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젤렌지
게비디의 사무실까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을 보자마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고 미소지었다.
"오셨군요."
"일단은 맡은 일이니까 하는 만큼은 해야지."
"계시지 않는 동안에 저희쪽으로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이 왔다고?"
"젤렌지라는 자입니다. 물론 무령님께서 무시하셔도 상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그쪽을 추천드립니다만, 한번 만나달라는 말을 하기에 일단 전해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보다 신중하네. 좋아. 이번 일을 정리하면 만나러 가야겠네."
"만나신다고 하셨습니까."
"응. 어차피 만나야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렇다면 말릴 수야 없겠군요.
여기, 부탁하셨던 연구자료입니다."
"아, 고마워."
연구자료들을 하나씩 흩어보면서 샘플을 받았다.
가방에 하나하나 샘플을 집어넣고 자료를 읽어보면 확실히 내가 모르는 약품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내가 약품을 만드는 것은 연금술을 기반으로 한 것에 마법을 섞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연구소로 인한 신종을 만들어내 그 신종으로 연금술을 이용하는 식이었다.
내가 몰랐던 신종으로 연구를 진행하니 알 턱이 없던 것이다.
그래서 연구소에 흥미가 생겼다. 신종을 만들어낸다는 사실 자체가 매력으로 느껴져서.
간단히 한번 쭉 자료를 읽어보고 가방에 넣었다.
"아니 왜 더 읽어보시지 않고, 인쇄 상태는 이미 제가 확인을 했습니다."
"다 읽었어. 연구실로 가려고."
"아..! 제가 성급했군요."
"괜찮아. 모르니까 그럴 수 있지."
나는 곧장 연구소로 향했다. 게비디는 당연히 뒤를 따랐다.
연구소에는 이미 준비된 실험도구와 내가 쓰는 것과는 다른
첨단이라 말할 수 있을 도구들이 있었다.
"이거 좋네. 훨씬 깔끔한 플라스크에, 이건 가열용 도구인가?
오, 이건 분명 마력 감지용지였지? 오 좋아. 신기해."
"기뻐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나저나 마력 감지용지라니...
그런것은 자료를 정리하면서 본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아, 이거? 자료에는 영기술 보호지라고 써있더라.
이거 특성란에 써있는게 빛이 나거나 열이 나거나 하는 물건을 포장할 때 쓴다.
이거, 마력을 감지하는 특성이 있거든, 그래서 종이 뒷면으로는 마력을 차단해줘.
마력에 반응해서 색이 변하는거지. 지금은 검은색이지만 봐, 이렇게 하면."
살짝 손끝에 마력을 모아주었다.
내 마력에 반응해 붉은 색으로 번져간다.
"봐, 이건 내 마력의 색이야."
"그게... 한번 보시면 바로 아시는 겁니까?"
"어렵지는 않네."
"대단하십니다... 그럼 저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아, 가기전에 잠시만."
"네?"
나는 그에게 가방에서 꺼낸 커피 보온병을 건넸다.
"마시면서 해."
"아, 감사합니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연구장비만을 둘러보는 것만 해도 상당히 시간이 잘 갔다.
심호흡을 마치고 둘러보면서 내게 배정된 창고와 보관함을 한번씩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늘부터 바로 시작할 필요는 없었으니까. 사실 나는 플로라를 연구소장으로 위임하고
빨리 제국을 떠야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우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레시피를 따로 정리해서 문서화 시켜두고 이를 지속적으로 공장에서 찍어내도록 만들어야 했다.
우선 알던 부분을 하나같이 오픈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TLA770A의 레시피를 문서화해 책상위에 두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연구소장을 키워내야겠지.
우선 이정도로 정리하고 내려가기로 했다.
연구소 7공정은 별도의 출입문이 달려있었기에 편하게 못 볼 꼴을 보지 않고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정문쪽으로 돌아가니 킬레리가 대기중이었다.
"아, 나오셨습니까."
"어, 너는 왜 여기있어? 게비디의 업무를 도와야 하잖아."
"마스터께서는 임시 킬레리를 별도로 업무에 투입시키셨습니다.
현재 제가 담당중인 업무는 무령님의 호위 및 업무보조가 되겠습니다."
"아, 그런거구나."
"네, 또한 젤렌지 후작이 곧 이쪽으로 모시러 온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제발 이상한 탈것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내 예상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갈기갈기 찢겼다.
저게 대체 뭐야.
크레마르의 마차보다 더 괴상한 것이 그곳에 있었다.
마차는 대놓고 양 벽면에 살아있는 여체를 박제하여 그 가죽으로 덮었고,
아직 살아있는 채 팔다리를 잘려 그 끝에 뭉툭한 철판으로 마감이 되어
몸뚱이만 내놓은 채로 숨을 허덕이는 벽면에, 마차의 바퀴는 의도적으로 한 것인지
두꺼운 톱니바퀴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또한 마차의 차체는 정말 희고 매끄러운 재료로 조각되어 있었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었다. 저건 인간의 뼈다. 인간의 뼈를 깎아 조각한 것이다.
그래서 철제는 상당히 적은 수로 조각되어 사슬로 기운 부분이 보였고,
그 부분을 인간으로 덮은 것 같았다.
가만보니 핏자국도 군데군데 남아있었고, 안쪽에서는 그 엉덩이를 희롱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덕분에 덜컹이는 마차는 가차없이 마차를 끄는 남성 노예를 괴롭게 했다.
바닥으로 떨어지는 핏방울들이 길게 늘어선 길은 그야말로 고행의 길이라고 할 만 했다.
나는 말없이 내 옆에 선 킬레리의 어깨를 토닥였다.
"젤렌지 후작이군요."
"저게?"
말은 더 잇지 않았다.
마부는 노예들이 신음할때마다 그들의 등에 채찍을 내리치며 닥치라고 윽박질렀다.
결국 한명의 노예가 쓰러지면 마부는 피식 웃으며 고삐를 당겼고
노예들은 반란 대신 쓰러진 노예를 욕하며 탓하여 그를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멀쩡해보이는 이는 없었다.
"여자는 인력으로 쓰지 않는거야?"
내가 그렇게 물어보니 킬레리의 목소리 대신 아주 얇고 가는 목소리가 들린다.
"그것과는 다르다고 말씀드려야겠지요. 우선 고삐를 걸기가 불편합니다.
그리고, 용도도 다르다고 봐야겠죠."
그 말은 마차의 내부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마차의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사람이 걸어나왔는데,
문에 박제된 여자가 나와 마주보게 되었고,
그 안쪽에서 가벼워보이는 남자가 나타났다.
"처음 뵙겠습니다 무령님. 저는 젤렌지라고 합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남자는 그렇게 지팡이를 짚고 섰다.
"반가워. 그래서 무슨 일로 날 찾은거지?"
"아, 아직 모르실 수도 있었군요."
"죽고싶지 않은 거라면 운동을 하라는 말을 해줄게.
다른 이유가 혹시 있는지 물어본거야."
"상당히... 가벼우시군요."
"가볍다?"
그와 내 눈이 마주쳤다.
그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직 드시지 않으셨다면 제 자택으로 가시지요.
함께 식사를 하시는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너랑? 왜?"
"만족시켜드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젤렌지라는 이름이 후작이라는 작위를 달고 있는 줄은 몰랐거든.
혹시 어디서 죽지는 않았을까 생각했어."
"그런...인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군요."
"제임스 트러스트 신부가 찾고있던데."
"아, 그 신부 말입니까.
분명히 교회를 떠나겠다고 말을 했었는데 말이죠.
제가 믿을만한 신은 아니었더군요. 그... 아르간티아 신이었나요?
신이라는 자가 인간을 도울 수 없는데 왜 인간이 신의 이름아래 서로에게 집착해야 합니까?"
"신은 사유에 불과한 거니까. 인간의 무지가 신을 만들어내는 거니까."
"무지 말입니까?"
"모르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는 공포가 주는 불안에서
인간이 의지할 곳을 찾아내거나 혹은 공포 그 자체를 인격체로 보는 것이지.
고대에는 번개나 불을 신으로 숭배한 이들도 있었으니까.
물론 결국 신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그 지위가 점차 내려가겠지.
그러니까 신은 사유에 불과하다는 거야. 넌 신을 핑계로 하는 집단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져버린거고. 나는 그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어버린 거라고."
"참 어렵군요. 이게 마녀의 방식인가요?"
"글쎄."
"하지만 결국 시작은 당신이 아닙니까? 불사의 존재가 눈 앞에 존재하는데
신부와 거짓관계를 유지하는건 저에게도 큰 손실입니다."
"나도 교회의 편은 아니지만 그딴 핑계로 책임을 나한테 돌리는건 심히 불쾌한데?"
꿀꺽.
젤렌지의 목이 일렁인다. 울대가 침을 넘기는 소리.
자신이 지금 누구 앞에서 뭐라고 한 건지 인지한 것일까.
"무령님, 지금 마스터께서 오고 계십니다."
그렇게 킬레리가 말했다.
"게비디가? 왜?"
"마스터께서는 아마 무령님께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으신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여길 온다고?"
"네. 그렇습니다."
나는 살짝 지치기 시작했다.
"오지 말라고 해.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알겠습니다."
짧은 침묵후에 나는 젤렌지에게 말했다.
"자리를 옮기자."
"그러시지요."
나는 그의 마차에 올라탔다. 킬레리는 어설프게 머뭇거리다가 나를 따르려고 해서
그녀에게는 일부러 경기장으로 돌아가라고 말해두었다.
그녀가 불안함에 몸을 떠는 것 같기에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며 웃어보이자
그제서야 머뭇대며 뒤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차에 덜컥 올라타면 푹신한 바닥이 밟히고 여성의 낮은 신음이 들린다.
"어으윽..."
내가 놀라 젤렌지를 돌아보면 그가 말했다.
"아,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냥 노예일 뿐이니까요."
바닥에 밟히는 살의 질감은 아마 바닥에 카펫 대신 깔아놓은 박제인 것 같다.
이제 돌아보니 마차 내 의자는 마차바닥에 설치된 철근에 손과 발이 못박힌 채
브릿지 자세로 움직이지 못하고 엎어져있는 여자들이었다.
역시나 비정상적으로 체지방이 많았고 겨우 아슬아슬하게 버티기도 어려워보였다.
그러나 마차 바닥은 허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날카로운 가시가 박혀있었다.
그리고 아마 그녀들은 거기 많이 찔렸던 것 같이 가시는 붉게 물들었고
등은 움푹하게 파여있다.
"여기 왜 여자가 이러고 있지?"
내가 싸늘하게 물으면 그는 대답했다.
"남자는 앉는 느낌이 불쾌하니까요. 푹신한 감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여기있는 돼지년들에게는 고지방의 배합물을 별도로 제작하여 먹입니다.
가슴이나 배는 이렇게 말랑말랑하니까요. 아, 이년들의 배설물은 꼬리뼈 위측으로 관을 뚫어
호스를 이어 뽑아내고 있습니다. 벽면에 박제된 년들은 사지 옆에 달아둔 강철 마감을 열어 빼내죠.
더럽지 않게 관리중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는 내가 어디에서 화를 내는지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됐어, 빨리 가지."
"저는 이전부터 당신을 꼭 만나고 싶었습니다.
죽지 않는 사람이라니. 그런건 신화의 영역이니까요.
그 비법이 궁금합니다."
"그런게 어디있어. 내가 죽겠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데.
어디서 총잡이들한테 쫒겨 본 적도 없으면서 나를 숭배하려고 들어?
넌 나를 칭송할 자격도 증오할 자격도 없어. 어설프게 이해하려 들지 마.
역겨우니까."
"이거 아주 미운털이 콱 박혀버린 것 같은데요.
어떻게 화를 좀 풀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 메이드는 유난히 오리지널 골탕면을 잘 만드는 편입니다.
드시러 가시죠. 제가 대접하겠습니다."
"난 너에게 관심이 없어. 대로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고싶지 않았을 뿐이지.
괜히 친한 척 엉겨붙지 마."
"그럴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신이니까요.
태초의 인간 아르간티아는 신이 되었고 불로불사의 능력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당신또한 신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신이 긍정했던 미지에 대한 공포로 당신을 신으로 섬기는 겁니다."
"그 신을 죽이겠다고 올리브를 보내놓고 이제와서 신이라고?"
"올리브를 보낸 것은 마땅히 신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절차가 아니겠습니까.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신이 되는 것이지, 죽어버린다면 그건 미지가 아니니까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그가 말을 거기서 끊었다.
그리고 바지의 작은 홀스터에서 권총을 꺼내 내게 쏘았다.
탕 소리와 함께 심장에 구멍이 뚫리고, 총알은 나를 관통하고 벽면에 박혔다.
또 한번 화려하게 피가 튀었다.
"아악!!"
그렇게 외친 것은 내가 아니었다.
벽면에 박제되어있던 노예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르륵 피가 흘르고 투둑 소리가 나면서
그대로 고꾸라졌다.
"아, 괜찮습니다. 고쳐달면 되니까요. 씨발년. 마차를 더럽히다니."
그렇게 말하는 그는 상당히 흥분해있었다.
"미친새끼."
"자극은 새로운 흥분을 불러옵니다. 자극과 흥분은 성욕과 연결되는 것이고
흥분이 지속되면 더이상 그 이하의 자극으로는 흥분하기 어렵죠.
또한 그렇기에 점차 새로운 자극을 원하게 되는 겁니다."
"저급한새끼. 지금 누구랑 대화한다고 생각하는거야?"
"당신은 번식의 의무가 없으니까. 그래서 모르는 겁니다.
섹스. 그것이 언제까지 번식의 목적으로 행해졌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그건 유희로 존재하고, 우리는 더 다양한 자극을 추구하는 겁니다.
더럽다고? 말도 안되지요. 삶과 죽음만큼 인간에게 말초적이고 근원적인 자극을 주는 것이 뭐가 있죠?
존속과 멸종은 인간이 즐길 수 있는 유희의 마지막 목적이자, 최종 목표이죠.
오히려 욕망에 순수한 것이 인간의 목적에 부합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야 짐승과 다르지 않잖아? 물론 내가 그걸 지적할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형식의 차이가 필요하다는 의미야."
"인간은 짐승이 아닙니까? 성은 최고의 유흥이며 동시에 고귀한 것입니다.
성이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왜 섹스는 부정하는 것이죠?
필요없는 지식을 쌓아 필요없는 절차를 만드는 것보다 원초적인 쾌락을 유지하는 것이
인간 공동에게 더 나은 미래가 아닙니까?
오히려 신이 존재한다면 번식을 유흥으로 즐기게끔 만든것은
인간에게 번식을 장려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기어이 정복해냈기에
그 부산물을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산물을 정리해?"
"너무 많아져 필요없어진 인간을 마땅히 정리하는 것이죠.
그래서 계급이 나뉘는 겁니다. 선택받은 인간들이 위에 서는 것.
이건 법칙이고 순리이며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의 의견은 어딘가 불쾌했다.
그건 아마도 내 생각과 어딘가 부합하는 부분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약육강식을 긍정하고 도움의 손길을 외면하며
흥미 위주로 행동하던 내게 그의 말을 부정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내 과거를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잘게 입술을 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