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마녀
인간은 진화하며 살아온 동물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들은 안정을 추구하는데,
높은곳에 있는 인간일수록 변화를 싫어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모르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이 작은 변화의 불씨가 될 것이기에.
그것은 곧 그들이 발전과 번영을 거부함과 더불어,
지식인의 말살을 고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마녀를 죽이는것으로 그들 자신이
안전해 질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화형대에 오른 수 많은 마녀들은
무슨 죄인지도 모를 죄목으로 죽어갔다.
그리고 그 화형장 위에 묶인 것이 나다.
물론 딱히 죄를 지은건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말하는 마녀는 맞을것이다.
나는 죽지 않는다.
화형대로 끌려온 나는 그들의 돌을 맞으며
그들이 만족에 질려 돌아갈때 까지 불탔다.
나는 죽은척을 해야했고, 또 도망쳐야 했다.
그들이 나를 잊을때까지.
결국 마녀니 괴물이니 멋대로 불리던 이름은
수백년이 지나고서야 에리아로 정착되었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족이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어렴풋한 기억이 있다.
에리아? 엘리아? 내 이름을 그렇게 부른 여자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게 내 이름이겠거니 하고 쓰는 것일 뿐이다.
산속에 틀어박혀 지내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나를 기억하는 자가 한명도 없다는 사실은
내게 묘한 안정감과 불안을 동시에 안겼다.
나는 남는 시간을 오로지 연구에만 몰두했다.
자살하기 위한 연구. 죽기위한 방법을 찾았다.
나는 닥치는대로 고서적을 구했고 의학서적과
저주하는 술법책, 흑마법에 관한 책을 읽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도 죽을수가 없었다.
오히려 죽으려고 공부한 의학, 주술학, 마법학 등
여러 지식들은 내게 오래 사는 방법만큼은 질리도록 알려주었다.
말 그대로 남들이 말하는 마녀로서의 요건은 다 갖추게 되었다.
고양이는 안 키웠지만.
아 그렇게 음침하지도 않았다.
가끔 길 잃은 등산객이 찾아올때는 일종의 그리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고 외로움이 돌아올 때면
별수없이 친구가 필요했다.
이 일을 계기로 산속에만 틀어박혀 있던 것이
실수였다는 생각도 하게되었고,
마을에도 내려갔지만 필요이상의 관계는 맺지
않았고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들도 내게 별 관심이 없을것이고
필요이상의 관심은 또 다른 마녀사냥을 부른다.
영혼과 흙 그리고 바람.
도덕같은건 신경쓰지 않았다.
마녀로 몰려 화형당해 죽을때 이미
그런건 허울뿐이라는걸 깨달았다.
100년이 지나고 가치관이 바뀌면서
그런건 얼마든 변할수 있는 유동적인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죽은 사람을 소환하기로 했다.
나를 아는 사람이어야 했고
내가 아는 사람이어야 했다.
언제부턴가 고아였던 내가 만날수 있었던 사람중
내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사람.
그것은 나를 끌어 묶고 불을 붙인 남자였다.
나를 죽이려고 한 남자다.
나는 죽지 않았고, 그에게의 증오는 없다.
미쳐버린건지도 모르겠다.
불에 탈때 죽지는 못해도 고통은 그대로 전해졌다.
나는 그때 어딘가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
그 남자에게 최고의 복수를 선물하고 싶었다.
나로 인해 부활하고 나로 인해 속박되어
오직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나의 소유물로서
과연 그가 어떻게 지낼지 궁금해졌다.
결정은 오래 걸렸지만 실행은 빨랐다.
과거의 기록을 뒤져 서적을 찾았고
죽은 마녀의 기록서와 역사서에서 찾아냈다.
나를 죽이려고 한 남자의 이름을.
로드원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그의 정보를 찾아냈다.
육체를 구성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그에게서 안식을 빼앗는 일이기에.
그저 육체없이 오직 나만이 알아봐 주고 그것이 존재의 증명이며
내가 그의 존재 이유가 된다면 그는 무슨 기분일까.
더이상 지체할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주술에 실패는 없었고 깨어난 남자가 말했다.
아니 그것은 더이상 남자조차도 아니었다.
흐릿하게 보이는 연기와도 같이 어스름한
인영, 즉 인간의 실루엣같은 그의 모습은
그가 영혼임을 잘 보여줬다.
"여기는 어디지?"
"우리 집이야. 다시 만나 반가워. 오랜만이지?"
"너는 누구지?"
"네가 불에 태운 마녀야. 기억해?"
"그럴리가. 한둘이어야 기억이라도 하지.
날 아는 자라면 적어도 백 년 전에 살아있었을 텐데. 젊군."
"그러게, 17살 때 부터인가 성장이 멈춰서 말이야."
"늙어가는 기쁨을 모른다니, 안타깝군 마녀."
"그렇구나. 뭐 하고싶은 말은?"
"나는 죽었을텐데."
"살렸어."
"마녀는 마녀로구만."
"그러니까 불에서도 살아남았지."
"그래서 날 왜 살려낸거지? 사과라도 듣고싶었나?"
"하라면 할거야?"
"아니, 지금도 잘못했다는 생각은 없으니까."
"간단하게 설명해줄게. 너는 영혼체인 상태고 나만 볼 수있어.
다른사람은 존재자체도 모를거야. 내가 죽기전까지는 넌 영원히 나와 함께야."
"징글징글하구만."
"놀랍지는 않아?"
"마녀만 13년동안 죽였고 50이 넘는 마녀를 태웠다. 못 믿을것도 아니지."
"맘에들어. 그 생활도 익숙해지면 물건을 드는 정도는 가능할지도 몰라.
하기에 나름이지만. 뭐, 생활은 그냥 보고 배우면 될거야.
물론 뭘 기대하진 않아. 그 몸으로 가능한 일도 얼마 없을테니."
나는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마을까지는 거리가 있었다.
아마 이틀은 꼬박 걸어야 할 것이다.
어린 내가 사람을 피해 도망칠때 그랬듯.
처음 산을 내려갔을때
늘어서 있는 건물들을 보고 깨달았다.
나는 이곳에서 더이상 마녀가 아니라는것을.
나는 이들에 비해 얼마나 더 많은것을 알고있는지
이들에게 얼마나 많은것을 배울수 있는지
이 단순한 의문이 머리속에서 돌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가 중요했다.
결국 나는 질문을 포기했다.
처음보는 광경이었다.
오솔길은 사라지고 석유잔여물로 구성된 길이
깔려있었으니까. 겉보기에는 그냥 돌과 같은
모양이었지만 어딘가 인공적인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위를 철제 말없는 마차가 달리고 있다.
길의 끝에는 규모가 커진 마을이 나타났고
다행히도 알아볼 수 있는 글이 표지판에 적혀있다.
[서지스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그것이 내가 느낀 현 시대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시간은 내가 예상한것보다 빠르게 흘러가고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었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함부로 누군가를 신용할수는 없었다.
필요에 따라 이용하고
필요가치가 없어지면 가차없이 버린다.
그것이 나의 신념이자 일종의 처세술이다.
이 근방에서 내가 제일 성실한 진실을 요구할 수 있는 장소.
그것은 교회였다.
나는 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의 문은 누구에게나 열렸다.
이들이 배척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그렇다고는 해도 회개를 기반으로 누구든
들여보내주는것 같았으니 큰 차이는 없을것이다.
"어서오십시오 자매님."
늙은 신부로 보이는 노인이 나타났다.
노인 자체에는 흥미가 없으나 분명 무언가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에게 인사했다.
"안녕."
"무슨 고민이 있으셔서 오신건가요?"
"도움이 필요해서."
"신께 기도하시면 들어주실겁니다."
이자들은 신밖에 모른다.
신의 사상에 위배된다고 어린아이를 불속으로
던져넣었고 많은 이들을 사살했다.
나는 신께 기도하라는 말을 고깝게 들었다.
"그런 신앙적인것 말고. 지금 당장 확실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그러시다면 이 늙은이라도 도움이 되어 드리죠."
"이 마을에 대해 가르쳐줬으면 좋겠는데."
"여행자분이신가보군요? 좋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셔서 따뜻한 차라도 마시면서
느긋하게 이야기하시죠. 이쪽으로."
그를 따라 들어가자 조그만 방이 나왔다.
그는 나에게 컵을 건네더니 커피를 끓여왔다.
"커피는 좋아하십니까?"
"좋아하는편이야."
나는 커피를 받아마시고 그에게 궁금한것들을
묻기 시작했고,
그에게서 수백년의 공백을 메웠다.
그는 나를 반기는것 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나를 죽이려했던 교회마저 이용해 생존한 내게,
더이상 교회와 신은 두려울만한 존재가 아니게 된 것이다.
어릴적의 화형을 회상하며 슬쩍 쓴웃음을 짓고
헌금의 명목으로 금화를 두 개 그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즉석에서 만들어줄까 생각도 했지만
신부앞에서 연금술을 했다가는 마녀로 몰리겠지.
마녀가 맞기는 하지만 또 잡히기는 귀찮았다.
나는 은거 생활 중 오랜 연구끝에,
과학만으로 금을 만들어내는건 어렵다는걸 깨달았다.
마법이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다 순수한 건 없다는 이야기였다.
그게 악이라도 선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제 아무리 깨끗하다고 신용되는 교회도
사람을 죽이며 금화 두개에 기뻐하고
그를위해 마녀에게 정보를 주는것도 마다않는,
그런 부류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무신론자로 살면서 후회같은건
한번도 해 본적 없었지만,
그러면서도 그들이 믿는 신이
어느정도 그들에게 의지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씩 종교에 흥미를 가지기도 했으나
그것은 지적 호기심이었을 뿐 내 신앙의 문제가 아니었다.
굳이 필요이상의 낭비를 하고싶지 않았다는 말이 꼭 맞겠다.
불완전하긴 하지만 죽은 인간을 살려낸 것으로는
나도 그에 비해 뒤쳐지지는 않을것이라는 자신도 있었다.
신체를 구성할 재료만 있다면 몸까지도 임시적으로는 만들수 있다.
성장이 멈춰 썩어버린다는게 문제지만.
그렇다보니 골렘같은 자동인형은 돌로 만드는게 편하다는것을 깨달았고
그렇게 보니 값싸고 단단한 성질은 부가적인 이점이었다.
자동인형의 특성, 제조방식, 그런것을 이해하려면 300년 정도의 공부와 연구가
필요했지만 그 이상의 대단한 무언가는 아니었다.
굳이 말해도 모를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했다.
금화를 헌금함에 가져다 넣는 신부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 교회는 누굴 위한 교회지?"
"교회에 관심이 있으신가 보군요. 이곳은 아르간티아 신을 모시는 곳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번 기회에 한번 다니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고민은 한번 해볼게. 그것보다도 이 주변의 지도를 구하고 싶은데, 가진거 있어?"
늙은 신부는 방문을 열고 밖으로 잠시 나가서는,
누군가를 찾기 시작했다.
"클리어! 어디 있느냐? 지금 집무실로 지도와 펜을 가지고 와 줄 수 있겠니?"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키의 소년이 둘둘 말린 지도와
붉은 펜을 가지고 찾아왔다.
신부는 지도에 여러군데 동그라미를 그리더니
메모를 이것저것 하고서는 내게 내밀었다.
"이정도면 무리없이 찾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사족일지 모르지만 서지스의 기본적인 명소나 구역을
간단하게 적어드렸으니 참고하시면 좋을거에요."
"그래? 고마워."
나는 너무나도 아는것이 적었다.
당장 내게 있는거라고는 어설픈 말동무와 지도 뿐이었다.
나는 교회를 뒤로하고 나왔다. 로드원의 텅 빈 눈이 나를 보고 있었다.
서늘한 아지랑이같은 그저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는 정도만을 느낄 수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분명히 그는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라리 고양이를 키울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는 그나마 귀염성이라도 있지 않을까 하며
보편적인 마녀의 이미지를 상상하고
나는 말없이 한숨을 쉬고나서 지도를 펼쳤다.
도서관의 위치를 찾아내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