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성제
결국 나는 저녁때까지 쉬지 못하고 많은 손님을 받아야만 했다.
소수 정예라는 말이 꼭 맞을 것 같은 손님들이 찾아왔다.
긴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우리 카페에 올리 없었으니까.
그들을 상대하다 보면 생각보다 익숙하지 않은 일도 많이 일어났다.
오후에 배정받은 사람이 오전에 안카 숲에 들어갔다 오면서 상처를 입고
다친 다리를 질질 끌며 찾아오는 경우는 더욱 그랬다고 할 수 있겠다.
"아, 신경쓰지 마세요."
그렇게 대답하는 그의 얼굴은 전혀 괜찮지 않았다.
차라리 집에서 쉬는게 나아 보이는 그에게 진통제를 섞은 포션을 서비스로 주고,
병원을 찾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고통을 잊게 할 수 있을 독주를 따로 조금 포장해주면
그는 컵을 받아들고 내게 말했다.
"듣던대로 친절하시네요."
"듣던대로요?"
"네. 이 카페 상당히 유명해졌으니까요."
유명. 그 말이 괜히 걸렸다.
그 뒤로 내가 어떤 표정으로 일했는지 모르겠다.
가게의 사람이 하나 둘 떠나가고 시간이 지나서, 열 한시를 조금 지나려고 하는 시간,
가게 문을 노크하는 소리에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체헤게를 불렀다.
[적당히 돌려보내.]
[그러지.]
체헤게가 영업이 끝났다는 의미로 팻말을 돌려놓자 그 노크 소리는 멈췄다.
그러나 아무 말 없이 문 앞에서 떠나지 않는 그를 보고 체헤게가 다시 문을 열었다.
문을 열면 그는 체헤게가 아닌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들어가도 될까요?"
"영업 끝났어요."
"그렇습니까. 잠시 시간을 좀 내 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국왕이 와도 안돼요."
그 말에 그가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괜히 그가 뱉은 한숨이 내게 들리지 않았다면 내가 그를 들여보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들어버린걸.
[후우, 들어오시라고 해.]
그 말에 체헤게가 다시 문을 열고 그를 따라갔다.
잠시 기다리면 그는 문을 가리키며 손님에게 오픈으로 바뀐 팻말을 보여준다.
그러나 눈치가 없는건지 멀뚱히 서서 의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 남자에게
체헤게는 상당히 답답한지 직접 팻말을 손으로 몇번이나 뒤집어보이다가 오픈으로 내려놓고 그를 가게로 떠민다.
그제서야 의도를 파악하고 가게를 찾아온 남자는 테이블에 앉았다.
"원래는 안되는거에요."
내 짧은 한마디에 그가 웃으면서 말했다.
"고맙습니다."
상당히 젊어보이는 남자는 어쩐지 조금 비싸보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귀족들과 그리 좋은 기억은 없어서 불안한 느낌이 있었다.
애초에 이 시각에 예약 없이 가게를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아무 이유 없이 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음... 겔루드 있나요?"
"겔루드요?"
"네."
"저희 가게에 위스키는 없어요. 겔루드는 특히나 가격 자체도 비싸잖아요."
"밤에는 술집으로 전향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요?"
"호프에요. 바형태가 아니라."
"아... 그렇군요. 그럼 맥주로 부탁드립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입맛을 다시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저는 올리브라고 합니다."
"올리브요? 제가 들은게 맞나요?"
"네. 그 과일 올리브 맞아요. 철자도 같죠."
체헤게는 옆에서 웃음을 참지 못하고 끅끅대고 웃고있었다.
그걸 모르는 사람 눈에는 그저 덜컹거리는 걸로 보이겠지만.
"그래요, 올리브. 이 밤에 저희 가게를 찾은 이유는 뭔가요?"
"흥미가 있었거든요. 가게에도, 당신에게도."
"흥미가 있었다?"
그에게 맥주를 건네주면 그는 맥주를 벌컥이며 넘겼다.
입술 위에 남은 맥주 거품을 혀로 훔치며 맥주잔을 내려놓은 그는
잠깐의 심호흡을 한 후에 말을 이었다.
"전 당신을 만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만났던 것 같다..? 제 기억에는 없어요."
"그런가요. 아무튼 저는 이 나라에서 꽤 높은 위치에 있는 모험가입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탐험해볼 기회가 있었어요.
그리고 이 마을에 도달했을때 묘한 기시감과 불쾌함이 느껴졌어요.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사람이 이곳에서 사람들을 맞고 있었으니까요."
"나를 봤다고요? 거짓말. 나는 당신을 만난 적이 없어요."
"그렇겠죠. 일반적으로 만났다면 잊을 수 없으니까.
다시 정식으로 제 소개를 하겠습니다.
저는 1급 모험가, 사람들에게서 성제, 검성제라고 불리는 올리브입니다."
"하아... 좋아요. 저는 에리아에요."
짧은 한숨이 내포한 의미를 이 남자가 알아주길 바랬다.
이 남자가 성제라는 것을 들어도 내게는 그리 큰 감흥이 없었다.
다만 이 남자의 변덕이 이제껏 우리 가게를 안정화하고 있었다는게
왠지 모르게 찜찜한 감각으로 남았다.
"퀘트로나스의 미리타엔. 그곳 근처에는 미로가 있습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미로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한 여자가 살고있죠."
"여자?"
"여자는 미쳐 있어요. 어떤 말을 걸어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자신 외의 사람을 만나면 극도로 흥분해 발작하고 말죠.
그게 인사의 형태인지 경계의 형태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건 그녀는 우선 '달려든다'는 점이죠."
"그게 어째서요? 갑자기 그 말을 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 여자의 등에는 큰 상처가 있습니다. 아물지 않은 큰 상처 말이죠.
일반적으로는 그런 상처가 있다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처에요.
그러나 그녀는 살아있습니다. 또한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제가 아는 것만 약 12년이죠."
"12년간 먹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없어요."
"그건 분명 존재합니다. 저는 그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괴물이죠.
실제로 그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나옵니다.
슬픔의 전염이라는 것이죠. 이해할 수 있습니까?
그 괴물은 어떠한 '의사소통'도 거부하는 주제에
지나가는 사람 모두의 감각을 자신의 것으로 전염시킵니다."
"슬픔의 공유가 감각의 전염은 아니죠."
"더 정확히는 슬픔의 공유가 아니니까요. 슬픔을 안고 결국 도망치기 시작한 사람이
그 미로를 빠져나오게 되면서 본격적인 전염이 시작됩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미로에 들어간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죠.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울고있던 이유를 잊어버린 채로 전염된 감각을 따라 공허해지게 됩니다.
공허하다는 의미가 뭔지 아십니까?"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맥주를 한모금 마시더니 말을 이었다.
"공허하다라는게 감각으로 느껴지는 순간, 사람은 미로가 자신을 끌어당긴다고 생각하죠.
미로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환상을 느끼면 결국 그는 다시 미로로 돌아갑니다.
들어가고 빠져나오고를 영원히 반복하는 미로라는게 믿겨지십니까?"
"그런 공간을 왜 당신이 알고 있는건데요?"
"저는 1급 모험가입니다. 이건 제 기억이지만 제가 경험한 적 없는 사실입니다.
그때 제가 이 일기를 우연히 발견한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죠.
미로를 빠져나와 그 괴물에 대적하기 위한 방법을 강구했을 때,
저는 이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이 노트를 열었을 때 저는 놀랐습니다.
그 오랜 시간동안 저는 17번째 미로에 도전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거기 끼어들 틈은 없어보였다.
"그럼 기억나는 건 없다는 이야긴데 왜 저를 그 사람과 비교하시는 거죠?"
"사진이 있으니까요. 저는 기어이 17번째 미로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카메라를 구입해서 말이죠. 그녀의 공격을 막는 것이 버거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힘이 강하긴 했지만 공격을 할 의도는 없어 보였으니까요.
다만 그건 순수함의 폭력이라고 해도 좋을 악의없는 공포였습니다.
자신이 뭘 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달려들어 사람의 몸을 가지고 놀고 있었죠."
내가 얕은 불쾌함을 얼굴에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사진을 내게 내밀었다.
분명 제대로 정면에서 찍은 것은 아니었지만 분명히 나와 닮은 여성의 옆모습이 거기 있었다.
"그녀에게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다친 사람도 없어요. 다만 피할 뿐이죠.
그녀는 조금이라도 다치거나 피가 흐르거나 놀라는 기색이 보이면 바로 그를 풀어줍니다.
그리고 미안한 기색을 잔뜩 보이고 다친 부위를 만져주죠.
그러면 상처가 낫습니다. 믿지 못할 이야기라는건 알지만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저는 저고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에요.
비교당하는건 불쾌하다고요."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그냥... 좀... 가게 건은 감사드려요."
"가게..?"
"당신이 이 가게를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 자체만으로 상당히 균형이 잡히니까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한다는 의미였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그리고 두 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또 있나요?"
"네. 복잡한 이야기보다 간단한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건 당연하니까요."
"방금게 간단한 이야기였나요?"
"네."
"아무래도 그냥 돌려보냈어야 했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본론으로 넘어가자면,
그 혹시 가이드를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가이드요?"
"네, 모험가들에게 안카숲의 가이드를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물론 제일 우선적인건 저고요.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저는 그냥 커피숍 사장일 뿐이에요."
그러자 그가 씩 웃으며 가방에 손을 가져가더니 내가 두고온 부러진 칼을 내밀었다.
"이거 아시죠?"
내 표정을 빠르게 포착한 듯 그가 말을 이었다.
"모르는 건 아닌 것 같네요. 이건 마을 사람들이 테러보어를 잡은 자가 두고간 칼이라고 제게 준겁니다.
보시다시피 뾰족하긴 하지만 예리한것은 끝부분 뿐이고 날은 예리하긴 커녕 무뎌서
이건 송곳이라고 해도 좋은 정도로 칼로서의 가치가 없어요."
"그렇군요."
"이 칼에는 보시다시피 테러보어의 검은 피로 얼룩이 져 있어요.
하지만 잘 보세요. 다른 피가 섞였죠? 이건 아마 사용자의 피일 겁니다.
오랜 기간 사용하며 남은 것이죠. 이런 피는 닦는다고 지지 않아요.
칼 자체에 스며들어버린겁니다."
"그래서요?"
"그리고 두번째로."
그가 내 얼굴로 칼을 바짝 가져다 댔다.
당황해서 살짝 뒷걸음을 쳤다.
내 등 뒤로 닿는 벽에 막혀 나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다.
"맡아봐요. 이건 에스테리카의 냄새입니다."
"아..."
"이 에스테리카의 맛을 알아보기 위해 이 마을의 모든 에스테리카를 마셔봤어요.
이 가게였죠. 그리고 이 손잡이를 보면 보이는 이 혈흔. 이 칼의 손잡이를 쥐어 보시겠습니까?"
내가 그에게서 칼을 받아들었다.
"아니, 그렇게 말고요.반대에요. 날을 손 아래로 가도록 다시 잡아보세요.
그렇죠. 거기. 그 자리에 묻은 피는 당신의 상처와 일치해요."
내가 이전에 십자가에 찔린 상처가 칼에 피를 남긴 모양이었다.
하필 주술용 칼이라 손잡이에 천을 여러번 감았던게 문제였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내 손의 상처는 다 나아 흔적만 아주 옅게 남았을 뿐이었는데...
그걸 알아챘다고?
"그리고 아까 말했던 이 피."
그가 내게 다가왓다. 반응할 새도 없이. 이제껏 체헤게가 틈이 보이면 막아주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체헤게조차 반응하지 못했다.
그는 새가 칼을 든 손을 양 손으로 움켜쥐었다.
마치 내가 칼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려는 듯.
그리고는 손에 힘을 꾹 주었다.
겨우 아물었던 손가락의 상처가 다시 터졌다.
그 얕은 상처가 내 손의 피부에서 제일 약한 부분이었나보다.
"이 피냄새. 익숙하시죠?"
"피냄새가 익숙하겠어요?"
"사람마다, 짐승마다 피냄새는 모두 달라요. 오래 맡을수록 그걸 구분하는 감각은 커지게 되죠.
테러보어를 사냥한건 당신이야."
"그럴리가..."
"에리아. 당신밖에 없어. 아직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이 미로속의 여성과 무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더 정확하게 말해줄까요?"
그가 내 멱살을 잡았다.
손에 힘이 까드득 들어가 핏대가 섰다.
"그만... 그만해..."
"너, 뭐하는 사람이야?"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체헤게가 그의 몸을 잡았다.
"그래, 이깡통도. 이거 어떻게 움직이는거야? 하나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군."
"나가주세요."
그 말에 올리브는 내 멱살을 잡았던 손을 놓았다.
"가이드같은건 장난이었어요. 그딴거 없어도 내가 더 강하니까.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그가 가게 문을 양 쪽으로 벌컥 열어젖히며 말했다.
"돈많은 부호로부터 의뢰가 있더라고. 살아있는 마녀를 잡아주세요... 라고.
네가 마녀라는게 밝혀지면... 꽤 재미있을거야.
한동안 마녀라는 이야기 때문에 도서관을 돌면서 고서적을 뒤져봤으니까...
금방, 알게되겠지?"
그렇게 말하고 그가 나가버렸다.
그제서야 느꼈다.
아. 저 남자가 이 카페를 마음에 든다고 한 이유.
여기에 지속적으로 손님이 모이게 만든 이유.
느낀 것은 하나였다.
도망쳐야한다.
잊고 있던 감각이 척추를 타고 올라온다.
그건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뎌졌던 것.
조용히 다가와 맹렬히 내 몸을 찌르는 것.
공포심이었다.
이런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몇백년이니까. 시대가 변했으니까.
이런 자기합리화를 하며 도망쳐다녔는데.
그게 산산히 눈앞에서 깨진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도망가지. 언제까지 이럴수 없다는건 알았잖나?]
"그래... 버티면 이기는거야... 버티면 이기는 거니까..."
나는 간밤에 짐을 챙겨 달아났다.
쪽지 하나를 남기고.
'에리아입니다. 가게는 마르커스아저씨께 양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