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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그래서, 모험가는 어떻게 하는 거라고? (39/303)



〈 39화 〉그래서, 모험가는 어떻게 하는 거라고?

피를 너무 흘려서 나는 한동안 눈을 뜨지 못했다.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피가 말라붙어 떡진 옷가지와
그 커다란 강철 골렘의 몸 이곳저곳에 검게 칠해진 피,
그리고 허전한 팔과 뜯어진 가방. 정말...  하나 정상이라고 부를  없는 상태였다.
어느새 숲을 벗어난 듯한 광경. 넓게 펼쳐진 푸른 풀들이 보이는 들판.
왠지 숨쉬기가 편해진 감각. 안카숲을 빠져나온건 분명해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어지럽지 않다거나 환각이 사라진건 아니다.


마법이건 안개건 그런건 상관없이 누구라도 피를 그렇게 뽑히면 환각이 오기 마련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아직도 정신이 없는  같다. 숨쉬기가 편해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나는 답답한 압박감이 폐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상당히 넓은 초원을 마주하고 체헤게에게 물었다.


"며칠이나 지났어?"

[아마 4일 정도 지났을거다.]

"그렇게나 지났다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풀린 사람도 사람이고, 우리가 건너뛰었던 절벽 기억하나?]


"아...응..."

[그 절벽 앞으로는 돌아갈 수가 없게 되었다.
놈들은 방화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거대한 나무가 불에 타지 않는 바람에 여기가 안전해진거지만.
나도 도움닫기를 해서 절벽을 뛰어넘었어야 했으니까 그런 방해 속에서 뛸 수는 없었다.
할수없이 계곡아래로 뛰어내린거다. 오래 돌아올만도 했지.]

"난, 안젖었는데?"

[너만 젖지 않은게 아니다. 나도 젖으면 위험했으니까.
방수라고 해도 머플러에 물이 들어가면 큰일이니까 말이다.]


"아, 머플러..."


[그래서  먼저 절벽 반대로 던졌다.
놈들은 이미 곤죽이 된 너보다는 나를 괴물로 생각했다.
당연하지. 팔이 잘리고 다 죽어가는 여자아이와 2미터가 넘는 강철 괴인.
답은 뻔하지. 도망치는 입장은 처음이었다.]


"잘도 도망쳤네."

[물에 떨어지기 전에 절벽을 가까스로 부여잡았다.
쿵쿵 찍으면서 올라오느라 손가락 관절에 흙이 가득 꼈다.
보이나?]


그제서야  체헤게의 손은 온통 진흙이 껴서 굳어있었다.
움직이는데 무리는 없겠지만 거슬리는 모양새였다.

[그리고, 마르커스가 죽었다.]

"뭐?"


[이 팔, 찌그러진거 보이나? 놈들이 쏜 포에 맞은 결과다.
원래라면 팔 한쪽이 날아가고도 이상하지않았겠지만,
둘다 외팔이여서는 곤란하잖나.
마르커스가 자신의 최고 걸작에 손대지 말라며 그들을 막아서는 바람에
결국 그들의 총에 맞았지. 그자, 너를 돌아보며 그렇게 말했다.
'잘 가게 친구여.  아들을 부탁하네.' 그렇게 말이다.]

"마르커스가... 죽었어...?"

[헬렌이 시체를 수습해갔다. 그녀도 할 말은 많아 보였지만,
내가 들을 여유가 없었지.]


"하아...."


[올리브라고 했던가. 그녀석은 죽었다. 놈들이 그렇게 외치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다만, 아무도 구조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최악은 아니구나."

[그나저나 무슨 꿈을 꾼거냐.]

"글쎄...  이상한 꿈이었어."


[쉬는 동안 그거나 듣지.]


나는 체헤게의 찌그러진 팔에 손을 올렸다.
마력을 모았다.
원래대로 펴줄 생각이었는데 나도 지금 외팔이라는 걸 깜빡했다.
마나의 순환이 온 몸을 돌며 잘려나간 팔에서 피를 픽픽 튀겼다.

"아, 팔 좀 줄래?"

그가 내민 팔을 다시 제자리에 이었다.
이미 나흘이면 시간이 상당히 지났는데 흙이 조금 묻은걸 제외하면
썩어들어가거나 부패하지도 않았다.
방부처린 확실했다.


이어붙인 팔은 번쩍이는 빛을 내더니 자연스럽게 붙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니었다.
1급 모험가라 그런건지  몸 구석구석 흉터를 남기는 바람에
완전히 나으려면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배에도 목에도 십자가로 자해한 상처가 남아 아직은 괴롭다.

"하아... 짜증나네."


다시 체헤게의 팔에 손을 올리고 마력을 모았다.
찌그러진 철골이 다시 원상태로 펴지는걸 보면서 계속 마력을 사용했다.
흉터가 진 상처가 하나씩 터지며 피를 흘렸다.


[상처가 벌어진다. 무리하지 마라. 난 로봇이야. 이런걸로 죽지 않는다.]


"나도 이런걸로 안 죽어. 누굴 챙겨?"

기어이 찌그러진 철골을 펴고 나서야 나는 바닥에 다시 누웠다.
하늘이 파랗다. 주변을 둘러보면 풀꽃이 피어 있었다.
우리 둘이 누운 장소만 피가 좀 번져있다 뿐이지 정말 아름다운 곳이다.


"이런 장소가 제국의 초입이라니."

[위험한 장소일수록 그걸 알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이제 하루이틀 정도만 더 쉬면 되겠네."


[그나저나 말 안할건가? 꿈 이야기.]


"네가 내 꿈이 왜 궁금한데?"


[사흘 나흘 지나는 와중에 잠꼬대가 끊이지 않으면 궁금할법도 하지 않나?]


"그런가... 이상하지?  분명히 기억력은 좋은데, 꿈 내용은 확실하지가 않아."

[현실의 영역이 아니라는건가.]

"글쎄, 일단 내가  있는 공간이 어딘지도 모르는 장소였어.
모르는 얼굴들, 그런데 익숙한 얼굴들이 내 주변에 있었어.
금발의 남자... 모르겠네, 얼굴이 기억이 나질 않아. 그런 남자랑...
음...창백한 푸른머리 남자? 응... 조금 기괴한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거든.
그리고... 검은 머리 남자랑...몰라 독특한 빛?"


[빛이라고?]

"어... 형태가 없는 느낌...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왠지 다들 기뻐하고 있었어.
그리고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내가 왜들 그러냐고 물어봤는데, 다들 걱정하는 것 같았어.
어...? 왜지? 내가 뭐라고 했더라? 어... 사람이...넷? 다섯?"


[무슨 소리냐? 차분하게 심호흡을 해라... 침착하게!]

"아...머리가 아픈데.... 잠시만.... 모르겠어... 무슨 일이 있어도 찾으러 간다고?
누가? 나를? 왜? 하아... 하아.... 허억..."

[침착해라! 그만 해도 돼!]

나는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코피가 흘렀다.
주르륵 흐르는 코피에 체헤게가 말했다.

[미안하다. 아직 몸 상태가 말이 아닌 모양이군. 쉬어라...]

"나... 꿈에서도 마녀였나봐..."

[걱정마라. 이 세상에 마녀사냥꾼이라고는 나밖에 없을테니까.]


"아니었잖아... 계속 나왔잖아..."

[진정해라.]

호흡이 가쁘다. 동공이 흔들리고 닭살이 돋기 시작했다.
찌릿한 감각이 흩고 지나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감각이 머리를 강타한다.
휘청이는 몸이 제어되지 않았다.

체헤게가  어깨에 손을 얹어주면서 조금 진정이 되기 시작햇다.


[진정해라.  옆에 마녀사냥꾼은 나 하나밖에 없을테니까.]

"어떻게...?"

[내가 그렇게 만들어주마. 이래뵈도  사냥감을 남에게 뺏기면, 기분이 더럽거든.
꿈자리가 사나워진단 말이다.]

"고마워..."

[일단은 회복에 전념해라. 나머지는  다음이다.]

"나, 죽는게 아닐까 싶었어."

[죽지 않는다.]

"알아. 아는데...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 팔이 잘릴 때."

[나한테 잡혔을 때는 그런 생각 안 했었나?]

"뭐.. 그때는 불에 태우는게 능사였으니까. 사지를 자르고  것도 아니고.
그 숲이 너무 특수했어. 십자가도 있었고."

[그래도 살아남았잖나.]


"그랬지. 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든거야. 죽고싶지 않아. 살고싶어. 하는 그런."


[삶에 대한 목표는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다.
이상하지 않다. 알잖나? 너도 인간이니까.]

"인간... 그렇지. 인간이지."

[이제는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도 인간이니까.]


"풉... 그러게."


 상쾌해진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시 자리를 잡고 앉아 차분하게 호흡하기 시작했다.
몸 전체로 마나를 흘려보낸다.
구르는 마나가 손끝을 적시고, 발끝을 데운다.
부글대며 끓어오르는 이미지가 그려지고,
몸 속 피가 끓어오르면서 빈자리를 채워간다.
천천히 머리가 맑아진다.
힘이 돌아오는 감각. 상처들이 빠르게 아물어간다.


5분정도 지났을까, 나는 목에 남은 흉터와 배의 흉터를 제외하면
깨끗한 몸이 되었다.

[그 목은 어떻게 회복이 안되나?]


"이 목 주변에서는 마력 자체가 모이질 않아. 퍼져버려.
목의 세포같은게 마력회로를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그럼 목을 쳐내고 재생시키는건 어렵나?]


"해볼만 하네. 여기서 더 더러워질 일도 없고."


원하는 부위의 세포를 괴사시키는 것은 주술을 연구하다보면 배울  있다.
단순 주술로는 안된다. 의학연구도 상당해야한다.
세포의 분열을 차단하고 원하는 세포 하나하나의 조직을 뭉개면서 죽인 후에,
그부분의 세포 연결을 끊어내는 것이니까. 원래는 수술 용도로 개발되던 주술인데
나는  오랜 시간을 거쳐서 그걸 본래 용도로 쓰고 있다.

목에서 잘라낸 부분을 손으로 잡고 뽑아내면 슥 딸려나오는 잔해물에는
뼈와 색이 변한 세포가 보인다.
그마저도 곧 빠르게 스멀대며 회복되어, 살이 돋아나고 뼈가 이어진다.

[언제봐도 놀랍군.]


"내가 이런것도 보여줬어?"


[아니, 마법이라는것 말이다.]

"어려운건 아ㄴ... 어려운거야."

말을 돌렸다.
복부까지 같은 방법으로 처리하고 나니 썩어버린 살덩이 두 부위가 바닥에
떨어진 것으로 나는 완전한 몸으로 돌아왔다.

살덩이는 발화부로 불을 붙여 태웠다.
내가 회복력이 뛰어나 죽지 않는 것이지, 몸에서 떨어진 것은 잘 탔다.

상황이 정리되고 옷을 벗어 체헤게의 연료통으로 집어넣었다.
이미 피떡이 지고 너덜너덜하게 찢겨 정상적인 옷의 기능을 하지 못할 뿐더러
그런걸 입고 퀘트로네스로 들어갔다가는 나 노예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너도 피범벅이네."


[아, 그렇게 됐다.]

"괜찮아, 나 피의 마녀니까."

눈을 감고 집중해서 주문을 외우면 바닥에 뿌려진 피와 늘어붙은 피딱지 같은 것들이
둥실 위로 떠올라 한점으로 뭉쳐진다.
더 붉고, 검게 천천히 타오르듯 녹아, 뭉쳐진 곳에서 구슬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한다.

[이정도면 마녀라기보다는 마법사 아닌가?]

"마법사보다 마녀가 낮다는 생각을 버려. 호칭 차이야.
남녀 구분 말고는 같은 직업이라고."

[뭐랄까 어감이 주는 차이가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 그럼 앞으로는 마녀라고 하지 말고 여 마법사라고 불러.
마녀보단 낫네. 더 도망칠 일도 없을  같잖아?"


[됐다, 에리아.]


"뭐?"

당황했다.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이었다.
이름을 듣는건 아직 상정 외였기 때문이다.


[너도 내 이름 부르잖나. 에리아나 체헤게나. 그게 정말 간단한 일이긴 하다.]

"어... 그렇긴 하지...."

[앞으로 그렇게 부르마. 에리아.]


어색하긴 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모으던 피가 일그러져 흐트러진다.
다시 마력을 모아 그걸 둥그렇게 모은다.
마력이 피와 섞이면서 형태를 잡아간다.
그럼에도 붉게 타오르는 듯한 피는 굳지 않아 방금 막 흘린 것 같았다.
내가 주문을 마치면 딱딱하게 굳은 붉은 구슬이 툭 떨어진다.


"아으, 내 마력회로... 온 몸이 쑤신다아...."

[그래서 그게 뭐냐?]


"혈구라고 하는건데, 마력을 피로 모아 응축시킨거야.
마력이 없어도 마법이나 주술을 쓸 수 있게 해주지."

[그런게 가능한가?]


"마법사나 마녀는 일정 수준 이상 연구하면 가능해져.
물론 마나를 뽑아내고도 버틸 수 있을 만큼 마나통이 커야 가능한 거긴 한데.
마나 운용도 어느정도 숙련이 되어야 하고, 또... 아! 누가 만들었는지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
나는 피로 만들지만 이전에 내가 알던 어떤 변태는 동정인 흰 말의 정액으로만 만들었어."

[마법을 배우면 하나같이 성격이 어긋나기라도 하나?]

"그런 것도 같네요."


[피로 그런걸 만든다니...]

"이것도 재료의 조건이 나름 까다로워. 피는 곧 생명이다. 들어봤어?
피, 물, 정액같은 생명에 관련된 것들이나, 고운 모래, 그림자같은 운명에 관한 것들.
뭐, 어떤 쪽으로도 의미가 있어야 가능해. 내 마력을 전해주는 거니까,
그만한 매개체를 대가로 하는거지."

[나는 마법을 배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혈구를 그에게  던졌다.

"받아, 난 쓸데 없으니까 너나 써."

[어디다가 쓰라는 거냐?]

"그러게. 뭐, 잘은 몰라도 소원같은거 빌면 한번 정도는 들어주지 않을까?
마법의 기본은 욕망과 마력이니까. 욕망만 있다면 어렵지 않을거야."


[고맙군. 간직하고 있지.]

그렇게 대답하고 우리는 휴식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갈까!"


[정신 차려라 에리아. 지금 너 알몸이다.]


"으히익?!"


[으히익?]

"아....미안....어으..."

나는 가방에서 옷가지를 꺼내 주섬주섬 주워입었다.
상대는 제국이다. 얕보이면 당할 뿐이다.
나는 그런 생각을 목 뒤로 침과 함께 넘겼다.
싸늘한 피맛이 나는 것 같았다.
주변은 이미 핏방울 하나 없이 정리되어 있었다.


"이제 제대로 갈까!"

[그러지.]

얼마가 걸릴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다시 발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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