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마녀
도서관은 높은 건물이었다.
그 문 앞에 서서 든 생각은
이게 정말 도서관인가 하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는 크고 화려하다.
석재로 장식하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붙였으며
촛대로 불을 밝힌 샹들리에가 홀에 늘어선 이미지가
누구에게나 어렵잖게 떠오른다면
이 도서관은 달랐다.
도서관은 분명히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에게 한정된 정보와 지식은
그들을 차별화하기 때문이었다.
책을 담기 위해서 화려한 건물에
일그러진 미를 추구한 건축 양식을 보이는,
그것이 내게는 도서관이었다.
반신반의하며 도서관의 문을 열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도서관이 느껴진다.
조금 수수한 듯한 도서관에
사서가 기계앞에 앉아 인사를 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안녕."
잠깐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곧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다시 고개를 숙여버린다.
나도 그들을 지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대다수가 소설이었기에 처음에는 어려웠으나
곧 책 찾는 법을 알게 되니 수월하게 찾을 수 있었다.
시간은 많았다.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비교하고 맞춰 갈 뿐이다.
세상은 변해도 정보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의 오랜 생각이었다.
지식은, 정보는 변하고 있었다.
진실을 호도하고 왜곡하거나,
그 사실 자체가 변해가거나.
도서관의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연구했다.
오래 걸리리라는 생각은 했다.
시간이 흘러 도서관의 문이 닫힐 시간에
사서들이 퇴장하라고 이야기를 할 때 까지,
나는 적응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다시 불에 타 돌을 맞는 한이 있더라도,
도태되는 것은 수치이자 치욕이었다.
도서관 화장실 구석에 주술을 써서 전이 마법진을 그렸다.
크기는 상관 없었으니 청소용구가 가득 들어찬 칸막이에
대충 그려넣고 나서 문을 닫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나왔다.
내가 걸어나가면 책망하는 말투로 따져든다.
"왜 이제서야 나오시는 거에요, 닫을 뻔 했잖아요."
"미안."
대답하고 나가려고 하면
뒤에서 웅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다시 산 속의 집으로 돌아가서
마법진을 연결할 재료를 준비하고
도서관에 그려둔 마법진을 통해 돌아왔다.
문은 잠겨있어도 뚫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
마법과 주술의 기억이 희미해진 이 시대에는
이런 일들이 가능한 이들이 극히 적은 듯 하다.
마녀사냥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일도 아니다.
빈 도서관은 조용했다.
잠을 자지 않는 로드원은 여전히 나를 그저 바라본다.
그는 묻기 전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독서하기에는 좋은 분위기였다.
빛이 없어 읽지 못한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헬라티움 광석으로 만든 램프가 있었으니까.
헬라티움 광석은 물을 만나면 옅은 빛을 낸다.
반응성이 낮아서 빛은 밝지 않지만
광석 자체가 지닌 에너지가 대단해서
까딱 잘못 이용하면 폭발하는 위험한 광석이다.
고대 연금술사들이 남긴 유산이다.
현자의 돌 연구서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것이다.
나는 꼬박 일주일을 주야로 도서관에 머물렀다.
할애한 시간이 쌓여가면서 점차 지식이 늘었다.
그리고 내가 도서관을 나온 것은
컴퓨터의 존재를 깨달았을 때였다.
"즐거운가?"
"즐거운 일이야. 지식이 늘어난다는건."
"그런가."
"나는 조그마한 골렘부터 거대한 괴수까지 조합할 수 있어.
피를 제물로 저주하는 일도 가능하고,
주문서를 그려 주술을 부릴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럼에도 내가 만들지 못 한 기계와
내가 알지 못 하던 문화가 이 시대에는 있는거야."
"그거 참 가슴뛰는 이야기구만 그래, 껄껄."
"너 재미없네."
"너도 비슷하다 마녀."
지식에 취한다는 일은
공포와도 같은 것이었다.
성취감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권력과 계층의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다.
지식이 늘어난다는 것은 곧 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모르고 행하는 일과 알고서 이룬 일의 차이는 크다.
끝내 그 무지를 그리워하며 지식을 포기할 때,
우리는 진정으로 지옥에 들어선다.
순간 기억 능력이라는 말이 있다.
본 것을 잊지 않으며, 한 번 본 것이라면 기억하는 능력.
나에게는 그게 있었다.
왜 인지 모르지만 특이하게도,
나는 그 능력을 얻기 이전의 기억이 없다.
"지식이 아무리 지대하더라도
결국 인간의 손 위에서 결과를 맺는다.
인간이 제일 위대한 것이다.
너는 도구를 바라보면서 장인은 보지 않는다."
로드원이 그렇게 말했다.
"요가 뭐야?"
"그런건 받아들이기 나름이지."
로드원의 형체가 일렁인다.
마치 아지랑이같은 바로 코 앞에 있어도 잘 보이지 않는 존재.
다만 그곳이 눈이라고 느껴지는 그 텅 빈 공간이 지긋이 흔들린다.
"나는 지식이 좋아. 그것만이 영원해."
"나는 변해가는 현상이, 그리고 사람이 좋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지?"
"지식은 변하지 않는다고 했나?"
"그런 줄 알았어. 변하더군.
다만 영원할 뿐이지."
"그런가."
거기서 대화는 끊겼다.
정적이 흐르고 나는 좁은 방에서
나는 갖은 정보를 기반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그렇게 또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내가 방을 나왔을 때 나는 머리가 꽤 길어있었다.
"로드원, 묻고싶은 게 있다."
"아는 한에서 대답하지."
"지금의 나를 보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나
원망이나 그런거 없나?"
"그건, 그 당시에 옳은 것이었으니까.
지금의 옳음은 모른다."
"전에 말했지. 사람은 변한다고."
"변하지 않는 것을 결국 변하는 것이 움직인다.
그리고 변화하고 진화한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뀌고, 법이 바뀌고,
마침내 그 시대가 남아있지 않게 되더라도
이어져있는 것을 확신하게 한다.
변해가는 인간이기 때문에."
"고작 백년도 채 못 산 주제에
제법 재미있는 말을 하는구나."
"인간이란 그런 것이다."
"나도 인간이야."
"실례했군."
광물과 약품, 실험도구들을 찬찬히 둘러보며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도시로 섞여들고 시대에 어울려서
인간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난 말이지, 널 응원했어."
"무슨 말이냐?"
로드원이 나에게 되물었다.
"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죽음이 구원이었던 건가?"
"구원은 아니지. 도피일 뿐이야."
"동의한다. 나도 백여년이 지나고서
다시 불릴줄은 몰랐으니까.
너는 왜 도피를 선택하지?
언젠가 다시 마주하게 될 뿐이다."
"다시 마주보면 마녀 사냥꾼도 만만해보인다는 말만 해 두지."
그는 낮은 신음을 흘리며 고민하는 듯 했다.
연구실은 이제 떠나야 한다.
가방을 열고 정든 도구를 하나씩 집어 넣는다.
공간을 압축하는 기술은 간단히 말하면
축소와 팽창 이론을 응용한 것이다.
약품과 광물, 도구를 비롯해서 금품,
실험 결과물을 모조리 가방에 챙겨넣었다.
마지막으로 방 구석의 초를 꺼뜨리고
발로 슥슥 마법진을 지우고 나서
나는 집을 나섰다.
내 집을 그냥 두면 불안해 질 것 같아
발화부를 한 장 적어서 문에 붙였다.
부적이 타닥대며 타오르는 것을 바라보면
곧 나무로 된 집을 집어 삼킨다.
잠시 보고있다가 그만두고 발걸음을 돌렸다.
"이제부터 어쩔거냐?"
"술 좋아해?"
"싫어하진 않지."
"호프를 차릴거야."
"호프를?"
"연구하고 약품 만들고 반응 실험하고..."
"호프랑 무슨 상관이지?"
"메뉴에 슬쩍 올려야지."
"미쳤군."
"그렇게 말해줄 줄 알았어."
"말릴 생각은 없다. 난 이미 죽기도 했고...
무엇보다, 궁금하거든."
나는 그 길로 서지스로 가는 길목에 섰다.
그러나 서지스로 향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이 서지스라는 도시를 피해 반대로 걸었다.
도시에 자리를 잡고싶지는 않았다.
성향의 문제도 있고,
조사받으면 번거롭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마을이 나올 때 까지 걸었다.
며칠이 지나도 마을이 나오지 않았다.
죽지 않는 마녀는 아사하지 않는다.
병사는 물론이요, 익사도 소사도 하지 않으므로
강이 나오면 빠져도 그만이요,
맹수가 나와도 물리면 그만이다.
13일 째 되는 날이었다.
탈수로 걸음이 느려져
시간이 상당히 지체되었으나
그럼에도 마을을 발견했다.
도시도 아니고 작은 마을이었기에
왠지 마음에 들었다.
마을을 둘러싼 석산을 넘어오는데 고생은 했지만
조용한 마을치고 나쁘지 않았다.
가게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주변의 산에서 나무를 조달했고
석산을 깎아내 석재를 운반했다.
이 모든 일들을 밤중에 해야 한다는게
그 중에 제일 고된 일이었다.
결국 나 혼자 이 모든 일을 해야한다는게
조금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었으므로
나는 처음에 계획했던 것을 어기기로 했다.
사람 정도의 크기로 부숴져나온 돌을
정교하게 끌과 망치로 때려 깎고
약품을 쳐서 녹이고,
피로 구동 회로를 그리고,
인공 영혼 회로를 연결하고,
강화부를 여러 장 써다 붙였다.
구동회로를 그리는데에는 빈혈도 왔었다.
스톤 골렘 한 마리를 만드는데 대략 3일이 걸렸다.
이렇게 완성하고 나서도 작동하지 않는 골렘을 바라보았다.
"골렘은 움직이지 않아."
"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아쉽게 됐군."
"중요한 준비물이 없거든."
"준비물?"
"구동회로, 영혼 연결회로도 있어. 없는거라곤 영혼 뿐이지."
"그런가... 알겠다. 내가 하지."
영혼 회로에 로드원을 이어붙이고 나서
피로 그린 구동 회로의 중심에 붙였다.
180cm의 골렘이 움직인다.
부드러운 움직임은 아니지만 차차 나아지겠지.
오랜만에 몸을 써서 그런지 제어를 못 해서
그대로 주저앉는 골렘을 바라보고
혀를 한 번 쯧 찼다.
원래 소형 골렘은 쥐나 돼지의 영혼으로도 충분한데
대형 골렘은 보통 원숭이나 소 따위의 영혼을 넣는다.
나는 특별히 인간의 영혼으로 했지만.
영혼을 넣은 골렘을 두 기 이상 만들기는 싫었다.
"대충 할만 해 졌으면 돌 나르고 목재 떼와."
골렘은 말이 골렘이지 전신 마네킹과 유사했다.
재료가 돌이고 관절을 담당하는 부분은 다 떨어져 있지만.
골렘이 단순 노동에 특화된 이유는 간단하다.
지칠 근육과 관절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근육이 지치고 관절이 상하기에
무거운 물건을 나르는 데 어려움이 있으나,
골렘은 그 부분이 없다.
재료의 질량, 중력, 그리고 일정하게 가할 수 있는 최대 힘을 계산해서
그 이상이면 못하고 이하면 할 수 있는 간단한 구조이다.
지친다거나, 무거워서 힘에 부친다는 일은 없다.
그런 로드원을 대동하고도 작업은 오래 걸렸다.
21일의 시간이 걸려 겨우 완성한 것은
겨우 테이블 하나를 둔 작은 가게였다.
그 내부에 숙소를 겸한 긴 테이블 하나가 있는 가게.
낮에는 카페, 밤에는 호프로 일하기로 하고
첫 개장을 하게 되었으나 어쩌면 당연하게도
홍보하지 않은 가게에 손님은 오지 않았다.
가게에 수용가능한 손님은 고작 네 명이다.
그렇다보니 떠들썩한 분위기를 내기에는 많이 어려웠다.
오히려 좋았다.
시간이 되면 술을 파는 카페라는 이미지로 밀고 갈 수는 있었으니.
가게는 나름 노력해서 꾸몄는데도 빈티지라는 평을 들었다.
종종 가게 앞을 지나가는 마을 사람들이 내게 인사를 건네는 정도였다.
그것 역시 새로운 가게에 대한 흥미보다는
새로 이사 온 사람에 대한 반가움이 더 큰 것 같다.
이 마을은 작은 마을이기에 인구가 많지 않았다.
그런 마을에서 우리 가게에 제일 자주 오는 것은
데니스 라는 꼬마 아이였다.
마치 어릴 적의 나를 보는 느낌의 소년은
냉소적이고 시니컬해서 주변에 말을 붙이는 이가 적었다.
재수 없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진심으로 그런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저 왔습니다."
데니스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날이면
언제나 조금은 긴장이 되었다.
데니스는 커피나 음료보다는
내가 종종 오늘의 메뉴에 올려둔
약품에 더 흥미를 가졌다.
"14호 TAG는 뭐죠?"
"말 그대로 14호 TAG야.
마신다고 하면 추천은 안하지만 줄 수는 있겠네."
실패한 정신 각성제였다.
효과로는 순간적인 사고 가속이지만
1분 남짓한 시간동안
뇌가 각성하는 탓에
시간이 더디게 흐르는 것처럼 착각하게 된다.
체감상 한 시간 정도를 가만히 느끼게 되는 것이다.
스포츠 선수들은 종종 말한다.
그 순간 공이 느리게 보였다고.
그런 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것이었다.
보기좋게 실패했지만.
불사라는 것은 즉 모든 실험을 받아줄
훌륭한 피험체라는 뜻이다.
나에게 실험하고,
재미있는 건 손님에게 실험하며
로드원이 말한 대로 반응을 보는 것.
썩 재미있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