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안카와 피
퀘트로네스는 철저한 제국사회라고 부르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으로 가고 있다.
일부 인권운동을 노래하는 이들에게는 여전히 야만적인 구역으로 불리고 있으며
사람들을 지배하는 무력과 폭력이 만연히 길거리에 드러난 곳.
오직 단일신으로 다르말록을 인정하던 곳이었다는 걸 분명히 내 기억에 새겨놓았다.
그들이 다르말록을 져버린 이유도 간단했다.
최강이라고 생각했던 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봉인을 당한 것.
그 사실이 알려진 후에 그들은 다르말록을 져버리고 말았다.
무력한 신이 자신들에게 무엇도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그들은 각자의 무력을 의지했다.
노예의 생사를 걸고 치뤄지는 지하 투기장이 이들의 주요 오락거리일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그럼에도 이 국가로 사람들이 모이는 이유는 간단하다.
법보다 우선되는 폭력이라는 특수한 환경이 이루어낸 힘의 논리.
누구라도 위로 올라갈 수 있다는 달콤한 유혹이 있었기 때문이다.
퀘트로네스는 그런 면에서 페세티아 대륙의 유레크로스와 적대적이다.
안카 숲을 두고 두 국가가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유레크로스의 인물을 떼내기엔 더없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신분세탁을 마치고 나서 모험가로 등록한다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겠지.
겸사겸사 올리브가 내게 알려주었던 그 여자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기도 했다.
왠지 그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녀가 나를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헤게도 나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아직 숲에서 빠져나가지 못했다는건 알고 있었다.
시든 가지를 날카롭게 뻗어오는 나무의 숲에서 오래 쉬고 있을 시간은 없다.
분명 내가 밀친 경비가 사람을 불러올 테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너무나 무력하게 잡힐 것이 뻔하니까.
이 숲은 마력을 거부하고 결계를 강화한다.
나는 이곳에서 죽지 않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다만 가방에서 십자기를 꺼내 들었다. 이걸 다시 찌르고 도망치는게 최선 같았다.
[멈춰라.]
"왜?"
[이전의 나는 영혼체였으니까 환각의 영향을 받았지만 말이다, 나는 지금 로봇이다.
그런 환각같은건 느껴지지 않지. 따라와라. 이쪽으로 가는게 좋을 것 같군.]
"아..."
그가 내게 철로 된 손을 내밀었다. 노란 빛으로 물든 손은 관절에 따라 따각였다.
내가 그 손을 잡으면 차가울 것이라 느껴진 손은 따뜻하게 포개졌다.
물론 부드럽지는 않았다. 딱딱한 기계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너무 차갑나?"
"아니, 따뜻해. 고마워."
"음... 아마 엔진이 원인일거다."
그렇게 말하며 그가 나를 살짝 끌어당겼다.
"잠깐만."
내가 그의 손을 거절한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어딘가 아쉬움이 남아서였다.
"그냥 가기는 좀 그래."
가방에서 부적을 꺼내 덕지덕지 로프에 붙였다.
그리고 그 위로 직접 새긴 발화부를 놓고 마력을 흘려넣는다.
부디 작동하길 바라면서.
아주 미세한 반응이라도 나타나서 불만 붙는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그러나 불은 붙지 않았다.
"로프라도 태워놓고 가려고 했는데."
[비켜라. 도와주지.]
"뭐?"
[지금의 몸이라면 가능할거다.]
체헤게는 양 손으로 로프를 묶어둔 철못을 뽑아올리기 시작했다.
말이 좋아 못이지 정, 혹은 말뚝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커다란 철제 못이다.
굵기는 내 새끼 손톱보다 조금 가는 정도였고 길이가 내 명치 정도까지 오는
생각보다 튼튼한 말뚝이었음에도 그는 그걸 대번에 뽑았다.
[되는군.]
그러더니 그는 뿌드득 소리가 나도록 로프를 잡아당겼다.
로프가 끊어지는소리였다. 그러나 가닥이 늘어붙어 겨우 형태를 유지하는 로프는
그렇게 끊어질 듯 했으면서도 겨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우두둑 소리를 내며
잡아 뽑힌 것은 그 옆에박은 대못이었다.
[후우...잠시만 기다려라. 되는 데까지 뽑아볼테니.]
그러면서 체헤게는 줄을 따라가며 계속 못을 뽑아냈다.
뽑아내는 못은 거의 1미터 70정도 되는 대형 못이었다.
그런 못을 줄줄이 뽑아내며 로프를 팔에 감아들고 돌아온 체헤게는
그걸 내게 내밀며 말했다.
[어디에 쓸데가 있을지도 모르니 챙겨둬라.]
"이런걸 쓸 데가 있으려나."
가볍게 대답하고 가방에 정리해 넣었다.
그리고 나서 체헤게는 손을 털고 다시 나를 인도했다.
그를 따라가면 확실히 이전과는 다르게 야생 짐승이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칼로 나뭇가지를 쳐낼 필요도 없었다.
우지끈하는 소리와 후우... 하는 잠깐의 기합소리 이후에는
지나갈 수 있는 길이 생겨 있었으니까.
그를 앞에 두고 등을 따라가는 입장에서 보면 그의 등 뒤에서 여전히 쿵쿵대며 뛰고 있는
피스톤들이 마치 정말 심장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구시대의 기술이니만큼
풀이나 나뭇가지같은 이물질이 엔진에 들어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역시나 장인은 장인이라는 걸까 거뜬했다.
오히려 그것들은 몸에 끼이지도 않고 그 커다란 기계 아래로 잘도 빠져나간다.
평소에 틈틈히 기름칠을 해줘야 한다고 했던 것 말고는 정말 약점이 없지 않을까.
강도에 대한 부분도 걱정이 없었던게, 내가 그에게 서빙과 접대를 맡기면서
일어나는 싸움을 막으라는 역할을 부여했고 동시에 좋은 재료와 강화부를 들이붓다시피해서
이제 저 몸을 찌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어지간한 철로는 어림도 없었다.
애초에 자석에 끌려가지도 않았고, 전력은 자체 생산인데다가
피로도를 느낄일도 없고 페마르를 사용해 엔진을 만들어놓아서
전류에 감전된다고 망가지지도 않는다.
게다가 방수코팅도 철저했고, 불에도 거뜬했다.
상식적으로 이런 괴물을 누가 감히 만들겠냐만은,
기어이 완성한 것을 마주하면 그런 말은 입 밖으로 나올리가 없다.
덕분에 야생동물이 앞을 막아서다가도 그 몸집을 보고 다시 도망치기 바빴다.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걸었다. 숲의 규모는 콜린보다 훨씬 거대했고,
4일째 꼬박 넘겨 걷고 나서야 우리는 숲이 끊어진 공간에 도달했다.
사실 내게는 여전히 나무들이 늘어선 것으로 보였지만 체헤게가 이를 부정했다.
나는 환상이 내 눈 앞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그를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곧 나도 가방에서 십자가를 꺼내 복부에 과감히 박았다.
부드러운 복부에 통각이 느껴지고 곧 그건 온몸을 내달렸다.
피어오르듯 느껴지는 뜨거운 축축함이 싫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딘가 편안함도 느꼈다.
그 십자가는 온 몸으로 이어지는 마력회로를 끊은 것 같았고 전신에 욱씬거림이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 의미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숲이 끊어진 공간이라는 의미를.
"이건...갈로탄닌..."
일부 침엽수의 주변에는 나무가 자라지 못한다.
침엽수는 상록수의 특성상 생존을 위해 상시 태양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주변에 다른 나무가 있으면 생존권을 위협받는다.
그래서 뿌리에서 갈로탄닌이라는 성분을 배출해내는데,
이것이 제초성분을 가지는 것이다.
아마 이 거대한 나무도 뿌리에서 모종의 독성을 방출한 것이 아닐까.
숲이 끊어지기 시작한 곳에서 눈 앞의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면서 깨달았다.
마을로부터 이어진 로프 끝에 있던 큰 나무로 인해 우리는 그곳이 숲의 중심이라고 함부로 재단하고 있었다.
아무도 들어오기 전에는 그 큰 나무가 중심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들어온 후에는 당연히 그 정도 크기라면 중심이겠지 라고 지레짐작한 것이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 있는 것은 단언컨데 말도 안되는 크기의 나무였다.
그냥 보더라도 내가 기어 올라가도 30일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런걸 눈 앞에서 실제로 대면하고 나면 환각이 원인이었던 것이
이 나무를 중심으로 안개가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보는 열매가 마구 자란 독특한 나무였다.
멀리서 보면 그냥 거대한 나무라고 생각하겠지만 잎과 비슷한 색의 과일이
잔뜩 여물어 바닥에 떨어지면 물크러져 터지면서 달콤한 향기를 냈다.
마치 코가 찐득한 단내에 휘감긴 것 같은 느낌에 본능적으로 긴장하게 된다.
살짝 숨쉬기가 힘든 정도였다.
아마 이 열매에 환각 성분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든다.
내 감이 맞다면 말이다.
"체헤게, 바닥에 떨어진 열매중에 터지지 않은 것들을 모아줄 수 있어?"
[어디에 담을 생각이냐?]
"글쎄, 그래도 일단 연구는 해봐야겠는데."
[누가 말리겠나.]
"그런데 이 주변은 왜 유난히 생물이 안보이지?
이렇게나 단 내가 풀풀 진동을 하는데 아무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아."
[중심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나?]
우리는 그 해답을 낼 수 없었다.
이 숲에 대해 아직 알아내야 할게 많다는 정도 말고는 그 무엇도 몰랐으니까.
[여기서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마 괜찮을거야. 그리 쉽게 다가올 수 있는 장소는 아닐테니까."
나는 체헤게를 안심시키고 다시 열매를 주워 담았다.
넉넉히 표본으로 쓸만한 정도의 열매를 챙겨들고 나서 나무 앞 빈 공간에
직접 그림을 그렸다. 마법진이었다.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그려놓은 것이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이곳은 마력 반응 자체가 워낙에 옅어서
제대로 올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라는 것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반정도의 성공이었다.
이전에는 아무 재료도 없었기 떄문에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는 것이다.
증폭제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도구가 있었다.
제물을 필요로 하긴 했지만 결국 그런건 내가 하면 되니까.
들고있던 십자가를 꽂은 배에서 흐르는 피를 사용하려고 하다가
그게 마력을 흩어낸다는걸 기억했다. 우선 그래서 십자가를 뽑아냈다.
가방속에 피범벅이 된 십자가를 넣을 수는 없어서 적당히 바닥 근처에 던졌다.
그리고 결국 손가락을 이로 깨물어 피를 내고 피를 뿌렸다.
손가락을 씹고 나니 피맛이 혀에 돌았다. 썩 달가운 기분은 아니었다.
여전히 손가락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땅에 피가 스며 검붉게 번져갔다.
그리고 그 위에 루비와 배회석을 놓았다.
뿌린 피는 배회석 위로 떠오르다가 소용돌이 치듯 중심으로 모여갔다.
빙글빙글 돌다 빨려들듯 루비로 모여들었고
그 위로 내가 주문을 외웠다.
주문에 반응하듯 피는 내게로 튀듯 날아와서 내 몸을 파고들었다.
내 몸에서 마력을 모두 빨아가려는 듯
상처에서 빠져나온 피들이 그려놓은 마법진을 붉게 물들였고
한참동안 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마침내 내가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때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을수밖에 없었다.
[내가 본 마녀중에 제일 몸을 막 다루는군.]
"그거야... 당연하지... 후우... 내 별명이 피의 마녀였으니까...
그리고, 네가 과연... 진짜배기 마녀를 몇 명이나 봤을거라 생각해?"
피의 마녀는 어쩔 수 없는 별명이었다. 친구가 없어 실험 대상이 나밖에 없었으므로.
누가 찾아올 때마다 피범벅이었으니. 피를 토하기도 했고, 상처도 많았으니까.
그리고 또 따지고 보면 다들 마녀라고 해놓고 나보다 먼저 죽어버렸으니들, 나만한 마녀는 잘 없으니까 말이다.
[모르겠군. 그래, 위험하지만 않으면 됐다.]
"그래, 좀 지치긴 하지만 위험한건 아냐."
붉게 빛나는 마법진을 바라보며 나는 드디어 큰 한숨을 쉬었다.
만족감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마법진이 제대로 잘 만들어진건지 확인하는 작업만이 남았다.
특별히 간단히는 부서지지 않을 고급 마법으로 진을 그렸으니
그리 간단히 부서지지는 않을것이다.
모든 마법에는 어떻게 구동하는지 알 수 있는 구동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마력의 흐름을 나타내는 길, 어떤 마력이 사용되고, 어떤재료가 어떤 효과를 내는지,
또 어떻게 작동해서 어떤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정보가 담겨있다.
그것도 아무에게나 가능한 것은 아니다.
관련 정보는 이해할 수 있어야 비로소 보이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 구동식을 적은것이 마법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마법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일종의 수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빠르다. 그래서 나는 수학을 억지로 배워야 했다.
지금 돌아보면 좋은 기억은 아니지만.
그리고 내가 그 구동식을 확인하면 내 마법진이 불안정한 부분은 전송의 부분이었다.
즉, 이 마법진은 나를 이곳으로 부를 수는 있지만, 내가 이 마법진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였다.
내가 무턱대고 그걸 진행시키려고 하면 몸이 분자단위로 분해될 것이다.
그렇게 죽으면 모르겠는데, 아마 나는 그걸로 죽지 못한다.
분자단위까지는 아니었지만 육편으로 갈기갈기 갈려본 적도 있었으니까.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그래서 지금 거기 새긴건 뭐냐?]
"전에 본 기억 없어?"
[저렇게 핏빛으로 붉게 빛나는건 본 적이 없다.]
"하긴, 그냥 언제든 여기로 도망쳐오기 위해 만들었다고 생각해.
여차하면 여기에 본거지를 잡을 생각이니까."
[여기에 집을 말이냐?]
"어. 환각효과도 짙고, 아직 이 숲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다가,
안전함 하나는 일단 보장된 공간이잖아?"
[성격도 좋군.]
"그래, 이제 완성했으니까 퀘트로네스로 가야 하는데..."
[됐다. 좀 쉬어라. 지켜주마. 지금 상태로 어딜 가겠다는건가.]
"괜찮아. 이정도로 안죽어."
[쉬라면 쉬어라. 안 죽는다는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그...그래..."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마법진을 완성하는건 좋았는데
몸에서 피를 상당히 많이 뽑아갔다.
이미 머리쪽으로 억지로 피를 끌어모으기는 했지만 손끝과 발끝은
체온이 급속도로 떨어지는걸 느끼고 있었으니까.
숨이 가쁘기도 했고, 아마 내 손의 색으로 보아서는 얼굴도 상당히 창백할 것이다.
이 숲을 나가서 쉬는게 아마 더 효율적이기는 하겠지만
나도 알고 있었다. 아마 여기서 쉬지 않으면 쉬지 못하리라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