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6화 〉노예소년 (46/303)



〈 46화 〉노예소년

제국의 콜로세움은 가혹하다.
죽은 자들을 매년 양산해내면서도 그 유흥을 멈추지 않는다.
자연히 인구수는 줄어야 정상이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사창가의 창녀들과 개인 성노예의 존재로 출산율이 높았기 떄문이다.
계급은 온전히 가장이 결정하는 구조였다.


가주에게, 혹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한 자식은
그대로 노예가 된다. 정확히는 부랑자였지만 그게 그거였다.
부모의 계급이 다른 경우, 아이의 계급은 낮은 쪽을 따라갔고,
더 높은 쪽에서 아이를 부담할 수 있었지만, 이 경우 사회의 시선이 따가웠다.
창녀와의 자식이라거나 사창가에서 난 아이는 자식으로 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으니까.
길바닥에서 노예들끼리 붙어 가정을 이루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부랑자들의 욕망에서 빚어진 아이는 대개 객사하고 말았지만
보통 자식이 들어선 여자를 두고 남편은 가만히 앉아있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콜로세움으로 발을 들이는 부랑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대개 과부가 되어 아이를 버리거나 홀몸으로 아이를 키우게 되지만.


그랬기에 기형적인 콜로세움 문화는 계속 자리잡았다.
세뇌에 가까운 교육형태는 이 계급사회를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누구나 노예를 기피하고 물건으로 다루도록.
그리고 목숨과 성이 단지 유흥거리로 소비되도록 만들어 놓은 제국의 교육을
탓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귀족은 귀족 나름대로 만족했으며,
시민은 자신보다 아래의 존재가 있다는데 안주했고
노예들은 불만을 가지기보다 먼저 그 삶을 마감하거나 정상적인 사고를   없도록 뇌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맨데일은 귀족이었던 아버지와 창녀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디 창녀였던 어머니는 아버지의 눈에 들어 개인 노예로 팔려왔다.
어머니가 임신한 것을 깨달았을때 그의 아버지는 가차없이 그녀를 버렸다.
어머니는 결국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기르는 쪽을 택했고,
가뜩이나 없는 옷과 음식을 아들에게 모조리 투자했다.

어머니가 자신을 위해 몸을 파는 장면을 보면서 맨데일이 느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사랑? 감사? 아니었다. 그가 느낀 것은 역겨움과 불쾌함이었다. 그게 사회 구조에 대한 것은 아니었다.
어머니 역시도 제국민이었기에 그를 키우던 와중에 무의식적으로 그게 당연하다고 가르친 탓이었다.
그녀는 불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맨데일이라는 아들이  소중했다.
아들이  나은 삶을 살기를 바랐기에 아들에게만큼은 철저히 제국의 시스템을 이해시켜야 했다.
그 결과, 아들은 어머니를 혐오하게  것이다.

노예라는 신분에 대한 혐오.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한 혐오. 그리고 노예인 자신에 대한 혐오.
그리고 맨데일이 9살이 되던 해였을까. 어머니는 성병으로 시름시름 앓게 되었다.
그녀가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하나였다.

'너희 아버지는 귀족이란다. 나라가 알아주는 귀족... 태글리만...'

그 말을 남기고 그녀는 죽었다. 노예였기에 비석에  이름도 없었다.
그건 맨데일에게 있어 빛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날마다 거리로 나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 아버지는 태글리만이야. 난 태글리만가의 피를 잇고 있어"

처음에 그의 말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 나라에서 귀족과 노예 사이의 아이가 버려지는 것은 흔한 일이기에.
그러나 소문이 점점 퍼지면서 곤란한 인물은 당연히 생겨나기 마련이다.
보통 귀족과 노예 사이의 자식이 자신의 출생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걸 스스로 떠벌리진 않는다.
그래봐야 노예는 노예였으니까. 그리고, 아마 노예주제에 나선다는 생각을 한 누군가가 위해를 가할지도 모르니까.
그러나 맨데일은 달랐다. 그는 노예로 살 바에야 죽는 것이 낫다고 각오한 자였다.

결국 그는 누구에게도 잡히지 않고 도망다니며 자신의 존재를 태글리만에게 알리는데 성공했다.
당연하지만 태글리만은 그 이후로 점차 다른 귀족의 눈치를 보아야했다.
보이지 않는 서열 내의 서열. 그 미묘한 위계질서에서 밀리고 있었으니까.
태글리만은 결국 참지 못하고 사병을 일으켜 맨데일을 잡아오라고 말했다.


맨데일이 그의 앞으로 불려가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네가 맨데일이냐."

"네."

둘의 첫 대화는 그것이었다.


"노예주제에 이름이라고?"

"직접 지었어요."


 대화는 제국에서는 아주 이질적인 것이었다.
원래라면 잡아서 즉시 목을 치려고 했던 태글리만이었지만
묘하게 이질적인 아이의 모습에 그가 입을 열었다.

"너는 목표가 어디까지냐."


맨데일의 대답은 그의 마음에 들었다.

"나같은 노예를 늘릴겁니다.
노예를 벗어나서, 귀족이 되어서. 사창가의 창녀들을 부리고
개인 노비를 들이고, 나같은 자식을 늘릴겁니다.
많은걸 바라진 않을테니까 나를 사요. 나를 사서 노예 해방만 해준다면
시민권만 받고 나서는 두번 다시 얼굴 비추지 않을테니까."


"뻔뻔한 놈이..."

그 말대로다. 노예를 구입한 일정 계급 이상의 인간이 노예를 해방하는 조건은 3가지였다.
죽이거나, 버리거나, 혹은 노예의 시민권을 구입해주거나.
물론 3번 항목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제국의 국고를 채우기 위해 형식상 만들어놓은 항목이니까.
노예 스스로도 일정 금액을 국가에 지불하면 시민권의 구입이 가능하지만,
귀족에게는 할인이 들어가 대개 1~1.8캐럴 단위인 금액인 것이 노예에게는 퀴트까지도 올랐으므로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에리아는 과감히 콜로세움으로 몸을 던진 것이기도 하다.


"그래, 그 말이 사실이냐."


"네."

"네 가치는 2캐럴이다. 아느냐?"

"모릅니다."


"네가 거리에서 헛소리를 하고 다녔기 때문에 내 평판이 깎이기도 했다.
덕분에 너는  값어치가 붙어버렸단 말이다.
애새끼 주제에 과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냐?"


"그렇네요. 그럼 죽이셔도 됩니다."

"하... 좋다. 그럼 바라던 대로 죽여주마."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맨데일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품에 감추어 두었던 뾰족한 유리조각을 들고
태글리만의 목을 조이며 그 목에 유리날을 들이밀었다.

"어차피 죽을거 아버지랑 손잡고 같이가면 좋지 않을까요."

"썩을 놈이..."

그 협박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이가 얼어붙었다.
그 많은 사병보다 길거리의 아이가 빠를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모조리 목이 날아가도 이상할게 없었다.
살짝 베인 태글리만의 목에서 피가 한줄기 흐르면 태글리만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좋다. 널 사마. 풀어줄 수도 있다. 그러나, 두번 다시 헛소리를 하고 다니면 안될게다.
그리고, 그 얼굴. 두번 다시 비추지 않겠다고 했더냐?"

"네."


맨데일이 유리조각을 들고 뒤로 물러선다.
태글리만이 후후 웃으며 말했다.


"가서 재봉틀과 각인사를 데려와라."

각인사. 그것은 제국에 존재하는 영기술사였다.
이전보다 확실히 영기술의 위력이 약해졌다고 하더라도
마법은 마법이니까. 노예의 낙인을 새기며 동시에 복종주술을 거는 것이다.
낙인은 즉 복종 주술의 마법진이다.

대개 각인사는 복종주술의 진을 그려주거나, 조교 중에 상처입은 노예를
치유하는 식의 일을 하는데, 대다수는 타락한 교인이나 사제들이었고,
파문당한 종교나 이교도의 무리도 있었다. 귀족에게 고용되어 비싼 돈으로
개인 노예를 만드는데 도움을 주는 이들이었다. 어떤 주술이든 진을 그릴 때는
자신만의 커스텀을 가할  있었기에 그게 모종의 브랜드가 되곤 했다.
간혹 의뢰를 받으면 추가금을 받고 누가 새긴건지 알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이미 태글리만에게서 떨어지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맨데일은 주위에 널린 사병에게 잡혔다.
어린 아이에게 도망치는 일은 불가능했다. 이제부턴 여차하면 자살할 생각으로 붙들린 것이다.
믿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또 각오했으니까.
그리고 불려온 각인사에게 태글리만이 말했다.

"이 애새끼 쌍판데기를 갈아줘라. 얼굴 형체도 남지 않게.
아예 피부 껍질을 벗겨버려도 좋고."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허허..."

"아, 눈이랑 입은 살려둬도 좋다."

"그러믄입죠. 코는 어쩔  없이 뭉개지는데 괜찮으십니까요?"


"귀도 갈아버려도 좋다."

맨데일은 순순히 고문실로 끌려갔다.
이렇게까지 한다는건 아마 정말 자신의 얼굴을 다시 보기 싫어서.
정말 놓아줄 생각이라서 라는 느낌을 받아서였다.

그날 맨데일은 얼굴을 완전히 갈려버렸다. 코는 파여 흔적도 없었고
피범벅이 된 얼굴위로 불타는 인두가 지져졌다.
눈은 겨우 앞을 볼 수 있었으나 피눈물로 얼룩져버렸고
양쪽 귀는 비대칭으로 뜯겼다.
피를 뚝뚝 흘기는 그의 얼굴은 가져온 재봉틀로 봉합되었다.
그의 얼굴을 덮은 가죽은 병사들이 주워온 그의 어머니의 피부였다.
영원하지 않을거라며, 얼굴 가죽이 회복되면
그때는 알아서 하라고 말하는 각인사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

그러나 불만은 없었다. 태글리만은 정말 맨데일을 놓아주었으니까.
평민. 그게 그의 입장이었다. 그는 곧장 모험가로 전직했다.
모험가는 적정 연령이 정해지지 않았으니까.
그때부터 그는 머리를 길렀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 그리고 귀를 덮기 위해서.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두건으로 머리를 둘둘 감았다.
정말 기괴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처음 그가 손에 든 무기는 채찍이었다. 다 헤진 가죽 채찍.
검이나 도끼같은걸 구입할 돈은 없었으므로 그 채찍을 쓰다보니
그게 꽤 손에 익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점점 살상력을 올려가면서 그는 모험가로서 실력을 갈고 닦았다.


그는 15세가 되어 처음 노예를 얻었다. 그가 5급 모험가가 되었을 무렵이다.
그가  처음으로 포획한 노예는 30대의 여성이었다.
막 제국을 찾은 여자는 집을 나간 남편을 찾아 대륙을 떠돌고 있다고 했었다.
그녀를 돕겠다며 접근했던 맨데일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신상을 물었다.

"남편분이 모험가신가요?"

"아니에요..."


모험가는 아니다. 이 나라에서 모험가는 시민권이 부여된다.
국제적으로 보호받는 존재이므로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그럼 혹시 귀족이라거나 계급이 있으신가요?"


"아니에요...흑흑... 어디갔을까요..."

타국에서 귀족인 자는 제국 내에서 귀족으로 인정받는다.
귀족도 아니었다.

"출신지는 어디신가요?"


"텔레프란대륙이요..."

"엠페레스왕국이시겠네요?"

"네..."

일부일처인 나라다. 아마 이 여자의 남편이 속한 계급이 그대로 아내에게 적용되었을 것이다.
정확히는, 부부의 계급이 같다는 의미다.
낮은 쪽으로 신분이 맞춰지므로.
일부다처의 경우에는 남편의 계급이 소급적용되어 차등적으로 대우하지만
간혹 아내가 남편의 계급을 웃도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섣불리 접근할  없다.
남자의 얼굴이 반반한 경우 귀족 여성이 데리고 사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계급이 다를  있다는 확률이 남는다.
이 경우 다른 부인들과는 소홀해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귀족 여성 측에서 대개는 별채를 제공한다고야 하지만... 사실상 기둥서방일테니.

이후로는 어려울게 없었다.
여성을 데리고 가서 숙소를 잡아주고, 밤에 만든 여분키로 문을 열고 들어가서 미리 받아둔 낙인을 새길 뿐이니까.
아무리 봐도 10살 안팎인 소년을 의심하지 못한 여성은 그렇게 그의 노리개로 떨어졌다.
소년은 아직 어렸다. 창녀였던 어머니를 매일 봐왔기에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수입도 없는 그에게 붙들린 여성이 건강을 보장받을리 만무했다.
결국 여성은 남편을 찾지 못하고 맨데일에게 시달리다 죽기 직전에 노예시장으로 팔려갔다.
그녀에게는 트라우마일 기억을 남기고도 맨데일은 태연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 그는 이제 엄연한 제국의 시민이었다.
양친이 없는 맨데일이라는 소년은 금새 거리의 악동으로 떠올랐다.


이미 노예중에 제일 출세한 미친놈이라는 인식이 박혀버렸으니까.
그런 그가 지금 다시 노예로 돌아갔다.
다시 신분을 되찾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 했다.
손발이 떨리는 것은 분노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몰랐다.
한번 자유를 느껴버린 노예는 자신의 인생에 좌절해버린다.
맨데일은 초조했다.
버리지 못하고 품에 가지고 다니다가 다 썩은 어머니의 얼굴피부를 구기면서
그는 오래 전의 그 날을 막연히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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