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술, 담배, 그리고 마녀 (12/303)



〈 12화 〉술, 담배, 그리고 마녀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는지 나는 잠을 방해받지 않고 푹 잤다.
내가 눈을 뜬 것은 오후 2시였다.
이렇게 대책없이 자고 싶었던건 아니었는데.
그래도 며칠간 고생하면서 잠을 잘 시간도 제대로 없었으니
잠을 잘 시간이 생긴건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아무리 그래도 내가 자는 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단 말이야?]

[홍보라도 하고 그런 말을 하시지.]

체헤게가 토를 달았지만 그닥 반박할 거리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 홍보라도 할까.]

[어떻게 홍보할 생각이지? 마녀가 운영한다고 소문이라도  텐가?
그게 아니라면 이 카페가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는데.]

[거창하게 할 생각은 없어. 어차피 테이블도 4인용이고.
그냥 로테이션이 될 정도로 손님이 오면 그정도로 만족할거야.]


[소박하시군.]


나는 가게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보면 확실히 마을 중심지와는 조금 떨어진 구역임을 바로 알게 된다.
이 작은 마을에는 중심지라고 해도 유흥요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논답이 길게 늘어서고,  사이사이 음식점 조금과 생필품을 파는 가게,
의류가게는  군데가 전부였고, 은행의 역할은 마을 회관에서 대체했으며,
작은 아틀리에와 공방정도가 군데군데 있었다.
아무래도 시골마을이다 보니 예술가들이 자주 찾는다는  했다.
결국 그렇게 찾아온 예술가가 정착해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그대로 정착해버린다.
그게 헬렌이었다.


[가게는 휴업할까.]

[오후에 온다던 오크는 어쩔건가?]

[아, 그러네.]

나는 결국 손을 탁탁 털어내고 빗자루를 가지고 나와서 마당을 쓸었다.
빗자루는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번 집 앞에 세워두면 마녀의 빗자루라고 누가 가져가버려서는
새로 만들기도 피곤하고, 사자니 뭐한 물건이었다.
저걸로 어떻게 하늘을 날아. 그러나 백날 설명해도 말귀를 알아듣질 못한다.
우리도 저런거 타고 날면 가랑이가 아프다고 설명해주기도 뭐하고,
마법진을 그리면 훨씬 편하게 마력 전이진을 만들 수 있는데,
공식을 알면 간단하게 그리는 진을 놔두고 굳이 훨씬 복잡한 마법으로
빗자루 같은 불편한걸 탈 이유가 전혀. 전혀 없었다.
굳이 그런걸 타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화려함을 과시하는 마녀였다.
그런걸 좋아하는건 탓하지 않는데, 그게 스테레오 타입으로 굳어져서
집 청소를 못하게 되는건 상당히 짜증나는 일이다.
그래서 일부러 체헤게에게 청소를 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그닥 할 것도 없고 해서 가게 마당을 쓸고 있던 것이었다.
마당에서 바라보면 가게가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 가게는 이층 구조로,
1층에는 자그마한 가게가 있고, 카운터를 포함한 주방이 홀만큼의 공간을 차지하며
홀 바로 옆에는 화장실이 있고, 홀의 3분의 1정도의 넓이에 연구실이 있는 형태이다.
그 옆으로 회전식 계단을 놓았고, 이층에는 올라가자마자 우측에 욕조를,
그리고 바로 다락방처럼 생긴 내 숙소를 배치했다.
침대 하나, 옷장 하나, 그리고 간단한 서랍이나 연구자료들.
디자인은 그럭저럭 볼만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디자인이 일반적인 시각에서  때 카페로 보이지 않는 점이었다.
물론 카페라고 적어두기는 했다. 찾으려고 하면 당연히 보이고,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해도 카페라는 걸 알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카페는 마을에서 어느정도 위치가 있다는 점과,
아무도 우리 카페를 그다지 주의깊게 살펴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과 나는 수익과는 거리가 먼 점주가 되어버린 것이다.

[가게는 갑자기 왜 그렇게 바라보는거지?]


[그냥, 가게 매출에 영향이 있을까 해서.]


[그런가, 긍정적인 변화라고 받아들여도 되는건가?]


[어떤 부분에서 긍정적이지?]


[적어도 사회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방향에서 말이다.]

[그런건 네가 없었을 때 까지만 해도 알아서 잘 하고 있었는데.]


[그것도 그랬겠지만]


[물론 몇 백년 만의 사회화에 대한 이야기라면 맞는 말이야.]

체헤게는 나를 따라 가게를 나왔다.


[그래서, 나는 이런걸로 괜찮은가?]


[뭐가?]

[요 며칠간 내가 한 일은 집을 짓는 재료를 옮기고, 가게 청소를 하고,
사람을 찾아달라는 말에 쫒아다니고, 외로운 노파를 에스코트하는 일이었지.
나를 부른 목적이 고작 이런걸로 괜찮으냐는 이야기다.]

[그거 혹시 자의식 과잉? 자신의 가치를 과신하는거 아니야?]

[됐다. 그냥 하던대로 청소나 하고, 종종 심부름을 하는 정도의 가정부 로봇이면
둘이 서로 타협하기에 충분하겠군.]

[맞는 말이지만 썩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니네.]

[그럼 뭐 어쩔건가? 죽이기라도 할건가?]


[글쎄, 어쩔까.  그상태로 구동 회로만 부숴줘?
내가 커피만 타고 헤실헤실 웃고 있으니까 잊었나본데,
마녀의 기분을 거스르는 행위는 하지 않는게 좋아.
적당히  보는건 그만하고 시장이라도 한번 찾아보지 그래?
마침 근 시일내로 재료도 한번 사러 가야 할 것 같으니까.]

[그래.]

나는 가게 안에서 큰 후드를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체헤게에게 그걸 둘러 입힌 후에
종이에 커피콩, 허브, 곡물, 주류상 따위의 상품을 적어주었다.

[여기 쓰인 가게들의 위치를 확인해와. 기술자나 마법사에게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도 잊지 말고.]


[요즘 세상에 마법사는 그렇게 흔하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모를 일에 대비하자는 거지.]

나는 그의 후드 지퍼를 잠가주면서  매무새를 정리해주었다.
흡사 정말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는 느낌이 들었다.


[뭐랄까 느낌이 이상하군.]


[이상할게 있어?]


[내 나이에 다른 사람이 옷을 입혀주는건 오랜만인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서 왜? 흥분했어?]


[그런 기분이 아니다. 유년기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지.
그 감상은 단순히 감정으로 치환할 수 있는게 아니다.]

[어... 음.... 그래. 다녀와.]


나에게는 없는 그 감정에 살짝 어딘가 그가 더 멀게 느껴졌다.
어릴때의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건 그런 느낌이다.
내가 혼자 옷을 입었는지, 혹은 누가 내게 옷을 입혀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과거에도 마치 그렇게 구멍이 뚫린 것 같아서
묘한 어색함에 몸서리가 쳐진다.


"하아..."


가게로 돌아와 연구실로 들어서면 배합중이던 약품들이 보인다.
사람이 없을 때는 이걸 연구하는게 도움이 된다.
시간을 떼우기에도 좋았고, 지루함을 달래기도 좋았다.

완성이 되지 않아도 분명히 진전이 있다는 것을 느낄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시간을 투자하기 좋다고 생각하는 취미생활이다.
꼭 포션이 아니더라도 나는 의약품의 제조에도 꽤나 시간을 보내곤 한다.
그건 아마도  평소 행동습관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배가 고플 일이  없다.
무엇보다 나는 아사할 일도 없다. 자연스레 식욕이 부진해지는 것이 정상적이다.
특히 연구중에는 더욱 그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마른 팔다리는 육체노동에 제약을 여러모로 받았다.
덕분에 잔병치레에도 자주 고생하곤 했는데, 이때 만들어낸 약이 생각보다 많다.
당연하지만 마약의 연구도 했었다.
일반적으로 불법으로 규제되는 약품을 다룰 때는 누구나 그렇겠지만,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점차 퇴폐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반대였다고 볼  있었다.
오랜 도피로 인해 숨어사는 상황이었고, 시간은 넘쳐났다.
오히려 마약 연구를 하지 않으면 손해라고 판단될 정도로
나는 마약 연구에 최적화된 사람이었다.

일반적인 약학연구를 다루는 인간은 마약을 다루지 않는다.
다루더라도 합법적인 범위 내에서 허가된 만큼을 이용하게 된다.
내게는 그런 리스크가 없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한동안 마약에 빠져서 연구를 던져놓고
방에서 창문을 열어두고 하루종일 파이프나 물어대던 때도 있었다는 정도다.
끊는데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고 결국 담배가 상용화가 되던 때 부터는
종종 산속으로 올라온 등산객에게서 담배를 구해 피우는 정도까지는 나아졌다.

나아진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결국 그걸 완전히 끊게 된 것은
계기가 두 가지 정도 있었는데, 하나는 너무 피워댄 탓에 연구가 손에 잡히지 않았고
오랜만에 본 연구 일지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걸 깨달은 순간이었고,
다른 하나는 말뚝에 박혀 몸이 묶인 채로 화형당할 때, 밧줄과 말뚝이 다 타서 풀려나기 전까지
내 몸에서 고기 타는 냄새와 섞여 나는 매케한 담배냄새를 맡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이 타는데 거기서 담배냄새가  수가 있냐는 말이다.
물론 마을 자체에서도 워낙에 당시 사냥꾼을 비롯한 주점 주인들은 대다수 골초였고,
나도 그 당시 워낙에 담배를 피워 댔으니 코가 잠깐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담배냄새가 풍기는 화형장이라니. 정말 말도 안되게 거지 같은 순간이다.


손상된 폐나 간은 손상된 줄도 모르고 있었다가 집에 찾아온 도피 엘프를 숨겨 주면서
그 엘프가 밤새 연구하던 내게 카페인 대용으로 걸어주던 회복성 마법을 장기적으로 받다보니
부차적으로 회복되었다. 어쩐지 날이 갈수록 숨쉬기가 편해지더라고.
그래서 당시 엘프의 마법으로 인해서 연구가 상당히 빠르게 진척되었다.
아마 그 엘프의 표현을 빌리자면 '몸중에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였던가.
지금은 다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적어도 내 건강을 봐주던 엘프가 그렇게 말했으니 아마 맞을 것이다.


엘프와 지낸 동안 나는 건강이 비약적으로 좋아졌다. 이건 사실이다.
다 좋았는데 하필 그 엘프가 술을 좋아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술도 마시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술은 적당히 조절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으니 다행이겠지.
그래서 내가 카페를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제보니 참 어떻게 되는대로 살아온 것 같다.

자살을 하겠다고 독약 연구를 시작하고, 밤샘 연구를 하면서 커피를 내리고,
결국 잦은 밤샘으로 잔병치레에 시달리는 바람에 의약품을 연구하게 되고,
약품 연구 중에 마약을 알게되고, 마약을 연구하다 담배를 알게되고,
마침내 담배를 끊었더니 술을 배웠다니.
 마녀들이 하나같이 비뚤어지는건지 모를 수가 없다니까.
술, 담배, 마약. 이제 섹스만 해봤으면 완벽했을텐데 아쉽게도 그걸 아직 못했다.

옛말에 우스갯소리로 회복 포션을 제일 처음 판매하기 시작한건 마녀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째  생각에는 그건 거짓말이 아닌 것 같다. 피로 회복효과에 자양강장,
그리고 상처에 대한 빠른 회복력. 평범한 인간이 저런게 한번에 필요할 일이 잘 없다.
엄청 하드한 취향을 가지고 밤일을 하는게 아니라면.
그래서 아직도 회복 포션이 3~40대의 중년 부부에게 판매량이 많은건지도.
그런 생각에 피식 웃으면서 나는 선반에서 회복 포션을 한 병 꺼내 마셨다.


"크으, 쓰다..."

나에게도 예전 기억이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듯 옛 생각이 난다.
예전에 동료 마녀가 드문드문 존재했던 시절에 나갔던 마녀 모임에서
한 마녀가 물었었다. 어째 매년 늙는 것 같지 않다고.
불로불사의 비약이 있냐느니 회복 포션의 상위 무언가를 만들어낸 것이 아니냐는
그런 이야기였는데, 나는 그런건 잘 모르겠다고 했었다. 알아야 뭘 알려주지.
다음에 기회가 되어 원인을 알게 되면 알려주겠다고 했었는데,

결국 그 마녀들 전부 지금은 도서관에 기록으로만 남아있다.
어디서 도망치다 실족사했다거나, 어디서 붙잡혀 화형 당했다거나.
어디 모임에서는 누가 배신해서 모임 장소와 일자를 유출하는 바람에
전원 붙잡혀서 은으로 만든 말뚝에 복부를 찔렸다고 했던가?
그 당시에는 웨어울프랑 마녀 퇴치법도 구분을 제대로 못하던 시기였으니까.

그 책은 물론 지금도 전국 도서관에 남아있다.
역사서거든. 잘도 역사서에 그런걸 적어놨다.
조금 우스운점은 그 책에 적힌 마녀 이름들 중 7할 정도는 마녀가 아니었다는데 있다.
마녀가 동네 백수도 아니고 그렇게 동네방네 퍼져있을리가.
결국 죽이려던 마녀는 살아서 비웃고있고 애먼 사람만 잡아다 죽였으니
사람일도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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