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마녀의 호프
긴장이 한번에 풀리면서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껏 안티움을 먹겠다는 이야기를 한 사람도 처음이었지만,
그걸 마시고 살아남은 사람은 더더욱 낯선 이야기였다.
그 순간의 당황이 어쩌면 내 정체와 혹은 내가 해야 할 일의 방향을 알 기회를
영영 날려버린 것은 아닌지 나는 괜히 한숨을 쉬며 테이블에 남은 빈 잔을 정리했다.
도덕적으로 잘못되었다거나 하는 생각보다는 아쉬움이 컸던 것 같다.
화형당하기도 했었고 사냥당하기도 했으며 나조차도 나를 죽이려고 했으니
이제와서 시체 한 구 추가하는건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여차하면 안티움이 뭔지도 몰랐다는 식으로 잡아뗄 수도 있으니까.
[오늘은 이만 들어가 쉬지 그래, 내가 정리하지.]
"됐어. 이정도는 내가 정리해. 그리고 이렇게라도 손을 움직여야 좀 편할 것 같고."
이제 막 카페를 차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주섬주섬 테이블 위에 남은 델 지폐 다섯 장을 폈다.
반듯하게 반으로 접혀있던 지폐에서는 희미한 흙먼지 냄새와,
마른 모래가 조금 붙어있었다.
모래... 이 근처에 분명 사막이 있기야 했다.
페세티아 대륙 유레크로스 북서쪽에 분노의 사막이라는 광지가 있는데,
주로 실향민중 일부나, 유레크로스 정부에 반기를 든 사람들이
그곳에서 노상강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분노의 사막은 그다지 지리적으로 가치가 높은 땅도 아니거니와,
어딘가로 거쳐가는 길목을 가로막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대장간에서 유레크로스로 이어지는 최단거리,
상인들이 지나다니는 실크로드였다.
돌아서 가면 그만이긴 하지만 그 우회로는 4일을 더 소모하게 만들었고
그동안 상품의 가치는 나날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분노의 사막이 아니더라도 이미 유레크로스 왕국의 주변 대지는 메말랐다.
사막이 아니다 뿐이지 물자나 자원이 존재하기 어려운 곳이기에
최단거리인 분노의 사막이 더이상 안전한 통행지대가 아니게 되어버려서는
국가적으로도 손실이 컸다.
그런 길목을 지나다니는 것은 숙련된 모험가나 길드에서 고용된 용병집단,
혹은 노상강도를 겁내지 않는 이들 뿐이다.
"이 사막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사막?]
"응. 돈에 고운 모래가 묻어있잖아. 이건 사막의 모래야.
건조하고 메말라서 지폐에 달라붙을 수 있을 입자크기."
[아무래도 너는 카페같은게 아니라 과학자를 했어야 했던 것 같군.]
"그런 재미없는건 성미에 안맞아. 규칙도 까다롭고."
그렇게 말하면 체헤게는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서 걸레를 찾아 바닥을 닦았다.
더이상 할 말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잔에 물을 받아 적당히 놓아두고 냉동실에서 얼음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까드득 소리를 내며 얼음을 씹어부수고 있으면 문이 열리고 누군가 찾아왔다.
"여~ 장사하나?"
나는 살짝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고 일어났다.
문을 닫지 않았으니 손님이 오는건 당연한 일인데 왠지 기분이 나쁘다.
나는 괜히 체헤게에게 화를 냈다.
[가게 문 안닫았어?]
[닫으려고 했다.]
"뭐야? 장사 안해?"
손님으로 보이는 남자가 툴툴대며 적당히 자리에 앉았다.
장사를 하지 않겠다고 해도 나갈 생각은 없어보인다.
독특한 반다나를 두르고 코와 입을 천으로 가린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
짐을 옆자리에 내려놓았다.
"뭘 드시겠어요?"
내가 그렇게 물었다.
"맥주나 마시려고 왔는데, 영 맥주같은걸 마실 분위기는 아니고,
이 집 장사는 돼? 못보던 집인데."
"아... 할만큼은 됩니다."
"그래? 그러면 적당히 잘팔리는 걸로 가져와."
누군데 위아래도 없이 말을 놓는거지 하는 생각에 위아래로 남자의 차림새를
흩어봐도 별다른 특징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부랑자로 보이는 옷가지는
잘 쳐줘야 이 근방에서 활동중인 모험가와 그다지 다르지 않아보였다.
그래도 뭐 낯선 일도 아니거니와 이제 이런걸로 일일이 대꾸할 나이도 아니고
실험중인 음료를 먹이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마녀가 다 그렇지 뭐. 호기심을 우선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녀가 호기심을 느낄 대상 자체가 한정되어있기도 한것도 이유라면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다른 마녀들이라면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는데,
국가에서 지원을 받아가며 연구하는 과학자나 혹은 자신들이 스스로
인원을 모아 협회로 활동하던 연금술사들과 달리 나는 쫒겨다니느라
한동안 산속에 숨어 내려올 생각 자체를 하지도 않았으므로 실험대상은 늘 나였고
그러므로 일반적인 인간과 다른 나에게서는 얻어내지 못하는 결과 역시
분명히 존재하리라고 생각했으므로 손님 하나하나가 내게는 중요한 연구 자료.
대놓고 죽이지만 않는다면, 혹은 해가 가지 않는다면 괜찮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체헤게가 말한 대로였다. 결국 나는 밤에도 약품을 팔고 있었다.
술집을 찾는 사람들은 취했거나 취하고 싶은 사람들 뿐이다.
취한 상황에 그런 변화를 정확히 잡아낼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술 마시고 엄한 사고나 칠 바에 실험 재료로서 사용되는 것이 이득일 것이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렇게 변명아닌 변명을 했다.
나는 적당히 6번-7호APV를 만들어 그에게 건네주었다.
아직 임상실험의 결과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자는 그걸 벌컥벌컥 마시고는 잔을 쾅 소리나게 내려놓고
나를 보며 따졌다.
"뭐 이런게 다있어! 씨발 이딴게 제일 잘 팔리는 술이라고?"
"적어도 오늘은 그랬는데요."
사실이었다. 오늘 손님들은 각기 다 다른 음료를 마시고 돌아갔으니
제일 잘 팔린 술은 2잔으로 맥주였고 적당히 잘 팔린 술은
적당히 오늘 팔린 술 중에 고르는 정도면 충분했다.
"다른걸 드시겠어요?"
"이런 니미, 내가 누군지 알고 이러는거야? 이럴줄 알았으면 맥주를 마시는건데! 맥주나 가져와!"
옅은 한숨을 쉬며 맥주를 준비해주면 그제서야 남자는 맥주잔을 받으며
고래고래 소리쳐댔다.
"그래 진작에 이럴것이지! 나는 말이야! 8급 모험가란 말이야!
어? 갔으려면 진작에 더 좋은 술집에도 갔다고!
이 마을은 들러가는 마을이야! 그래서 와준거라고! 알아?"
"아...네, 편히 계시다 가세요."
모험가는 계급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수주한 의뢰의 업적에 따라, 혹은 국가적으로 시행하는 정기적인 시험에서
승급할 권리를 얻거나 하는 그런 일이었다.
모험가는 국가의 재산이라는 명목 하에 6급부터는 공무원으로써 대우해준다.
물론 말단으로 취급하기는 하지만 등급이 오를수록 지위도 상승한다.
종종 철없는 꼬마들이 장래희망으로 모험가를 말하면 가정에서
뜯어말리곤 하는 직업이지만 로망이니 멋이니 하며 남자들은 멋대로
모험가 신청서에 이름을 올리곤 했다.
그 외에 모험가로는 주로 교회에서 퇴출당한 성직자라거나, 군을 그만두고나온
퇴역 군인이라거나, 혹은 독학으로 검술따위를 조금 익힌 백수들이
의뢰를 수주해서 편히 먹고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도전하곤 한다.
나는 8급 모험가가 얼마나 강한지 척도를 잘 몰랐으므로 대꾸하지 않았다.
애초에 나는 이 사람과 싸울 필요도 없었고, 여차하면 정당하게 이 자를
쫒아낼 명분이 있었으므로 적당히 받아주다가 필요하면 내보낼 생각이었다.
"허어? 너 임마 8급 모험가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냐?
어저께 이 근처에서 활개치던 맷돼지를 쫒아낸게 나라고!"
"아, 맷돼지요..."
"맷돼지라고 무시하는거야? 크기는 거의 테러보어 급이었다고! 알아?"
"네, 대단하시네요."
"그래 그래. 그런거야."
어저께는 이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알 수도 없고 그닥 궁금하지도 않았다.
내가 오기 이전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이 마을에 오고 난 이후에
맷돼지 같은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남자가 실없는 거짓말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그렇게 말하고 맥주를 들이키는 남자는 이번에도 컵을 쿵쿵 내리 찍고서는
거하게 트림을 쏘아댔다.
"몇살이냐 너?"
"적당히 먹을만큼은 먹었어요. 공개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요."
"머리에 피도 안마른 것 같은데."
"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은 많아요."
"이전에도 다른 마을에서 술집을 간 적이 있지.
모험가라는 직업을 하다보면 이 직업이 좆같다는걸 깨닫는 순간이 있다고.
국가에서 보장해주는 모험가가 생각보다 아주 적다는거.
그리고 그 새끼들은 뒷배를 봐주는 새끼들이 있다는거!
그래서 같은 모험가여도 6급이랑 7급부터는 다른 취급을 받는단거잖아?
저번에도 어떤 애새끼가... 눈깔을 치켜뜨고 5급이라면서 바락바락 대드는데,
그놈 좆만한 토끼나 겨우 잡게 생겨서는 실력도 없는게, 아주 콱...
그래, 현장에서 뛰는건 나같은 좆밥 말단들이다 이거야!
서류작업이나 처리하는 놈들이... 길드 취직이나 하려고 꼼수써서 뒷배로
6급 5급 달아가는걸 누가 모를 줄 알고..."
"어디서나 비리는 존재하기 마련이죠."
"네가 뭘 아는데? 술쟁이 새끼들은 취한 상대에게는 편한 말을 내뱉곤 하지.
자기가 마치 뭐라도 된 것처럼 말이야. 좆까라고. 넌 그냥 병신같은 술쟁이니까.
그냥 내가 잔을 내리치고 술이라고 말하면 잽싸게 뛰어가서 그 병신같은
맥주 디스펜서에서 거품만 더럽게 많은 미적지근한 맥주를 가져오면 돼!
넌 씨발 나에 대해, 그리고 모험가들에 대해 좆도 모르니까. 그 주둥이 닥치라고."
"실례했습니다."
"그걸 알면 어서 한잔 더 가져오라고! 잔이 비잖아!"
그는 또 다시 잔을 내려놓았다. 쾅 소리가 나고 테이블이 잔 모서리 모양으로
조금 파인 것이 보였다. 나중에 수리해야지 생각하면 왠지 귀찮다.
나는 잔을 받아들고 시원한 맥주를 가져다 줬다.
그가 원하는대로 디스펜서에서 거품많고 미적지근한 맥주를 전하고 싶었지만
그런 준비를 미리 해두질 않아서 시원한 생맥을 가져다 주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고 컵을 내밀면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푸우... 난 말이야, 이런 씨발 도움만 받으면서 편하게 돈받아쳐먹는 주제에
아까부터 좆같이 보고있는 그 눈빛이 맘에 안든다고! 너희 술쟁이 새끼들은!
맨날 그렇지. 술만 팔면서 무슨 대단한 직업이라도 가진듯이 말야.
우리 모험가를 개 좆으로 보고! 씨발 새끼들..."
"낮에는 커피나 차도 팔고 있습니다."
"알아 씨발! 이딴 가게 디자인은 어떻게 보던 카페니까!"
"술이 많이 약하신 것 같은데요. 그만 드시는게 어떨까요."
"난 내가 잘 알아. 이 정도는 괜찮다고. 앞으로 두 잔.
두 잔 더 마시기 전까지는 물구나무를 서서도 집에 돌아갈 수 있어!"
"그러시군요."
요즘 세상은 호프집에 상당히 박한 시선을 보내는 모양이다.
아니면 적어도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그렇다거나.
그 모습이 나에게는 그저 어린 아이의 투정으로 보여 안쓰러울 뿐이었다.
나는 선반에서 깨끗한 컵을 꺼내 홍찻잎을 조금 찢어넣고 뜨거운 물을 부었다.
색이 피어나기 시작하는 홍차는 향긋해서 좋았다.
"난 술을 마시러 온거지 차를 마시러 온게 아니야."
"네, 이건 제 겁니다. 오늘 당신에게 더이상 드릴 술은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군."
"많이 취하신 것 같아서요."
한모금 홍차를 마시고 나서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직도 불평이 많은 듯 보였다.
그러나 아까와 같은 폭력적인 행태를 부리지는 않았다.
나는 체헤게에게 가게를 정리하라고 말했다.
[이 녀석을 마지막으로 오늘 영업은 끝이란 건가?]
[그런 셈이야.]
"너는 내게 화를 내지 않는군."
"화 내고 싶지 않아서요."
"건방진 새끼... 나이도 어려보이는데..."
"나이가 어리면 술장사는 못합니다 손님."
"따박따박 말대꾸는... 염병."
그는 맥주를 마시고 빈잔을 자리에 쾅 하고 내리쳤다.
오늘 하루 몇 번을 내부쳐진 건지 모를 컵이 불쌍하다고 여기기도 전에
이번에야말로 충격이 과한건지 잔은 와장창 깨져버렸다.
남자의 손에서 피가 주륵 흘러나왔고, 테이블은 맥주거품으로 얼룩졌다.
"에이... 씨발."
남자는 손을 슥슥 닦아내고는 피묻은 손으로 외투 안주머니에서
지폐 한장을 꺼냈다.
"얼마야?"
"컵 가격도 포함해서 12페킷입니다."
"존나게 비ㅆ... 뭐? 12페킷? 컵도 포함해서?"
"네."
"실력은 아는구만. 바가지는 없는 걸로 봐서."
남자는 아까운듯 지폐를 내밀었다.
델 지폐였다.
순순히 거스름돈을 세어 돌려주면
남자는 손에 침을 뱉으려다가 적당히 피를 발라
지폐를 슥슥 넘겨 몇번이나 세보고는 지폐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고
말 없이 나가버렸다.
"아무래도 6번-7호APV의 효과는 사람마다 다른 모양이네.
방금 그 사람은 효과가 없었어."
[아니, 저건 성격이다. 중간즈음부터 저 남자 눈이 돌아와 있었어.
호프에 자주가본 나는 알수있다.
종종 저렇게 끌려나가는 놈들의 썩은 생선같은 눈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그런 놈들이 주로 내게 술을 사곤 했었으니까. 친하게 지낼만도 하고.
사실 별로 그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저런 애송이를 놔두는 이유가 뭐지?]
"날 죽이려고 한 네가 할 말은 아니잖아?"
그렇게 말하고 웃으면 체헤게는 말없이 다시 할 일을 묵묵히 했다.
문 단속을 하고 가게를 치우면서 말했다.
"내일도 뒤에서 그렇게 보고만 있으면서 다 끝나고 말 얹어봐 아주.
그 골렘 부숴버릴 테니까."
[유의하지.]
"저 정없는 말투가 제일 싫어."
가게를 치우고 가게 2층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저 숙면을 취할 이부자리, 그리고 욕조가 딸린 욕실 하나.
밋밋한 옷만 여러 벌 든 옷장이 전부인 공간에서
나는 깨끗이 씻고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