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화 〉마녀의 카페
[우리 카페는 케이크는 안파는건가?]
[케이크? 갑자기 무슨 케이크?]
[둘러보면 다른 곳은 다 파는 것 같던데.]
[관심이 많으셨나봐?]
[부정하진 않겠다.]
로드원은 그렇게 말하면서 빈 테이블에 앉았다.
말은 그렇게 들었지만 딱히 음료 외에 다른 음식은 추가할 생각이 없다.
먹고살기 힘든것도 아니고 그닥 경쟁력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
그냥 연금술, 주술, 마술, 그런 것들을 소소히 하면서 지내고 싶은
그런 일상이 필요한 거니까.
"오늘은 손님이 안오네."
그런 혼잣말을 하면 거짓말 같이 새로운 손님이 찾아오곤 한다.
"어서오세요."
찾아온 남자는 검은 머리를 넘기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복장에서는 살짝 기름냄새가 났다.
"헬라레소 한 잔."
"헬라레소는 매콤한데 괜찮으신가요?"
"익숙하니까 괜찮소."
"아...네."
남자는 가만히 앉아서 팔을 책상에 올린 채로 내게 묻는다.
"기술자요?"
"어...그렇진 않은데요."
"저 로봇. 잘 만들었구만. 다소 투박하지만."
"감사합니다."
"팔 생각은 없소?"
"저희 직원이라서요."
"직원이라?"
"주로 청소와 재료조달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자 혼자서는 조금...버거우니까요."
"실례했군. 나는 대장간 출신이라 말이지.
저런 기계를 보면 눈이 돌아가오.
흥분해서 그랬는데 괘념치 말길."
"아, 네. 주문하신 헬라레소 나왔습니다."
헬라레소는 기본적으로 매운 맛이 강하고
그 끝 맛의 알싸하지만 동시에 깊은 향이 매력적인 음료다.
대장간 출신은 예로부터 헬라레소를 자주 찾았다.
"대장간은 알고있소?"
"아, 네. 조금은."
"젊어보이는데 대장간을 알고있다니 놀랍군.
기술자들은 모두 그곳에 뿌리를 두고있지.
짧게는 단순 기술부터 길게는 영기술까지, 기술자를 양성하는 곳이니까."
"소마법 말씀하시는 건가요?"
"아, 사람들은 소마법이라고도 부른다지. 우리는 영기술이라고 한다네.
아무래도 우리는 기술직이니까, 소마법이라고 부를때는
마법에 기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이지. 기분이 썩 좋진 않아.
우리의 가치는 기술에 있는걸세. 영기술은 거둘 뿐이지.
실제로도 영기술에 재능이 없는 기술자들도 많이 있지만,
그들도 사회에서 일하는데 별 지장은 없잖소?"
"그렇...군요."
"보아하니 자네도 영기술을 다루는 것 같아 보이는데,
대장간 출신은 아닌건가?"
"아, 저는 독학으로."
"독학? 대단한 노력을 하셨겠소.
우리 기술자들은 몇 십년을 걸쳐 배우는 것인데..
그렇게 배워도 결국 사람들은 다,
영기술을 쓸 줄 아는 자에게 몰리지만 말이야."
그렇게 조금 성을 내고는 남자는 커피를 마셨다.
나도 짧게 익힌 능력은 아니지만.
더욱이 소마법 따위와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인지라
몇 십년은 꼬박 연구한 것이지만 그걸 굳이 말할 이유는 없었다.
"소개가 늦었군.
마을의 공방에서 일하는 마르커스요.
최근에는 물건 수리를 위주로 맡는다오.
하, 대장간에서 처음 나올 때 까지는
이런 일이나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대장간은 어떤 장소인가요?
듣기만 해서 자세히는 잘 모르는데."
"대장간 말이오?
그래, 어느정도까지 알고 있소?"
"기술자들의 고향 같은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거면 충분하지.
그곳은 강철과 불이 타오르는 장소요.
모든 기술자들이 모이는 장소이자,
기술자들이 태어나는 곳이지.
누구나 기술자의 로망을 안고 찾아간다오.
일종의 기술자의 마을이라고 생각하시게."
"국가 외 구역이라던데 그건 무슨 의미죠?"
"대충 아는것 치고는 상당히 자세히 아는구만.
대장간은 태초에 마법을 거부한 이들이 도망쳐 나온 곳이라고 하지.
지금은 신화니까 잘 모르겠지만 그랬다고 하네.
일단 역사를 따라 내려오면 이 땅에 여러 왕조가 있었지.
아마 아르간티아 초국 시절에 떨어져나와 초기에 이아에르 왕국때도,
이후의 샤르네아 왕국 때도 그랬고 이전에 젤데리스가 있을 때도
그 이후에 엠페레스 제국 때도 대장간은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았네."
"아르간티아 초국때 떨어져나온 집단인가요?"
"그랬다고 하지. 그래봐야 전설이니 잘은 모르지만 말이야.
마법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그다지 익숙한 개념은 아니잖소?"
"그렇..죠...하하..."
"지금에서야 영기술로 전해져오지만 말일세,
나는 과연 그 마법이라는게 얼마나 웅대한 것이었을지
가끔 상상해보곤 한다오. 아마 내가 상상한 것보다 더 대단한 것이었겠지.
어찌 되었건 우리 기술자들은 그런 뭐든지 가능한 편리함에 싫증을 느낀게지.
그 편리함을 거부하고 직접 두 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기술자의 시작이니까."
"프라이드...라는거군요."
"그렇소."
남자는 커피를 마시고 나서 만족한다는 듯이 크으으 하는 소리를 낸다.
"일단은 커피도 마실 겸 공방도 소개할 겸 찾아왔는데,
아무래도 그대가 내 공방에 찾아올 일은 없을 것 같구만.
그래도 안타깝기보다는 예상 외의 전우를 찾은 듯 하여 기쁘다오."
"감사합니다. 종종 들러주세요."
"크흐윽... 마음에 드는구만. 그래, 이 커피도 말이야.
깊고 진해. 그러면서도 매운 맛이 혀를 자극한다고.
이런 섬세함은 대장간 이후에 오랜만이야.
우린 이런 투박함 속의 섬세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니까.
알잖소?"
그리고 나서 그는 주머니에서 기름때 묻은 명함을 건넨다.
마르커스라는 이름이 적힌 투박한 디자인의 명함에
그가 말한 '기술'은 보이지 않았다.
"미안하네, 지금은 기술의 열정이고 혼이고 다 식어버려서 말이야.
암만 뭐라고 해도 이 마을의 평화에 무뎌져버린게지.
손이 근질거리기는 하지만 어쩌겠소?
그렇다고 이제와서 다른 곳으로 가고싶지는 않다오.
이 작은 마을에 필요한 기술은 둔탁한 무기와 뜨거운 강철보다는
당장 필요한 농기구의 수리와, 간간히 고장나는 보일러를 고치는 기술이니까.
내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으니 말이야. 크흐흑...나도 늙어서 그렇다오."
잠시 커피를 마신 후에 수염을 쓸어내리며 그가 내게 물었다.
"이름을 듣고싶소. 젊고 자유로운 기술자의 아직 녹슬지 않은 이름 말이오."
"에리아에요."
"에리아... 좋은 이름이군, 나중에 딸이 생기면 자네같았으면 꼭 좋겠소."
"저같은 딸... 별로 생각만큼 좋진 않을거에요."
마르커스는 그 말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얼마요?"
"3페킷하고 5크레딧이요."
"오, 역시 정직하군. 나는 이 마을에 들어오고는
영영 10페킷짜리 헬라레소만 마셔야 하는줄 알았더랬소."
"그 정도인가요?"
"저 위에 있는 카페는 그렇지.
그래, 술집과 카페는 달라야하지 않겠나.
카페는 자고로 여유를 느낄수 있어야지 않겠소?"
"저희, 술집도 해요. 9시 이후에 오시면 술도 드립니다."
"자주 오지. 맥주가 마시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 크하하하!"
그렇게 말하고 마르커스는 4페킷을 주고나서 거스름돈은 필요 없다며
웃으며 나가버렸다.
가게를 일찍 정리했다.
더 올 사람도 없어 보였고,
내가 환기를 좀 하고싶어서이기도 했다.
마을 앞에는 크고 작은 석산이 널려있다.
누가 일부러 가져다 박은거라고 해도 될 정도로.
콜린은 이 천연의 요새에 둘러쌓였다.
지금도 국경지역임에도 그 누구도 오지 않으려 하는 곳.
종종 모험가만 들락거리는 이 오래된 마을은
기술도 아직 10년정도 뒤쳐진 마을이다.
가끔 술집에 오는 주정뱅이 중 몇몇이
마을 밖에 있는 석산은 자기가 쌓은 거라는 헛소릴 하기도 한다.
마을 외곽을 산책하면
로드원이 내 뒤를 따라걷는다.
돌로 된 몸인데도 금새 적응해 조용히 걷는 법을 익혔다.
[생각보다 지낼만하군.]
[어머, 그래? 다시 뺏어야 하나?]
[쪼잔하게 굴지 말라고. 아직 못 찾은 즐거움이 더 많으니까.]
[결국 너는 영혼이잖아.
아무리 튼튼한 몸체를 찾아도 결국 영혼이 마모되면 죽는거야.]
[마모? 영혼이 마모가 되는 개념이었나?]
[뭐, 내가 마력을 끊으면 그렇겠지.
그리고 영혼 회로가 망가지면 언제든 그 몸에서 튕겨나온다는걸 기억해.]
[그건 조금 곤란하군.]
[신체의 제약은 덜하겠지.]
[신체가 너에게는 제약인가?
빨리 벗어던지면 되는데 잘도 그런걸 몇 백년간 들고 다녔군.]
[놀랍게도 몇 백년간 그걸 연구했지.]
[역시 마녀는 이해하기 어렵구만.]
[영혼 회로가 무사하면 너는 그 돌조각 안에 갇혀있는거야.
영혼 회로가 망가지기 전에는 나올 수가 없지.
만에 하나 구동회로가 있는 육체는 박살났는데 영혼 회로가 무사하다면
넌 아마 내 마력이 다할 때까지 갇힌 채로 존재하겠지.]
[썩 달갑지는 않군.]
[동감이야.]
골렘은 점점 유연성이 늘어난다.
원래 관절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유연성에 있어서는 자유롭다.
그건 로드원이 골렘을 다루는데 익숙해졌다는 의미다.
영혼 회로의 영향으로 골렘과 동화가 진행된거라고 생각한다.
[그러고보니 골렘을 구성하는 돌 말인데, 주변의 산에서 떼 온 거였지?]
[그래. 네 몸이니까 출생지 정도는 기억하라고.]
[어쩐지 기분이 이상하군.]
[나만 할까.]
콜린은 마을 뒤쪽에 주민들이 송수로를 길게 만들었다.
조각배가 아니면 들어오지도 못하는 좁고 깊은 물길이다.
대해로 이어진 그 물길은 마을로 흘러오며 담수가 된다.
그 물을 사용해 생활용수로 쓰면서 마을은 발전했다.
내가 전에 살던 산은 이리아스 산맥의 줄기로, 물을 구하기가 힘든 곳이어서
포션 하나를 만들기도 너무나 어려웠다. 물이 없었으므로.
빗물을 모으고, 눈물을 모으고, 때로는 땅을 파서 짜내기도 했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져서 나는 조금은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콜린의 조용한 풍경은 나를 안심시켰다.
내가 더는 도망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내가 몇 번이나 처형당하던 그 시대의 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익숙함을 느꼈다.
종종 서지스로 재료나 도서관을 위해 들르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지금 여기를 버리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역시 좋은 마을이야. 그렇지 로드원?]
[왠일로 감성적인 소리를 하는거지?]
[몰랐어? 나 감성적인 사람이야. 로드원.
아, 생전에 하던거라곤 화형이랑 사냥이 전부라 모르시지?]
[몰랐던 부분이 낯설어서 그런가.
아무튼 이번 기회에 이야기하지.
내 이름은 체헤게다. 로드원은 우리 가문이고.
앞으로는 체헤게라고 불러다오.]
[이름이 그게 뭐야.]
[나도 그래서 로드원으로 활동했지만
이제 이름정도는 알아둬야 할 사이 아닌가?]
[우리가? 원수라면 원수지 친구가 된 기억은 없는데?]
[어느 쪽이든 일단 소개하는거다.
나는 체헤게 로드원. 잘 부탁하지.]
[미안, 너에게 알려줄만한 이름이 없어.
에리아 정도로 불러줘.]
골렘은 나를 돌아보고 짧은 시간동안 정지했다.
아마 무언가 표정을 지었거나 생각을 했음이 분명한데
지금 저 표정없는 골렘으로는 알 수가 없다.
[집에 가서 좀 쉬다가 9시에 가게 다시 오픈하자.]
[성실하군.]
[성실해야 마녀도 해먹지. 게으르면 진작에 타죽었게.]
나 말고 다른 마녀를 만난 기억은 없다.
부모의 개념도 모른다. 그저 들은 걸로만 알 뿐이다.
그러나 그런 걸 배우기도 전에 살아남는 법을 연구해야했고
도망치는 법을 알아내야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으니까.
선례도 없었다. 마녀라고 태워죽인 인간의 상당수가
그냥 평범한 인간이라는걸 인정하지 않는건 그들 뿐이다.
이유있는 외톨이였기에 사회성이 결여되는 것도 당연하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요 며칠새 생각보다 많이 바뀐 것도 같다.
집으로 돌아가서 작업실로 들어갔다.
여전히 내 실험도구가 있다.
마녀의 솥이라는 물건은 없다. 이제는.
가스레인지에 불만 올려도 냄비에 뭐든 넣고 끓이면 되는데
굳이 무거운 가마솥을 가지고 불을 피울 이유가 없다.
비주얼 자체도 좋아보이고, 애초에 위생적인 느낌이 팍팍오니까.
도서관에서 읽은 책 중에 있어서 내가 직접 만든 것들이었다.
가스는 직접 대기중의 가스를 주술로 모았고
불은 즉석에서 발화부로 피워냈다. 그걸 이제 형태를 잡은 틀로 가공해서
작동만 하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골렘만들기보다는 어렵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사람을 불러서 하나 설치하면 그만이었다.
지금은 자금이 없어서 별 수 없었지만.
저녁에 호프를 열었을 때는 역시 늘 같은 주정뱅이만 두어명 와서
내게 추파를 건네면서 자신의 모험담을 이야기 했으나
대다수는 혀꼬부라진 소리로 거짓말을 하면서
내 가슴을 몰래 힐끔거리는 이들이었기에 적당히 술에 포션을 타서
한 일주일 정도는 성욕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주었다.
호르몬을 강제로 억제시키는 포션 정도야 인체공부하면서 몇 번이나 만들었으니까.
결국 그들이 돌아간 이후의 가게는 정신이 없어서 문을 일찍 닫고
청소를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