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콜로세움
맨데일. 그는 이 퀘트로네스에서 제일 기피되는 남자였다.
그건 그가 착하다거나 공정하다거나 하는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의 양면성과 가식을 이미 모르는 이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3급 모험가. 실력은 이미 증명된 남자다. 국가로부터 공무원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
그러나 그는 그런 자리에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의지하는 새로운 모험가, 더욱이 제국의 특성을 모르는 모험가라면 더할 나위 없다.
그는 누구보다 제국의 시스템을 잘 이용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사냥감을 가로채가는 것으로 골목에서는 악명이 높았고,
이용당한걸 깨달을 쯤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르는 것을 에리아와 체헤게 뿐이었다.
아마 앤이 그들과 함께하지 않았다면 영영 몰랐을 일이었다.
에리아가 맨데일에게 방을 얻어 숙소를 잡았을 때,
맨데일은 그 방의 열쇠를 따로 구해놓았다.
에리아가 잠든 틈을 타서 습격하려는 목적이었다.
형식상 에리아는 아직 노예의 신분이었다.
국가는 그것을 방조한다. 에리아에게 신임을 얻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
방에 쳐들어가서 낙인을 찍는 순간. 그게 맨데일에게 있어서 쾌락이었다.
퀘트로네스에는 수백의 노예가 등급에 따라 거래되고 있다.
에리아 정도의 여성은 기본적으로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메카닉이라는 특성이 인정받는다면 가격은 그보다 더 높게 뛰었을 터였다.
메카닉이라는 특성은 원래 귀한 특성이었고, 더욱이 노예로서의 여성 메카닉은 이제껏 유래가 없었다.
순순히 퀘트로네스에 들어와 노예로서 잡힌 메카닉이 없다는 것이 그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여러 방면에서 이용 가치가 있을 수록 몸값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그런 것도 모르면서 퀘트로네스에 들어와서는 그런 거대한 로봇을 세워두고
모험가를 하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는 깊은 곳에서부터 흥분이 솟았다.
그날 밤은 유난히 북적거렸다.
여관 앞에서도 이미 에리아에 대한 소문이 퍼져 있었으니까.
여성 메카닉인데다가 시민권도 없는 여자가 이 퀘트로네스에서
얌전히 밤을 지낼수 있을리가 없으니까.
그게 이미 일상으로 굳어진 사람들이 숙소 앞을 웅성댔다.
당연히 그런걸 눈치채지 못할 에리아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큰 걱정 없이 잠을 청했다.
체헤게의 경비도 있었고,여차하면 대피할 수단은 준비했으니까.
새벽이 지나고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문 앞까지 다가와서야
체헤게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가 조금만 걸어도 삐걱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여관은 낡은 나무판자로 지어져 보안이 취햑했다.
몇번의 달그락거림이 있고 나서 열린 문에는 처음 보는 낯선 얼굴이 있었다.
[이럴거라 예상은 했지만 기어이 이곳을 찾아오다니.]
그러나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을리 없었다.
"뭐야... 로봇...? 메카닉이라더니... 정말이었나..."
상대가 침을 꿀꺽 삼키고 체헤게를 피해 돌아가려다 그 억센 강철 손에 붙들렸다.
"뭐야 대체... 이런 로봇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들었다고..."
체헤게는 그를 들고 방문을 나섰다.
주변에는 이미 대기중이던 사람들이 숨어있었다.
체헤게가 모습을 드러내자 마자 그들은 체헤게에게 칼을 겨누었고
총을 들이밀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 체헤게가 물러날 위인은 아니었다.
여전히 에리아가 잠에서 깨지 않았으므로 총을 섣불리 쏘지 않는 듯
그들은 칼잡이를 앞세웠다.
이미 어지간한 합금보다 강한 체헤게를 뚫고 엔진을 부수기는 아직 무리였지만
움직임을 막기에는 충분했을 것이다.
8대의 칼이 체헤게를 질렀다.
그들의 칼에서는 캉 하는 철 부딫히는 소리가 났다.
어딘가에 존재할 동력을 끊어내기 위해 들이민 칼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면 그의 기체가 구식 증기기관이었다는 점이다.
전선 하나 없으며 얇은 철판으로 보호받는 최신 기기와 다르게
하나 하나가 묵직한 철골이었다는 것.
무게만 364kg인 괴물이니 도리어 칼이 부러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애써봐야 체헤게의 철골 끝 코팅을 조금 벗긴 정도였다.
[에리아, 적습이다. 예상한 대로군.]
[어휴, 좀 믿어볼까 했는데 역시나 이동네 사람들은...
앤한테 감사해야겠네. 그래서, 맨데일이라는 사람은 있어?]
[없다.]
[적당히 정리해줘. 입구만 막고. 실수로라도 죽여버리면 말해.]
[죽일걸 전제로 하는거냐?]
[아니 뭐 조심하라는 의미지.]
[너는 잠이나 더 자둬라. 콜로세움에 도전한다면서?]
[그래, 어차피 한 시즌만 이기고 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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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한결같다. 처음 숙소를 빌리러 갔을 때부터 앤이 묘하게 날선 자세로
가르릉거리며 털을 세워대기에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주의하기로 했는데
결국 이런 식으로 보답을 받게 되었다. 잘도 이 문을 넘으려고 했네.
하나같이 목적은 아마 그거겠지. 노예의 낙인을 찍으려고 하는 것.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제서야 느껴지는 기운이 있었다.
아마 1층에서부터 걸어오고 있을 것이다.
맨데일이라는 자가.
겨우 거적떼기를 면한 이불을 끌어올려 몸을 덮는다.
조금은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앤이 내 가슴팍 앞쪽에 몸을 둥글게 말고 잠을 청하고 있다.
상황은 다 일러줘놓고 정작 벌어지니 퍼질러 자고있다.
태연하다고 해야할까.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복도를 타고 내 귀로 들어오는 무거운 발소리는 일순 멈춰서더니
옅은 금속음으로 변했다.
그리고 문 밖에서 깡깡대는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남자들의 기괴한 비명이 들린다.
"맨데이이이일!!! 개새끼가!!!"
"또...우릴 막아서는거냐!!"
그리고 어딘가 낮게 깔린 불쾌한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점찍었다고 소문 못 들었어? 버러지같은 새끼들.
성욕에 뇌가 절여져서는."
"너...는... 뭐가 좀 다르냐...? 더러운 변절자 새끼..."
"다르지. 나는 로맨티스트잖아. 악당으로부터 공주님을 구하는 백마탄 왕자.
이 새끼들은 아직도 주제 파악이 안된것 같아?"
잠이 싹 달아난다.
더 두고 볼 수가 없다.
"누가 공주고 누가 왕자라고요?"
그렇게 말하면 멈칫하며 밖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멈춘다.
"아, 로봇이 기동하는데 메카닉이 잘 거라 생각한게 실수였나?"
그렇게 말하는 맨데일이 철썩 하는 소리를 흘린다.
그리고 곧 뚜두둑 하는 뼈 꺾이는 소리가 들린다.
스르륵 흐르는 묵직한 소리. 철이 끌리는 소리.
체헤게가 질거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드디어 나왔네 언니. 자랑하던 인형은 좀 묶어놨어. 무겁네 이거."
그렇게 말하는 맨데일의 팔에는 묵직한 사슬채찍이 들려있다.
더 정확하게는 가느다란 철사를 여러 가닥 묶어 밧줄 크기로 만든 굵은 끈.
그 끝에는 던지기 쉽도록 만든 무거운 추가 달려있다.
"여기까진 무슨 일로 오신건가요?"
"그냥, 이 앞이 소란스럽길래 걱정돼서 왔지."
"새벽 3시에 이 앞을 지나다닌 이유는 뭐죠?"
"왜 그래? 난 숙소를 잡아준 은인이잖아? 걱정도 못해?"
"아니에요. 저는 괜찮으니까 돌아가셔도 됩니다."
"지금 막 습격당하는걸 보고도 돌아가라고?"
"제 로봇도 공격하셨잖아요."
그제서야 그는 채찍으로 묶은 체헤게의 양 팔을 잡아당겨 내린 후에
나의 얼굴을 차분하게 흩어보듯 바라보다가 입맛을 다시고 말했다.
"아, 이거? 얘가 나도 멋대로 공격하더라고. 나도 자기방어는 해야잖아?"
거짓말이다. 그러나 그걸 증명할 수가 없다.
체헤게를 말하지 못하게 만든건 나니까 할 말도 없다.
"로봇을 풀어주세요."
"공격하면 어쩌려고."
"그런 일은 없을 거에요."
"쳇... 이거야 원 은혜를 원수로 갚는다 이건가.
그럼 방만 확인하고 돌아갈게."
"방...이요?"
"그래."
그렇게 말하며 그는 체헤게를 비켜놓고 방으로 들어온다.
이미 내가 깨어있었지만 그런건 상관 없다는 듯이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방으로 들어갔다.
어깨가 따가웠다.
그리고 그가 방에 들어가서 침대위에 올라서서 몇번 뛰어보기도 하고
옆으로 구르기도 하면서 이쪽을 흘끔거리며 바라본다.
그러다가 몸을 웅크린 앤을 보고 말했다.
"아, 이 고양이. 뭔가 재수없어. 검은 고양이라니.
그런거 데리고 다니면 저주내린다 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래서 무릎이라도 잠깐 꿇을래?"
"네?"
그렇게 되물었을 때였다.
어깨에서 따스한 기운이 느껴진다.
분명 마력이었다.
내 마력이 훨씬 강대했기 때문에 별 효과를 보지 못한 마력이
몸안에서 잠시 꿈틀대다 사그라진다. 아마 이 남자는 내 어깨에 낙인을 심은 것 같았다.
내가 흠칫 어깨를 바라보면 보랏빛으로 새겨진 그림이 있다.
마력으로 칠해진 무늬같았는데, 실질적으로 아무 의미도 없었다.
여차하면 내가 지울 수도 있었다.
그래도 다만 그걸 지우지 않은건 이 남자에게 아직 볼일이 있어서다.
내심 재밌을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맞춰주기로 했다.
적당히 무릎을 꿇어주면 맨데일이 기분좋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음, 그래. 마음에 드네. 콜로세움에 간다고 했지? 잘 해보라고."
"그러려고요."
건방진 놈. 고작 이런 하급 주술 찌꺼기 같은걸로 마녀를 부리려 들어?
대체 이 허접한 낙인은 누가 만든걸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물론 체내 마력량이 적고 마력운용이 불가능한 일반적인 사람이 대상이라면
이 낙인에서 뻗어나간 마력이 체내에 퍼져서
사람을 의식이 있는 생체 꼭두각시로 만들겠지만,
그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
"크하하하.... 맘에 드네. 내 노예가 된걸 환영해. 내일 보자고. 아주 재밌을테니까.
그래, 그 로봇부터 처리하고...아냐, 아니지... 그것도 내 전력이 되는건가?
푸하하하하!!! 씨발년이 이런데 속아가지고는... 그래, 그 눈 좋아.
재수없게 꼬라보는 그 눈깔! 최고로 좋아. 반항적인게 좋거든."
"저질이세요."
"그래서 뭐? 네가 할 수 있는게 있나? 이름이나 말해보지 그래?"
"에리아에요."
"그래, 에리아. 일단 푹 쉬라고. 혹시 바라는게 있으면 말하고?"
그렇게 말하면서 맨데일의 허리가 까딱인다. 딱 보더라도 뭘 요구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런걸 해줄 여유는 없지만. 내가 그런 더러운 일을 해줄리도 없고,
다만 이제는 어깨에서 느껴지지도 않는 미세한 마력에 기대 사람을 뜻대로 부리려고 하는
저 건방진 녀석을 어떻게 혼내줄지를 고민하고 있는 중이었다.
[에리아, 뭐냐, 뭘 당한거냐?!]
[뭘 당해, 안당했어. 그냥 저 바보가 뭘 하는지 궁금해서 맞춰주는거지.]
[정말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글쎄, 재미일까? 난 저 사람이 절망을 맛봤으면 좋겠거든.]
[그래, 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되나?]
[어, 적어도 저 바보의 낙인이 있으면 우릴 지켜줄 노력은 할거아냐?]
[그런가...]
[그러니까 빨리 저 바보 좀 내보내. 나 자게.]
[전혀 맞춰줄 생각이 없잖나.]
[그건 내 마음이지?]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이불을 덮고 누웠다.
맨데일이 그 광경을 보고 피식 미소지었다.
그리고 그는 나가버렸다. 불쾌한 미소였다.
반드시 그 눈에 절망을 새겨주겠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 나는 삐그덕대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바닥에서 거미 한 마리가 기어갔다. 나는 그 거미를 조용히 잡아 창 밖으로 풀어주었다.
간밤에 푹 쉬어서인지 몸이 확실히 개운했다.
"콜로세움으로 가볼까?"
그렇게 숙소를 나오면 카운터를 보던 여자가 나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영양이 없이 푸석해진 갈색 머리를 어떻게 겨우 빗어낸 채로
나를 바라보며 비웃음 섞인 말을 건넨다. 내 어깨를 바라보며 혀를 내민다.
그 혀에는 내 것보다 더 저열한 퀄리티의 낙인이 찍혀있었다.
"결국 그렇게 노예가 되어버렸네. 병신같은년. 이제 너도 길바닥에서 곧 보겠어.
되도록 순종적으로 구르라고. 상처는 안날테니까. 환영해 신입."
"너희 가게 서비스 좋더라."
긴 말 없이 그정도로만 답했다.
이미 다 알고 일부러 그들을 들여보냈다는 표정을 하고 있으니
모르려고 해도 도무지 모를 수가 없다.
나는 괜히 발걸음을 재촉해 숙소를 빠져나갔다.
바쁜건 아니지만 안그래도 할 일이 너무나 많았다.
이런데 낭비할 시간은 없다. 깨알같은 마력에 당해 몸을 파는걸로 자부심을 부리고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여자와 보낼 시간은 없다.
이른 아침 콜로세움에 도달했다.
"도전이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앞에 선 접수원이 말했다.
"어디보자, 그 문양이면, 너 맨데일 소속 노예냐?
노예의 콜로세움 출전에는 주인의 허가가 필요해."
"내 주인은 나 뿐이야. 봐 줄때 내 이름 거기 박아넣고 조용히 찌그러져."
내가 몸에서 마력을 모아 태우며 말했다.
마법을 모르는 세대가 보더라도 확실히 알 수 있도록 말이다.
붉은 아지랑이가 섞인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확실히 몸이 쉬고 난 다음이라 그런지 집중이 잘 된다.
마력 회로는 근육과 같은 거라서 찢어지고 터지면 수복되는 과정중에 강화되기 마련이다.
이전보다 수월하게 마력을 굴릴 수 있었다. 애초에 잘 찢어지는 구조가 아니지만
요 며칠간 구르면서 마력회로를 엄청나게 혹사시켰으니 말이다.
일반인이라면 죽었겠지 아마.
그리고 나서 그를 다시 바라보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명백한 위협의 의미로.
접수원은 방금 전의 싱글거리며 웃던 얼굴을 지우고 말했다.
"너...뭐야...? 헌터냐...?"
"헌터... 그런걸로 하자."
"이....이 씨발... 여기도 늑대가 떴다고...?
미안해! 난 말단이라 아무것도 몰라! 씨발 봐달라고! 넣어줄테니까!"
"그래, 말이 통하니까 좋네."
"어쩐지 메카닉 여자같은게 이 마을에 굴러올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개같은 새끼들, 정문에서 제대로 검사 안하고 뭐하는거야?"
"자꾸 입열어?"
"아...아닙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에리아."
"네, 에리아님... 등록 되셨습니다!"
"그래, 어디가서 내가 늑대라고 떠벌리면 죽이는 수가 있어."
"히익....!"
나는 헌터가 뭔지 모른다. 다만 그걸 대놓고 여기있는 접수원에게 물었다간
내가 헌터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히 드러나므로 말하지 않은 것 뿐이다.
아직도 내 머리 위에서 잘도 균형을 잡고 쉬고 있는 앤이 나에게 몸을 부비며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사실만 상기시킨다.
그래서 헌터가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