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콜로세움 (43/303)



〈 43화 〉콜로세움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울린다.
누구인지 깨닫기도 전에 바깥에서 고함치는 소리가 들린다.

"문 열어 에리아! 나다! 맨데일이라고!"

"뭐야, 네시간 뒤에 보자더니 겉치레가 아니었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기지개를 폈다.
애니가 살짝 두려운 듯 쪼르르 체헤게에게 달려간다.

[그래, 어서와라.]

듣지도 못하는데 교감이라도 하는건지 자연스럽게 애니를 어깨에 올린다.
분명 뒤로는 머플러에 피스톤엔진이라는 독특한 구조로 된 주제에
고양이는 어떻게 그렇게 편한 자리를 찾아서 앉히는지.

나는 문을 반쯤 빼곡 열었다.
그 문틈으로 맨데일이 눈을 쳐박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잘 쉬었어? 에리아. 빨리 날 들여보내줘! 너도 바라잖아!
지금쯤 온몸이 달아올라 정신없겠지? 내가 왔다고! 그 문을 열어!"

"잘못 찾으신 것 같네요."

"대체 뭐야...? 뭐냐고!!"

"뭐냐고 해봐야 아무 일도 없었는데요."


"씨발... 그 사기꾼 새끼가... 나한테 맹탕을 팔아?
확실한 미약이라고 해서 50델이나 되는 거금을 주고 샀는데...
이래서 길바닥 영기술사를 믿는게 아니었는데...
 빌어먹을 새끼, 에반제인의 눈에 들었다고 설치는 것부터 마음에 안들었어..."

"할말 없으시면 저는 쉬러 가볼게요. 내일 콜로세움 경기가 있어서."


"쉬어? 누구 마음대로? 따라나와! 그 영기술사를 찢어죽여버릴테니까."


그의 눈이 어딘가 먼곳을 바라보며 잔뜩 열이 올라 있었기에 나는 잔말 없이 채비를 하고
그를 따라나섰다.
체헤게가 따라나오는 걸 본 맨데일은 눈을 동그랗게 치뜨고 말했다.


"저 깡통덩어리는 놔두고 와. 짜증나니까...아니, 아니지. 같이 가야겠군.
이제 저 깡통도 내 거라는 의미니까!"

[맞춰줘야 하나?]


[그러자고. 닳는 것도 아닌데.]


내가 채비를 하고 나서면 맨데일은 그대로 나를 벽으로 밀어붙인다.
벽으로 몰리면 맨데일이 내게 다가와 멱살을 잡는다.
아무래도 멱살을 잡히는건 익숙해지지 않는다.


"이 쪼그마한 년이... 명령을 피해가기나 하고... 이래서 대가리가 좋은 새끼들이 싫다니까.
앞장서. 같이 가자고."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데요."

"하... 그렇구만. 거지같은..."


그렇게 말하고 바닥에 침을 뱉으며 그가 앞장선다.
분명 앞서 걷는 주제에 제대로 내가 그의 뒤를 따라 걷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다.
내가 말 없이 따라 걷는 와중에 불쾌한 기색을 몇 번이나 드러내도 그런건 대수롭게 생각지 않는 것 같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일 때마다 이상한 얼굴을 하며 나를 돌아보고 웃는 모습이
어쩌면 그런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 같아서 괜히 더 기분이 나빠진다.

여관을 박차고 나가면서 독특한 철추가 달린 채찍을 꺼내드는 맨데일의 손은
조금 긴장한듯 바짝바짝 말라 핏줄이 도드라지도록 채찍을 쥐고 있었다.
거리에 나선 시간은 이미 으슥하게 해가 지고 있을 오후였기 때문에
뒷골목쪽에서는 교성과 폭력으로 인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런 쪽으로 끌려가지 않은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순순히 끌려가줄 생각도 없지만.


제국의 거리는 유레크로스의 서지스나 콜린과는 분명히 달랐다.
일단 적어도 자동차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덜컹이며 움직이는 거대한 금속마차. 시속 70까지는 거뜬하다고 말하는
그 기기에 탈 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귀족들 뿐이다.

마부도 없고 말도 없는 그 독특한 구조물은 덜컹이지도 않고 철길을 달린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맨데일은 그 자동차를 가만히 쳐다보며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6번째 자동차가 지나갈때  앞을 막아섰다.
시속 70을 달리는 자동차라고 해도 속도를 내지 못하는 도심이라면 막아서기는 어렵지 않으니까.
그러나 자동차가  것은 그가 맨데일이기 때문이었다.
아마 노예라거나 부랑자일 경우에는 서지 않았겠지.

그도 그럴것이 이미 다리나 팔이 차에 깔려 부러지거나 썩어버린 자들이
종종 지독하게 곪아버린 사지를 겨우 부여잡고 거적데기 위로 놓인 바구니나 깡통으로
종종 구걸을 다니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으니까.


멈춰선 차의 문이 열리고 앞에서 집사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소리쳤다.


"맨데일 이 미친놈이 감히 이게 어떤 차인줄 알고 가로막느냐!
에반제인 아가씨의 귀갓길을 감히 너따위가 막을  있다고 생각하는거냐!"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뒷좌석의 창문이 내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름다운 외모의 여성이었다.
은발의 머리를 휘날리는 여성의 머리는 매끄럽게 정돈되어 끝이 살짝 묶여있었고
눈은 푸른 빛으로 빛나고 있었으며, 검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는데,
어깨는 살짝 드러나 목선까지 자연스럽게 보였고, 비단은 마감처리가 깔끔하게 되어
고급스러운 인상을 주고 있었다. 건강한 인상을 주는 매끈한 피부는 그녀가 다른 여성들과 다르게
지위가 높으며, 이 국가에서 중요한 요직에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무슨 일이더냐?"

그 고압적인 목소리가 도도하게 울려퍼졌다.
그와 동시에 맨데일이 고개를 숙이며 무릎을 꿇는다.

"에반제인 아가씨..."


"하아? 또 네놈이더냐 맨데일. 또 첩에게 무슨 볼일이 남았더냐?
가증스러운 자가 염치도 없구나. 그래, 무슨 배짱으로  앞길을 막은 것인지
이야기나 한번 들어 보자꾸나. 되도 않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목을 칠 것이다."

"다름이 아니고, 여기 보이는 제 노예에게 일전에 받았던 환을 먹였음에도 반응이 없어서
무례를 무릅쓰고 찾아온 것입니다."

"호오? 그렇다고? 얼굴을 보고싶구나. 데려오거라."

 말이 끝나자 마자 맨데일이  엉덩이를 툭툭 치며 나를 앞으로 밀어낸다.
내가 앞으로 걸어나가면 에반제인이 나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셨다.

"그래... 마음에 드는구나... 확실히 조교하는 맛이 있겠어.
얼마로 구했ㄴ... 아니, 네가 노예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남자는 아니었지.
그래, 얼마면  아이를 내게 넘겨주겠느냐?"


"네...?"

"얼마면 이 아이를 넘기겠냐고 물었다."

"그년은 메카닉입니다. 더욱이 기존의 약물로는 조교 자체가 불가능하고, 얼굴도 반반한 년입죠.
못해도 3캐럴은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3캐럴... 3캐럴이라... 그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냐?"

"쉽사리 넘겨드릴 수야 없지요. 사지 않으신다면 제가 정성들여 맛을 볼 뿐입니다."


"건방진 것. 나를 뭘로 보는게냐? 3캐럴은 어렵지 않게 준비해주마.
이 아이, 경험은 있느냐?"


"처녀입니다. 제가 건드리지 않았으니 확실하겠죠."


"그 대가리가 장식은 아니었나 보구나. 처녀가 아닌 아이를 내게 팔려고 하는 자는 없었느니라.
꼴에 성욕에 지지 않을 정도의 이성은 남아있었다니 답지 않구나 맨데일."


"하하하!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닐 겁니다. 온갖 약물을 빗겨가는 년입니다.
그 어깨에 남긴 낙인말고는 다룰 방법도 없죠."

"그래, 낙인. 이 낙인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게 있다면  소유라는 의미가 아니냐?"

"아, 그거야 그 영기술사에게 지워달라고 하시지요. 아가씨가 데리고 계시는 것 아니셨습니까?"

"주둥이 하나는 열심히 놀리는구나. 좋다. 메카닉이라고? 확실히 흥미가 동하는구나.
이번 한번은 너그러이 용서해주마. 두 번은 없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래, 내일 오후 6시에 내 저택으로 데려오거라. 그동안 행여 손이라도 댄다면
그 손모가지째로 도려내 가죽을 벗겨 박제해줄테니 허튼 짓을 꾸미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구나.
호호호... 좋은 아이야. 보면 볼 수록 탐이 난다. 오늘의 추태는 이정도로 넘어가주마.
자, 가자!"

그렇게 말하고 창문을 올리는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동차는 다시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탄 차가 멀어지면 그제서야 맨데일이 바닥을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저 망할 년이... 씨발... 씨발... 누구 마음대로... 내 노예였는데..."


그렇게 말하더니 그가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본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는 내게 손을 올리고 뺨을 후려친다.
짝 소리가 울리고 거리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로 몰린다.


"으아아아아!!!!!"

맨데일은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채찍으로 바닥을 내리친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씨발년아..."


그렇게 말하고는 맨데일이 내 볼을 한 손으로 잡아 짓이길듯 누른다.
볼품없이 뺨이 눌리고 입술이 비져나온다.

"볼수록 따먹고 싶은 얼굴인데... 씨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그는 거칠게 팔을 휘두르듯  얼굴을 놓았다.
덕분에 뒤로 나자빠질 뻔 했던 것을 체헤게가 받아주었다.

"잘 들어라. 너는 에반제인에게 걸린거야. 차고많은 귀족중에 저 미친년한테.
몸가짐을 깔끔하게 하고 내일 4시에 여기로 와라.
옷을 골라야 하니까."


"그러죠."

"싹바가지 없는 년.  그 좆같은 얼굴이 언제까지 사람을 아래로 깔아볼 수 있을지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봐 주겠다."

"차라리 추악하고 더러운 솔직한 모습이 어설프게 꼬셔보겠다고 들이대던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네요."


"이년이... 지금 내가 너에게 손대지 못한다고 함부로... 그래, 지금 즐겨둬라.
앞으로  일밖에 없을 테니까. 아, 눈물만 흘리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두렵지는 않다.
이미 콜로세움의 접수는 마쳤으니까.
콜로세움에 접수한 노예는 콜로세움 개막과 동시에 누구에게 속해 있었던
국가사유의 노비로 신분이 변경된다. 목숨을 걸고 싸우는 투기장이기 때문에
패배하면 죽을 뿐이고, 승리하고 살아남은 자는 노예가 아니게 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임시로 신분을 조정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3일간 콜로세움이 진행되고 살아남은 사람은 국왕, 정확하게는 황제가 공인하여
노예를 벗어나게 되며 부상으로는 국왕이 소원을 하나 들어주게 된다.
그래서 노예가 아닌 사람들도 종종 참가하곤 했는데
그러던 것이 결국은 노예들의 진흙탕 싸움이 된 결정적 이유는
그중 하나가 우승 소원으로 당시 고위 귀족이었던 여성과의 결혼을
말했다가 역으로 목이 달아나고 말았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춤해 도전하던 사람의 수가 줄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생역전을 노리는 사람들은 끝도 없이 콜로세움으로 몰려들었다.


콜로세움에서 죽은 노예나 검투사들은 대개 짐승의 먹이가 된다.
이들을 위한 무덤을 따로 마련하기란  그대로 낭비였기 때문이다.
콜로세움에서 우승한 자가 연이어 다음 개회에도 참전할 경우
그는 부전승으로 결승에 진출하게 된다. 일종의 전관예우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콜로세움이  그런 꼴이다. 과거 우승을 거머쥔 경력이 있는 자,
검은 망토의 구스온이 결승에 나타나게 된다. 구스온은 상당히 유명한 자였다.
콜로세움에서 승리한 자들은 모두 이름을 날리게 되니까.
생명을 담보로 한 경쟁에서 승리하고 요구조건을 제시하는 것.
목숨을 건 도박에서 승리한 자의 뇌는 쾌락으로 뭉개지기 마련이다.
점점 사람을 죽이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결국은 그 시체 위에 포개어진다.
결론은 하나지만 과정이 다양한 처형쇼가 제국의 콜로세움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나를 범하지도 못하고 팔아넘길 궁리만 하는 맨데일은 꽤 우습게 되었다.
자업자득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어느새 해가  떨어지고 있는 거리는 가로등이 하나 둘 빛나기 시작한다.
가로등 아래로 모여드는 것은 단연 벌레만이 아니다.
걸인들도 하나둘 그곳으로 모여들고, 서로를 위로하듯 모여 난잡하게 뒤엉킨다.

"이 나라는 정말 익숙해질 수가 없네."

[그러는 것 치고는 상당히 덤덤해 보인다만.]


[어쩔  없지. 여기저기 씨뿌리고 다니는게 피뿌리고 내장뿌리고 하는 것보다야 건전하잖아?
익숙해지는거지 뭐. 그리고 적어도 사람대 사람으로 하고 있잖아?]


[사람...이 아닌 경우도 있었나?]

[말했잖아. 말 정액으로 마력구를 만드는 마녀도 있었다고.
취향 참 독특했지. 백마, 황소, 저번엔 뭐라더라? 낙타? 무슨 듣도보도 못한 혹달린걸 데려와선...
나중에는 스스로 만든 키메라한테도 다리를 벌려대더군. 결국 자기 최고 걸작품이라고 말하고 다녔지?
그렇게 두어달 정도 지났던가? 배가 부르기 시작하고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깨달았지.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본 적이 없네.]


[상당히 불쾌한 것 같군.]

[어떻게 되었든 생명이 장난감처럼 소비되는 장면이니까. 역겨운건 역겨운거고.
결국 말도 소도 키메라도 살아남지 못했어. 생명이 태어나는 일도 없었고.
종이 다르니까 별 수 없나. 임신했더라면 그게 더 충격적이었겠지만.]

[우욱..!]

[됐어 돌아가자.]

"애니, 이리와."

"냐옹."

애니를 품에 안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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