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소녀의 집착 (65/303)



〈 65화 〉소녀의 집착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아도 거를 수야 없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자신을 부르는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자신을 데리러  운전사는 문 앞에서 정중히 자신에게 인사를 한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그래, 잘 지냈다."

긴 말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상단의 일방적인 거래 요구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는 생각보다 금방 찾아왔다.
왠지 일이 잘 풀리는 느낌. 한번 자신이 붙은 그녀는 평소와는 달랐다.
자신을 압박하려 하는 상단을 역으로 밀어붙이며 한치의 양보없이 대치했다.


"그, 공녀님께서 오늘은 조금 들뜨신 것 같으신데..."


상인단의 대표가 그녀에게 꼬리를 말았던 것은 처음이었다.


"시끄럽다. 내 이제껏 너희의 간곡한 부탁을 들어주었더니 이제와서는 존경이며 예의며
그 무엇도 내게 보이지 않는구나. 오랜 기간 소녀가 웃어주었더니 기어이 성질을 긁는 것이냐.
필요없다. 담배고 구역권이고, 소녀가 직접 관리할 터이니 이제 그대들은 돌아가라!"


"그... 공녀님, 평소와 다르신데 왜... 아, 혹시 오늘 무슨 문제라도?"

플로라는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원래의 형태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개중 몇몇은 낭패를 보았다는 표정을 하고 잔뜩 썩어버린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조심스레 손으로 구긴다.
그녀의 눈에 나지 않게 조용히 구긴 담배였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았다.

"아, 이제 아예 피우기도 싫었다, 그 말이더냐? 좋다. 계약건은 없던 것으로 하지.
그대들의 뜻은 아주 자~알 알았느니라. 이제 소녀의 앞에서 담배는 금한다.
지난 주까지 한탕 올렸으니 이번주는 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책임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그 담배를 구긴 탓에, 여기 모인 이들 모두가 손해를 보는 것이다.
여지껏 너무 방치했더니 이제 소녀를 집어삼키려들어?"


플로라는 회의를 마치고 방을 떠나며  소리가 나게 문을 닫았다.
얼어붙은 분위기에서 상인들은 하나같이 웅성였다.


"씨발... 저 개같은년... 오늘따라 지랄이야 지랄이길."


"원래 저렇지 않았잖습니까. 조금... 걱정이 되는데..."

"하... 씨발 이제껏 만만하게 봤더니..."


"저는 그래도 저 모습이  좋은 것 같기는 합니다..."

"누가 저 년 기분이라도 건드린 것 같은데요?"


"그래서 담배 구긴건 어떤 새끼냐?"


곧 그들은 서로의 책임을 돌리기 시작했고 담배를 구긴이를 질책했다.
문 밖에서도 들릴 정도로 그들은 소란스러웠다.
플로라의 거절은 유래없던 일이었다.
평소같았다면 거친 행동에는 반드시 두려움이 뒤따랐다. 망설임이 앞섰다.
이래도 될까. 저들이 보복하지 않을까. 거래를 끊는다면? 아버지가 이룬 것을 망친다면?
늘 머리를 메워 행동을 막아서던 그런 생각이 오늘따라 들지 않았다. 대신 왠지 모를 아까보다 밝아진 목소리로,
[찾아갈게] 라고 말하는 에리아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그녀는 상단을 물리고 밖으로 나왔다.
빠르게 일처리를 마치고 콜로세움으로 찾아가고 싶어서였다.
그 외에 것들은 어떻게 되던 상관없었다.

 외에 지역의 세금을 일부 걷어오고, 나름대로 할 일들은 마쳤다.
플로라는 평소 이 일에 상당히 시간을 쏟았었다.
그녀가 무능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아주 유능했다.
그녀를 만만하게 보는 이들이 일부러 말꼬리를 잡아 늘이기 때문에
원치 않게 이야기가 길어지는 것 뿐이었다.
그런 그녀가 오늘은 마치 다른 사람인 것 같이 행동하자 놀란 것이다.
물론 평소에도 그녀가 만만해 보이는 건 아니었다.

대개 그녀는 눈을 살포시 감고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유순히 끄덕이며
종종 이해되지 않는 일들은 날카롭게 질문하는 형식으로 일처리를 해왔다.
위엄을 동반하는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다지 위협적이지는 않은
마치 자비로운 통치자와 같은 여성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그녀는 달랐다. 대놓고 눈에 독기가 바짝 들어 책상에 손을 올리고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피력하며, 반대하는 이들을 기어이 말로 꺾어버렸다.
오늘 있었던 지역 귀족들의 철도공사건에 대한 회의만 해도 그랬다.

"그래서 그대는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굳이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일을 추진하고,
그 손해를 고스란히 내가 받아내고 나면 그제서야 사과 한두마디로 사죄할건가?"


"그..그게 아니오라..."

"아니다? 말해보아라. 그 일을 추진해서 소녀가 받게 될 불이익은 어떻게 해결할건가?
그럼 이렇게 하겠나? 허가하지. 단, 앞으로 철도를 명목으로 떨어지는 수입의 70%를 에반제인 가의 몫으로 돌려,
이를 활용해 내쪽에서 새는 돈을 막는다는 방법에 동의한다면 말이야.
좋은 제안 아닌가? 방금까지는 어떤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만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거기에 나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가?"


"그...그리 하겠습니다..."

그녀의 가학성은 에리아로 인해 시작되어 점차 커져가고 있었다.
자신을 채워주는 충족감이 에리아로 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고 나선
에리아가 보여준 당당함을 동경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공녀님이라고 하셔도  제안은 너무하십니다! 다시 생각해주시지요!"

누군가가 그녀의 앞을 막았다.
이제껏 자신을 여러 번 막아선 자였다. 그녀가 거절하기 어려운 협박아닌 협박을 해오던
그 여자는 자작의 아내였다. 자작의 권한 대리로 종종 참석하곤 했는데,
자작가와 남작가의 전폭적 지지를 안고 있었다.


"호오?"

"공녀님께서 소유하신 토지는 반드시 철길을 깔아야 하는 요충지이옵니다.
또한 그로 인해 이익 역시 상당히 많은 것으로 예상하옵니다.
 길목에 철길이 나지 않으면 무려 27km나 되는 우회로에 철길을 뚫어야 하옵니다.
또한 공녀님께서도 불편함을 안게 되실 것이니...!"

"필요없다."

"예...?"


"그딴 것 필요없다고 하였다.
소녀가 직접 그 길을 걸어가겠느냐? 손가락 하나로 누릴 수 있는 것을
이제와서 그대들의 편의를 위해  발로 뛰라고 하는 것이냐?
아쉬운건 누구지? 건방지게 입을 함부로 놀리지 말아라.
두번 다시 열지 못하게 만드는 수가 있느니라."

멈칫한 여성이 우물거리며 말을 잇는다.
전략을 바꾼 것 같았다.


"저희측에서 비용은 부담하지요.
그리고 철도 공사로 인한 에반제인 가의 토지에서 발생하는
상단의 이익 50%를 드리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분명 적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하옵니다."

"소녀가 우스운 것이냐? 그대들이 에반제인 가의 토지에 설립하겠다고 하는 것은
역이나 물류교환이 가능한 공간시설이 아니라 철길 아니더냐?
철길을 내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철길을 내기 위해 밀어버려야 할 언덕과,
길을 내기 위해 베어야  목재가 에반제인 가의 부지에 있지 않으냐.
그리고 광산에서 발생하는 문제에는  이름을 팔아 달아둘 생각이 아니냐?
부지는 넓으니 철길은 많이 깔아야 할 것이고, 이익은 얼마 나오지 않을 것이며,
광산에서 발생하는 불만은 내게 돌리겠다?
에반제인 가에서 발생하는 상단의 이익? 헛소리 말아라."


"아... 여(余)는 그런 뜻이 아니오라..."


"그런 뜻이 아니다? 아하, 그런 뜻이 아니라는 뜻이로구나.
골라라. 에반제인가의 앞에 역을 세우고 철도공사로 벌어들이는 총 수익의 50%를 바칠 것이냐,
아니면 당장  목을 내게 바치고, 없던 일로 하겠느냐."

"여...역을... 세우겠사옵니다..."


강제로 밀어붙이는 일의 쾌감은 소녀의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졌다.
그제서야 그녀는 진짜 권력을 느꼈다. 이대로라면 에리아를 가지는 것도 간단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어머니께 피를 드리고 적당히 데리고 놀다 놓아주려 했던 것은
어느새, 그녀를 자신의 아래 깔아뭉개고 울리는 천박한 욕망으로 변해있었다.
일을 마치고 그녀는 곧장 콜로세움으로 달렸다.
콜로세움에서는 이미 도박에 정신을 놓은 이들과 그들에게 물건을 파는 이들,
그리고 그들을 구워삶아 노에시장에 팔아넘기려는 이들, 취객들로 가득했다.
그녀가 콜로세움의 주최측으로 발을 들이면 접수원이 말했다.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에리아를 만나러 왔다."

"에리아...아, 그녀라면 이미 게비디님께서 데리고 나갔습니다.
왕성으로 향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게비디인 것이냐..."


그래도 괜찮았다.
에리아가 자신을 선택하리라는 생각이 남았으니까.
이미 오늘은 업무를 전반적으로 잘 처리하지 않았던가.
요즘 한참 논란이 되는 제국 내 철도사업과 정기적인 상인단과의 협상 모두
이제 그녀에게 문제가 아니었다.
살짝 답답한 감정이 맴돌았지만 그럼에도 후련함은 남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물었다.

"왕성? 왕성에는 어찌하여 간 것이더냐?"

"잘 모르지만, 아마 황제께서 직접 들어주셔야 하는 소원을 빈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황제께서 직접... 꿈이 큰 아이로구나."


"다른 볼일은 더 없으십니까?"


"그래. 없느니라."


그녀는 남는 시간에 잠시 휴식을 택했다.
저택으로 돌아가서 잠시 쉬며 다음 일정을 준비하기로 했다.
4시가 되면 또 약속이 있었으니까 미리 쉬어두는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문을 열면 고통이 담뿍 담긴 신음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그녀가 티들렌이 누운 방의 문을 열면 티들렌은 한참 이불 위로 검붉은 피를 토해내다가
플로라를 발견하고 한 손으로 그녀를 막아세운다.
이미 손에도 상당히 피가 묻었다.


"쿨럭... 아직은 돌아올 때가 아니잖니? 왜... 이시간에...?"

"그게 중요한게 아니잖아요."


급히 티들렌을 간병하고 이불을 빨고 티들렌을 씻기고.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도 그녀는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플로라, 늘 고맙고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단다  딸아."

"걱정 마세요. 안그래도 4시에 의사를 만나보기로 했어요."


"이제 그런 데에 돈 쓰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도..."

"어떻게 그래요. 낫는 데에 전념하세요 엄마."


그녀의 걸음은 살짝 촉박해졌다.
약속시간은 4시였지만 일부러 3시도  되지 않은 시간에 출발한 것은 그 이유다.
의사는 못미더웠다. 늘 고가의 치료비를 요구했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심지어 회진이나 진료도 일정이 있다며 거절해대기 일쑤라 플로라는 그를 싫어했다.
의사가 본업이지만 약품인지 뭔지를 만든다고도 했다. 성격이 이상한 남자였다.
듣기로는 연구소장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같다. 그러나 플로라는 연구소 같은 것을 알리 없었다.
차로 한참을 달려서 병원에 도착했지만 인기척은 없었다.


"누구 없느냐?"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누구 없느냐고 물었다!"

역시 대답은 없었기에 자신이 너무 일찍 왔나 생각하던 차였다.


"이틀 전쯤인가부터 문을 닫았소."


자신의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나릇하게 깔리는 목소리였다.
뒤를 돌아보니 작은 키의 남자가 그렇게 말했다.


"문을 닫았다고 하였느냐?"


"그렇소."

자신을 몰라보는 것인지 예를 갖추지 않는 남자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다.


"이틀 전에 처형당했소. 황제에게 끌려가 보는앞에서 죽었지.
아, 처참했다고 할 수 있겠소. 눈물 콧물 다 짜며 일그러진 표정이 상당히."

"그대는 누구인가?"


"황제의 전 직속 각인사중 한명이오. 지금은 노예신세지만."

"노예신세라?"

"각인사는 모두 이렇게 되었지.
얼마전에 콜로세움에서 우승한 노예가 낙인을 지워버리는 모습을 보았는가?"


"아, 그 일로..."


"그래, 연구소장과 연구소 총 책임자는 그 일로 목이 달아났소.
제국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니까. 연구소에서 내놓은 각인사의 실책이잖소.
나 역시 그 자리에서 처형당할  했지. 운 좋게 노예가 되었지만."


"운이 좋다? 노예인데 말인가?"

"각인사는 노예가 되지 않는다네.
각인사 자체가 워낙에 드무니까 말이지.
법적으로 낙인을 새길 수 있는 자는 노예로 한달이라는 시간을 보내면 대개 고용의 형태로 귀족가에 들어가거나
다시 평민의 신문으로 돌아가 각인사로 활동할 수 있지."

"좋은 정보구나. 하지만, 상대가 나빴느니라. 난 그런건 용서하지 않는다."

플로라는 그에게 직접 낙인을 새겼다.
그의 이마에 직접 새긴 낙인이 선명하게 빛났다.


"다음 콜로세움이 열리는 날, 자발적으로 참가하도록."


"아...아아....! 씨발...씨바아아아알!!!! 너...너 뭐야!! 낙인을 어떻게..!!"

"쉿."


그녀가 입술에 손가락을 가져다대며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면
그는 조용히 침묵했다.

"오늘의 기분은 참 독특하단 말이다. 아주 날아갈 듯 좋은데,
아무리 날아봐야 머리 위로 하늘이 있어서, 돌아보면 내가 제일 밑바닥 같지 않으냐."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조용히 웃었다.
에리아의 결핍이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지만 분명히 망가져가는 플로라는 그렇게 제국의 공작이 되어갔다.
이후 그녀는 마을을 돌았다. 거리의 노예를 돌아보며, 사람들을 살펴보며.
그렇게 천천히 왕성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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