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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화 〉비밀 (25/303)



〈 25화 〉비밀

내가 몇 마디 말을 더 붙이려고 하면 체헤게는 말을 돌렸다.

[그래 몬갈리오 이야기는 이쯤 하고 다른 이야기를 좀 하지.
이 마을 말인데, 콜린. 확실히 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
어차피 너나 나나 죽을 일은 없겠지만 주의는 해두는게 좋겠지.]


"그걸 이제 느낀건 아닐거아냐? 그런 감으로 나를 잡았을리는 없지.
내가 얼마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피해다녔는데."

[그래, 적어도 일단 내 몸을 그렇게 뜯어보는 사람이 많았는데도
아무도 네게 찾아오지 않았다. 대장간 출신은 흥미가 갈 법도 한데 말이다.
더욱이 나는 그런 상황을 노리고 행동했었는데 말이지.
듣자하니 요즘 세상에는 주술이니 하는 것들은 영기술로 취급한다던데.
그다지 의아하게 여기지도 않았으니 이상하게 여기기는 했다.]


"나를 알았거나 아니면 마을이 특수하거나 하는 생각은 했었으니까."

 마을은 명백하게 이상하다.
겔의 말을 듣고 나서 그렇게 느낀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전부터 느낀 위화감의 정체는 이들의 태도에서 오는 것이었다.
지나치게 적대적인 인간과 이상하리만치 우호적인 인간들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좁은 마을에서 주민간의 사이가 좋은 것은 이상하지 않다.
성격이 좋다고 느끼는 선에서 보통은 만족하니까.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하루 이틀만에 새로 자리를 잡은 나를 경계하지도 않고
선뜻 가게에 찾아오는 것은 기본이요, 채 알려지지도 않은 가게를 조합에 가입시키기 위해서
발빠르게 찾아오는 조합 지부장은 어색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본능적으로 그들에게 에스테리카를 내 주면서도 묘한 기시감을 느꼈었는데
그것이 겔의 말로 확실하게 굳어진  뿐이다.


"일단 나도 짐작은 하고 있는데, 그래도 확실히 이전보다는 편하게 사는건 사실이잖아?
나중에 루나르한테 물어보던가 해도 늦지는 않을거야."

[루나르? 그 남자를 믿나?]

"믿긴. 나는 나 말고는 아무도 안믿어."

[그러면 가게는 이대로 계속 하겠다고?]


"돈은 벌어야지."


[돈? 그런데 관심 없던거 아니었나?]


"페마르를 아낌없이 써서 기계를 만드신다는 아저씨가 하나 있어서."


[그랬나...]


"사실은, 벌 필요 없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볍게 주술로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냈다.
현재 시대에서도 이런걸 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금화는 가치가 높을테니까
만들어내기만 한다면 생활고는 없을 터였다.

[그냥 이 일상이 좋은거군.]

"그런가봐. 혹시   물어보고 싶은 거라도 있어?"

"그럼 카페라떼는 얼마인지 알려주시죠."


"카페라떼? 아..!"


돌아보니 그곳에는 처음보는 남자가 서 있었다.
독특한 헤어스타일에 엄청나게 두꺼운 턱. 그리고 둥그런 안경과
덥수룩한 수염까지. 왠지 한량과 같은 이미지를 풀풀 풍기는 남자는
보기와 다르게 깔끔한 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오신 줄 몰랐어요. 카페라떼, 금방 준비해드리겠습니다."

남자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급한건 아니니까."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그걸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구형 라이터를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고 두어빈 틱틱 점화하다가 불평하며 라이터 뚜껑을 다시 닫았다.


"에이씨, 기름이 다됐구나..."


나는 그런 그를 보며 대답했다.


"불 정도는 빌려드릴 수 있어요. 가게 밖에서 피우고 오신다고 하시면요."


"아, 고마워요. 근데 역시 생각해보니까 안피우는게 낫겠네요.
냄새가 배면 또 애들이 싫어할테니까."

애들? 이 남자가 아이들과 관련이 있는 직업을 가진 남자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웟다.
인상이 험악하지는 않지만 친근해보이는 얼굴을 아니니까. 아마  편견이겠지만 말이다.
남자는 가게를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내게 말했다.

"혹시 이 근처에서 사람이 아닌   적은 없어요?"

"사람이 아닌거요?"


"네, 오크를 봤다는 제보가 들어와서요."


[아,  커다란 자ㅈ..]


"아, 봤어요. 봤는데 전혀 해를 끼칠 사람으로는 안보이던데요."

"해를 끼칠 사람으로 안보인다... 그런 이야기가 많네요.
그게 정말 사람으로 보였나요?"

"인간도 종족 중에 하나일 뿐이니까요."


"종족 중 하나... 맞는 말이죠."


"여기 카페라떼요."

내가 잔을 내밀면 그는 카페라떼를 마시며 말했다.


"여기 온 건 거의 9달만인데, 그 전에는 이런 카페를 본 적이 없어요."


"개업한지 얼마 안됐으니까요."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내게 노트를 하나 꺼내 보여주었다.
그 안에는 성 테르도어 대성당 소속 신부 제임스 트러스트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남자의 신분증 같은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신부셨나요?"

"네, 어쩌다보니까 그렇게 됐죠. 표정이  어두우신데 괜찮으신가요?"


"성직자계열의 직업종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아서...
안좋은 기억이 있거든요."

"하하,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합니다. 일부에서는 장사꾼이랑 똑같이 취급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하아, 아무튼 교회에서 오래 일하다보면 종종 듣는 소리니 익숙합니다.
아, 사탕이라도  드실래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냈다. 말 그대로 막대 사탕이었다.

"막대 사탕..?"

"애들이 좋아합니다."

"아, 신부라고 하셨죠..."


제임스는 까끌한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말했다.


"애들이랑 있으면 안될 것 같은 얼굴이죠?"

나는 어색하게 웃어넘기며 그가 내민 사탕을 받아들었다.
살짝 녹아 포장 안이 끈적한 사탕을 받아 냉장고에 집어넣으면서
체헤게에게 물었다.

[어이, 마녀사냥 을 주도한 것도 교회 아니었어?]


[물론 적극적으로 거들어주긴 했지만 주도한건 아니었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주도적인 입장으로 나서기는 했었지.
마녀를 구분하는 기준을 세운 것도 교회였으니까.]


[주종역전이야? 가지가지 했었네 그때 교회도. 교회가 마녀를 싫어하는 이유가 대체 뭐야?]

[신의 사상에 위배된다는 생각이 있는 거였겠지.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다르말록이었던가?
그래, 다르말록이라는 이름이었다.]


"그러면 제임스씨, 성 테르도어 대성당에서는 어떤 신을 모시는 거죠?"


내 질문에 제임스는 차분한 표정으로 커피를 마시던 것을 내려놓고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눈을 지그시 뜨고  표정을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관심이 있으면 한번 다음에 들르세요. 테르도어 대성당은 대중적인 쪽이라서
아르간티아를 유일신으로 두고 있어요."

"아르간티아... 인간이었죠? 신화에 따르면."

"그렇죠. 최초의 인간이었죠. 신화에 따르면."

"그 아르간티아가 아르간티아 초국이랑 관계가 있나요?"

"아르간티아가 처음으로 세운 국가의 이름이에요. 수만년? 수억년?
오랜 시간이 흘러서 그 자리에 지금의 유레크로스가 세워졌다는 설이 유력하죠.
그래서 테르도어 대성당도 페세티아의 유레크로스에 지어진 거고요."


"아르간티아는 신화가 존재하니까 알고 있는데, 다르말록은 정확히 어떤 신인지 잘 모르겠네요.
유일신이 아르간티아라느니 다르말록이라느니 말들이 많아서 궁금하긴 했거든요."


"그건 정식으로 교회에 등록하시고 신자가 되시면 친절하게 알려드립니다."

"상인들도 샘플은 주고 사라고 하던데."


"하하하...."

"이건 서비스에요."

나는 그에게 직접 만든 RIC-9호를 건넸다.
자백제로  만큼 강한건 아니지만 적어도 긴장을 풀면 내 질문에 조금 더 진정성있는
답변을 돌려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아마 자백제보다도 이런 식으로
심리를 이용하는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건, 차인가요?"

"네."

그는 차의 향기를 잠깐 맡더니 단숨에 들이켰다.
차라리 홀짝이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 같았다.
그리고는 행동에 큰 변화 없이 나를 슬쩍 바라보더니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어깨에서 힘이 빠지는걸 보고 나서 나도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래서 다르말록이라는 신은  하는 신이죠?"

"그걸 아직도 궁금해한다니. 서비스도 얻어먹었으니 조금만 알려줄까.
음, 다르말록은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으면 죽지 않아요.
몇 번이고 되살아난다고 했죠. 원래 어떤 신이든 그렇다고는 하지만
신자가 늘어나고 자신을 숭배하는 인원이 많을 수록 힘이 강해진다고 해요.
그래서 다르말록은 자신이 유일신이 되려고 해요. 자신의 권력을 늘리기 위해서죠.
나머지는 아르간티아 신화에 나오는 내용이랑 같아요."


"아르간티아는 유일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다르말록을 섬기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버린거죠.
알고있어도 숭배하지 않고 신자는 점점 모습을 감추니 신으로서 존재하지 못하는거에요.
그저 불사의 존재로서 남아있는거고요."

"그럼 아르간티아는..."

"신이라는건 신도가 정하는 겁니다. 신이 필요한건 신도들이잖아요.
의지할 대상이 생기고 그걸 신으로 숭배하기 시작하면 그게 어떤 대상이든
신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있다고   있는거 아닐까요.
사람들은 거기서 위안을 받는다는 의미니까요."


"그러면 왜 신들은 이단을 용서하지 않는거죠?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혐오하면서 왜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해서
맞지 않는 이들은 배척하려고 하는지 궁금한데요."


"나도 그런건 싫어요. 더욱이 아직 어려보이는 당신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게 만든 신이라면 더더욱.
나는 분명 신부지만 교회에 일찍 들어간 것 뿐이지,
다른 사람을 재단하거나 할 권리같은건 없다는걸 알고 있고요.
그래서 더 노력하는 겁니다. 내가 앞장서서 뭐라도 바꿔놓아야만
뒤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편하게 교회에 의지할테니까.
무슨 의미인지는 이해해주리라고 믿어요."

"신부님이 그런 말 해도 되는거에요?"

"말했잖아요. 아르간티아는 인간이라니까. 음...
그러면 그냥 아르간티아 팬클럽 회원 정도로 생각해요."

"신이랬다가 인간이랬다가."

"거창해보이는건 까보면 대개 그런거에요. 이래서 비밀인거고.
큰 기대를 가지고 교회에 등록했더니 알고보니까 인간이었고,
믿음을 가지고 기도했을 때 돌아오는 보상이 크림빵이고,
교회를 지탱하는건 여러분의 헌금이라고 말했다간 실망하니까.
우리는 그런 믿음을 지켜주는 여할을 하고 있는거고요.
사실상 나는 음, 보육교사가  어울리겠네요."


뭐 이런 신부가 다 있지?
책임감이며 의무감이며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보면서
나는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신부가 있다고...?"


"물론 내가 아르간티아를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고, 신부로서 할 일도 나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렇게 보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제자도 여럿 있는 나름대로 촉망받는 사람이고.
어쩌다 업무 때문에 오크를 쫒고는 있다지만 만나서 뭘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참 아이러니하죠. 이종 배척은 신으로서의 권력과 직결되는 건데.
정작 그 신이라는 사람은 신화에나 등장하는 옛 사람에, 어디서 뭘 하는지도 모르죠.
하다못해 얼굴도 모르니까 아는거라고는 금발이라는 정도?"

"대책없는 걸로 따지면 내가 만난 신부중에 최고네요."


"마음에 들었길 바래요. 아, 혹시 다른 신부를 만난다면 비밀로 해주시고."


묘하게 호감이 생기는 사람이다. 분명 그렇지 않은 외모지만.
어째선지 나는 나사가 하나씩 빠진 사람들에게 끌리는 모양이었다.

"교회, 다녀볼까."

[미쳤군.]

[재밌겠단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이전에 서지스에 있던 교회에서도 그런 말을 했었지.]


[나를 죽이려고 했지만 봐라, 난 이렇게 멀쩡히 살아서 너의 집에 발을 들인다.
이제 누가 승리자지? 직접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는 벽화 주제에.
그런 생각을 하는거야. 그러면 대개 신나지거든.]

[유치하단 생각은 안하나?]


[복수만큼 달콤한 조미료가 잘 없어. 그리고 오래 혼자 살면 이런게 재밌는 법이야.]

"교회... 안다니는걸 추천해요. 재미 없고, 무엇보다, 꼰대라고 느낄 사람들이 꽤 많아서."

"꼰대?"

"아, 나도 슬슬 그런 라인에 들어가려나."

그런 말을 하며 실없이 웃던 남자는 지갑을 꺼내 돈을 내밀었다.
메뉴판을 확인한건지 카페라떼의 금액에  맞췄다.

"아, 제임스. 초면에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부탁?"

"이 마을에 데니스라고 아주 당돌한 꼬마가 있어요.
성직자가 되고 싶어해요.  애를 제자로 받아줘요."


"음, 그 애가 하고싶어한다면야. 몇 살이죠?"

"11살이에요."

"인생을 버리기엔 너무 어린데.
15살은 되고 나서 유레크로스의 테르도어 대성당을 찾아온다면,
그때는 제자로 받아줄게요."


"아마  애는 갈거에요. 아마..."


내가  말을 하자 제임스가 대답했다.


"표정이 무슨 악몽이라도 꾸는 사람 같네요. 그럼 이만."

가게에 다시 정적이 찾아오고 나는 왠지 데니스의 보모같은 일을 했다는 생각에
조금은 창피해져서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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