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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화 〉권유 (32/303)



〈 32화 〉권유

"그래서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


내 질문에 제임스는 눈을 꿈뻑이며 대답했다.


"정해진건 아니야. 더 정확히는 내가 내킬때?
여기 젤렌지가 없다는 사실은 알았으니까."

"그래. 젤렌지를 찾길 바랄게."

"젤렌지도 젤렌지긴 한데, 저번에 추천했던 그 꼬마 말인데,
좀 독특하던데?"

"뭐야, 벌써 만난거야?"

"만났다기보단 그쪽에서 찾아오던데."


"아, 걔라면 그럴만도 하지."


그는 혼자 잠시 중얼거리다 내게 말했다.


"그래, 이제 주문을 좀 해야겠는데."

"좋은 생각이야. 거기서 계속 그렇게 앉아있으면 쫒아내려고 했거든."


"차를 내려줘. 진정효과가 있을법한 걸로."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 차를 내리기 시작했다.
왠지 조용한 분위기가 좋았다.
체헤게가 없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체헤게는 아침부터 자기 몸의 진행상황이 궁금하다고 나가버렸기 때문이다.

"그 꼬마는 정말 내가 돌볼 필요가 있어보였어."

그렇게 말을 꺼내는 제임스의 표정은 방금 전까지 웃던 얼굴과는 달리 사뭇 진지했다.

"그런 표정은 말이야, 도저히  나이대의 아이에게서 나올 수 있는게 아냐.
그런 이상한 녀석은 나같이 이상한 녀석이 맡아야 하거든. 물론 에리아 네가 맡아도 되긴 하겠지만
네 성격상 그런 피곤한 일을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마침 그녀석도 따라오겠다고 하니까 다행이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이가 모자라다고 하지 않았나?"

"인생을 재미없게 사는게 재미있게 보내다 망가지는 것보다는 낫지.
나와 같이 지내면서 교회에 물들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아마 그건 알아서 그 꼬마가 선택할 문제겠지."


"그 애가 떠나면서 아쉬워하던게 뭔지 알아?"


"모르지 나야."


"돈도 아니고 집도 아냐. 부모님에게 연락을 하겠다는 말도 더더욱 아니었고.
너의 음료가 마시고 싶다고 하더군. 매일 마시기로 했다고 말이야.
기가 찼어. 아직 철부지 같은 모습도 남아있는 녀석이지 뭐야."


"음...그래. 그래서 데려간다더니 데니스는 왜 없어?"

"아, 그 아이는 정식으로 내일 우리 교회에서 인원을 파견할거니까
그때 아마 주교님이 데려오시겠지. 내가 고집을 부렸거든."


"고집?"


"꼭 데려와야 한다고 졸랐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원래 제일 유치하고 아이같은 법이야."

"아이들의 순수가 사라져도 너는 순수하다는 이야기야?"


"그렇지. 아이들은 자라고 떠나가지만, 나는 계속 순수한 아이들만 바라보잖아."

"그럴  있겠네. 솔직히  성격이 아이들 탓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안하지만.
그래도 일단 개인적으로는 난 네가 마음에 들었어."

"오, 진정해. 아직 나는 마음의 준비가 안됐다고."


"주문하신 차 나왔어요. 드시고 정신 좀 차리세요."


"아, 고마워. 나는 홍차가 좋은데."

"무슨 차를 달라고는 안하셔서 귤차를 내려봤어."

"귤차? 별 차가 다있군. 귤같은 고급 재료를 차내리는데 쓴다고?
그런걸 마실 정도로 돈이 많지는 않은데. 일부러 비싼걸 준거야?"

"글쎄, 적당히 알아서 추스려 받을테니까 돈은 신경끄고 마시기나 해."


그가 잔을 홀짝이고 말했다.


"좋긴 한데 내 타입은 아니네. 앞으로는 홍차로 부탁할게."

"홍차를 주문이라도 하고 그런 소리를 해야 나도 받아줄 수 있지.
주문 한적 없었잖아?"

"정확히는 여기 온 적이 잘 없지."

"어휴."

그는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놓고도 기어이 귤차를 비웠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수염 주변을 닦아냈다.
살짝 시계를 확인하고는 헤진 옷감을 만지작거리다가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나랑 같이 유레크로스로 가자."


"유레크로스?"

"가게는 내가 다시 낼  있도록 도와주지. 유레크로스에서 카페를 하는게  낫지 않겠어?
손님도 늘어날 거고, 가게 규모도 더 커질거고."


"미안하지만 거절하지. 이곳에 자리잡은지 얼마 안되었거든.
그리고 사람이 많이 몰리길 바라면서 카페를  것도 아니고.
 이대로가 좋아. 손님은 이 테이블 좌석 수 이상 몰리면 피곤하거든."


"그런 고급 재료를 들여놓고 돈에 관심이 없다...  잘 이해가 안되는데."

"나도 널 이해하지 못하고 너도 날 이해하지 못해.
다른 사람을 대한다는건 그런거야."


"그래. 그렇겠지. 뭐랄까 갑자기  어색한 것 같은 느낌이야."


"나는 너한테 서운하다거나 하는 점은 없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내가 생각나면 가끔 들르도록 해. 내가 멋대로 이사가고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교회측에는 내가 따로 말해둘게."

"뭘? 나를?"

"어. 교회에서는 매년 신입 사제나 성기사, 그리고 축복을 바라는 모험가를 받아.
그리고 그들을 교회의 입김이 닿은 곳에서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해주지.
그 지원된 가게는 교회에서 가호를 그어주고 정기적으로 구호금을 보내주지."


"제발 부탁인데 그런 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미 사업자 조합에 소속되기도 했고,
내가 교회의 지원을 받는다? 그런건 상상해본적도 없어. 속이 뒤틀린다고."


"아, 교회를 싫어했던가. 그래. 알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빈 잔에 새로 14호 TAG를 만들었다.
소다를 섞어 탄산이 올라오는 푸른 액체를 가볍게 저어 그에게 내밀었다.

"자. 마셔."


"뭐야 이게?"


그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서 잔을 받아들었다.


"데니스가 좋아하는 음료의 정체야. 돈은 안받을게."

"단걸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어으, 단내가 진동을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그는 괜히 한번 호들갑을 부리고는 혀끝을 살짝 댄다.
워낙에 조금 마셔서인지 큰 효과가 없었다.
그는 포션의 효과를 짐작하지 못하고 간단히 킁킁대다가 말했다.

"음, 그래. 뭐 이렇게 단걸 좋아한다니. 아이는 아이라 그런가.
좀 어울리진 않는데. 아이에게 단게 어울리지 않는다니 나도 말하면서 어색하네."

"마시고 계속 그렇게 말해보지 그래."


그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꾸하더니 벌컥벌컥 잔을 들이켰다.
들이키던 중간부터는 다 쏟아버렸지만. 아마 처음 마시는 포션의 효과가 이런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하고
마시던 중에 당황하고 목으로 음료를 넘기는 일이 멈춘 것이다.
몸의 감각이 예민해지고 시간이 더디게 흐른다고 착각하게 되면 마치 독한 술에 취한 것 같은 감각과
역겨울 정도로 단 향이 올라오는음료는 그에게 더이상 넘길 수 없는 액체가 된다.
자기 몸이 스스로 제어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처음이라면 숨이 턱 막힌다고 느낄 수도 있다.

"쿨럭 쿨럭! 뭐야 이ㄱ..콜록...! 쿠억 컥!!"

"하하하!! 진짜 바보같은 표정."

"웃기도 하는구나."

"네 얼굴을 스스로 봤다면 내가 얼마나 자제심이 좋은지 알게 될걸."


"그렇게 까지 말한다니 못보길 다행이네."


그렇게 말하고 그는 이미 푸른 빛으로 물든 옷을 손으로 탁탁 쳐 물기를 떨구며
급하게 귤차를 마셔댄다.


"어으... 술이야 이거?"

"비슷해."


"그게 다야?  음료에 대한 설명은?"

"네. 그걸로 끝이네요."


"이럴 떄만 가게 주인이야?"

"..."


귤차도 급하게 마시다가 목에 걸린건지 그는 계속 쿨럭거린다.
한참을 쿨럭이다 화장실로 달려가 토악질을 하며 속에 있던 음료를 게워댄다.


"우엑..! 우웨에엑!!!"

"가지가지 한다 정말..."

한참 뒤에 그는 물로 세수를 하고 입을  번씩이나 헹구고 돌아와서 말했다.

"아까 한 말은 전면적으로 취소야. 이런 위험한걸 파는 가게를 추천할 수야 없지."

"종종 오신다면서요?"


"어으...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네."


"그래, 그 애가 좋아하는 음료야. 정신이 좀 들어?"


"대체 걔는 어떻게 되어먹은 꼬마야? 정신이 없는데."


"글쎄."


그는 자리를 겨우 잡고 다시 앉았다.
그가 턱을 괴고 얼굴을 숙인채로 한숨을 뱉는다.
만감이 담긴 것 같은 표정에 나는 별 말을 하지 않고 그에게 맹물을 건넸다.

그는 손가락을 넣어보고 나서 그걸 혀에 대더니 그제서야 내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여러번에 나눠 물을 마셔댔다. 꼴깍이는 소리가 들릴 뿐인 조용한 가게에서
그의 추태를 기억하는 것도 나 뿐이다.


"이런 충격은 어릴때 잡은 패패루가  목 너머로 도망간 이후 처음이야."

"패패루를 먹었어?"

"먹은게 아니야. 그 녀석이 들어간거지."

"녀석도 자기가 식용이라는걸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네."

"식용이라고 해도 그렇게 훅 넘어가버리면 정말 사람 죽을 수도 있겠더라고.
그녀석이  목을 마구 걷어차고 다닌 그 감각을 이런데서 느낄 줄은 몰랐다고.
그 맛있는 녀석에 죽었다가는 동네방네 소문났을거야."

"패패루는 왜 잡으려고 한건데?"

"왜긴, 당연히 삶아먹으려고 했지. 패패루는 그 당시  주식이었다고."

"빵이나 밀은 어디다 두고 그런걸 먹은거야..."


"그만큼 잡아 먹었다는 소리지. 물론 그 사건 이후로 피터에게 엄청 혼나고 그만뒀지만."


"피터?"

"주교님. 내 스승이시지."

"교회야 학교야? 뭐가 그렇게 대대로 전해내려오는 교육열에 제자사랑이야?"


"교회의 기술과 축사, 그리고 비밀들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전해져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상당히 중요한 일이라고."

"그래서, 너는 뭘 배웠는데?"


"나는 이래뵈도 엘리트야.  밑으로 제자가 늘어섰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모르겠어?"

"이게 엘리트가 맞는거야? 완전히 한량같다고. 그 위대하신 교회의 기술들과 교육이
모두 자유라는 이념 밑에 박힌 것 같은데 아니, 방종인가?"


"방종이든 자유든 상관 없어. 나는 그걸 익혔고, 어기지 않았다는게 중요하지.
그리고 한량이라는 말은 지겹다고. 피터가 늘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해댔으니까."

"그러면 바뀌어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잖아. 왜 바뀌려고 하지 않는거야?"

"그게 나로 존재하는 방법이니까. 남에게 나를 맞추려고 하면 안되는거야."

"남에게... 나를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맞추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면...그러면 도태될거라고! 다들 널 지나쳐 나아갈텐데!!!"

"뭐 어때, 나 혼자 이 자리를 지키는거지."


"지킨다는게 말처럼 그렇게 쉬운게 아냐! 혼자 남는다고.
결국 잊혀지고 버려져야 할거고, 나중에는 그게 편하다고 느껴져.
잊혀지기 위한 관계를 구축하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나 해?"

"잊혀지기 위한 관계라는건 없어. 과연 잊혀진 걸까 아니면 잊고싶은걸까.
정말 잊어버린게 맞는거야? 아니면 그냥 잊은 척 한 걸수도 있지."

"...."


"그리고 결국, 내 시대의 무언가가 내 옆에 남아주겠지.
내 삶은 그렇게 증명될거야."


마르커스의 오래된 앤틱의 기계가 생각났다.
다른 기계와는 다른 투박하고 낡은  공정의 철골들과 톱니.
삐걱이며 기름을 맞아가는 그 파이프의 증기기관이.
내게는 한없이 최신의 기술이던 그 집약체가...

"잊어줬으면 싶은 관계는 어떻게 하려고..."

"네가 잊고싶은 관계는 잊어버리면 돼. 다만 그건 개인마다 다르니까.
누군가는 그것도 끝까지 기억해주지 않을까."


"기억해준다고?"

"그래. 누군가는 아마 죽을 때까지 기억해주겠지. 아마 상대가 그렇게 자기를 생각했다는 것도."

"그래... 이 불쾌한 기분은 역시.... 난 교회가 싫어. 성직자는 질색이야."


"내가 너무 주제넘었나봐. 미안 미안. 하하..."

"....."

"너....울어...?"


"아니..."


"그래, 보아하니 나는 이쯤 퇴장하는게 맞아보이네.
미안했어."

그렇게 말하고 그는 다 찢어진 외투 안주머니에서 봉투를 내려놓았다.
짤그랑 소리와 함께 금화와 페킷들이 흘러나온다.

"됐어. 안받아. 가져가."

"왜...? 아냐... 받아줘..."

"가져가. 두번 말 안해. 그리고, 다음번에는..."

"다음번에는?"

"옷 정도는 제대로 입고 와. 하하.."


내 표정을 보고 그는 어색한듯 잠시 서 있다가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그래! 다시 올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가 가게를 나가고 나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유난히 목이 더 쓰려오는  같았다.
삼킨 침에서는 피맛이 난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그가 두고 간 잔을 싱크대에 넣어두고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걸레를 가지고 와 빨기 시작했다.
원래라면 체헤게가 했을 일이었지만 지금 이 곳에는  뿐이었다.
아무도 없는 이 빈 공간에 빨려들어가듯 나는 그렇게 걸레를 들었다.
제임스가 토해놓은 음료를 걸레로 닦아내면서 나는 어색하게 단 그 14호TAG의
톡 쏘는 탄산향을 맡으며 말없는 한숨을 쉬었다.
왠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눈물이라도 나왔다면 좀 나았을까.
먹먹한 가슴이 무거웠고 몇 번이나 손은 갈 길을 잃고 멈췄다.
간단한 일인데, 그저 앞뒤로 손을 움직이면 될 뿐인데.

"이 마을에 오고 나서 되는게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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