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괴짜들 (19/303)



〈 19화 〉괴짜들

남자들과 카드를 치고 나면 시간이 한참 흘러있었다.
첼과 겔은 그 자리에서 일어날 것 같아 보이지 않았고
나는 이후 일이 있다고 둘러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아쉬운듯 나를 잡으려 했지만  포기하고 작별인사를 나눴다.
그들의 카드뭉치는 아직 내 빈자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았다.

"에리아씨, 이걸 들고 가세요."

루나르씨가 내게 건넨 물건은 우산이었다.
내가 카드를 치던 동안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내가 우산을 받아들고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면 루나르씨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건 마을에서 제작한 우산이에요.
회관에는 엄청나게 많이 쌓여있는 처치 곤란의 악성재고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첼과 겔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우산을 들고 마르커스의 공방으로 돌아갔다.
내가 도착하고  것은 마르커스가 이미 잔뜩 분해한 체헤게를 두고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면서 구조를 파악중이던 모습이었다.


"마르커스,  왔어요."

"아, 마침 잘 왔소 에리아. 내가 저 로봇을 구경하는데 말이지,
도무지 핵이라고 할 부분이 보이질 않네.
보통 핵은 옮겨줘야 개조라고 부를 수 있을텐데,
그렇지 못해서는 그냥 별개의 로봇이잖는가.
우선 로봇 자체의 몸체는 완성을 했다네. 한번 보겠는가?"

그가 소개한 장소에는 노란 철로 만들어진 증기 기관의 로봇이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톱니와 구식 크랭크가 여럿 붙어있는 형태였지만
상당히 정교하고 공을 들인 형태였음은 분명하다.


"마음에 들런지 모르겠네. 아무래도 자네는 단순한 기계보다는 독창성을 볼 것 같아서
내 멋대로 디자인을 해 봤는데,  근래 이렇게 고생했던 적은 없었다네.
늘 편한 보일러같은 것들이나 고치다가 이런 로봇을 만들려니 피곤하기도 하고.
하마터면 머리에 쥐가 날 뻔 했지 뭔가."


내가 가만히 로봇을 들여다보면 그는 긴장한 표정으로 나의 눈치를 살폈다.


[어떤 것 같아 체헤게?]


내가 그렇게 물으면 체헤게는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생각보다는 좋군. 정말... 두번은 하고싶지 않은 경험이다.
여자도 아니고 수염 덥수룩한 남성이 비록 돌조각이라지만 내 몸을 구석구석 뜯어보는건...
두번은 하고 싶지 않은 아주 불쾌한 경험이로군.
그런 고생을 시켜놓고 구닥다리 몸체를 만들었다면 바로 목을 비틀어버렸을지도 모르지.]

[뭘 로봇 하나가지고 과잉반응이야?]


[그 로봇이 나라는 사실은 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데.
이건 음... 뭐라고 해야 하나. 단순한 의뢰 오류가 아니라
의료 사고라고 보아도 무방한 수준이라는 의미다.]

[네가 그런다고 죽으면 반 정도는 맞는 이야기겠네.
마음에 안들면 다른 몸체 구해줄 수도 있는 이야기잖아?]

[참 편하게 말하는군.]

[틀린말은 아니니까.]

"마음에 드네요."

내가 그렇게 답하면 마르커스씨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이마에 흐른 땀을 닦는다.
그리고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정말, 숨막히는 순간이었네.
자네같은 기술자에게 평가받는 순간은  없으니까 말이야."

"저는 기술자가 아니에요. 그냥 카페 사장이죠."

"그렇군, 실례했네."


"그리고 평가는 제가 한게 아니에요.
제 로봇이 스스로 한거죠."


"그렇다면 다행이네만, 그래서 이 로봇은 어떻게 구동하는건지 몰라 핵을 옮길수 없었네.
어느 시대의 기술인가? 혹시 영기술의 일종인가?"


"네, 영기술이겠네요. 자력 비슷한 거에요."

"영기술을 보면 말이지.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따라갈  없는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는 것 같아서
스스로 한계를 마주하는 느낌이 든다네."

"어려운 건 아니에요. 그나저나 상당히 빠르게 만드셨네요?"

"재료만 충분하다면 만드는 것 자체는 빠르지. 오히려 지금까지 그걸로 살아남았으니.
이런 구시대의 기술을 가지고 장사하는 주제에 손까지 느리면 안되잖나.
빈티지 말고는 경쟁력이 없으니까."


"그 빈티지가 좋은거에요."

"그래, 그런 구시대의 낭만을 즐기는 사람들이 종종 있지."


"그럼 바로 가져가면 되는 건가요?"

"미안하지만 그렇게는 안되네. 지금 이건 뼈대만 만든 상태라 말이야."


"네?"

"아직 핵을 옮기지 못하는 바람에 자세히 만들지 못했지.
지금 이걸 작동시킨다면 아마 삐걱이다 그대로 고꾸라질 걸세."


나는 구동회로와 영혼회로만 적어넣으면 움직이게 하는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건 어쩌면 나의 마녀로서의 자부심과 아직 남은 그 같잖은 호기심의 영역과
같은 부류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핵은 괜찮으니 일단 만들어주세요."


"그럼 아예 다른 로봇이 되잖은가?"


나는 고개를 저었다.

"완성되고 난 후에 저한테 보내주시면 핵을 이식할게요.
별도의 다른 동력으로 만들어 주시면 되죠."

"아, 그런 의미인가? 미안하지만 지금은 크랭크가 충분하지 않아서 엔진을 만들기에는
아주 조금, 재료가 모자라네. 적어도 아까 월과 말다툼만 하지 않았더라면
조금  빠르게 재료를 구할  있었겠지만 말이지.
내가 너무 대책이 없었던 것 같아 미안하게 됐소."

"아니에요. 천천히 만들어주셔도 괜찮아요."


"그러면 나에게 3일만 더 시간을 주시오. 완벽하게 가공해서 가져갈 테니."

"3일이요?"


"지금 만든 부분도 뜯어고쳐 완벽한 로봇을 만들어드리리다."

"지금도 충분해 보이는데요."

"내 한계에 도전하고 싶어졌네."


그가 그렇게 말하고 있으면 뒤에서 헬렌의 밝은 목소리가 들렸다.


"야! 털보야! 맥주 한잔 하자!"


비에 젖은 헬렌은 축축히 젖은 머리를 하고 찾아왓다.
비를 맞은 탓에 옷이 젖어 그녀의 바디 라인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위로 오전에는 허리에 둘러 묶어두었던 정비복을 입고있다.
헬렌은 이미 맥주캔을 둘 들고 와서 자리 위에 쿵 내려놓았다.
그러나 마르커스는 헬렌을 발견하고 손을 가볍게 흔들어주곤 거절하듯
머리에 쓰고 있던 용접용 마스크를 내려 썼다.

"하아... 참. 에리아, 여기 있었네? 마을 소개해준다고 해놓고
깜빡 잊어서 그냥 보내버렸지 뭐야. 그나저나  왜 저래?"


"저희 종업원을 위한 새로운 바디를 만들어주고 계세요."

"오, 백수가 되기 일보직전이구나 싶었더니 기어이 일거리를 찾았구나.
에리아 너도 성격 참 좋다. 이 마을에 저 녀석보다 잘하는 기술자도 많을텐데."

"빈티지를 따지는 분은 한분이시잖아요."

"그래, 뭐 그건 네 마음이지. 그런데 종업원이라면 분명히 그 돌덩이 로봇?"

"네. 자주 다리에 이끼가 슬어서 피곤하다고 투정을 부리더라구요."


"투정? 로봇이?"

"그냥 그렇게 느꼈어요."


헬렌은 나를 바라보고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그런 녀석들 있지.
괜찮아! 나는 이전에 자기가 만든 로봇이랑 결혼하던 멍청이도 봤으니까!
 섹스돌이 얼마나 혀놀림이 화려했는지 너도 봤어야 했는데!"


"혀놀림이요?"


"그래,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기술이었어.
문어다리를 붙들고 영감을 얻겠다고 일주일간 쳐다만 보는걸 보고 정말 미쳐버린건가 했는데
기어이 그걸 가지고 감각센서를 개발하더라고.
물론 그걸로 키스를 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지만. 지금은 대중적으로도 많이 퍼져있잖아?
감각 센서를 기반으로 하는 문이라거나 리프트 같은거?"


"그렇지만 그게 키스를 할 만큼 정교하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운데요."

"그러니까 그 녀석이 미친 놈이라고 불린거지.
언젠가 기어이 그 로봇이랑 아기를 만들고야 말겠다고 큰소리를 치던데.
분명 쇳독 올라서 죽었을걸 그 병신?"


"어딜 가나 독특한 사람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러게. 너 대장간에는 간 적 없다고 했나? 그럼 너는 이런 이야기는 낯설겠네?"


헬렌은 자연스럽게 빠져나온 철판에 걸터앉아서 맥주캔을 열었다.
그러면서 다른 맥주캔 한잔을  쪽으로 밀어 건넨다.


"마셔. 마르커스는 바쁠  같으니까. 네가 술을 마셔도 그렇게 차분한지 보고싶네."

"맥주 정도로 취할  같지는 않지만 일단은 알겠습니다."

나도 맥주캔을 열었다.
시원한 캔은 열자마자 부글부글 거품이 올라왔다.
당황한 내가 내려놓기도 전에 캔은 거품으로 내 손을 적셔버렸다.

"푸하하하!! 아 맞다 맞다. 마르커스 놀려준다고 잔뜩 흔들었거든! 미안해!"


"정말... 두분은 한결같으시네요."

"너까지 그런 소리 하지마. 주변에서 결혼은 언제하냐고 물을 때마다 골치아프다고."

"저만 그렇게 느낀게 아니었나요?"

[참 잘 어울리기는 하는 것 같다.]

[살만해졌나봐?]

[대화할 상대가 없어 지겨워 죽어버릴 지경이군.]


[좋아, 그걸 원했어. 고생하라고.]

헬렌은 맥주를 마시고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이쪽에서 사절이야. 차라리 나도 정말 조각이나 해서 그 조각이랑 결혼해버릴까."


나도 그녀의 말에 맞춰 맥주를 마셨다. 보리향이  올라온다.


"저는 비혼을 추천드려요."

"비혼? 너 비혼주의자였어?"


"비단 결혼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에요. 생각보다 여러가지 이유를 핑계로,
사람과 멀어지고 잊혀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거에요.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가까이 지낸다는건 그런 일이니까요.
결국에는 혼자가 되더라는 거죠."

"너 무슨 연애를 했길래 그러는거야?
하여튼 그래, 세상에는 워낙에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까."


"저는 연애에 큰 관심은 없어요.   적도 없고요. 그래도 그런건 알  있어요."

"그래, 너도 나름의 이유는 있겠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 마.
사랑은 멋진 거니까. 물론 그게 나와 마르커스를 이을 수 있는 핑계가 되지는않지만.


"흠, 제가 예전에 알던 친구중에 사랑을 하는 걸 참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는데요.
날마다 애인을 만나러 마을을 찾아갔어요.
그 당시에 마을을 찾아가는건 상당히 위험했죠.
 친구는 수배자였거든요."


"수배자? 범죄자 같은거야?"


"그렇다고 봐야겠죠. 일단은 마약을 유통하고 있었으니까.
그 친구는 날마다 여자친구를 만나러 마을에 갔어요.
숨어 살고 있던 와중에도 말이죠. 마약을 사랑의 묘약이라고 말하면서 말이에요.
날마다 돌아와서는 그 전날 밤에 있던 일을 마치 무용담처럼 이야기하며
오늘도 잘 살아 돌아왔다면서 실없는 농담을 했어요.
결국 그러다가 신고로 잡혀갔지만요.
여자친구가 겁을 먹었나봐요. 아니면 원래 신고를 하려고 접근했을 수도 있죠.
포상금이 상당했으니까요."


물론 그가 죽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처형당한 이야기를 유쾌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테니.
헬렌은 조금은 착잡한 표정으로 맥주를 마시고 말했다.

"그건  사람이 범죄자라는 특수한 환경이 있었잖아.
그리고  말대로 그렇게 사랑을 했던 남자라면 아마 잡혀가면서도 후회는 하지 않았을걸."

"생각보다 낭만적이시네요 헬렌."


"칭찬으로 들어도 되지?"

"네. 칭찬이니까요."

후일담은 생각만큼 그렇게 행복하지 않지만.
친구라고 소개했던 남자는 동료 마법사였다.
남자는 마녀로 몰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루머에 불과하다.
주로 불로불사를 꿈꾸거나, 황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몰린 귀족들이
남들의 시선을 피해가며 사설 연구실에서 주로 주술을 공부했다.
 남자는 사랑의 묘약을 만들려고 했던 귀족이었고,
자신이 사랑했던 여자를 갖기 위해 온갖 마약류를 연구했다.
나와는 다른 방향에서 시작했던 연구였지만 결국 끝은 같았다.
마약 중독이었다.

결국 판단력이 흐려진 그의 연구는 수포로 돌아갔고
남자는 환각성 마약을 사랑의 묘약이라 믿으며 밤마다 그녀를 찾아갔다.
결국 그가 마약중독자에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건 시간문제였다.
그는 사랑했던 여자를 약물 쇼크로 죽일 뻔 했다.

정신을 차린 여자가 그를 신고한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당시 마약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사랑의 묘약이라는 그의 주장은 정설로 받아들여졌다.
끽해야 안정작용, 각성 작용 정도만 하던 마약을 겨우 받아들인 시대였기에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사랑이 두려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여자 때문이 아니라
남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두대에서 목이 달아난 그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사랑했던 그녀에게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난 이렇게 되기 이전의 당신은 정말로 사랑했었는데.'

모종의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변해버리는건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아마 그 이유는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바보같고 한심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걸  저는 사랑에 조금은 거부감이 생기더라구요.
그래서 아직까지도 누굴 만나본 적이 없네요."


"저런, 참 예쁜데 아깝게 됐어. 내가 남자였다면 너한테 몇번은 고백했을거야."

"그건  죄송스러운 이야기네요. 아마 거절했을거에요."


[취향 한번 독특하군.]


[오 체헤게, 제발 닥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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