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콜린
마르커스의 가게는 기름냄새가 담뿍 풍겨오는 삐걱이는 기계와
가게 바깥으로 이어진 파이프에서는 푹푹 연기를 뿜어내고,
왠지 바닥에 전선이 어지럽게 늘어진 곳이었다.
아마도 오랜 기간 이곳에서 자신의 기술을 팔았을 것이고,
나이가 들어 오래 전 기술만을 몇 번이고 되풀이 했을 것이다.
이 낡은 마을이 아니라면 유행에 뒤쳐졌을지도 모를 그 공간은
기이한 분위기가 풍기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마르커스는 대장간을 나온지 오래되어 과거의 기술을 가지고
어떻게든 이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으리라.
"미안하네. 옛날부터 가게를 리모델링 할 생각을 하지 않았네."
"괜찮아요. 마르커스씨다워요."
"나답다라... 다들 그렇게 봐 주었더라면 말이지.
이제 이 가게를 찾는 사람들은 과거의 감성이 묻어있는 기계를 원하는 사람이나,
싼 가격에 기계를 고치고 싶은 사람 뿐이라고 생각한다네.
매출도 나날이 줄어가고 말이지.
이제는 날 생각해서 일부러 내게 의뢰를 맡기는 지인들 덕에 먹고산다오."
"분명 수요가 있을 거에요. 오래된게... 나쁜건 아니잖아요..."
"에리아, 늘 좋은 말을 해 주는건 고맙네만, 나도 현실을 직시할 줄은 안다네.
이제 마지막으로 가게에 예약이 오지 않게 되면 미련 없이 가게를 접을 생각이네.
아, 혹시 로봇의 제작이 불안하거나 한 거라면 언제든 말해주시게."
"아뇨, 전 레트로 머신 좋아해요. 너무 최신 기술은 매력이 없잖아요."
"그래, 맡겨주시게. 최대한 튼튼하게 만들어 드리리다."
[다 좋아. 다 좋은데 왜 내 의견은 묻질 않지?]
[돌덩이에서 업데이트 된데 만족하시지.]
[그 부분을 따지면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현대 기술이 더 나은 것 아닌가.]
[필요하면 강화부 몇 장 더 붙여줄게.]
[.....]
"그래 에리아, 그럼 로봇은 잠시 내게 맡겨두고 가지 않겠는가?
오후에 다시 찾아오기 전까지는 견적을 대충 짜 놓을 수 있을걸세."
"아, 그럴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러면 혹시 이로봇에 주의해야 할 점이라거나 특이사항은 있소?"
"그 목뒤에 그어진 빨간 선만 안망가지면 될 거에요.
그게 지워지지 않으면 목을 떼든 팔다리를 떼든 큰 상관 없어요."
[어이 마녀! 그게 무슨 소리..! 몸이 안 움직이는데..!]
[구동 회로 중심축을 지웠거든. 마녀의 기술을 들킬 수는 없잖아?
고생 좀 해. 다시 태어난다고 생각하고.]
"오호, 참 여러모로 궁금해지는데. 어떤 기술인지 말이야."
"오후에 다시 올게요."
[마녀!! 에리아!! 에리아아아아아!!!]
뭐라고 소리를 지르던 나는 그에게 돌덩이 로봇을 맡겨두고 가게를 나왔다.
구동회로도 지워놨으니 지금 체헤게는 그저 돌덩이 조형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영혼회로야 백날 연구해도 알아낼 수 있을리 없으니까 말이다.
그건 일상생활에서 귀신 들린 물건 같은걸 가져온다고 하더라도
무엇이 이상한지도 모른 채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불행에게 불평하는 사람들과 같은 것이다.
시장에서 더 걸으면 마을을 빠져나와 경계선으로 나오게 된다.
좌측으로는 돌로 된 석산이 있고, 우측으로는 조금 너른 초원.
그리고 앞쪽으로 이어지는 긴 숲을 감시하는 것으로 보이는 탑이 있었다.
생각보다 상당히 허술해보이는 탑은 이미 이 마을이 국경임에도 그 누구도
저 안카숲을 넘어 이곳으로 들어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어딘가 게을러보이는 남자 하나가 초소에 앉은 채로 비스듬히 기대
얼굴에는 신문을 덮고 있었다.
아마 이 사람이 그 모리티의 남편이겠지. 내가 초소를 둘러보고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위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어이! 아가씨, 여기는 국경이야. 이 앞으로는 야생동물이 나오는 숲뿐이라고.
왔던 길로 돌아가는게 좋을거야."
"알아요. 그냥 이 초소에 관심이 있어서 왔어요."
"초소? 나는 아닐테고, 혹시 해피를 보러 온거야?"
"해피요?"
"아, 그녀석도 아니었나? 무슨일이야?"
"그냥 여기 계시는 분들은 어떤 분들이신지 궁금해서 와본거에요."
"아, 그래? 그러고보니 본 적 없는 얼굴이네. 새로 이사온건가?"
"네. 인사도 드릴 겸 해서요."
"그래, 나는 빌이야. 저 아래쪽에서 옷가게를 하는 아내가 있지."
"모리티씨 말씀이시죠?"
"아내를 알아?"
"저희 가게에 자주 오세요."
"아, 그럼 네가 그 새로 열었다는 카페 주인이야?"
"그런 것 같아요."
"반가워. 듣자하니 어저께는 해피가 거기서 난리를 피웠다지?"
"아, 그 사람이 해피에요?"
"캐스빅이 이름이긴 한데, 해피라고 불러. 늘 한결같이 웃는 얼굴이 그래 보여서."
"별명이군요?"
"그런거지. 지금은 방황중이지만 길을 찾았으면 좋겠어 그녀석도.
너무 미워하지 말아줘. 노력하는데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는 일을 두면
누구라도 그렇게 까칠해지기 마련이니까."
"네, 딱히 그런걸 모르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 고마웠어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에리아에요."
"그래 에리아. 다음에 아내랑 같이 가게에 찾아갈게. 고마웠어.
이제 돌아가보는게 어때, 난 경비를 다시 맡아야 하거든."
"알겠습니다."
이 남자가 경비를 하던 아니던 그건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저 긍정적 관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잠재적 고객이 되었으니까,
안면을 튼 것 만으로도 충분히 성과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래, 마을 동쪽으로 가면 이장님이 계시니까 그 쪽으로 한번 가보라고."
"아,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장이라는 사람과 더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
저번에는 너무 사무적인 이야기를 하고 헤어졌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혹시 가게를 홍보할 몇 안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거니까 말이다.
시장은 자연스럽게 이 작은 마을에서 상가로 발전했다.
노점상과 가게 건물들이 들어선 골목을 벗어나면 놀라운 정도로 주택가가 나오고,
그곳에는 집을 제외한 그 무엇도 들어서지 않는다.
마을의 중심을 시장이 완전히 점령해버린 것이다.
국경지대의 석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평지에서 농작지를 제외하면 그 공간에 어울리는 것은
오직 시장 뿐이었다.
시장은 순수하게 이 마을에 탄생해서 어딘지 모를 의아함을 지니고 있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사람들이 찾는 식당과 베이커리, 그리고 가구점이나 카페 사이에
부자연스러운 보석상이 끼어있는 것은 내게 묘한 기시감을 주고 있었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런 느낌. 마치 저 안에서 나를 끌어들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보석상을 장치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질적인 느낌에
나는 아직도 이 마을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마을 회관보다도 나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보석상이라고 적힌 가게는 마치 이제 막 처음 손님을 맞는 것처럼 화려하고,
그 안에서는 젊은 여성 하나가 걸어나왔다.
"어서오세요."
침착해보이지만 어딘가 나와는 분위기가 다른 그 여자는 이 근방에서는 보기 드문
푸른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칙칙한 느낌이 들 정도로 어두운 머리색이
마치 그녀의 성격을 내게 알려주는 것 같았다.
"보석... 찾으시는거 있어요?"
"아뇨, 그냥 구경이요."
"구경 좋죠. 꾸미는 것도 좋고, 동경을 투영하는 것도 좋고."
"네?"
"보석은 삶이에요. 이상하게 들으실지 모르겠는데, 인생을 녹이고,
그걸 가공해서 빛나게 만드는 거라구요. 결코 가볍지 않죠.
무겁고 탁하다고 생각해도 깎아놓고 나면 다른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렇군요. 그래서 , 어떻게 이런 보석상을 차리신건가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네요. 하다보니까?"
이 영양가 없는 대화에서 나는 뭔가 그녀가 내게 말하려고 하는 것 같다는
그런 이유없는 느낌을 받았다.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당신은 무언가를 찾고 있어요."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는 그녀의 발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뭘 찾고 있는지 아세요?"
오히려 내가 되물으면 그녀는 작은 상자를 하나 꺼내더니 내 앞에서 열어보였다.
그 안에는 상당히 커다란 루비로 보이는 보석이 들어있었는데,
무심하다고 여겨질 만큼 방치해서 빛이 바랬고, 금은 커녕 투박한 상자에서
제대로 고정조차 되지 않아 굴러다니고 있었다.
"무슨 의미죠?"
"나는 이 보석의 이름을 알 수 없어요. 루비라고 생각했지만 아니었고,
돌이라고 생각했지만 분명 이 표면과 다르게 안쪽은 반짝일거고요.
물론 이건 내 생각이에요. 쪼갠 내부가 아무것도 아닌 돌일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난 이걸 깨고 싶지 않았어요.
실제로 아무리 구르고 상자 안에서 흠집이 나도 깨지지는 않았잖아요.
내 말 이해해요? 이건 내게 있어서 궁금함과 호기심을 지닌 물건이며,
동시에 내가 깨지 않을 애정을 동시에 지닌 물건이에요."
"그렇겠죠."
"난 이걸 당신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네요.
내 이름은 C에요."
"C?"
"네, 알파벳 한 글자. 그저 C. 다르게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불러도 상관 없어요.
내 이름은 이제껏 다양한 방식으로 불려왔지만 결국 내 마음에 드는 건 없었어요.
나는 그냥 C가 편해요."
"혹시...마녀아니세요?"
"마녀같다는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그런 걸 할 생각은 없어요.
마녀들같이 쓸데없는 연구를 하면서 내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아요.
결국 마녀들은 처형당하잖아요? 짧은 인생의 가치를 자신에게 투자하지 못하고
어리석게 낭비해버린 존재... 그렇게 생각해요."
"가치라는건 무슨 의미죠?"
"그건 당신이 알아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가치는 남이 찾아주거나 할 일이 아니잖아요?
난 언제나 여기 있어요. 기다리죠. 하지만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누구나를 기다리는 거에요. 이 자리에서. 손님이라고 하지만
그건 다른 만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회라고도 부를 수 있겠죠."
"상당히 어려운 이야기를 하고 계시네요. 내용에 맞추기가 힘들어요."
"맞출 필요 없어요. 설득하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내 이야기는 이해할 필요 없어요 그냥 기억하고 있으면
언젠가 알게 될 거고, 시간이 지나면 떠오르게 될 거에요."
"아...네..."
"여성이든 남성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보석은 그 가치를 높여주죠.
성적 매력을 높일 수도 있고, 상대로 하여금 나를 고평가 하게 할 수 있죠.
현대사회에서 재력은 곧 매력 그 자체이니까.
그뿐인가요? 자신의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죠.
누구라도 알 수 있어요 보석을 들이미는게 프로포즈라는건.
보석으로 섹스어필에 성공한다는 이야기죠. 쉽게 말하면."
"상당히 노골적이시네요."
"그렇지만 그게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하네요. 아까 마녀라고 하셨나요?
전 그런거 안해요. 나의 매력을 포기하면서까지
무언가를 꼭 해내야 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서요.
물론 나는 아직 처녀에요. 안타깝다고 할까요.
하지만 이건 동시에 내가 처녀로서의 내 가치를 알고 그걸 유지한다는 의미죠.
누군가는 그 가치를 떨어뜨리고 나를 얻기 위해 노력할거고요."
"부럽네요. 자신의 매력에 고평가를 할 수 있다는 건."
그렇지만 가끔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 이후에는 돌이키기 힘들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일들이 찾아올 때 말이다.
예로, 나는. 적어도 나는 마녀같은걸 할 생각이 없었다.
어쩌다 보니 마녀가 되어 있었다고 하지만.
결국 나이는 나날이 늘어가는데 친구도 애인도 없었던 건 맞지만
그게 내 선택으로 인한건 아니었다. 나는 이 여자가 마녀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그런 건 또 아닌 것 같았다.
설마 나도 저런식으로 이야기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닭살이 돋은 팔을 문지르며 생각했다. 일단 예의주시해 보겠다고 말이다.
"그래서 보석은 여기 있는게 전부인가요?"
"아, 네. 마음껏 구경하세요."
생각보다 보석의 종류는 다양하지 않았다.
루비와 그리고 조금의 금 정도가 전부였다.
내가 가만히 그 보석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녀는 내 옆으로 다가와서
당연하다는 듯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
"이건 루비와 사파이어에요. 믿는건 자유지만 여기 붉은 쪽이 사파이어죠.
물론 둘 다 빨간 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하지만 이건 분명히 사파이어에요. 루비라고 생각하고, 루비라고 여기더라도.
분명히 사파이어에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까 왠지 불안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는 본능적인 직감이 슬쩍 목앞으로 날을 들이민 것 같아
침을 삼키고 뒤로 물러났다.
"생각보다 보석이 많지 않네요."
"이 마을에서 그 보석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더욱이 일반적으로는 사려는 생각도 하지 않아요.
그들 스스로에게 이게 필요하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죠.
구경을 하러 오는 사람도 적어요.
결국 이걸 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거죠.
난 알수 있어요. 이걸 구경하는 당신은 이 마을에서 이질적인 존재라는걸."
나는 빠르게 인사하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래요. 고마웠어요."
"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보죠."
시간이 더 지나 상권이 활기를 찾아가면 본격적인 호객행위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흥시설 자체가 그다지 많이 존재 하지 않았기에 그 대부분은 식당이었다.
골목을 꺾어 걸어가며 저 멀리 보이는 마을 회관에 나는 목적지를 발견했다는 안도감을 느끼고
그곳으로 발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