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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모험가들 (33/303)



〈 33화 〉모험가들

하루가 그렇게 흐르고, 데니스가 사라지고 가게에 오는 손님은 마르커스나 헬렌, 종종 모리티와 로라 정도였다.
이날의 마르커스는 다소 흥분한 표정을 하고 문을 열었다.


"에리아. 완성했소."

"아, 로봇 말이군요."


"그렇다네. 다만 조금 무거워 들고 오질 못했구려. 지금 완성한 로봇의 회로는
기본적으로 동력이 크랭크에 의한 관절에 치중되어 있소만, 원한다면 고치시게."

"그건 흥미롭네요. 같이 가도 될까요?"

나는 연구실에 들어가 연금술로 금화를 만들어내 주머니에 한껏 챙겨넣고
그를 따라 길을 나섰다.
그의 공방까지 가는 길에 체헤게는 이미 들떠 옆에서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그건 그의 새로운 육체에 대한 흥분이었으리라.


마침내 내가 공방에 발을 디뎠을 때, 그 커다란 머신은 말 그대로 거대한 골렘 그 자체의
상당히 단단해보이는 골렘이었다. 전선따위 존재하지도 않는 것으로 보이는 그 기계는
말 그대로 크랭크와 증기를 배출하는 머플러, 철골속에 가려진 피스톤과 실린더,
인간의 등, 척추의 위치를 크게 지탱하며 매끈하게 광칠이  엔진.

"하하! 도무지 들고 다닐 수가 없어서 말이야!"

"이게...무슨..."

"보게! V형 16기통 피스톤엔진으로 만들었지! 전신에 에너지를 공급하기에는 과도하게 강력한 엔진이라오!
그리고 이게 페마르로 만든 자신작이지! 고열에도 버티는 데다가 강도도 장난아니라네.
덕분에 상당히 비용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이건  자존심과 같은 녀석이었으니까!
연료 효율은 후배들의 도움을 받았다네! 전추석을 박았거든!"


"전추석이요?"


"그렇지! 구하는데 애좀 먹었더랬소!"


"전추석...은 뭐죠?"

"아! 모르는건가! 지속적으로 주변에 전력을 방출하는 돌일세.
이게 있으면 기름을 먹이면 스스로 불에 탄다네. 영구적으로 말일세.
기름에 불이 붙으면 그게 전추석에 옮겨붙고, 그 불이 꺼지지 않는단 말일세.
무한동력 기관으로 각광받는 기계에는 모두 들어가지."

"그런걸 여기다 쓰셔도 되나요?"

"아아. 내 마지막 작품이니 말이야."


"마지막이요?"

"쿨럭... 그렇다네. 허허... 어저께 이 로봇을 만들다가 쓰러져 서지스의 병원에 다녀왔었소.
의사가 말하길 내 폐가 이미 많이 죽었다더군. 잦은 흡연과 매연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다고 하더이다.
허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네. 내 건강은 말이야. 결국 나도 느끼고 말았다오.
이게 마지막이라는걸. 젊었을 때는 더 많은 것들을 만들고는 했었는데...
이제는 정말 기술자로서 마르커스는 죽은게지. 하하..."

그는 그렇게 기름때가 묻은 장갑으로 눈물을 닦았다.
눈가에 검은 기름이 묻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  같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조금  열심히 만들어볼걸. 조금 더 많이 만들어볼걸...
혼자 방에 누웠는데 손이 떨리더군. 내 모든 것들을 거기 두고 온  같았소.
이제 그 로봇에 담았다고 해야겠지. 이런 작품을 만들게 해 주어 고맙소 에리아."

그가 내게 로봇을 소개하며 한 발짝 옆으로 자리를 피했다.

"헬렌...그 아이에게는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려."

"그럴게요."

그가 렌치를 빙빙 돌리면서 말했다.

"그래서, 로봇은 마음에 드시오?"


"이런게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죠. 감사해요. 정말 천년동안은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천년? 하하하!! 빈말이라도 고맙군. 가져가시오. 손 볼 곳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해주시게."


나는 그 누운 거인에게 다가갔다. 철판 하나도 덧대지 않은 오로지 필요에 의한 기능과 필요에 의한 디자인으로 이루어진
철골과 피스톤의 거인의 엔진부분을 바라보며 나는 옆에 있던 못으로 손가락을 찔러 피를 냈다.
물론 마르커스가 보지 못하도록 각도를 잘 돌려야 했다. 물론 그는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내가 이런 사라진 기술을 사용한다는걸 그가 아는 것과 눈 앞에서 직접 보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는 엔진의 중심에, 더 정확히는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을 그곳에 영혼 회로를 다시 그렸다.
 몸에 이어지는 철골이 회로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하며 내 피로 그린 영혼 회로에 체헤게를 밀어넣고
못으로 내 손을 찔렀다. 주르륵 흐르는 피가 순식간에 고여갔다.
전추석이 들어있다는 그 부분에 내 피를 모아 부었다.
피는 곧 영혼이다. 영혼은 곧 정보와 기억이다. 주술사들은 모두 맨 처음 그걸 배운다.

 피를 매개로 타오르는 불을 보면서 나는 마르커스의 장인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손은 어느새 찔린 적이 없다는  처럼 아물어있었다.
마르커스가 눈치채지도 못한 사이에 일은 끝이 났다.

[새로운 몸의 소감이 어때?]

[이건... 움직이기는 조금 어렵긴 하군.]


[원래 돌덩이일 때는 구동회로로 작동하던 거였으니까 제약이 없었지.
지금은 그 크랭크에 의지해야 하잖아? 만약에  엔진이 꺼지면
너는 그냥 고철덩이가 되고말걸.]

[전문가께서 심혈을 기울여 주셨는데 그런 싸구려는 아니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서 나는 적당히 웃어보였다.


"마르커스, 궁금한게 몇가지 있는데요."

그 말에 잠깐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무엇이든."

"만약 이 로봇이 고장난다면 어디서 수리를 받으면 되죠?"

"어... 그건... 이 마을에서는 불가능할게요. 아마 이제 이런 옛 기술을 기억하는 이는 없으니까.
아마  대도시로 가시거나, 대장간을 찾아가야겠지. 대장간은 기술의 종파와 세대를 나누는 곳이니까."

"종파와 세대라구요?"


"그렇소이다. 대장간의 종파라는 것은 아시오? 그게 먼저일  같은데."

"아뇨, 몰라요."


"그렇군. 기술에는 종파가 있소. 간단히 말해 나처럼 기계를 다루는 것은 기계파,
칼이나 곡괭이와 같은 도구를 위주로 다루는 땜장이파, 그리고 전선이나 전류를 위주로 다루는 회로파가 있소."

"세 종류라는 거군요."


"그렇소이다. 각 종파에는 수장이 있고, 이들은 일평생 대장간에서 자란 자들 중 제일 실력이 좋은 자에게 전승된다오.
수장은 대장간을 떠나지 못하는 대신 새로운 대장간의 신입을 받고, 대장간의 최고위 권력자로서 존재하는거요.
그리고 이제 각 종파에서 그 시대에서 최고라고 불리는 기술을 주로 가르치고,
모든 기술을 거대한 책에 기록해놓소. 그 연도를 나눠놓은 것을 세대로 구별한다오."

"1세대 기계파 기술 같은식인가요?"


"그렇지. 참고로 1세대 기계파 기술은 땜장이파와 계를 같이하오,
차차 분화되었다는 거지."

"그렇군요."

"그래서 대장간에는 모든 종파와 세대의 전문가가 쉬지 않고 양산되고 있다오.
잊혀진 기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거기서 나오는게지."


체헤게가 들어간 로봇은 주먹을 쥐다펴다를 반복하며 몸을 다루고 있었다.
마르커스는 당연하게도 신기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내 작품이 이렇게 움직이는걸 보게 된다니...그래, 이부분이 어려웠지. 절전식 작동..."

"절전식이요?"

"최신 기계라면 몰라도 구식 기계에게 절전이라는 기능은 생소하잖은가?
그래서 구동중일때는 엔진이 생산하는 에너지를 온전히 쓸 수 있다지만,
멈춰있을때도 피스톤은 계속해서 에너지를 뽑아낸단 말이지.
그러면 실린더를 통해 무언가는 움직여줘야  로봇이 가만히 있을 수 있는거요.
게다가 그걸 자네를 믿고 전부 자율구동으로 만들어놓았으니, 잉여 에너지를 소모하지 못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망가질거라는 이야기였소. 그래서 임의로 클러치를 만들어두기도 했고,
 잔여 에너지를 끊임없이 배출하는 머플러를 둔거요."

"어렵네요."


"잘은 몰라도 괜찮다네. 결국 자동차와 비슷한 거니까."

[내 대신 감사인사를 좀 전해줫으면 좋겠는데.]

"이 로봇도 고맙다네요."

"허허... 로봇에게 감사인사를 듣는건 처음이군."

나는 그에게 금화를 건넸다. 챙겨온 금화를 줄세워보니 대략 7에서 8닢 정도 되는 금화였다.
그는 손사래를 치며 돈을 거부하다 마지못한다는 눈빛을 하고 돈을 받았다.
그에게 이제까지의 돈과 앞으로의 돈은  의미가 달랐기 때문일거라는 생각도 든다.

"아, 그런데 에리아 그거 들었나?"

"어떤 걸요?"

"마을 밖에 돌아다니던 테러보어가 죽었다는군."

"네..?"

"이 마을에 존재하지 않았던 테러보어가 출몰하면서 주민들도 상당히 두려워했는데,
오늘 확인해보니 테러보어가 죽어있다고 하더군. 누군가가 죽여서 땅 밑에 박아놓은 모양일세.
머리에 말뚝을 맞았다던데, 고작 그걸로 죽은 것 같지는 않지만,
그게 아니라면 녀석을 죽여 땅에 묻은 방법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다들 그 모험가의 행방을 찾고 있다는 모양이네. 확실히... 찾아내면 감사라도 할 아량들인가 모르지."


"마을 사람들은 마을 밖으로는 나가지 않는 것 아니었나요?"

"대개 그렇기는 한데, 나무꾼이나 채집가들도 나가지 못하게 하면 큰 일 아닌가.
보통 불상사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 감시병이 따라 붙거나 한다네."


"그건 처음 알았네요."

위험할 뻔 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내가 테러보어를 죽이는 장면을 보았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이제서야 알려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숲의 그 안개를 뜷고 나를 보는게 더 대단하리라고 스스로의 머리속에서 반박을 한다.


"우선은 테러보어를 불태울 생각인 것 같더군. 다른 짐승이 그런걸 주워먹었다간...
생각도 하기 싫군. 그리고 다시 모험가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하려는 모양이네.
루나르씨는 이런 일에는 전문이니까. "


"루나르씨요..."


"암. 그분은 늘 도전을 장려하고 마을의 부흥을 위해 무엇이든 하시는 분이니까.
그러고 나면 이 마을의 경제도 조금은 더 살아나겠지."


"모험가 출신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아,  첼겔 형제 말인가?"

"네."

[첼겔? 그렇게 들으니 뭔가 불쾌하군.]

[네 이야기 아냐. 신경 꺼.]


"그 자들은 정식으로 모험가 길드에 돌아가려는  같더군. 이 마을에 사람을 모아 오겠다고 말하며 돌아갔소.
그들에게 루나르씨가 나름대로 건 기대가 큰  같던데."


기대가 클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게 사실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어딘지 모를 불길함도 존재했다.
나는 체헤게를 데리고 가게로 돌아왔다. 마르커스의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한결같았다.
로봇과 마을과 나. 그는 이번일을 마지막으로 은퇴한다고 말하며 새 일거리를 알아보겠다고 말했다.
카페에는  명의 손님이 더 찾아왔지만  수확은 없었고 오늘은 맥주도 채워두지 않아서 밤에 술집을 열지도 못했다.


월요일 아침은 조금 더 떠들썩한 소리가 들렸다.
이층집의 방에서도 들릴 정도의 소리에 나는 잠을 설쳤음에도 눈을 떴다.
 왁자지껄한 소리에 옷을 갈아입고 아래로 내려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마을 주변을 서성였다.
나는 그런 그들을 넘길 수 없음을 느꼈다.
내가 문을 닫아도 이들은 어떻게든 이 공간의 주도권을 잡으려고 할 것이다.

내가 준비를 마치고 문을 열기까지 30분이 채 안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사람은 줄어들지 않았고 문을 열자마자 우르르 몰려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고작 넷 앉으면 가득차는 작은 가게에 왜 이렇게나 사람이 몰린 걸지 알  없었다.
그러나 곧, 아주 금방  해답은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 커피 둘!"
"커피가 한둘이냐 병신아!!"
"여기 헬라레소 술 빼고!"
"그게 에스프레소지 병신 머저리야!"
"여기도 에스테리카 시럽 가득 넣어서 얼음 빼고!"

이들은 모험가였다.
숲 외곽에 본디 있던 카페보다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파는 우리 가게에서
쉬었다 가려고 하는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슬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연구실에 가득히 쌓인 포션들을 생각했다.


드디어 내게 모르모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좋다. 마음껏 마셔라. 그리고 숲으로 들어가라. 죽던 살던 부딫혀서 결과를 도출해라.
그것이  마음이 내게 말한 것이었다.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속도에 맞추지 못하는 점원은 생각보다 아주 바빠져야 했다.
그 짬짬이 포션을 섞는다는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결국 나는 포션이 재료로 들어가는 커피음료를 메뉴판에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고 서빙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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