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마녀의 카페
"그거 마셔보고 싶은데요."
데니스의 요청에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돈은 있어?"
데니스는 주머니에서 페킷을 꺼내 올려놓았다.
짤랑대는 소리와 함께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페킷을 보고
나는 슥 로드원에게 명령했다.
[저거 얼만지 좀 세어줄래?]
로드원은 골렘에 들어가도 여전히
내게만 말을 걸 수 있다.
골렘에게는 입이 없으니까.
텔레파시를 보낸다고 생각하면 좋다.
사념이 가진 힘으로 마력 회로를 잇는건데,
까다로우니까 그냥 텔레파시다~ 알아두자.
[그러지. 이 몸에도 적응해야하니까.]
로드원이 동전을 세고있으면 데니스는 로드원의 팔을 툭툭 치면서 묻는다.
"이거 어디서 파는 거에요?"
"만든거야."
"잘 만드셨네요. 동력은 어디서 받죠?"
"전기? 아니면 석유? 석탄?"
"무슨 소릴 하시는거에요.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 시대의 주력 동력원은 전기인 것으로 알고있는데
어떻게 보이는지 물어도 모른다고 답한다.
그럼 아직 이 시대의 기술력은 이런 로봇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혹은 가능은 하지만 아주 드물거나.
어찌되었건 튀어서 좋을 일은 없었다.
"이거, 안에 강력한 자석이랑 전지를 넣어서,
알아서 전력을 생산하는 독특한 구조야."
"기술자였어요?"
"아아.."
물론 거짓말이다.
그러나 어차피 모를거면 처음부터 모르는 게 낫다.
앞으로는 로드원은 옷이라도 입혀놓는게 좋을 것 같다.
[페킷, 크레딧 섞어서 74크레딧. 돈은 있는데?]
이쪽을 바라보며 로드원이 돈을 건넨다.
"좋아, 꼬마. 34 크레딧은 도로 가져가라고.
그리고 이건 테이크 아웃 불가 상품이야."
"좋죠."
데니스는 돈을 받아들고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실험실에서 제조한 약품을 들고 다시 돌아와,
얼음을 넣고 소다를 부어 적정 비율로 섞었다.
"색다른 감각일거야. 여유 있으면 조금씩 마시거나,
아니면 콱 먹고 한 번에 즐기거나."
약품을 소다에 섞어줬으니 효과는 상당히 줄었겠지만
그래도 저정도면 원샷 했을 때
적어도 20분 정도는 감각이 붕 뜰 것이다.
[저런 애한테 팔아도 될 물건인가?]
로드원이 질책하듯 묻는다.
[어린애가 하기에는 많이 신나는 경험이지.
근데, 저 꼬마는 이상하게 애 같지가 않단 말이야.]
가능성이 보이는 아이였다.
슥 대꾸하고 힐끔 바라본다.
[너, 가서 옷이라도 입지그래? 방금 꼬마가 캐묻는거 봤잖아.]
로드원은 저벅저벅 걸어서 연구실 뒤 숙소로 사라졌다.
데니스에게 그 광경을 보이고나서 나는 다시 카운터에 서서 데니스를 바라보았다.
매장에 손님이라고는 이 아이 하나 뿐이다.
"파란 색에 살짝 거품이 나고, 탄산감이 있는데,
향은 합성 당료향이 많이 나고, 그러면서 빨대도 없고."
이 꼬마는 재미로 일단 맞춰주고는 있는데 가끔 이런 건방진 짓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배척당한 것도 어느정도 있겠지만,
나는 그 이전에 이런 건방진 짓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이 꼬마가 일을 낼 것 같았다.
"데니스, 자주와라. 종종 실험작들은 무료로 마시게 해 줄게."
더 잦은 경험이 이 아이를 성장시킬 것이라고 믿었다.
"못 먹을거 주는 건 아니죠?"
"왜, 못 먹겠어? 그럼 도로 내놔."
"값은 지불했잖아요, 이건 제 겁니다."
데니스는 이래저래 살피다가 음료를 벌컥벌컥 마셨다.
음료가 몸에 흡수되고 효과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40초.
데니스가 음료수를 다 마시고 탁 소리나게 테이블에 내려놓고 나서
조금 지나서 데니스는 그대로 얼어붙은 듯이 동작이 멈춘다.
20분이 된 1분을 느끼는 것이다.
"요 건방진 꼬맹이, 마음에 좀 들어?"
데니스는 고개를 끄덕인다.
내게는 그저 대답에 반응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지만
데니스는 아마 고개를 끄덕이는데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리겠지.
그리고는 몸을 오른쪽으로 확 틀고 손을 파닥이듯이 흔든다.
저런 감각상태라면 해봄직한 일이다.
몸이 돌아가는 걸 느끼고 손이 움직이는 걸 느끼니까.
잠깐 지나 1분이 지나고 나서 그는 그대로 파닥이다가 넘어졌다.
다시 체감 속도가 빨라지면서 순간 제어가 어려워 진 것이다.
"두 잔은 안돼."
"아직 말도 안꺼냈어요."
"두 잔째 달라고 할 생각이잖아."
"그렇긴 했지만요."
"하루 한 잔정도는 괜찮은데 두 잔은 안돼."
"왜죠?"
"만들기 귀찮으니까."
"저런."
"볼일 다 봤으면 가봐라.
우리 가게에서 파는건 데일리 추천 빼고는
다른 가게에서도 다 파니까."
"자주... 와야겠네요."
데니스는 그렇게 말하고 나가버렸다.
그 뒤로도 데니스는 종종 와서
14호 TAG를 주문했다.
다른 메뉴가 올라와 있을 때도 늘 데니스는
14호 TAG에 관심을 보였다.
그렇다고 그걸 가지고 나가는 것도 아니고
가게 방침상 마시고 나가라고 이야기하면
아쉬워하면서도 빈 컵을 내게 보여주고 나가기에
딱히 크게 문제삼진 않았다.
다만 종종 데니스가 우리 가게에서
멍 하니 앉아있는 것을 본 다른 손님들이
우리 가게 앞을 기웃거리다가
하나 둘 가게로 찾아오기는 했다.
날이 지나고 조금 지나지 않은 오후였다.
이 날도 어김없이 데니스는 찾아와서
바 테이블에 자리를 잡는다.
보통 잘 앉지 않는 자리이긴 했는데
그렇다고 싫은것도 아니었다.
"늘 마시던걸로요."
"그럴 것 같더라니.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봐?"
데니스는 대답없이 자리에서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웃는다.
하루에 실험작 한 잔은 무료로 주겠다고
저번에 선언한 이후로는
데니스는 하루에 한번은 반드시 우리 가게에 왔다.
그러나 9시 이후로는 호프로 업종이 바뀌므로
오지 말라고 이야기했었고,
또 생각보다는 말을 잘 들었다.
오늘도 같은 메뉴를 준비해주면
데니스는 잠시 바라보더니 말한다.
"이거, 소다 빼고 더 진하게 가능한가요?"
"중독성이 있는 재료는 넣은 기억이 없는데
중독증세를 보이면 주기가 부담스럽다고."
"아 그런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요."
"슬슬 효과가 지겨울 때도 되지 않았나?"
"그걸 마시고 나면 내 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기분이에요.
아무 생각없이 팔을 휘두르던게 근육과 관절까지 느껴지니까."
"하...너 예상보다 훨씬 당돌하고 재밌는 녀석이구나.
좋아. 기다리라고."
나는 그의 손에서 잔을 돌려받아 바닥에 버리고 나서
다시 실험실에서 가득 채운 풀샷을 준비해준다.
"그래, 너도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 아냐?
몸에 대한 이해가 왜 필요하지?"
"그건 뭐 나중에 언젠가 필요할 때가 있겠죠."
데니스에게 준비해준 약품은 이제 순수하게
푸른 색 페인트 같은 꾸덕한 액체가
부글부글 기포를 보이는 독특한 향을 보이고 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이걸 마시는 일은 없겠지만
녀석은 잠시 바라보더니 그걸 그대로 마셨다.
잔을 내려놓으면서 묘한 표정으로 심호흡을 하고나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데니스는 그 상태 그대로 점프를 붕붕 뛰어댔다.
아마 그건 또 새로운 기분일 것이다.
다리의 움직임을 느끼고 싶은 건지,
아니면 또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었는지
데니스는 한참을 제자리에서 뛰다가
"어...끝났다."
라고 하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번건 소다 없이 원하던 그대로야.
단가로만 따지면 4배는 비싸다고.
이번만이야. 다음은 없어."
"알겠습니다."
나는 이 아이가 과연 정말로 11살이 맞는지
조금 의심스러워졌다.
로드원은 가게 구석에서 조용히 대걸레로 바닥을 닦았다.
그런 그도 고개를 돌리게 만든 데니스는
우리 가게에 나름의 호기심을 가진 모양이다.
"그 14호 TAG라는거 말인데요."
"어 그게 왜?"
"레시피는 안파시나요?"
"이건 유통되면 안될 물건이란다.
잘못 만들면 그대로 저승행이야."
"그럴수도 있군요."
데니스는 그 이후로 간단한 커피를 하나 시켜두고
창가 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그 모습에 마을 아주머니가 찾아왔다.
"어서오세요."
아주머니는 조용히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 안녕. 나는 저 위에 언덕길에서 옷을 파는
모리티야. 카페를 한다고 들어서 찾아왔어.
한편으로는 저 데니스를 하루종일 묶어두는데 대한
감사나 놀라움도 조금 있지만."
"저 애, 생각보다 귀가 밝습니다.
지금 그거. 100퍼센트 들었을거에요.
성격이 저래서 가만히 있는 것 뿐입니다."
아주머니는 흠칫 고개를 돌리고 데니스와 눈이 마주친다.
어색하게 다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아주머니는
차마 그게 들릴 리 없다고 생각한 듯 하다.
"어..그래. 커피 한잔 줘요."
"어떤 커피로요?"
"에스테리카. 난 에스테리카만 마시니까."
"에스테리카. 단 걸 좋아하시나봐요?"
"그런 편이지."
모리티는 자리를 잡고 근처 테이블에 앉았다.
가게의 분위기를 둘러보다가 역시나 로드원을 발견하지만
미리 옷을 입혀놓고 머리에 후드를 씌워놓아서
그닥 크게 문제삼지는 않는 모양이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된 거야?"
모리티가 물었다.
"음, 귀농...정도로 생각해주세요."
"나도 6년 전에 그런 생각으로 여길 찾았지.
나쁘지 않아. 공기 좋고. 다만 이제 종종 일 있을 때 도시 쪽에서
인원이 내려온다는게 조금 거슬리는 부분이지만."
"도시요?"
"그래, 우리가 또 숲을 끼고 국경지역이잖아.
안카 숲이 워낙에 넓으니까 서로 잘 침범하려고 하진 않지만.
그래도 국경지역이니만큼 여기나 서지스나 종종 파견이 내려온단말이지."
"그런가요."
"그래도 별 일 없어. 가끔 모험가들이나 지나가는 정도?
잔뜩 다쳐서는 어디서 왔고 숲을 지나다 어떤 괴수를 만나서
어떻게 싸우고 다치고 굴러서 여기까지 왔는지,
자기 자랑만 실컷 늘어놓고 돌아가곤 해.
사실 별 관심은 없는데.
괜히 애들이나 헛 바람 들어차서는
모험가를 하겠다고 돌아다니는데, 골치아프지."
"커피, 나왔습니다."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주면 그녀도 이야기를 멈춘다.
딱히 뭘 더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입맛에 퍽 맞는 듯 했다.
이 부근에는 카페가 많지 않다.
이 작은 마을에 카페라고는 단 두 곳.
그마저도 도시에서 퇴역한 군인이 있는
그 카페는 사실상 이곳으로 발령받은 군인과
어쩌다 유입된 모험가만이 잔뜩 모여서 자기 잘난 이야기를 떠드는 곳이었다.
모리티는 커피를 마시고는 만족스럽게 이야기했다.
저 동네는 사실 작은 마을일 뿐인데
그 누구도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서
선심쓰듯 사람을 보내놓고 관리조차 하지 않는 국가에
다들 신물이 나 있다는 그런 이야기.
내가 알기로는 그건 변하지 않는다.
마을에 관심이야 있을것이다.
주민, 환경, 경제 그런 것 따위와는 다른
지지율, 민심, 경계도 그런 것들.
그냥 단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악의 상황만 방지하는
그런 상태가 고착화된 그런 오지의 마을이 되어버린 것이리라.
"우리 마을도 사실 30년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다고
촌장님도 종종 말씀하시지만, 그건 이제와서 의미가 없잖니.
과거의 영광에 취해서 일도 제대로 못하는 노인인데.
그냥 콜린은 이제 귀농정도가 딱 어울리는 그런 촌동네라고."
그제서야 나는 마을 이름이 콜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지 국가간의 전쟁과 그 사이 혼란한 경제를 틈타서
미궁이나 숲 따위를 전전하는 모험가나 용병.
그리고 숲을 끼고 있는 작은 마을 콜린. 그림은 그려진다.
남의 일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당연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런 부분에서 카페는 인간의 이야기를 모으기에 적합하다.
대다수는 쓸모 없는 이야기였지만,
적어도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은 알게 되었다.
모리티는 커피를 마시고 창 밖을 보며 이야기했다.
"여기는 아담하고 좋네. 많이 모이지는 못하겠지만."
"많이 모이면 저도 피곤해서요.
보시다시피 직원도 저 포함 둘이고."
"하긴 그렇겠네. 커피 잘 마셨어요. 얼마죠?"
"4페킷이요."
"가격도 나쁘지 않네. 저 위에 카페는 한 잔에 8페킷은 받더라고."
"저 위에 있는 카페가 저희 카페에 가격경쟁이나 안 걸어오면 좋겠네요."
"그래, 아무튼 앞으로 나는 여기로 와야겠네. 고마워요."
모리티가 나가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데니스도 빈 잔을 반납하고 나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