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화 〉종
"그러고 보니 아까 들렀던 카페에서는 꽤 재미있는 일이 있었습니다."
"아, 그거 재미있었지."
그들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건 이 카페 때문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글로타인씨는 커피를 홀짝이며 말했다.
내 표정을 살피더니 그가 계속 말을 이었다.
"듣자하니 오전중에 퓨어하트가 이 카페에서 자스민 티를 마셨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동안 저 위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레푸틴을 주문할 수는 없는 카페라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었죠.
그리고 가만히 앉아있으려니까 조금 있다가 이 친구가 오더군요.
당연히 자스민티와 간단한 과자를 주문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헤어질 쯤,
이 친구가 계산하겠다고 지갑을 꺼냈죠.
바리스타가 당연하게 이야기 했어요. '27페킷입니다.'
그랬더니 이 친구가 말하기를 '뭔가 오류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러고는 저를 붙들고 묻더군요. 이 가격이 맞는 거냐며 말이죠.
저는 한동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당연히 비싸기도 했지만요.
이 친구가 한 말이 더 웃겼거든요. '커피는 4페킷 정도에 마실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너무 순수한 얼굴을 하고 그렇게 물었습니다."
듣기로는 분명 위 쪽 카페는 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유일한 카페로서
가격을 상당히 올려치고 있다고 말했었다.
없을만한 이야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으니
글로타인씨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는 듯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다
겨우 고개를 들고 말했다.
"정말 웃긴건 그 바리스타가 당황하면서 말했던 내용이었어요.
'아... 그.... 원래는 안되는건데.... 손님은 특별히....' 라고 하더군요.
결국 가게에 있던 모든 손님이 하나둘 항의하는 바람에
그 당시에 있던 모든 손님에게 음료를 할인해주는 행사가 되어버렸죠.
마시던 에스프레소가 코로 나올 뻔했어요.
이 친구, 자기 자신에 대해 자각이 없다니까요!"
"하...하하... 글로타인, 그게 그렇게 이상한 일이었어?"
"나도 처음에는 자네가 이상한 줄 알았는데, 이 카페에 오고 나니까 알 것 같다니까.
나는 처음 봤다고. 그 바리스타의 당황한 표정. 아마 오줌을 지렸을지도 모르지!"
"하아...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즐거운 일이기는 했네요.
정작 가게에 있는 사람들 중 우리만 정가로 계산하고 나왔었지 아마?"
"그랬지. 점장 표정이 아주 볼만했어."
"확실히 저희 가게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 잘못은 아니지만요. 후후."
내가 그렇게 말하면 글로타인씨는 내게 물었다.
"그래서 이 가게는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거죠?"
"이번주 초 부터요."
"그래서 뵌 적이 없었군요. 다음에 한번 저희 집에 놀러 오세요.
자주 뵐 것 같은데 초대라도 한 번 하고 싶네요."
"한가할 때 방문할게요."
퓨어하트는 자스민티를 다 마신 잔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끓인 물을 새로 부어 자스민티를 채워넣어 주었다.
그는 잠깐 손을 모으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 화장실을 좀 다녀올게 글로타인."
"화장실은 저 쪽이에요. 그... 문이 조금 작을지도 모르겠네요."
글로타인은 혼자 남자 내게 물었다.
"아홉 시 부터는 술집으로 전향한다던데 맞나요?"
"네. 가벼운 맥주라거나, 칵테일 정도를 팔고 있어요. 고가의 위스키는 없지만요.
원하시면 카페 메뉴도 주문하실 수 있어요."
"그거 좋네요. 미리 팁을 드리면 오크들은 술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건 호전적이거나 내성적이거나 상관없이 공통된 부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요.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은 절대로, 오크에게 함부로 술을 건네서는 안됩니다.
개방적인 환경에서의 캠핑문화가 상당히 발달했고,
또 그게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은 친구들이라 술이 들어가면 다소 과격해지거든요."
"참고할게요. 감사합니다."
"아마 이 대륙에서도 오크에 대해서 직업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흔히들 오크를 마주할 기회가 잘 없기 때문인지 잘 모르시는 사실이죠.
아마 참고하시면 좋을겁니다."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는 차치하고 적어도 일단 모르는 지식이기 때문에 들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여차하면 콜린을 떠나 새로운 지역에서 카페를 열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분명 도움은 되겠지.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화장실 문이 열리면 안쪽에서 퓨어하트가 나왔다.
"확실히, 조금 좁은 느낌은 있었네요."
"아, 죄송해요. 오크를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아뇨, 손 씻는 정도만 빼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세면대가 조금 작아서 손을 한 쪽씩 씻어야 했지만요."
글로타인은 퓨어하트의 팔을 찌르며 물었다.
"뭔가 더 마실건가?"
"나는 한 두잔 정도 더 마셔도 좋을 것 같은데."
"그래, 그럼 시켜놓고 있어. 나는 나가서 담배라도 피우고 올 테니까."
"그럼 자네는 에레푸틴이면 돼?"
"충분하지."
글로타인이 밖으로 나갔다. 퓨어하트가 커피를 주문했고,
나는 커피를 내리기 시작했다.
품 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당겨붙이고는 한동안 밖에서 시간을 보낸다.
적어도 가게 내부에서 피우지 않은 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랬다고 하더라도 내가 내보냈겠지만 적어도 신경쓸 거리는 줄었다.
"텔레프란 동쪽으로 이어지는 국가라고 하셨죠?"
"아, 네. 오르그 말이죠?"
"개인적으로 오크를 실제로 뵙는건 처음이다보니 궁금한 점이 상당히 많네요.
역사책이나 신화책에서나 봤던 존재잖아요."
"웨어울프라도 만나시면 아주 놀라시겠어요."
"존재하나요?"
"그렇다고는 하는데, 저도 아직 만난 적은 없어서요.
그래도 존재에 대한 믿음은 있어요. 저 스스로도 오크인데,
못 믿을게 없잖아요."
"상당히 긍정적이시네요."
"그런 편이죠."
잠시 말이 끊겼다.
아마 서로에게 섣불리 말을 걸기가 불안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실례가 될 수 있다는 생각. 그게 호기심을 가로막았다.
"오크의 시선에서 인간은 어떤 종인가요?"
"어렵네요. 아시다시피 엘프는 종이 많아요.
엘프, 다크엘프, 나이트엘프, 마운틴 엘프, 뭐 일각에서는 우드엘프니 포레스트 엘프니
종류가 워낙에 많다고 주장하기도 하니까요. 저희는 이전부터 엘프와는 거리가 있었잖아요.
아, 잘 모르실 수도 있겠군요. 오크와 엘프는 기본적으로 거리가 있어요.
잦은 전쟁을 숱하게 겪어오기도 했고요. 인간을 처음만나고, 당연히 엘프일 거라고 생각했죠.
마운틴 엘프는 귀가 뾰족하지 않으니까요. 신종 엘프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았어요.
나중에 물어보니 엘프는 엘프 나름대로,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 불쾌해 하시더라구요.
실수였죠."
"잘 모르니까요."
"그런건 변명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미리 알려고 공부라도 했어야 했는데.
제가 너무 무심했다고 느꼈죠.
아, 마지막에 주문한 커피는 테이크아웃으로 해주시겠어요?"
"그러죠."
감사합니다."
커피가 완성되면 나는 준비했던 컵에 포장해서 새지 않도록 잘 묶어 건네주었다.
재료는 어떻게든 구했는데 아직 테이크아웃을 상정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어딘가 포장이 엉성했다.
"다음번에는 제대로 포장해 가실 수 있도록 준비해 놓을게요.
전부 해서 15페킷이에요."
"네, 꼭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시길 바랄게요. 감사했어요."
그가 커다란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이다 지폐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두었다.
퓨어하트씨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조심스럽게 커피 두잔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담배를 피우던 글로타인씨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는 각자 커피를 한 잔씩 들고
어디론가 걸어 사라졌다.
종에 대한 무지는 사람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 결과물은 곧 피해의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
적응해나가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지만 나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변화하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것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마련이고,
그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양보의 화합점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렇게 우리는 받아들일수 있는 것을 애써 부정하고 손에 쥔 이익을 놓지 못한다.
결국 그건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배척과 혐오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어서 또 어떤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유리한 쪽으로 기록해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분명히 아닌 척 하지만 혐오로 점철되어있는 시선은 화를 부른다.
그리고 그건 모두, 변화가 아직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아..."
나 또한 변화에 적응하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다.
차라리 마녀가 아니라 그저 콜린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난 소녀였다면.
남들과 같이 나이들어 늙어가고 결국 죽는 한 여자였다면.
그런 생각을 하면 할 수록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성이 떨어져서 고민이다.
손님맞이에는 어느정도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쉽지만은 않았다.
상대에게 웃는 얼굴로 일관해야 하며, 기분과 상관없이 눈치를 살펴야 하고,
결정적으로는 원치 않는 상대에게 예의를 차려 주어야 하는 점이 특히나.
손님을 맞는 서비스 업종은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얕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항상 배제해서는 안된다.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그게 내 일상을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에 감내하는 것이다.
다만 거기에 남들보다 조금, 아주 조금은 더 익숙해졌을 뿐이다.
내가 파는게 고작 커피 따위라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뭔가 고차원적인 서비스를 했다가는
지금같은 인내심으로는 부족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종종 과일을 팔았다거나
운세를 봐주던 마녀들도 있었다고는 하는데,
과일은 익히 너무나 잘 알려진 식품이기 때문에
섣불리 포션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가는
쉽게 일반적인 과일이 아니라는 것을 발각당했기에
그렇게 많은 마녀들이 또한 정체를 탄로나곤 했고,
운세는 뭐 뻔하지.
마녀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힘 같은건 없다.
신을 부정하고 척진 존재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날리가.
그저 적당한 예언과 함께 가벼운 저주를 걸어주는게 전부였다.
당연하지만 근처 성당이나 교회에만 들러도 금방 탄로난다.
그 당시 성직자들은 하필 또 정화 계열 마법에는 도가 텄었다.
실패를 보면 발전을 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카페를 하기로 했고, 하루하루 무난히 연구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
나는 여타 마녀들과 서비스 직종에 비해 안락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내가 성질만 잘 죽이고 있으면 되는 일이기에.
그런 의미에서 퓨어하트는 상당히 기분 좋은 손님이었다.
물론 이런 손님이 무언가를 더 잘 한 건 아니다.
그러나 언제나 이상은 없을지 몰라도 이하는 존재하기 마련이다.
"체헤게."
[무슨 일이지?]
"뭐긴, 청소 시작해."
[어딜 말인가?]
"화장실."
[화장실이 뭐가 어쨌다고... 오, 젠장.]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것 같았다. 인간 크기에 맞춰진 화장실이 오크에게 맞을리가 없다.
그랬으면 좋겠다고 여러 번 생각하긴 했지만.
[오크는 제대로 조준을 못할 정도인가? 하루하루가 즐겁겠구만.]
"글쎄, 그 오크 성격으로 봐서는 그렇지도 않을 것 같던데."
[그건 뭐 와이프만 알고 있을 일이지.]
"오크 기준에선 평범한 걸지도 모르잖아?"
[씨발, 다음생에서는 오크로 태어나야겠어.]
"응원은 해줄게. 적어도 일단 내 주박에서는 벗어난 이후의 일이겠지만."
[내가 조금만 빨리 이 사실을 알았다면 마녀대신 오크를 사냥했을텐데.
그럼 적어도 이런 돌덩이에 갇혀서 지린내 나는 화장실을 이끼 낀 다리로 청소하진 않았을걸.]
"그만. 네 열등감을 굳이 듣고싶지는 않아."
[네가 봤을지는 모르겠는데, 그 오크 등짝에 상처가 상당하더군.]
"상처?"
[짐승의 발톱자국 같았어.]
"그거야 그럴 수 있지. 그게 왜?"
[잘 봤더니 다섯 줄이더군. 그렇게 굵고 커다란 앞다리를 가진 짐승중에
오크의 등에 상처를 낼 만큼 강하고 거대한 체구를 가지고 있으면서
발톱을 다섯이나 가진 개체가 있나?]
"무슨 소리가 하고싶은건데."
[그 오크 마누라는 재미 좀 봤을거란 이야기지.]
"오지랖도 넓어."
체헤게는 혼자 떠들어대며 청소를 했다.
내가 중간부터는 대답을 제대로 해 주지도 않았지만 그 독백이 끊기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일은 임시 휴업을 해야 할 것 같네."
[휴업?]
"응, 이 마을을 한번 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잔을 씻어내고
그걸 찬장에 올리면서 생각한 것이었다.
어차피 홍보를 해도 오지 않을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적당히 위쪽 카페에 있는 고객 수를 조금만 빼 올수 있는 정도라면
충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에는 사람이 찾아오지 않았다.
오전에 들렀기 때문인지 헬렌도 맥주를 마시러 오는 일은 없었다.
참 조용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