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화 〉개업
루나르와 롬이 돌아간 이후 머뭇거리며 찾아온 것이 모리티였다.
아무래도 이장과 조합 지부장이 찾아왔다는 점에 조금은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녀는 한손에 피크닉 바스켓을 들고 들어와서 내게 조심스레 물었다.
"영업 하는 중이야?"
나는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아...아직 안해요. 10시부터 개업하거든요."
"10시면 아직 조금 남았네. 식사는 했어?"
"아뇨, 아침부터 조금 일이 생겨버리는 바람에..."
"어머 그래? 마침 널 주려고 음식을 조금 포장해왔단다."
"네? 아... 감사합니다."
"왜, 생각해보니까 너도 우리 마을에 이주온 손님이잖니?
응? 그렇게 받아들여도 되는거지?"
"네, 현재로서는 그렇죠."
"그래서 같이 식사나 하고싶어서 말이야. 자, 거기 앉아."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바스켓에서 호밀빵 몇 개와 샌드위치가 든 도시락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내게 접시를 건네주며 음식을 올려주었다.
"내 자랑은 아니지만 또 내가 샌드위치 하난 정말 잘하거든~"
모리티는 쉴새없이 떠들었다.
내 반응이 미적지근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녀는 어서 먹어보라며
내게 음식을 들이밀고는 내 눈을 바라보며 묘한 기대를 보이고 있었다.
"맛있네요."
"어머, 그래? 다행이네."
그제서야 웃으며 기뻐하는 모리티는 샌드위치를 크게 한입 베어물고는
내 표정을 보며 뭔가 할 말이 있다는듯 우물거리다가
샌드위치를 목 너머로 넘기고 나서 내게 다시 말했다.
"아, 그나저나 이름이 에리아인 것 같던데 맞아?"
"네, 에리아에요."
"그래 에리아. 마을사람들이랑 인사는 좀 해 봤니?"
"아니오, 아직..."
"그러면 못써요 얘. 다음에 한번 시간 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인사라도 좀 하고 그래. 이런 작은 마을에서는 인사성이 밝은게 유리해."
"아, 조언 감사합니다."
사람들과 그닥 얽힐 생각이 없었다는 내 의견은 그렇게 말할 기회도 없이
목 너머로 다시 삼켜졌다. 아마 그 이야기를 했어도 공기중으로 그저
퍼져버렸을 이야기라 생각하니 그다지 아쉽지도 않았다.
"아, 그리고 저 안카 숲 초입 쯤에는 경계 초소가 있어.
우리 남편이 거기서 오전중에 근무를 서곤 하는데, 혹시 만나게 되면 인사해줘.
아니면 다음에 시간날 때 남편이랑 같이 올테니까 그때 인사해도 좋고."
"경계초소요?"
"콜린은 국경지역이잖니, 서지스보다 더 북단에 있고.
말하자면 최전방이라는 거지. 우리 남편은 발령을 받아 콜린으로 올라왔어.
여기서 나를 만나서 무릎에 화살을 맞아버린거지 뭐니. 호호호~
그래서 말인데, 남편은 원래 8급 정도 하는 모험가였던 모양이야.
그러다가 이제 모험가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데,
사람들은 실력있고 급수 높은 모험가를 찾으니까.
아마도 거기서 모험가로 사는건 힘들겠다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래서 국가에 지원을 했어. 군인으로.
경비병 이상의 전력으로는 봐 줄수 없었다고 심사 결과가 나오고.
수도 방위병은 이미 자리가 많으니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고 방치된 여기,
콜린으로 발령을 보낸 모양이야.
그래서 경비를 서는 일을 맡고있는데,
아마 유레크로스에서도 그이를 깜빡 잊어버린 모양이지?
벌써 몇 년째 여기서 근무하는데 신규 발령지는 고사하고,
일말의 지령하나 내려오질 않아서 저사람 하는 일이라고는,
아침에 출근해서 숲을 바라보며 경치 좋은 자리에서 내가 싸준 샌드위치를 먹고,
팔자좋게 낮잠이나 잔 후에, 오후쯤 되면 뺨에 졸다 생긴 눌린 자국을 달고
어슬렁대며 집에 돌아와서 잘 지냈어 내사랑? 같은 흔해빠진 멘트를 치는 정도야."
"그래도 나름 맡은 바 임무는 다하고 계시네요."
"차라리 빨리 모험가를 그만둬서 다행이지.
요즘은 모험가에서 군으로 지원하려고 해도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다더라고."
"그렇군요. 모험가나 군 체계는 잘 모르는 분야라서요.
생각보다 거기도 치열하군요."
"그렇다고 하더라고. 나도 자세한건 잘 몰라. 그냥 남편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그러려니 하고 믿는거지."
"8급 모험가는 대단한 건가요?"
"아무래도 일단 급이 존재한다는 건 인정은 받았다는 의미니까.
공인급수가 없는 모험가는 모험가 조합,
그러니까 길드에서 임무를 수주하거나 의뢰할 수 없어.
두 발로 뛰어서 의뢰를 받아내야 하는 말 그대로 프리랜서랄까.
그래도 내가 알기로는 7급 모험가까지는 그닥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어.
왜, 내가 우리 남편을 너무 무능한 것처럼 말했었니?"
"아뇨, 어제 온 손님중에 8급 모험가 분이 계셨었거든요.
혹시 얼마나 대단한건가 해서요."
"이 마을에 찾아오는 모험가들은 하나같이 우월감에 찌들어있어.
전에도 말했었지만 보통 자기를 과신하고 임무를 수주하다가
얼마 뒤에 병상에서 보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지.
대부분은 콜린을 모험의 중간, 그냥 거쳐가는 마을 정도로 알고있고,
또 실제로도 그런 역할을 하는 마을이기도 해서 마을 주민들은 꽤 성가셔하지.
여기 장기 투숙객들은 여관을 잡아두고 안카 숲에서 수련을 하기도 해."
"그래도 테러보어를 처치할 정도라면 꽤 강하지 않나요?"
"테러보어? 얘, 그런 괴수가 나타났다면 콜린은 마을 사람 전부가 뛰어나가서
막아도 모자랄 정도란다. 테러보어는 성기사들이나 잡는 괴물이잖니."
"그렇지만 어제 왔던 모험가는 그렇게 말하던데요.
테러보어 정도로 큰 맷돼지를 잡았다고."
"아~ 알겠다, 그 아이 반다나 같은걸 두른 아이지?"
"알고 계세요?"
모리티는 머리를 짚으며 듣기만 해도 화가 난다는 듯이 말했다.
"알다마다, 콜린에서는 유명한 골칫거리니까.
그 반다나, 우리 가게에서 팔던거야. 그 녀석이 멋대로 가져갔지."
"가져가요?"
"그래, 원래는 우리 남편 밑으로 들어왔던 경비병이었어.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이런 지역에 승진길이 훤한건 아니잖니.
그 아이, 멋대로 군을 그만두고 탈영해버렸어.
내가 보기에도 2년을 지령도 없는 곳에서 경비만 서는데,
선임이라고 있는 사람은 매번 졸고 있으니 의욕이 안 날만도 하지.
그렇게 탈영하고 그 아이는 모험가를 한다며 마을을 떠났어.
다른 지역에서는 전직 경비병 출신이라며 모험가 지원을 하고 시험을 치른거지.
종종 군에서 감사를 나오는 기간이 있거든.
군에서 파견나온 사람이 훈련주간이라거나 하는 이유로 나와서
경비병이나 초소의 상태를 확인하고 가.
그 기간쯤 되면 그 아이도 멋대로 돌아와서 마을을 헤집어놓고 가는거지."
"그렇군요. 그런데 왜 모험가를 하기로 해놓고서 매년 돌아오는거죠?"
"경비병은 말단이라도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군인이잖아.
물론 6급 부터는 모험가 자체로 공무원으로 인정이 되지만,
7급까지는 아니니까, 모험가에서 군인이 되기는 어렵지만,
군인은 언제든 모험가로 전향할 수 있지. 프리랜서와 공무원의 차이랄까?
걔도 최후의 보험은 들어놓는거야."
"그렇지만, 탈영했다면서요?"
"우리 그이가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게 있어.
그걸 이제 매달마다 상부로 올리는데, 뭘 좋다고 매번 허허 웃으면서,
'젊으니까 잠깐 방황하는건 어른이 이해해 줘야지.' 하면서 숨겨준다니까.
애초에 매년마다 훈련일자를 그 애한테 알려주는 것도 우리 남편이고."
"아, 남편분의 업무는 그럼..."
"다행히도 남편의 업무일정에는 지장이 없어.
2인 1조로 팀이 배정되는거거든. 두배로 일하는건 맞겠지만,
적어도 집에는 제 때 들어와.
그래놓고는 매번 근무 설 때마다 적적하다고 그렇게 노래를 부른다니까.
왜, 군인이 모험가 신청을 하려면 군을 그만둬야 해.
군인의 규정상 그렇다고 하더라고? 품위가 어쩌니 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그 애도 원래대로라면 모험가는 꿈도 못 꾸지.
그런데 남편이 그 애 군패를 버리질 않아."
"군패요?"
"군에서 주는 뱃지 비슷한거야. 제복 왼쪽 가슴에 달도록 되어있지.
원래는 바느질을 해서 박음질로 붙이는건데, 이름과 소속이 적혀있어.
누가 보더라도 이 사람은 군인이구나 할 수 있게.
규정상 전역자가 발생하거나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하면 태워버리는데,
그 애건 남편이 벨크로로 주문제작해서, 이맘때 그 애가 돌아올 때마다
붙였다 뗐다 하지뭐니. 어휴 정말..."
"그런데 그 분 이름은 모르세요?"
"이름? 해...뭐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나네.
아무튼 그 애가 처음 탈영을 하면서 우리 가게에 들렀지.
남편이 지금 부상을 입어서 위험하니까 빨리 가보라고.
내가 또 놀라서 허겁지겁 달려갔잖아.
아주 무슨 숨을 헉헉대면서 올라갔더니만 낮잠이나 자고 있는거 있지?
잠꼬대로 그렇게 내가 보고싶다고 하는데~ 얼마나 기가 차던지.
그게 경비병의 자세야? 내가 너무 화가 나서 그날 둘째 만들었지 뭐니~!"
"아하하... 금술이 좋으시네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우리 애들 또 일어났을 시간이네."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음식은 내게 건네주고 모리티는 바스켓에 식기만 챙겨서
돌아가버렸다. 한바탕 태풍이라도 지나간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었다.
아직 반다나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그래도 뭐 대충 돌아와보니 반다나가 사라졌다더라~ 그런 이야기겠지만 말이다.
그녀가 두고간 음식을 먹으면서 보니 가게 오픈 시간이 되었다.
그제서야 두리번거리며 체헤게를 찾았다.
[체헤게 어디있어?]
[화장실 청소중이다.]
[아, 그래. 계속 수고해줘.]
가게 문에 걸린 팻말을 OPEN으로 돌려놓고 기지개를 폈다.
가디렸다는 듯 가게 문이 열리고 데니스가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 데니스, 오랜만인것 같네."
"매일 왔는데요?"
"그래, 앉아. 오늘은 어떤걸로 마실래?"
"늘 똑같죠."
"14호TAG로 주면 되지?"
"네. 슬슬 그것도 입에 맞더라구요."
데니스는 자리에 앉아서 주머니에서 작은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는 거기에 글을 차분히 적고 있었다.
그다지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았지만 눈에 들어온 탓에 읽게 되었다.
아마 14호TAG를 분석해서 개인적으로 제조해보려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맛을 차분하게 적어두고 그걸 마셨을때의 반응을 적어놓았다.
"네가 그 노트에 뭘 적든 그건 내가 간섭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게 우리 가게 시그니처 메뉴라면 나는 좀 불편한걸?
어디에 쓰려고 적고있는거지?"
"한번 이런 음료를 좀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기분이 나쁘실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네요. 죄송해요."
[저 태도 뭔가 너랑 닮은 것 같은데.]
어느새 옆으로 온 체헤게가 비웃듯이 핀잔을 던졌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하는데, 쪼그만한게 건방지단말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약품을 조합했다.
당연히 소다를 부어넣고 얼음을 띄워 저으면서 데니스에게 말했다.
"14호TAG는 내 발명품이야. 친절로 주는 음료수에 너무 접근하려고 하지 마.
이건 조언이나 충고같은게 아니라 경고야. 너같은 애가 알아서 만들만한것도
절대 아니니까 이정도 이야기할때 손 떼."
"다른 의도는 없어요. 내 몸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한게 전부고요.
근본적인 호기심에서 시작한거고, 다른 사람에게 그 정보가 퍼지는건 사절이에요.
오히려 저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저 혼자만 그걸 알고 싶다는 욕심도 있다구요."
"너 혼자만 알고싶다는 욕심은 생기는데,
그게 나에게도 있을거라는 생각은 왜 안하는거야?
너는 아직 어려. 혼자 연구해서 될 일도 아니고.
저번에 저승행이라고 말했던거 잊었어? 위험하다고.
지금은 그냥 즐기는 정도로 만족해."
데니스는 말없이 노트를 접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짧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래, 잘 생각했어."
"누나 표정이 그렇게 화가 난건 처음 봤어요. 적응이 안되네요."
"무서운게 아니고?"
"무섭지는 않죠. 작고 여자인데, 나이도 그다지 많지 않아보이고."
"이 꼬맹이가... 역시 너는 나같은 과라는 걸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재수없고 당돌하고 무엇보다 어딘가 어긋나있어."
"칭찬으로 들을게요."
"이거나 마셔."
나는 만들어온 음료를 데니스의 쪽으로 밀어주었다.
데니스는 그걸 받아들고 한모금 마시더니 잠시 뒤에 그걸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는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액체가 식도를 지나가는 느낌, 목젖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느낌,
턱 아래가 열리고 탄산이 다시 목을 긁고 올라오는 느낌.
혀에 감기는 살짝 불안정한 쓴 맛과 어중간한 신맛 사이로 옅은 떫음.
그리고 그걸 다 덮을만큼 강력한 합성 감미향..."
"연구하지 말라니까."
"이게 이 음료를 즐기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주세요."
"하아... 알겠어. 그렇게 궁금하면 주말에 다시 와.
한가하면 포션 배합에 대해서 가르쳐줄게. 한가할때 한정으로."
"한 입으로 두 말하면 불매운동 할거에요?"
"건방진 꼬마가... 마을 사람들이 너를 왜 괴짜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다."
나는 빈 컵을 받아서 물로 씻었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손님과 적당한 잡담을 나누면서 이야기 할 수 있는 이런 분위기는
확실히 내게 편안함을 선사하고 있었다.
산 속에 틀어박힌 지난 시간들을 후회할 것 같아서 나도 조금 씁쓸해진다.
나도 조금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만들었다.
카페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카페인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환경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각성제로서 이용하는 것이다.
에스프레소의 향을 맡고 있으면 데니스의 시선이 느껴진다.
"왜, 너도 줘?"
"하나 주세요."
"이거 3페킷이야."
마시려던 에스프레소를 넘겨주었다.
"네, 그정도는 있어요."
"궁금해서 그러는데 너 돈은 어디서 나서 가져오는거야?"
"부모님이 보내주세요."
"보내준다고? 같이 사는거 아니야?"
"같이 살지는 않아요. 두 분 다 집을 자주 비우는데,.
고고학자일을 하신다고 문화재 발굴부터 고대의 흔적 찾기라느니
보통 사람들은 고리타분해서 못할 일들을 하시는 편이죠."
"그래서 너도 그렇게 고리타분하고 답답한거구나. 유전자란게 대단하네."
"그렇다고 봐야죠. 아마 할아버지나 할머니도 그랬을거에요."
"그래서 평소에는 뭐하는데?"
"집에서 주로 책을 보거나 하는데 이미 집에 있는 책은 전부 읽었어요."
"....너는 딱 300년만 빨리 태어났으면 내 옆에서 같이 묶여있었겠다."
"300년이요?"
"농담이야."
나는 그렇게 웃어보였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데니스의 이마를 꾹 누르면서 핀잔을 던진다.
"다 마셨으면 이만 가. 나도 쉬어야 되니까. 영업방해야."
"오늘따라 이러기에요?"
"이런 작은 카페에 사장이 왕이지 뭘."
투덜거리며 데니스가 나가고 나서 못 보던 손님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붉은 피부에 상당한 거구의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목소리 전체가 깊은 동굴처럼 울리는 남자는 앉기에는 과하게 작아보이는 가게의
의자를 끌어당겨 조심스레 앉으면서 묻는다.
"이거... ㅂ...부서지진 ㅇ...않겠죠?"
"아마도요. 제가 만든건데 꽤 튼튼할거에요."
남자는 자리에 앉아서 말했다.
"ㅈ...자스민 ㅌ..티 한 잔 주시겠어요?"
"네, 자스민 티 한잔 주문 받았습니다."
표정이며 몸이며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는데
생각보다 너무 조심스럽고 소극적이다.
"ㅈ..제가 두렵거나... ㅎ..하지는 않으신가요?"
"네? 왜요?"
"오...오크느..는....배척 받는...존재...니ㄲ..까요..."
"돈만 내시면 손님이죠."
"ㅊ...친절... 하시...네요..."
"여기 사시나요?"
"아...아니오... 잠ㄲ...깐... 추..출장을...."
"출장 오셨구나... 어디서 오신건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머...멀어서...잘 모르시...겠지만....오...오르그라는... 지역에서....ㅇ..왔ㅅ...습니다..."
"오르그요?"
"ㄴ..네에...ㅌ...텔레...프..프란...동쪽으로...있는...."
"텔레프란 동쪽이요? 멀리서 오셨네요.
아라카스트 넘어 동쪽으로 이어진게 텔레프란 대륙이고,
거긴 인프라도 없잖아요? 국립자연공원일텐데..."
"ㅁ..마..맞아요...거...거기에는...아...아인종이...다수...거주하니까..."
"아인종 분들은 이 근방에서는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니까요.
그나마 엘프 분들이나 이 근처에 사신다고 해도."
"ㅇ...에..엘프는...아라...카스트....말고도.... 거주...ㅎ...하거든요....
거...거기...사는 엘프는....ㅎ...하이...엘프....에요..."
"다른 엘프도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나이트엘프라던가 다크엘프,
또 무슨 엘프라고 했었죠? 잘 기억이 나질 않아서..."
"마...마운틴 엘...프요..."
"아 그런 이름이었죠 참. 네, 여기 주문하신 자스민 티 나왔습니다."
"ㄱ...감사...합니다..."
오크는 차를 받아들고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차 손잡이를 잡고
입으로 홀짝 털어넣었다.
"아...진정...되네요....호...혹시....ㄷ..두 잔...더... 주실 수... 있나요...?"
"두잔이요? 어려울 건 없죠."
"ㅈ..저... 자스민...차를 마시지...않으면.... 마..말을..더듬어서...."
"아, 그건 오크의 특성인가요 아니면 손님 혼자의...?"
"ㅈ...저만...그래요...시...심리적인...ㅌ...트라우...마가...있어서..."
"아, 실례했습니다."
나는 자스민티를 큰 그릇에 담아주었다.
그가 말한 두 잔은 용량의 문제지 컵이 둘 필요하다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어차피 자스민티는 끓인 물만 있으면 되는 간단한 차니까 오래 걸릴 것도 없다.
오크는 그걸 입가에 살짝 가져다 대더니 온도를 확인하고 차분하게 마셨다.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가 생각보다 듣기 어려우셨을 텐데..."
"아니에요, 잘못된건 아니잖아요?"
기피당하는 생활의 어려움은 나도 익히 알고있다.
애초에 나는 인간이던 오크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있기도 했다.
손님으로 온 이상 실험체일 뿐이고, 다양한 데이터를 얻어낼 기회일 뿐이다.
그들의 차이점을 구분짓는 기준은 오직 내 포션을 주문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의
취향 문제 정도였다.
"이 근처에는 친구가 살아요. 오랜만에 같이 이야기를 할 겸 해서 찾아왔죠."
"아, 친구분은 그럼 인간이신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친구가 카페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금방 올텐데요."
"아, 저희 카페는 문을 연지 아직 얼마 안되어서 주민분들도 잘 모르세요.
저기 마을 위쪽으로 올라가시면 카페가 있다는 모양이에요.
거기 계신건 아닐까요?"
"아, 그런가요? 감사합니다. 그쪽으로 한번 가봐야겠군요.
계산 부탁드립니다. 얼마죠?"
"1페킷만 주세요."
"아, 이중에 페킷이 어떤거죠?"
오크는 지갑을 펼쳐보이며 내게 물었다.
페킷을 포함해서 델 지폐나 캐럴도 꽤 보였다.
나는 페킷 지폐를 하나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렸다.
"네, 1페킷 받았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페세티아 대륙으로 건너오면서 환전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화폐가치가 아직은 조금 어색한 느낌이 있네요."
"괜찮아요. 돈이 없는 것보다야 낫죠."
"아, 볼일이 끝나면 다시 찾아도 괜찮을까요?"
"언제든지요. 아, 오후 9시가 넘어서는 호프로 전환되는점 유의해주세요."
"언제까지 하시죠?"
"어... 아마 피곤하기 전까지요? 그래도 보통 12시 전까지는 안닫는 편이에요."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네, 안녕히가세요."
오크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문을 나섰다.
키가 너무커서 나갈때는 거의 인사를 하듯 숙여서 나가는 그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친절한 남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