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8화 〉장인과 놋쇠 반지 (78/303)



〈 78화 〉장인과 놋쇠 반지

초소를 넘어 보이는 것은 다시 또 넓은 들판이었다.
이런 평지를 그냥 내버려 둔다는 것은 토지의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퀘트로나스에는 특히 그런 지형이 많았다.
제국이 유달리 그런 지역을 많이 내버려두는 이유는 아마 자원의 보존이 아닐까.
제국이 소비하는 자원 자체가 워낙에 상당하니 그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공급처가 필요하다.
그러나 제국은 주변국으로부터 적대적인 편이니 제국 근처의 토지에서 자체적으로 충당하려는 것이겠지.
누군가 그걸 걸고 넘어진다면 바로 공격해 개싸움을 벌일테니 함부로 건드리기도 어려운 주제다.

그래도  부근은 건드리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다면 국경지역이라는 것 정도일까.
퀘트로네스의 티리시안 산맥지역 너머에는 원래 해로 뿐이며 항구 하나도 제대로 지어져있지 않아
일반적으로는 왕래가 없던 지역이라고 했다.
그것을 포기하게 된 계기가 바로 대장간이었는데,
대장간은 유레크로스로 이어지는 길목 외에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구조로 이루어진
상당히 폐쇄적인 지역인데, 유레크로스로 이어지는 길목조차도 테팔레스 화산으로 가로막혔고
화산을 거쳐 나온다고 해도 고대의 분지와 사막을 통과하는 길목이 있으므로
그 중간에서 강도를 만나 약탈이나 상해를 당하는 경우 역시 적지 않다고 했다.

일방적인 유레크로스와의 기술자 공급계약이라는 명목으로 제국에서는 거대한 대교를 놓아
대장간에서 퀘트로네스로 이어지는 통행로를 이었다.
그 통행로가 비록 오래 전부터 사용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걸 이제와서 무너뜨리거나
다리를 막아버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노예로 흘러오는 기술자를 훈련시키는 것으로 방법을 바꾸긴 했지만
여전히 다리는 남아있는 것이다.
대개는 제국에서 탈출한 노예들이 대장간으로 도피할 길목을 만들어준 것이지만
여기까지 도망쳐나온 노예가 도달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그런 다리였기에 아직까지 유지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다리는 다리라고 불릴 수 있는 규모를 아득히 뛰어넘는 크기였다.
우리가  앞에 도달해 보니 다리는 콜린 마을의 규모를 초월하는 정도의 넓이와, 튼튼한 강철로 만들어졌다.
길이도 그냥 보아도 엄청나게 길어 보였는데, 물 위에 한없이 늘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긴 바다를 가르는 다리라고 했으니까.


[바다에 다리를 놓는다는 생각을 나는 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일반적이지 않은거지. 도서관에서 조사했을 때 봤어.
저 다리는 물에 뜨는 소재를 두고,  위로 다리를 이은거야. 저 철 내부에는 공기탱크가 들어있다고.
내용물은 비워놓고 재질의 강도로 다리의 무게를 지탱하는거야. 그리고 그 옆을 틀로 붙들듯이 이어붙여 용접한거지.
어지간한 정신상태로는 해  수도 없는 수준의 기술이야."


[어딜 가나 미친놈들은 있군.]


"그 미친놈이 없었으면 지금쯤 훨씬 복잡하게 돌아가야 했을걸?"


[여기까지 오는데 얼마나 걸렸지?]


"글쎄, 아마 한 못해도 일주일은 넘겼을거고, 열흘? 그쯤 걸었나?"

[훨씬 복잡해도 이것만큼 오래 걸렸을지 궁금하군.]


"투덜거리기는 아주 수준급이네. 누구 때문에 지금 대장간에 가는지 기억은 해?"


[알았다. 조용히 하고 있지.]


나는 그렇게 말하는 체헤게를 보고 빙그레 미소지었다.
아무리 보아도 모르는  같기야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를 탓하겠나 싶었다.
다리는 튼튼하게 세워져서 우리가 올라서는 정도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대략 반올림해서 400kg인데 다리가 상당히 튼튼한  같았다.
내해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은 다리때문에 어떤 배도 출입이 불가능한 바다는
오래 전부터 그 모습을 간직하는 바람에 반짝이는 푸른 빛이 아름다웠다.


시간이  한참 걸렸다.
위험할 거리도 없을 것 같아서 중간중간 휴식도 하고, 가방에서 꺼낸 물품으로 포션도 만들었다.
포션을 만들어 미리 챙겨두는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딜 가던지 제국에 노예의 신분으로 던져졌던 지난 날보다는 낫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뭐 하루라도 곱게 넘어간 날이 있어야 말이지.
콜린은 정말 선녀였는데.

그렇게 우리가 다리를 겨우 건넜을 때는
이미 바다의 아름다움과 다리의 건축에 대한 칭찬은 메마를 정도로 해대고 나서
지겹다며 애먼 바다에 침을 찍어뱉은 후였다.
퀘트로네스쪽에는 없었던 다리의 관리인으로 보이는 자가 우리에게 걸어왔다.
작은 키의 남자였는데, 우리를 보고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서 물었다.


"근 30년간은 그 다리를 통해서 대장간으로  사람은 없었는데, 오랜만이군.
반갑네.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아, 옆에 있는 로봇이 망가졌구만.
직접 만들었다면 스스로 고쳤을테니 직접 만든건 아닐테고, 그래. 잘 찾아왔네.
그거 메이커는 있는 제품인가?"


"메이커요?"


"어떤 장인이 만들었는지는 알아야 불러주던가 할 것 아닌가."


"기술자들도 각자 차이가 있나보죠?"

"어...흐음... 기술자라... 좋은 말이지. 하지만 저들은 스스로를 장인이라고 부르는걸 더 좋아하네.
결국 모든 기술자의 끝에는 장인이 있으니 말일세.
사방이 경쟁자이니 만큼 장인이라고 부르면 상당히 좋아라 할걸세.
내가 주는 가벼운 팁이라고 생각하게.
그래,  보아하니 악인같아 보이지는 않는구만. 대장간은 저쪽이야.
잠시 기다리면 카트가 올텐데, 타고 갈 텐가?"


"아, 부탁드릴게요. 얼마죠?"


"얼마냐니. 나도 같이 타고 가는 걸세. 우리는 이 곳에서 근무하는 인원이니까 말이야.
곧 있으면 교대근무 시간이라네. 넉넉하게 탈 수 있을걸세.
우리는 3시간 간격으로 교대근무자가 온다네."


"그렇군요."


"그리고 혹시 로봇 말고도 대장간의 물건이 있나? 흥미로워서 말이지.
이런 퀄리티의 로봇은 대장간 내에서도 만들  있는 자가 많지 않아.
이런걸 만드는 정도라면 분명 이름을 날린 자일텐데. "

"마르커스씨의 유작이에요."


"마르커스? 그 마르커스 말인가?"

"그 마르커스요?"

"참... 안타까운 사람이지. 대장간에서 마르커스라고 하면 아마 그 마르커스가 맞을걸세.
일단 카트를 기다리는 동안에 이야기 해주지."

"고맙습니다."


나와 체헤게는 자리를 잡고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 이름은 아돌퍼스라고 하네. 본업은 회로파의 진동성 회로를 주로 다루지.
아마 지금 고치려고 하는 로봇은 기계파, 그 중에서도 앤틱한 머신을 위주로 다루는 기술자와
나같은 회로를 다루는 기술자, 그리고 휘어진 철골을 다시 펴낼 땜장이 기술자가 모두 필요할걸세.
벌써 보기만 해도 간단히 만들어낸 로봇은 아닌데, 과연 얼마나 많은 기술자가 투입될지 모르겠군.
역시 마르커스야."

"마르커스씨의 이야기는 대충 들었어요. 어떤 사람인지는 들었는데 자세히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 어려울 것 없지. 참 안타까운 천재였어.
처음 그 자가 이곳에 발을 들였을  누구도 그가 수석으로 차기 기계파의 수장직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네.
그는 FM 그 자체, 즉 모든 기계파의 모범이  것 같은 그야말로 교과서를 빼다박은 남자였어.
무엇보다도 그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당시 수장의 마음에 들었다고  정도였지.
당시 스팀엔진 기술은 기계파의 주를 이루던 기술이었네.
회로파와 협업 없이 엔진을 이루어낼 수 있었으니까 그들의 자신감은 대단했네.
그리고 스팀엔진 세대의 기계파에는  천재가 있었소, 마르커스와 헤세리티였지.
마르커스는 정석  자체의 스팀엔진 기술자였고 헤세리티는 괴짜인 천재였소.
영감들은 마르커스를 더 좋아라했지. 헤세리티는 궤를 달리 하는 천재였거든.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한 여자였소.
그 누가 스팀 엔진을 연결해서 마광폭탄을 만들 생각을 하겠소?
그 여자는 미친 여자였다오. 스팀엔진의 약점을 알아냈다고 말하고는 실린더를 깨버리지 않나,
실린더속 피스톤을 밀어올리기만 하는 일이라면 전기자극을 통한 벌레의 조종으로도 가능하다고 했지.
기계파는 물론이고 회로파와 땜장이파에도  충격이었소."

"어떻게 보면 참신하긴 하네요."


"그러니 천재였지. 결국 그녀의 연구는 방향을 여러 번 바꾸다 전혀 다른 방향으로 성공했네.
전기엔진이었지. 물론 수장 영감들은 스팀엔진을  사랑했소.
다른 종파에 기대지 않고 본인들의 자력을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지.
전기엔진을 다루는 이들이 새로 들어와도 그들이 본인들보다 낫다는걸 인정하기 싫었던거요.
점차 전기엔진이 스팀엔진을 대체하기 시작해도 마찬가지였소.
마르커스는 그녀를 보고 감탄했소.자신이 설 자리가 점차 좁아진다는 옅은 푸념이 섞인 한탄과 함께.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었지. 그리고 그녀가 나타났소."

"그녀...?"


"재클리나 베일슨. 모두 재키라고 불렀다오."

"재클리나 베일슨이요?"


"그렇소. 그녀는 근처 유목민의 딸이었소. 우리에게 염소의 치즈와 소의 고기를 제공하곤 했지.
그녀는 자신의 출생이 유목민족이라는 것을 싫어했소. 그래서인지 종종 대장간에 놀러왔지.
마르커스는 유독 그녀와 친했더랬소. 내가 알려줄 수 있는건 그 정도요.
대장간 내부에 진입하게 되면 스팅우스라는 사내를 찾아보시게."

"고맙습니다."

우리가 대화를 마치고 나면 저 멀리서 사람 4명이 겨우  것 같은 카트가 다가왔다.
이미  안에는 대타인 것으로 보이는 남자가 타고 있었다.

"왔구만. 가지."

우리는  카트에서 교대근무자가 내린 후에 카트에 올랐다.
카트는 덜그럭거리기는 했지만 레일을 따라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달렸다.
자동차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빠른 속도였기에 대장간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은 없었다.
대장간에 도착하고 나서는 대장간의 입구에서 검문관에게 신체검사를 받은 후에 우리가 대장간에 방문한 목적이 기게의 수리와
잊혀진 기술은 없다고 했다는 마르커스의 말을 믿어 찾아왔다고 말하자
그는 잠시 먹먹해진 건지 말을 더듬다가 우리를 그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그 옆에서 술을 마시는 기술자 하나를 붙잡고 말했다.


"여기 이 여자를 헤세리티 님께 안내해줘."


"헤세리티님께? 이 여자가 그렇게 대단한 여자인가?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마르커스의 친구라는 모양이다."

"마...마르커스의?! 알겠다. 오랜만이군 그래. 그 이름을 다시 대장간에서 듣게 될 거라고는...
금방 안내하지!"

그는 나를 차분하게 헤세리티에게 안내했다.
헤세리티는 상당히 거친 인상에 여기저기 흉터가 있는 여자였다.
그녀는 기계파의 수장이었고, 희끗하게 새치가 섞인 갈색 머리를 올려묶었다.
 손은 의수로 만들어져있었는데, 정교하게 까딱이는 손이 제자인지 부하인지 모를 기술자들에게
일사불란하게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는 단상 위로 올라간 부하의 전언에 잠시 멈칫하는가 싶더니

"호오..."


한마디를 하고 우리를 자리로 불렀다.

"어서 오시게, 마르커스의 친구라니 그렇게 나이가 들어 보이지는 않는데 놀랍군.
어서오게, 현 기계파의 수장인 헤세리티라고 하네."

"반갑습니다. 에리아입니다."


"그래 에리아. 무슨 일로 오셨는가?"


"이 로봇을 고치려고 왔습니다."

"아, 역시 그 로봇인가. 그럴거라 생각했다오. 그런데 문제라면, 그 로봇은 어지간한 기술자로는 안된다네.
상당히 전문적으로 일한 수준급의 기술자가 최소 다섯 이상 필요하다네.
수리기간을 줄이고 싶다면 더 많이 투입되어도 괜찮기야 하지만 수리비가 장난이 아닐테지.
이건 누구의 작품이지?"

"마르커스씨의 유작입니다."


"아~마르커스... 그렇ㄱ...뭐? 방금 뭐라고 했지?"


"마르커스씨의 유작이라고 했습니다."

"유작...? 마르커스가... 죽었다....그건가?"


"그렇습니다."


"오... 그를 그렇게 보내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재클리나... 이 망할 여자가...
기어이 그를 죽여버리고 말았군."


"재클리나 베일슨 말입니까?


"아니, 재클리나 프리스트노브가 맞다오. 대장간에서는 그 여자를 증오하는 자들이 많으니
함부로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소. 적어도 기계파의 아이들은 더욱 그렇지."


"그렇...습니까...?"


"일단은  방으로 안내하지. 따라오시게."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자신의 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그 방은 대장간의 2층에 자리한 넓고  방이었는데, 마르커스의 공방보다  다양하고 화려한
고급의 장비들이 놓여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 적어도 100년간은 마르커스와 같은 이는 나오지 않을 걸세.
자네도 그 로봇을 보고 있으니 알겠지만 말이네.
마르커스는 그런 천재였소. 나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되게 말이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