 황궁 안에서는 신원을 가리면 안 된다는 법도조차 무시하고, 내 손으로 직접 로브를 하사했었지.”

“그, 그건…….”

나는 그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고 이내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호소했다.

“그런 법도가 있다곤 아무도 말 안 해줬다고요…….”

“가리고 다니게 내버려 두라 했으니 그랬겠지.”

카셀이 심드렁한 얼굴로 답했다. 그리고 이어서 기습처럼 덧붙였다.

“내가 너에게 얼마나 미쳐 있었는지, 이제 알겠지.”

“…….”

“그런데도, 꾹 참고 세우라고 명령한 거야. 그러니 기특하게 여겨.”

본인을 기특하게 여기라는 남자의 말에 정신이 혼미해졌다.

나는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가까스로 물었다. 

“왜…… 요?”

왜 굳이 싫은 걸 참아가면서까지 동상을 세운단 말인가.

솔직히 나는 상관없었다.

내 업적을 누가 꼭 알아주지 않아도, 새 영웅으로 추앙받을 이들의 뒤에서 조용히 잊히더라도.

애초부터 그런 건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싫었으면 굳이 세우지 않아도 나는 정말 상관없는데.

“왜…….”

그러나 돌아오는 덤덤한 목소리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지.”

“…….”

“모두가 알았으면 했으니까.”

마침내 내 쪽으로 완전히 돌아선 카셀이, 아침 인사를 건네듯 선선히 말했다.

“사랑해, 샤리 아즈라엘.”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 거대한 감정의 크기에,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입을 열면 그대로 꼴사납게 울어버릴 것 같았기에.

어린애처럼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며 삐쭉대는 나를 보고 카셀이 환히 웃었다.

상상하던 프러포즈보다, 훨씬 더 값지고 찬란한 순간이었다.

* * *

검은색 머리카락의 평범한 외모를 가진 황태자의 은인이자 새 약제사.

이런 내가, 실은 고대 마룡을 처치하고 죽은 구국 영웅 ‘샤리 아즈라엘’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 몇 안 되는 사람의 대부분이 메인 캐릭터들이라는 사실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담은 예상했던 대로, 변화한 내 모습을 쉬이 믿지 못했다.

내가 바로 그 ‘샤리 아즈라엘’이라고 고백하는 자리에서, 곧장 카셀에게로 시선을 던졌으니까.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제 주군의 모습을 확인한 그는 연거푸 마른세수를 했다.

“그럼 3년 동안 대체 어디로…….”

“잠깐 집에 갔다 왔는데요…….”

우물쭈물하며 사실대로 답하자, 그는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지난 3년간 나와 카셀을 찾아다니며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았다.

의외로 일레인은 의심하지 않았다.

다만 도끼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며 말하기를.

“……그렇게 재산 다 넘기고 죽어버리면.”

“…….”

“내가 뭐, 고마워서 절이라도 할 줄 알았어요?!”

천둥이 때문에 먼저 만난 엘레나의 말에 따르면, 일레인은 매일같이 화산 방향 쪽으로 물을 떠 놓고 절을 올렸다고 한다.

길을 잃은 동료가 무사히 귀환하기를 바라는 엘프들의 신성한 의식이라나 뭐라나…….

“이거 명백한 계약 위반이에요! 내가 그동안 계약서 다 꼼꼼히 뜯어봤어!”

“…….”

“고용인의 생활이 안정될 때까지 고용주가 보살펴 준다는 조항! 이거 어겼다고요!”

대체 어느 틈에 챙겨 온 건지.

일레인은 예전에 썼던 고용계약서를 내게 들먹이며, 흰자위가 붉어진 눈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래. 네 말대로 계약 위반이야.”

모든 계약서 조항들은 내가 작성했으므로, 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고용계약서에 적혀 있는 고용주는 내가 아니었다.

“그에 관한 보상이나 위약금 관련해선, 여기 전하랑 상의하도록 해.”

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일레인의 진짜 고용주, 카셀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레인이 일순 넋이 나간 얼굴을 했다.

“예? 그게 뭔 소리…….”

“왜? 네 고용주, 내가 아니라 황태자 전하잖아.”

“…….”

“그래도 내가 조항 작성했으니까, 위약금 많이 뜯어낼 수 있게 나도 힘껏 도울 테니까…….”

“우엥! 누나 미워!”

아담에 이어 일레인마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어차피 돌아온 이상 한 번쯤은 겪어야 할 일이었다.

“다음.”

그들의 마음이 풀리기까지 묵묵히 기다리기로 마음먹은 나는, 마지막 남은 메인 캐릭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분명 니세 또한 일레인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반응을 보일 거라 생각했다.

오히려 내 얘기를 듣자마자 울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무,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 다행이에요, 천사님.”

예상외로 니세가 셋 중 가장 의젓한 반응을 보였다.

완전히 뒤바뀐 얼굴을 한 나를 보고도 그다지 놀라는 기색조차 아니었다.

“……안 놀라?”

“뭐, 뭐가요?”

“얼굴…… 완전히 바뀌었잖아.”

내 어색한 물음에, 니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만 천사님의 영혼은 그대로인걸요.”

“영혼……?”

“네, 영혼의 실이요. 처, 천사님은, 아, 아니, 샤리는 처음부터 남달랐거든요.”

그러고 보니, 니세는 영혼을 보고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떻게?”

나는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궁금했다. 내 영혼이 어떤 식으로 남달랐으면 외양이 바뀌어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걸까.

내 물음에 니세는 조금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고요히 읊조렸다.

“다 조각조각 끊겨 있어요.”

“…….”

“그, 그런 건 보통 주, 죽기 직전인 생명체한테서나 볼 수 있거든요. 처, 처음엔 저, 저주라도 받은 건가 해서, 걱정했는데…….”

“…….”

“그, 그런 상태로 멀쩡히 살아 있는 건, 제가 아는 한 샤리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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