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나비는 왜 날지 못하게 되었는가 (26/303)



〈 26화 〉나비는 왜 날지 못하게 되었는가

[참 놀랍군. 그 마녀가 누군가에게 지쳐서 무릎을 꿇는 모습을 본다는건 생각도 못했다.]

체헤게의 비웃는 듯한 핀잔에 나는 반발하듯 고개를 위로 치켜들었다.
그러다가 곧 의미 없는 일이라는  깨닫고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

"마녀라고 만능은 아니니까. 사람이라니까. 모르는 건 못해."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고 나는 체헤게를 들고 연구실로 들어갔다.
연구실은 어쩐지 아까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데니스를 혼자 둔 기간동안 녀석이 나름대로 헤집은것도 있어 보였다.
원래 오늘 가르쳐줄 생각이었던 건 에너지 음료 정도였다.
그러다가 일이 생겨 밀가루 반죽같은 잡일을 시키기는 했지만
그래도 에너지 음료는 제대로 가르쳐 줬으니까 나름 할 일은 한 어른이겠지.
연구실을 정리하면서 데니스가 놓고  것으로 보이는 흰 봉투를 주웠다.


"기어이 두고 갔네."


봉투를 열면 그 안에는 직접 적은 것으로 보이는 편지와 상당한 금액의 돈이 들어 있었다.
세어보니  액수는 대략 5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건방진게..."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얼굴이 밝은데.]

"돈 싫어하는 인간이 어디있어."


[코 묻은 돈을 잘도 받아 챙기는데.]


"그 꼬마가 잃어버린 돈이라고 생각하자고. 그리고 나는 분명히 안받겠다고 했으니까.
내 할 일은 다 했다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몫이야."

[아, 그런. 영광이군. 몸값이 꽤 비싼 남자가 되어버렸어 나도.]

이전에 연구하던 약물을 꺼내 가열하기 시작한다.
살짝 색이 바뀐  같은 뿌연 약품은 부글대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끓어올랐고
그걸 바라보면서 나는 붉은 개나리 꽃잎을 세  넣었다.
용액의 색이 다시 변하며 주홍빛으로 빛나기 시작하면 불을 끄고 천천히 식혀냈다.

[그건 또 무슨 용액이지?]


"글쎄, 붉은 색이 필요했나?"

[대답하기 싫으면 싫다고 말을 해도 된다.]

"대답하기 싫어."

[하아...]


다시 막대를 가져와서 천천히 용액을 저었다.
이대로 며칠은 천천히 가열하면서 경과를 지켜볼 생각이었다.
어느정도 증발시키고 농도를 높혀서 새로운 용액을 섞을 생각이었으니까.


"불을 계속 켜둘 수가 없으려나..."

이전같으면 며칠 밤을 새서라도 볼 수 있었는데, 가게를 열고 나니 그게 안된다.
저걸 만들고 나서 우선은 내가 직접 마셔보고 효과가 어떤지를 확인해야 다른 사람에게도 내  텐데
지금은 뭔지도 모를 용액을 마셨다가 내가 앓아누워버리면 의미가 없다.
미리 시뮬레이션을 몇 번이나 생각해봤지만 결국 그게 100% 완벽하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됐어, 그냥 한동안은 이렇게 둘래."

그렇게 용액을 비커째로 놓아두고 나는 불을 줄인 후에 연구실을 나왔고
가게문을 가만히 바라볼 뿐이었다.
시간은 맥없이 흘렀고 결국 오늘도 저녁이 찾아왔다.
오전의 그 진상손님들이 사라지고 나니 평소와 큰 차이 없는 텅 빈 매장에서
내가 늘어지게 하품을 할 때 다음 손님이 찾아왔다.

"술줘. 비싼걸로."

"아, 해피씨."

"하아... 너 그 이름 어디서 들었어? 아니, 아니지... 빌씨 정도겠네."


"네, 빌씨 맞아요. 그래서 비싼 술이라고 하셔도 일단 주문을 명확히 부탁드릴게요."

"제일 독한걸로 줘. 비싼거나 독한거나 큰 차이 없겠지."

"그럼 그러세요."

내가 꺼낸 술은 말 그대로 알코올 그 자체인 것이었다.
파혼주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알코올이다.
병원에서 소독할때나 쓰는 그 알코올.

"이거라도 드실래요? 알코올인데."


"알콜? 그런걸 어떻게 마셔? 지금 나 놀리는거야?"

"어떤 사람들은 파혼주라고 하면서 마시기도 한다던데요."


"그건 술값이 충당이 안될 만큼 마셔대는 사람들이 나중에 하다하다 술을 살 돈이 없을 
일부러 다치면서까지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알코올 마시는 거 말하는 거잖아.
가정을 파탄내니까 파혼주고. 몰라?"

"몰랐네요. 생각보다 유식하시네요?"


"역시 너 나 무시하지? 이래뵈도 모험가인데 하여튼 이 콜린 새끼들은 진짜...
범죄자 소굴이라고 불릴만도 하지! 감사를 모르니까!"

"범죄자요?"

"아니다, 너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년이랑 이야기할  아니지."


"아무것도 모르는 년이라고요?"

"아냐, 미안. 후우... 그래, 맥주. 맥주로 부탁할게."

"알겠어요."

나는 맥주를 시원하게 건네주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나를 이렇게 차분하게 대하는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이전보다는 확실히 정신이 있으신  같은데요."


"그거야 지금은 오늘 첫 술을 마시러 온 거니까."


"해피씨는 그래서 모험가이시면서 보초병이신거죠?"


그는 잠깐 울컥한 듯 싶다가 진정하고 대답했다.

"그래, 보초병이지."

"보초병이라는데 불만이라도 있으신가봐요?"


"있다면 있는거고, 없다면 없고.  그런거야. 각자 사정이라는게 있는거니까."

"사정... 그렇죠. 실례했네요."


그는 맥주를 벌컥이며 마셔댔다. 입으로 다 들어가지 않은 맥주는 턱을 따라 그의 목을 타고 흘렀다.
그러면 그는 목에 흐른 맥주를 손등으로 슥슥 문대고는 손을 탈탈 털어버렸다.
그리고는 다시 맥주잔을 들고 언제 흘렸냐는 듯이 벌컥이며 맥주를 마셨다.

"크아~!"


그렇게 시원하다며 잔을 내려놓은 그는 조금은 차분해진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너는 왜 여기서 술집을 하는거야?"


"저요? 그냥 조용하니까... 편안하잖아요?"


"국경지역인데? 아무리 조용하고 평화롭다고 해도 위험하잖아."

"국경인  치고는 상당히 평화롭지 않나요?"

"하긴, 유레크로스 새끼들은 수도에 방위병을 집중시켜놓았으니까.
너도 알지? 덕분에 나도 이렇게 놀고 다니지만."


"네. 그 정도는요."


"이런 촌에서 가게를 열어봐야 손님이 늘어나진 않을걸.
적당히 옮겨서 서지스나 유레크로스로 가라고."

"유레크로스는 너무 부담스러워서요."

"보통은 콜린을 더 부담스러워한다고. 커피라고는 에스테리카밖에 모르잖아. 여기 사람들은."


"에스테리카도 충분히 맛있는 거피니까요."

"그래? 자신이 넘치는데. 에스테리카 한 잔 줘."


"에스테리카   주문 받았습니다."

내가 에스테리카를 내리기 위해 등을 돌리면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이전에는 분명 어딘가 다르다고 느꼈는데, 이제 보니 그런 것도 아닌 모양이야."


"네?"

"아냐, 이쪽의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맥주를 깔끔하게 비우고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말 없이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동시에 어두워진 가게는 탁 탁 하는 소리를 내면서 조명을 하나씩 점등하기 시작했다.


"뭐야?"


"저녁에는 인테리어를 좀 바꿔볼까 싶어서요."

"아, 의도된 거였나."

푸른 빛을 내며 빛나는 가게에서 조용히 가습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테이블 위에서 작은 분수가 만들어지고 퓻퓻 튀어오르는 물줄기에 헬라티움 광석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물레방아가 천천히 돌아간다. 푸른 물을 퍼올리면서 가게의 작은 테이블을 밝히는 조명에
나는 그래도 꽤나 기분이 좋아졌다.


"조금 분위기가 가라앉는군. 예전에는 이런 분위기를 한 술집에 가보고 싶었지."

"지금은 아니세요?"

"그런 술집은 나랑 어울리지 않았거든. 너무 비싸고. 그냥 나같은 싸구려는 맥주나 마시러 다니려고 했고.
무슨 분위기를 따져. 피곤하기밖에 더하겠어?"


해피는 잔을 살짝 들어 흔들어보인다.


"보여? 비었잖아."


내가 에스테리카를 자리에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맥주잔을 받아들고 새로운 맥주를 담아주면
그는 가만히 나를 보았다.


"나는 보초병이야. 알다시피. 그런데, 이런 작은 마을에서 일하는건 보람이 되질 않아.
너처럼 평화로운걸 기대하고 온 것도 아니었고,
나는 무언가를 지키고 사람들에게서 존경과 경외의 시선을 받고싶었다고.
그리고 승진가도를 걸으면서 이곳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했는데,
주민은 커녕 국가도 신경을 쓰지 않아. 물론  콜린은 천연 요새라고 부를 만큼
지형적으로 유리하기는 하지만, 단연 그것 뿐만은 아냐."



"이 마을의 비밀이 뭔지 아시나요?"


"그래, 알다마다. 모험가라면 다들 이야기를 들으니까. 길드에서 거의 필수 코스라니까.
좆만한 초짜들이 안카숲에 대놓고 기어들어가서 뒤져버리면 결국 수속하는건 길드거든.
주의를 준다는 차원에서 이야기하지만 그래도 결국 누군가는 기어이 안카 숲에서 죽어버리고,
나중에 다른 모험가에 의해 발견되어 돌아오거나,
아니면 길드에서 의뢰하는 신입 모험가 구조 및 탐색 의뢰를 통해 흔적만 발견되곤 하지."


"안카 숲의 이야기가 아니라  콜린 말이에요."

"콜린도 마찬가지야. 안카숲이 낳은 마을이니까.
과거 콜린이라는 마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는
안카숲을 목표로 도전하는 모험가들이 쉴  없이 바로 숲으로 들어갔지.
숲으로 들어가면 뭐해, 나오질 못하는데. 그래서 이 마을이 생긴거야. 알아들어?"

"아, 그럼 이 마을이 생긴건..."


"그래, 모험가들의 허무한 죽음을 막기 위해서 길드에서 파견나온 사람들이 만든 기지에서
발달하고 발달해서 만들어진 마을인거야."


"그렇지만 그건 비밀이라고 하긴 너무 허무한데요..."

"너 그러면 다시 잘 생각해봐. 네가 길드에서 파견나온 직원이라고 생각해보자고.
그러면 너는 모험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일정 수준 이상의 모험가만 숲으로 들어가도록 허가를 내야 해.
그런데 미달인 모험가들도 있을거야. 맞지? 걔들이 씨발 말을 들어? 안들어!
지들 마음대로 기어들어가서 뒤져버리면  책임이라고!
어떤 새끼들은 들어가게 해줄때까지 진을 치고 베이스 캠프를 잡고 드러눕지.
그래서 너는 아지트를 기점으로 모험가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의뢰를 정리해주고,
이들이 최대한 빠르게 성장하도록 도와주기 시작했다고.
그런다고 사람들이 과연 네 말을  들을까?"

"듣도록 해봐야죠."


"병신같은거야 착한거야?"


"저는 사실 누가 죽는건 크게 관심이 없어서요... 애초에 제가 그런 직책을 맡지도 않을거고요.
저 생각보다는 상당히 이기적이거든요."

"오, 씨발... 도대체가 이 마을에는 왜 일반적인 사고방식이 가능한 사람이 없는거야?
아무튼 그런 이유로 마을에는 모험가들의 텐트가 늘어났고, 덕분에 모험가 숙소가 생겨난거야.
수요에 따라 공급은 자연히 생기기 마련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지?"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맥주를 마셨다. 목이 따가운지 잠깐 잔을 멈추더니 헛기침을 하고
목을 쓸어내리고서 내게 묻는다.


"안주는 없어? 햄이나 고기 구운 것?"

"아, 그러게요. 빠른 시일 내에 준비해볼게요."


"그래, 아무튼 그렇게 마을에 숙소가 생기고 나서도 사상자는 계속 나왔어.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유달리 사상자가 많다면 국가에서도 알게되기 마련이지.
그래서 콜린의 마을 외곽, 안카숲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높은 울타리와 감시탑이 생겼어.
나는 그곳을 지키게 된거야.  씨도 마찬가지지.
그러나 그 인력을 그곳으로 투자하는 건 성급했어.
이미 마을은 초기의 그 깨끗한 마을이 아니었으니까."


"네?"


"결국 너같은 놈들이 나왔다는거야. 아니, 너는 그런 일 같은건 안한다고 했나.
어쨌든 뇌물을 받고 사람을 안카숲으로 보내주는 일이 생긴거지.
모험가의 신상정보는 신분증으로 알아낼 수 있으니까 견적을 내기도 쉬웠겠지.
그리고 한  더 떠서, 길드에서 정기적으로 파견을 나오는 기간이 아닐 때는
몰래 모험가의 물건을 강탈하고 강도질을 하다가 그대로 안카숲에 버려버리기도 했지.
그게 밝혀진건 8년 전이야. 이 마을에서는 그런 일이 비일비재했다는 거지.
그래서 결국 국가에서 파견한 보초에게 꼬리가 밟히고, 담당자는 해고당했어.
그리고 길드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콜린에서 발을 떼게 된거지.
그런데,  당시 담당자 혼자서  일을 주도하고 해내기에는 무리가 있잖아.
분명  마을 어딘가에는 그때 강도짓을 하던 살인자가 있어.
그리고, 당시 모험가를 등쳐먹으려고 모인 범죄자들도 존재하고.
국경 수비를 명목으로 우리가 막아내야 하는건 안카숲에서부터 오는 병력이나 괴수가 아니라
안쪽에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사람인거지."

"아, 그래서 빌 씨가..."

내가 이전에 그를 만나러 갔을 때 나를 막아세우고 돌려보낸 것이 생각났다.
나는 차분하게 냉수를 한잔 마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 이 마을은 범죄자들의 마을이야. 아는 놈들이건 모르는 놈들이건,
방관한 놈들이건 강도였건, 결국 확실한건  마을은 조용한게 차라리 나은 마을이라는거지.
좆같은 일이야. 마을을 지키는 것도. 그리고 승진하지 못하는 것도.
아무 것도 모르는 너 같은 놈들도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걸로 이 씨발같은 마을이 정당화되진 않아."


"그게 누군지는 지금도 모르는 건가요?"

"그런거지. 덕분에 나는 이 마을에서 보초를 서는 것보다 밖에서 모험가나 하는게 낫다고 생각한거지.
아, 그리고 추가로 말하면, 빌 씨는 이 마을에 파견된 4번째 보초야.
알아들어? 그 전까지의 보초들은 실종되거나 돌연 은퇴했다는데,
씨발 그런걸 알게뭐야. 개새끼들. 괜히 보고서를 써다 내는게 아니라고.
그건 보초의 생존 증명같은거야. 아마 그건 빌 씨도 알고 있을거고.
그래서 날 내보낸 거겠지."





"그러면 지금 안카숲에 통행이 가능한 모험가는 어느 정도인가요?"


"법적으로 막혔지. 국경인건 사실이니까. 어떤 핑계를 가져다 붙히던 결국 나갈 수는 없어."

"그렇...군요."

"왜, 아쉽냐?"


"네. 조금은요."

"에휴, 병신같은게... 신경 꺼. 그리고 이 마을을 떠나."

"조언은 감사합니다."

"술맛 다 버렸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남은 맥주를 마셔대더니 말했다.

"이제 나도 나가보려고. 내일 아침 일찍 여길 뜰거야.
 그리고, 루나르를 조심해. 왠지 느낌이 좋지 않으니까.
 이장이 부임한 타이밍이나 실적이나...
길드랑 지나치게 가까운 것도 그렇고 마음에 안들어.
너는 나를 사람같이 대해준데 대한 보답이야."

"아, 고맙습니다."


"그리고, 씨발  이름은 해피가 아냐! 캐스빅이라고!"

"기억할게요 해피."

"씨발!"


그렇게 말하고 그는 돈은 내지 않고 잔을 내 앞으로 대충 밀어놓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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