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소문
그들 중 상당수는 오늘의 메뉴에 흥미를 보였다.
모험가들은 각자의 특기분야를 말하면서 길드에서 지정해준 클래스를 읊조려대며
얼마나 자신이 위대한지를 내게 설명했다.
고작 자리는 넷 뿐인 테이블이지만 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행복함을 담아서인지,
혹은 그들이 마신 오늘의 음료의 평이 좋아서였는지, 우리 가게는 점차 북적이게 되었다.
줄을 서는 날도 있었고, 언제는 또 손님이 빌때를 노려 찾아 오는 사람도 있었다.
모험가들이 우리 가게를 찾은지도 벌써 4일차가 되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가게의 분위기를 보고 찾아오더니 점차 내게 포션을 사가기 시작했다.
내가 판매하는 오늘의 메뉴를 보고 일부러 그걸 주문한 후에 벌컥대며 들이키고는 플라시보 효과를 느끼기라도 하는 건지
안카숲으로 뛰어들었다.
이 모든 것이 어쩌다 잡힌 테러보어의 사체가 불러온 나비효과였다.
사람들은 테러보어를 잡은 모험가를 찾으려고 했으나 그런건 존재할리 없었고
죽은 테러보어의 발치에서 나온 내 부러진 칼 만이 용사의 유물이라며
마을 회관에 전시되었다. 그게 주술용 검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적었고
다들 그걸 용사는 마땅히 무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이런 작은 검으로 테러보어를 무찔렀다는
이야기를 하며 와전시키기 시작했다.
결국 국경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존재하던 감시병들에게도 몇십년 만에 새로 지령이 내려온 것 같았다.
그들은 다시 안카숲으로 가는 길목을 개방했다.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개방한다는 한정적인 조건 하에서 말이다.
사람들을 검사하고 자질이 보이는 모험가를 대상으로 표를 끊어주었으며,
자격이 없는 자를 무력으로 막아섰으며, 명부를 작성해 그들 모두의 입장과 퇴장을 꼼꼼히 관리했다.
또한 헤메지 않게 하기 위해 술에 산책로를 다시 냈으며, 울타리를 심어
그곳으로 로프를 묶었다.
제아무리 환각마법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더라도 줄만 잡으면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험가들은 그 줄을 생명선이라고 부르며 그 줄에 긴 특제 수갑을 걸어야 했다.
한 쪽은 자신의 팔에, 다른 한 쪽은 줄에 묶어두고 마을 외곽을 돌아다녔고
이는 부가적으로 허가된 구역 외의 자연환경을 온존하는 효과도 있었다.
아무도 그 수갑을 스스로 풀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성공적인 마케팅이라고 할 법 했다.
게다가 입소문이 퍼져버린 나의 카페는 다른 곳에서는 팔지 않는 이색 음료로 관광 상품을 파는 명소가 되었고
그건 내게 있어 또 다른 부담이었다. 덕분에 가게는 흥하기는 했지만.
사업자 조합에서도 뜻밖의 호황에 가게를 찾아왔었다.
결국 그 3일만에 난 또 평화를 잃어버린 것이다.
대다수의 여행자는 결국 이전에 존재했던 그 카페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나 명백한 차이가 있었는데, 이전에는 콜린의 카페는 그곳 하나라는 인식을 가졌던 사람들이
지금은 '그 작은 카페가 인기가 많으니, 대체재로 가는 곳' 이 된 것이다.
결국 우리 가게의 협소한 공간 때문에 수입을 유지할 수 있었던 콜린 카페의 점장역시 내게 직접적으로 말을 얹지는 않았다.
결국 가게에서 번호표를 발행하고 나서는 체헤게가 주로 그 업무를 맡아 했다.
이상하게 생긴 거대한 앤틱 로봇과 함께 운영되는 이상한 음료를 파는 저렴하고
맛있는 카페라는 이 괴상한 타이틀은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헬렌은 아침마다 우리 가게를 찾았다가 발걸음을 돌리고 돌아가야 했다.
"언니! 나 또왔다고!"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모험가에게 카페가 인기를 얻은 후로 매일 우리 카페에 오는 남자,
"여기 늘 마시던 시럽잔뜩 헬라레소!"
이렇게 말하는 젊은 궁병은 매운걸 못 마시는 주제에 허세가 들어차서 헬라레소를 주문하고
날마다 시럽을 커피만큼 넣는 사람.
일을 하면 모르고 싶어도 기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골도 생겨났고 말이다. 일부는 순서를 몇 번이나 조율하며 일부러 밤 시간에 찾아와
카페가 아닌 바를 이용하려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 결과 테이블 좌석은 20분 이상 차지하지 못하도록 바뀌었다.
나는 정한 적이 없었던 룰이지만 모험가들 스스로가 공익을 위해 합의한 듯 하다.
결국 나는 편안해진 업무 환경에서 그들의 푸닥거리를 들어주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나는 이 가게 커피가 참 좋아. 그리고 저기 일하는 저 강철 기계는 더 좋지."
[난 사내새끼들이 싫다. 저리 꺼져.]
대답할 수도 없는 체헤게가 열심히 그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아가씨, 여기서 산지 몇 년 됐어?"
"한달도 채 안됐어요."
"그렇구나아... 혹시 애인 있어?"
"아뇨."
"그래? 혹시 5급 모험가 좋아해? 난 여기 애들이랑은 달라.
길드내 공인 클래스도 검사랑 창기사. 무려 두가지 클래스라고.
이런 어중이 떠중이들이랑 다르게 난 파티도 필요 없고."
"저희 가게는 그런 어중이 떠중이들이 쉬어가는 공간이에요."
"아, 내가 실수했네. 미안해. 너무 까칠하게 굴지 말라고."
대개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대화는 체헤게가 손님을 저지하고
내가 냉수를 한 잔 가져다 주는 것으로 끝이났다.
그러고 나면 나에게 차였다며 그 근처에 있던 모험가들이 비웃고는 했다.
늘 그런 식이었다.
결국 지쳐버린 나는 그들에게 강함의 척도와 관계없이 나는 여러분에게 흥미가 없다고 해야 했고
그것은 또 소문으로 퍼져갔다.
그러나 소문이라는 것이 원체 그렇듯 이는 와전되었고
결국 나는 아주 강한 모험가 출신이었으며, 자신보다 강한자만 받아준다는 이상한 흐름이 되었다.
내가 매번 부정했지만 그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쪽으로만 들었고
믿고 싶지 않은 부분은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지워갔다.
이전의 마녀사냥도 이런 식으로 시작했었다.
그런 면에 비해서는 그냥 과도한 애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편하기는 했다.
대부분의 모험가는 검이나 창, 도끼, 방패를 주로 다루는 구시대적 모험가였다.
그러나 종종 총이나 포, 교회에서 파견된 성직자 등의 클래스도 나타났는데,
이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클래스를 배척하고 선민의식을 품고 있었다.
아마 모험가도 클래스 사이에서 골이 깊었던 모양이다.
"하여튼 저 총잽이 새끼들은 로망이 없어."
"병신들. 너희는 기술이 발전하면 따라갈 생각을 해야지. 로망에 목숨을 쳐걸어?"
이들은 티격대면서도 가게 내에서는 직접적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종종 콜린 거리에서는 이들의 싸움이 목격되었고,
피떡이 된 채로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쥐고 쓰러지는 인물도 등장했다.
그러나 사상자라고 부를 정도의 피해는 등장하지 않았다.
모험가들과 함꼐 섞여들어온 성제라는 인물이 그 저지선이었다.
그들은 성제가 나타나면 스스로 분쟁을 멈추고 흩어졌다.
그리고 성제는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성제에 대한 소문만은 무성했지만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카페에 손님으로 받은 적도 없었다.
그래서 나 역시도 그 성제라는 인물에 관심이 생기기도 했다.
"성제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가 커피를 서빙하며 그렇게 물으면 앞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던 사람이 말했다.
"아, 성제님을 몰라? 하긴. 이 마을은 조용하니까. 성제님은 1급 모험가 출신이신 분이지.
국가에서 장군으로 임명하려고 한 것을 거절하고 혈혈단신으로 싸우시는 분이지.
쌍검을 정말 잘 다루신다고 하던데."
"성제가 이름인가요?"
"이름일리가 있겠어? 그냥 칭호지. 원래는 검성제였다는 것 같던데,
결국 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정말 실력자라고 하면서 검이라는 수식어가 빠졌지.
성격도 고고하다고 들었는데."
"만난 적은 없으세요?"
"나도 만났으면 좋겠는데. 이 마을 어딘가에 계신다는데 들어봤어야 말이지."
"그렇군요. 대답 고마워요. 이건 서비스에요."
내가 그에게 차를 건네주면 그는 우효옷 하는 이상한 감탄사를 연발하며 차를 마셨다.
[체헤게, 이걸로 몇 명째야?]
[오늘 온 손님 말이냐? 67명째다. 내가 지금 든 번호표가 243번이니까
앞으로 176명 더 남았다.]
[오늘 안에 다 못 받아!]
[나도 안다. 가게 마감하기 전까지 알아서 인원을 빼고, 그러고도 못 들어가는 사람들은
별 수 없이 다음날을 노린다더군.]
[어으... 피곤한데, 저 사람들도 피곤하겠네.]
[걱정 마라. 저들은 다른 곳에서 쉬다가 시간이 되면 걸어올 뿐이니까.
그리고 결번된 경우에 2분안에 오지 않으면 그 자리는 다음 사람에게 넘어간다더군.]
[뭐야? 우리 가게 주인이 대체 누구야?]
[내가 보기에는 저들이 너보다 일을 잘 하는 것 같다.]
[그래, 물 들어올때 노 저으라고 했지.]
로테이션은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상당히 깔끔하게 돌아갔다.
어차피 가게 바닥은 가게를 닫고 나서 체헤게가 닦아주니 상관 없었고
나는 테이블 위만 가볍게 닦는 정도였다.
그래도 손님들은 가게에서 매너를 유지했고
스스로가 자정작용을 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더욱 황당했다.
"성제가 이 카페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게 대답이었다.
성제가 좋아하는 가게이기 때문에 그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데
문제를 일으키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험가들 사이에서는 그 성제라는 사람이 테러보어를 잡았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그래서 나도 적당히 맞춰주고 포기하기로 했다.
내가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굳이 부정하고 피곤해지는 것보다야 나으니까.
그리고 꼭 가게를 예약식으로 바꾸던가 해야지...
이대로 줄을 세워놓으면 나도 기분이 좋지 않으니 말이다.
오늘의 메뉴로 선정한 음료는 TLA770A라고 하는 것이었다.
모험가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의 수요에 맞춘 포션이 각광받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피로를 느끼지 않게 해주며, 혈압을 1시간 정도 높여주는 포션이다.
이것이 모험가들의 원픽이었다.
어떤 모험을 하고 조금 무리하더라도 성과를 보게 만들어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냥 보기에도 후끈후끈 달아오르는 얼굴이 전투적이어서 마시지 않은 이들도
내 포션에 흥미를 가지게 하는 홍보효과도 있었다.
이제 효과가 충분히 검증되었음에도 찾는 이가 워낙 많으니 다른 포션을 내기가 껄끄러워질 정도다.
그래서 결국 일주일중에 한번은 반드시 이 메뉴를 내겠다고 타협을 보았고
그날은 아침부터 득시글거리는 손님의 줄을 볼 수 있었다.
결국 가게에서 커피를 제일 많이 마시는 사람이 내가 되었다는 아이러니가
내게 피곤함을 선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