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마녀의 호프 (6/303)



〈 6화 〉마녀의 호프

가게 정리는 늘 피곤한 일이었다.
비록 테이블이 1개뿐인 작은 카페라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오후에 오겠다고 한 마르커스 씨를 생각하면 미리 정리를 어느정도 해 둬야 하는 것도 있어서
체헤게를 불러 같이 가게를 정리했다.

[이 가게에 술을 마시러 오는 사람은 처음인 것 같은데.]

[결국 손님이 생기기는 하는거지.]

[그런데 왜 호프지? 펍이 더 조용하고 가게 분위기와 맞을 텐데.]

[비싼 위스키 값은 네가 벌어다 주는거야?]


[아니, 칵테일명목으로 포션을 팔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제넘었군.]

[그러고싶었지. 그래서 카페에서 하고 있잖아?
주점에 오는건 취하고싶은 녀석들이나 취한 녀석들 뿐이야.
이미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한테 포션을 줘봤자 그게 무슨 효과인지도 모를텐데.]


[하지만 더 솔직하겠지. 그리고 덧붙이면 펍에 오는 사람들은 그렇게 취해서 고성방가를 부르지 않아.]


[아, 그래? 미안. 펍에 가 본 적이 없어서.]


[가 본 적이 없다?]


[17살에서 늙질 않아서 출입을 해본적이 없어.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야 하니까,
들어오는 손님들에게 일일이 주술 걸기도 귀찮고 말이지.
차라리 점원 하나만 속이면 되는 가게에서 술을 사서 마시는게 편해.]


[그건 그렇겠군.]

[호프는 개방적이잖아. 누구나 찾아올 수 있어. 그래서 나도 분위기는 아는거고. 그런데 펍은,]

[알 것도 같군. 존재를 감춘다는 의미정도로 받으면 되나?]

[그래.]


그런 이야기나 하고 있으면 가게 문이 열리고 마르커스와 거칠게 생긴 여자가 들어왔다.
여자의 얼굴에는 크고 작은 흉터들이 말라 있었는데 마르커스 못지 않은 고생을 한 것 같았다.
뒤로 넘긴  머리가 희끗하게 색이 바랜 나이가 지긋한 여자였다.
둘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꽤나 사이가 좋아 보였다.

"그래서 여기로 오자고 한 거야?"

"그래, 이 가게 점장이 상당히 뛰어나서 말이지."

"난 맥주만 마실 수 있으면 나머지 세세한건 어찌되던 좋아."


"오전에는 카페도 하더구만. 헬라레소가 예술이라고."


"헬라레소? 얼음이나 집어넣지 않으면 다행이지.
요즘은 헬라레소에 얼음을 넣는 머저리들이 늘어난다던데."


"진정하게 렌."

"날 그렇게 부르지마 마르커스. 난 헬렌이라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는거야?"

"허허..."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면서 테이블에 나란히 앉는다.
헬렌이라고 말한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슥 흝어보고 그닥 신용이 가지 않는다는 듯이 말한다.

"맥주, 가득히, 500."

"주문 받았습니다."

내가 돌아서자 그녀는 곧장 마르커스에게 말했다.

"뭐야, 여기 정말 호프 맞아? 완전히 소형 카페잖아. 호프보다는 바에 더 가까운 것 같은데."

"말했잖은가, 카페를 겸하고 있다고."

"널 믿는게 아니었어."

"일단 마셔보기나 하시게. 아, 에리아. 여기 술은 맥주밖에 없소?"

"아뇨, 잠시만요. 메뉴판 가져다 드릴게요."


그렇게 말하고 가게 내에 주문 가능한 술이 적힌 메뉴판을 체헤게를 통해 전달했다.
물론 오늘의 추천 메뉴도 빼놓지 않았다.


"추천 메뉴..? 이건 또 뭐야? 정말 카페야?"

"그렇다고 했잖는가. 아, 나는 여기 있는 라거로 하겠네."

"알겠습니다."

주문을 받고 나서 들어가면 미리 생맥주를 시원하게 따라놓은 체헤게가 500컵을 헬렌에게 전한다.
그녀는 그 컵을 받아들고 잔에 손을 대더니 말했다.


"시원하군. 기본은 할 줄 아는 집인가보네?"

[에리아, 이건 뭐하는 녀석인지 저기 앉아있는 수염아저씨한테 물어보지 그래.]


"칭찬 감사드립니다."


나는 굳이 대꾸하지 않았다. 저런걸로 일일이 따지고 들면 장사 못하지.
사실 감사하지도 않았다.

"대신 사과하지. 미안하오. 이녀석은 헬렌이라고 하는데,
마을에서 아틀리에를 작게 하고있소. 원래는 대장간 출신의 기술자였는데,
지금은...!"


"시끄러워! 무슨 처음 만난 사람한테 내 이야길 그렇게 친절하게 해 주고 앉았어."

"보다시피....좀 까칠하오..."

나는 그런 그에게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굳이 대꾸해서 누군가의 기분을 긁는 것보다는
설명해 준 데 대한 감사를 표하는 딱 그 정도가 적당했다.


"그래서  꼬마가 어디가 특별한지 한번 마셔 봐야지."

헬렌은 맥주를 물처럼 들이켰다.
벌컥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뒤 약간의 거품만 남아있는 빈잔을 테이블에 내리치며
헬렌은 나를 보고 소리쳤다.


"합격이야! 어이 꼬마, 생각보다 잘하는데? 어디서 공급받는 맥주지?"


"수제인데요."

그 말에 마르커스가 짐짓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하기는 했는데...."


"하아... 미안했어 아가씨. 나는 또 이 변태가 아가씨 얼굴만 보고 헤까닥 뒤집혀서
사람을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줄 알았지뭐야. 사과하지. 소개는 들었겠지만 나는 헬렌.
헬렌 프리스트노브. 마을 위쪽에서 자그마한 조각을 하고있어."


"반갑습니다."


"이 아가씨도 나 못지 않게 서늘한데? 마르커스, 대체 어디가 좋아서 데리고 온 거야?"


"실례를 삼가게 렌, 에리아는 우리보다 더 뛰어난 기술자니까."

그 말에 헬렌은  없이 잠깐 침묵하더니 내게 잔을 내밀고 손가락으로 1을 내비쳤다.
한 잔 더 달라는 의미였다. 내가 라거와 생맥주를 둘에게 건네면
헬렌이 진지한 눈으로 맥주를 마시고는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대충 눈치는 챘어. 그래서 말한거야. 아가씨, 출신이 어디야?
갑자기 생긴 가게나 내부 시설은 그렇다고 쳐. 저기 저거. 자동형 구동체 로봇.
저런건 아무나 못 만들어. 그리고 그 카운터의 장비들, 다 수제지?
특히 저쪽의 저 커피 디스펜서, 자동이야. 그것도 도시에도 몇 없는 고급품.
게다가 이 나라에서는 저런 기술은 본 적도 없어. 대장간에서도 꼽아주는 실력이야.
그렇다면 저 도구들은   아니라, 만들었다는 이야기지.
저 정도의 기술자라면 헬라레소를 맞추는 것도 이해는 가. 그런데, 그런 기술자가 카페를?
그리고  얼굴, 도저히 대장간에서 기술을 배운 사람의 나이로는 안 보여.
그런 사람이 굳이 이 마을에 올 이유는 없지. 무슨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면.
다시 묻지. 아가씨, 출신이 어디야?"

"정중하게 질문은 거절할게요.
저는 술을 팔고 있는거지,  상대를 해 드리는게 아니니까요."


"당돌한 아가씨네. 왜 네가 마음에 들어하는지 알 것도 같아."


그렇게 말하면서 헬렌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그러고는 살짝 피곤한 눈으로 말했다.

"그래, 뭐 어디서 왔는지가 무슨 상관이야. 여기서 조용히 맥주만 팔아준다면야."

[마음에 안드는데 그래.]


[뭐, 어린 친구니까 너그럽게 이해하자고 체헤게.]


[푸하하...! 생각보다 개그 좀 하잖아?]

"젊게 봐주신 건 고마워요. 하지만 저 이래뵈도 나이가 상당해서요."


마르커스가 눈치를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헬렌. 진정하게. 취한 것 같군."


"그런 소리 하지마.
취한 핑계로 변명을 대고 빠져나가는 비겁한 어른이 되라고 가르친 선생을 둔 기억은 없어."


"이거 지치는군. 엘리아, 차도 주문할 수 있소?"


"차요? 네, 그러세요. 이런 작은 가게에 뭐든 사장 마음이죠."

"그럼 아주 뜨거운 걸로 부탁하네. 입천장이 벗겨져버릴 만한 걸로."


마르커스는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뭐든 뜨거운 것이면 상관 없다는 말이렷다.
그래서 나는 실험작을 테스트 해보기로 했다.
6번-7호APV 라는 약물이다. 도저히 맛은 장담할 수 없어서 실험을  보지 못한 것이다.
예상 효능으로는 체내 흡수시 기력과 마력을 흡수하는 것이지만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다.
실험용으로 사육하는 슬라임의 조각을 사용한다.
식용 슬라임을 재료로 하기도 했고, 멸균 현장에서 기른 녀석을 안전하게 공급받으니
섭취해도 문제가 없다. 슬라임을 사용하는 포션은 차고 많으니까.
원래는 어느정도 점성이 있는 포션이지만 가열해 끓이면 점성이 사라진다.
마법처리를 해서 슬라임의 조각의 활력을 제거한 것을
 상태로 약품처리를 해서 각성제를 일정 비율로 섞어 넣는다.
원래 슬라임은 세포체 자체가 주변의 물질을 흡수해서 성분을 저장하는
그런 묘한 특성이 있는 생물이라 원래는 해독제에 주로 사용하곤 했다.
그런데 각성제를 부어주면 효과는 말하지 않아도 가속화하기 마련이다.
그런 상태에서 각종 마비제의 재료로 들어가는 마취식물을 넣고.
일정 시간 가열해서 재료를 섞어준다. 내용물이 전부 우러나오면 완성이다.
아마 마취 성분이 있으니까 맛을 알아채기도 전에 혀가 마비되겠지.
거기에 밀크티 같아 보이라고 우유를 조금 섞어넣고  끓이며 저어줬다.

"여기, 음료 나왔습니다. 아주 강한 진정효과가 있을 겁니다.
드시고 나서 잠시 진정하실 때까지 좀 가라앉히세요."


내가 건넨 잔을 받아들면서 헬렌은 잔을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의아한 듯이
잠시 갸우뚱하더니 나를 슥 올려다본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이상한 짓은 안 했겠지?"


"왜요, 뭐 독이라도 넣었을까봐요?"


"그럴지도. 일단 고마워."

그렇게 말하면서 잔을 입으로 가져가는 헬렌이 벌컥이면서 잔을 비운다.
잔을 내려놓고 잠시 이마를 짚고 끄응 하는 낮은 한숨을 쉬더니 그대로 테이블에
머리를 들이박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바르르 떨어댄다.
그게 걱정이 되는지 마르커스가 조심스레 내게 물었다.


"혹시 에리아, 이 음료는 효과가 뭔가?"

"진정효과요. 기다려보세요. 금방 효과가 나올테니까."

헬렌은 겨우 고개를 들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상당히 일그러진 표정이 볼만 했다.


"아가씨, 여기 화장실은 어디지?"


"저쪽이요."


내가 화장실의 위치를 가르쳐주면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간다.
저렇게 금방 일어나는건 예상 밖이지만 화장실로 가는 것 정도는 예상했다.
체내에 슬라임의 세포를 그렇게 오래 담고 있는건 좋지 않다.
애초에 슬라임의 체세포를 가열하는 이유도 점성을 제거하기 위함이고.
각성제는 카페인으로 이뇨작용을 촉진하기 위함도 있다.
원래 술을 마셔댔으니 어느정도 화장실이 가고싶기도 했겠지만.


화장실에서 나온 그녀의 얼굴은 아까보다 한껏 맑아보였다.
체력이나 기력을 흡수당하고 반 강제로 지쳐서 조용해지는 것과는 상당히 다른,
그런 안정적인 표정을 하고 나와서는 내게 말했다.

"숙취 해소제였나?"


"네.  그런 느낌이에요."

나도 잘 아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말했다.
오늘 만든 약품은 숙취 해소에 탁월했던 모양이다.
체내에 축적된 알코올을 체력이나 기력보다 우선순위로 흡수했나보다.
그럼 마비 약재는 왜 효능이 없지 싶은 생각에 물었다.

"혹시 몸이 불편하거나 하시진 않으시죠?"


"어, 괜찮아. 아까는 무시해서 미안했어, 너 꽤나 실력이 있구나."

"아...네..."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카운터에 앉아서 고민했다.
마비성분은 대체 어디로 갔는가. 그러다가 알아낸 결론은 그것이었다.
거머리의 마비 성분처럼 슬라임의 체세포가 쓸고 지나간 자리의 통증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내장을 간단히 마취시키는 것이라고.
만족하고 나서 나름대로 결론을 내리고 연구 공책에 따로 정리하기로 했다.

"그래, 에리아. 정말 대단하군. 헬렌에게 인정받는 바리스타는 흔치 않았다네."


"내가 까다로운 것처럼 말하지 마. 그 자식들이 실력도 없는 주제에 돈만 비싸게
받아 먹는 버러지들이었다고."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인정하지."

둘은 신나서 본인들끼리 떠들어대고 있었고,
나는 슬슬 오늘 장사는 여기까지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아직 장사 하시나요?"

그렇게 말하고 가게 문을 연 것은 금발의 남자였다.
마른 것 같은 몸에 근육이 잡힌 건강한 몸이었다.
키는 180정도로 보이는 장신이었는데 그 눈이 어딘가 깊어 보였다.
남자는 마르커스와 헬렌의 자리에서 한 칸 정도 떨어져 앉았다.

"여기 고화수도 팔아요?"


"고화수요?"

"네. 고화수."

들어본 적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아주 오래 전에 유행하던
술이 들어간 차. 그러나 만들어 본 적은 없었기 떄문에 나는 정중히 할 줄 모른다고
그에게 말하고 다른 메뉴를 추천하려고 했다.

"그...고화수는..."

"테즈불 허브 10g, 로즈마리 허브 5g, 볶은 테베말 씨앗 10g을 갈아넣고
보드카 30ml, 안티움 30ml를 섞은 걸로 달여주시면 됩니다."

"안..티움이요...?"


당황했다. 안티움같은걸 일반인이 알고 있을리가 없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지만
고화수의 레시피 같은건 정말 아무나 알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애초에 고급 차였다. 일반적인 서민은 물론이고, 테즈불 허브니, 안티움이니 하는 건
전부 에픽 급의 재료들이었으니까. 테즈불 허브는 지금 내가 가진 것도 없었다.


"테즈불 허브는 지금 가진 양이 없어서요...."

남자는 지긋이 나를 바라보면서  인상착의를 슥 흩듯이 바라본 뒤에
가볍게 웃고는 말했다.

"마침 테즈불을 제가 조금 가지고 있네요. 이걸 쓰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탐험 가방에서 작은 비닐 봉투를 꺼낸다.
거기에는 내가 책으로  것과 같은 모양의 테즈불이  송이 들어있었다.

"그...원하시는 차에... 이런걸 써도 될까요?"

"네, 물론이죠."

옆에서 의아하게 바라보는 헬렌이 내게 물었다.

"왜, 그거 귀한거야?"

"이 테즈불, 에픽급 재료에요. 안티움도 그렇고."

"확실히 음료수로 달여먹기에는 많이 아까운 재료구만."


마르커스가 그렇게 덧붙이고 라거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래도 당신도 보통은 아니군요, 사장님. 보통은 테즈불이나 안티움 같은 건
들어보지도 못한 카페도 많던데요. 에픽인 것 까지도 알고 있다니.
믿고 고화수를 맡길 수 있겠어요."


"저는 그런 것보다 손님이 더 궁금한데요? 이거 드셔보신 적은 있으세요?"


"저는 그냥 나그네에요. 믿어주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이런거 못 팔아요. 만든 적도 없고..."


남자는 나의 태도를 보고 찬찬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차분히 양 손을 깍지끼고 조용히 말했다.

"괜찮습니다. 가게에 민폐끼치지 않을게요."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차분했다.
나이가 많아보이지는 않았다. 많아봐야 2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그런 남자가 고화수를 주문한다니 생각하기 힘들었다.
남자는 가만히 나를  바라보기를 반복하다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만족한다는 듯이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계속 바라본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호감이나 연심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 처럼 노골적으로
내 가슴을 바라보거나 성희롱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나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볶은 테베말 씨앗과 허브를 갈고 있으면 달달하고 동시에 강렬한 이국적인 향이
카페에 은은하게 퍼졌다. 이런 향을 가지고 있으면 당연히 고급 재료일 것이다.
나도 효과를 잘 모르겠다. 고작 10g을 갈았을 뿐인데도 향이 강하다.
아직  송이가 그대로 남아있는 테즈불을 다시 돌려주면 남자는 그걸 받아들고
내게 물었다.


"테즈불이 가게에 없다고 했나요?"


"네, 고급 재료니까요."


"그럼 이건 드릴테니 가게에서 쓰세요. 뿌리나 줄기는 맛을 해치니까
이파리만 따로 떼서 쓰셔야 합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남자는 내게 테즈불을 건넨다.
나는  남자가 왜 내게 이렇게 잘해주는지  몰랐다.
그리고  테즈불을 받기가 두려웠다. 무언가 불안했고 아주.
아주 잘못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안티움과 보드카를 섞어 달여놓으니 주홍빛의 음료가 흘러나왔다.
아주 강한 향의 음료였다. 남자는 그걸 들고 한모금 마시더니
내게 말했다.

"다행이네요. 아주 좋아보여요."


".....그거, 정말 괜찮아요?"


남자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한 모금 더 잔을 기울인 후에 눈을 감고
조용히 심호흡을 한다. 향기로운 차의 향이 난다.

"레시피 잊어버리지 않겠어요? 혹시 괜찮으면 적어드릴까요?"

"에? 아뇨, 괜찮아요. 재료가 까다로운 거 말고는 레시피 정도야 간단해요."


"그렇군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한번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잔을 부드럽게 내려놓고 말했다.

"예상밖의 만남이었지만 참 좋았네요. 여기 사시는 건가요?"

"네..   없으면요?"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안티움은 가지고 계셨네요?"


"아...어...네...."


몸의 털이 쭈뼛 서는 것이 느껴졌다.
긴장했는지 등에서 땀이 베어나온다.


"너무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마셨어요. 인연이 닿으면 다시 만나죠."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빈 잔을 내려놓고 테이블에 돈을 놓고 짐은 챙겨서 나갔다.
아직 잔의 가격도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그는 테이블에 턱하니 델 지폐 5장을 두고
유유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체헤게!!!]


급하게 부른 체헤게에 구석에 앉아있던 체헤게가 일어선다.


[방금 그 남자, 반드시 쫒아가! 뭐하는 사람인지 알아와줘!]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가?]


[이제부터 알아내야지.]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르커스가 묻는다.

"왜 그러는가? 얼굴이 창백한데?"

"어...아니에요... 괜찮아요...."


다리가 후들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가게 문이 열리고 체헤게가 돌아온다.


[놓쳤어. 보이질 않아.]


[네가 놓쳤다고?]

[그래.]


내가 그러고 있으면 마르커스가 말했다.

"엘리아, 상태가 안좋아 보이는데 오늘은 쉬게. 우리는 그만 가지."

"그..그래, 아가씨, 무리하지 말고 오늘은 쉬라고."


불안했다. 헬렌이 마르커스를 부축하고 잘 마셨다며 돈을 내밀었다.
액수는 확인하지도 않고 받았다.

[체헤게, 가게 정리 좀 부탁해. 그리고 우리 내일은 좀 쉬자.]

[그렇게 하지.]

뭐하는 사람인지 감도 오지않는다. 그저 흥미를 가지고 알아낸 레시피를
시험해보려고 한 건지, 아니면 그걸 즐겨 마시는 사람이라 해독하는 법을 알던지.
테즈불은 악마의 허브라고 불리는 물건이다.
그런걸 함부로 들고다니기도 어려울 뿐더러 남에게 선뜻 건넬 수 있는 물건은
더더욱 아니다. 안티움도 마찬가지다.

안티움이라는 것은 독룡의 골수다.
독룡종은 체내 독샘에서 만들어지는 독이 해를 거듭할수록 축적되는데,
결국 배출하지 못하는 독성 탓에 뼈에 독성이 쌓이고, 뼈가 변색,
그 내부에 있는 골수가 녹아내리게 된다. 이때 그 골수가 안티움이라고 불리며
아주 고가에 거래되는데, 피부에 닿는 것만도 위협적이다.


물론 가열을 하고 독성을 어느정도 날린다고는 하지만 못해도 일주일은
꼬박 누워서 병원 신세를 져야 할 텐데 어떻게 사라진 것인지 궁금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낼 방법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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