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9화 〉장인과 놋쇠 반지 (79/303)



〈 79화 〉장인과 놋쇠 반지

헤세리티는 지긋이 나와 체헤게를 둘러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저런 괴물이 탄생한건지 나도 잘 모르겠소.
그가 대장간을 떠난지 벌써...하나...둘 서이 너이 다스 여스...일고...여덜....아호...
후우.... 세기도 어려운 정도로군. 분명 이제는 따라올 수 없는 격차를 벌렸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런 저력을 숨기고 있었구려. 얼마나 걸린 녀석이오?
분명 주문제작이 아니면 나올  없는 품질이니... 두달? 세달?"

"3일이요."

"3일...? 허.... 그 미친자는 썩어도 준치라더니 기어이 일을 내는구만.
좋소, 오기가 생기는군. 제일 잘하는 아이들로 붙여드리지.
그 로봇을 좀 봅시다."

체헤게는 스스로 그녀의 앞에 앉았다.

"이건...? 음성인식이 된단 말이오?"

"아, 그건 제ㄱ..."


"정말 이루지 못할 과제를 남겨주고 영영 도망치다니 마르커스...
역시 나보다는 자네가 수장이 되었어야 했는데..."

"좋은 분이셨어요."


"그래, 그랬겠지. 하지만 그도 이런 평을 바랄거요. 기술자라면.
적어도 장인을 노렸던 적이 있는 남자라면, 인품보다는 실력으로 평가받고 싶을거요.
그래, 마르커스의 마지막은 어땠소?"

"폐가 상당히 안좋아지셨다고 하셨죠. 담배와 매연으로 인한 고질병이라고 하셨어요.
결국 그 로봇을 마지막으로 손을 놓으셨죠. 그리고 로봇대신 총칼에 저항하다 돌아가셨습니다."


"로봇 대신 저항한다는건 무슨 의미요?"

그녀가 이마의 주름살을 짙게 만들며 나와 체헤게를 번갈아 째려보았다.


[어쩔건가? 도망자인 우리가 쫒기는 와중에 총을 대신 맞았다고 말하기라도 할거라면
적어도 이 여자가 우릴 곱게 보진 않을 것 같군.]


[어설프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나을  같은데.]

[하아... 알아서 해라.]


"저는 이 로봇을 의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쫒기게 되었습니다.
콜린이라는 작은 마을의 경계선 밖으로 나갔기 때문입니다.
국경지역에서 국경을 나간 사람을 가만 놔둘리는 없으니까요."

"콜린.... 아는 바가 없군. 그렇다고 하면 의문이 생기는데,
그대는 왜 국경 밖으로 도망치려고 한 거요?"


"사정상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범법은 아니었습니다."


"국경 밖으로 무단 이탈을 시도한 자가 범법은 아니다? 내가 믿기 어려운 말만 하시는군.
물론 대장간은 국경 외 중립구역이라지만 범죄자를 받는 일은 꺼림칙하오.
그대가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의뢰 역시 받기가 어렵군.
난 마르커스의 유산을 가진 자네에게 신뢰를 주고 싶소.
 말하기가 껄끄러운가?"


"저는 영기술사입니다."


"영기술사? 그게 도피의 이유가 되나? 그리고 대장간에서 자네의 얼굴은  기억이 없는데?
자력으로 영기술을 익힌건가?"

"생명을 다루는 영기술입니다. 어디서 배울수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됩니다.
 천부적인 가호와 같은 것입니다."

"하아... 생명이라. 그러면 두려울 만도 하군. 얼마나 많은 이의 생명을 끌어 썼는가."


"생명을 강탈하고 탈취하는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의 영기술이지, 죽음의 영기술이 아니니까요."


그렇게 대답하면 그녀는 이해하기 까다롭다는 표정으로 잠시 나를 지긋이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피워도 괜찮은가?"

"편하게 피우시죠."


그녀는 불을 붙인 담배를 가만히 빨아들였다.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타들어가는 담배 사이로 애달픈 숨이 새어나왔다.

"아무래도 내가 더 파고들면 안될 것을 물은 모양이군.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지. 죽음의 기운을 다루는 자가 대장간에 온 일이 있었다오.
 자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훤칠한 외모를 하고 있었소.
대장간에 홀연히 찾아와 기술자들의 목숨을 앗아갔소.
그 기억이 겹치는군."


"창백한 얼굴에 훤칠한 외모?"


"아는자요? 아니, 아니지. 그건... 차치하고, 우선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지.
생명의 영기술사라... 그래, 그래서 사람들이 자네를 쫒았다 이거로군?"

"솔직히 말씀드리죠. 이 로봇에는 인간의 영혼이 담겨있습니다."

"인간의... 영혼이라고?"


"음성인식같은 거창한게 아니라 인간의 영혼이 깃든 겁니다.
제 죽은 친구가 들어있죠."

"맙소사... 자네는... 자네는 이 순수한 기술의 영역에 저주를 몰고왔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우리의 열정과 기술을 허사로 만들었고
우리의 걸작을 모욕했소. 마르커스... 그자가 정말 이런 일에 가담했단 말이오?"


"마르커스씨는 모릅니다."


"난...  저걸 고칠 수 없소. 돌아가 주시게."

그녀는 담배를 문 이 사이로 연기를 뿜어냈다.
그리고는 담배를 재떨이에 지져끄고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회전식 의자는 빙글 돌아 내게서 등을 돌렸다.

"그 로봇은 그의 유작입니다."

"알고있네."

"부탁드리겠습니다. 돈이라면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필요 없네."

"어떻게 해야 도와주실 겁니까."


"생명이라니. 그런 아름다운 이름을 자네는 모욕했네.
그건 생명의 영기술같은 표현이 아니네. 죽은 자를 쉬지 못하게 만드는
저주이자, 사자에 대한 모욕일세. 돌아가게. 거부한다면 사람을 부르겠네."

"그만 하세요. 돌아가겠습니다. 마르커스의 유작이라지만 내 친구입니다.
당신은 관계없는 부외자고요. 모욕이라느니 저주라느니 되든대로 뱉어내는 당신에게
내 친구의 몸을 맡길수는 없어요."


"오만이 하늘을 찌르겠군. 나는 신은 믿지 않지만, 자네는 신의 섭리를 거스르는 자로군.
나는 자네를 만나지 않은 것으로 하겠네."


"듣기로는 창의적인 천재라고 하던데, 그런 천재는 벌써 죽어버렸나보군요.
기술자는 기술로 말한다고 했는데, 당신은 기술자의 심장이 식어버렸나봐요.
마르커스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어."

"닥치시게! 나에 대해 뭘 안다고 떠드는건가!"

"몰라요. 모르죠. 그런데 마르커스가 말해준 기술자는 확실히 아니네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 헤세리티의 방을 나왔다.
두꺼운 방문 하나를 두고 후끈거리는 고열의 지하동굴에서 이들은 깡깡대는 망치를 들고
한없이 담금질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젠 누구를 불러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는군.]

"걱정 마. 이 많은 기술자들이  여자 하나에게 휘둘릴 리는 없으니까.
기계파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많아."


[그러길 바라지.]

더위에 지쳐 의자에 앉아 쉬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장간을 둘러보았다.
화산 하나를 통으로 개조해 만든 구역이었다.
화산 내부의 마그마가 흐르는 도관을 붙들고 작업을 이어가는 기술자들이
제각각의 연장을 들고 땅땅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벽에 달린 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걸로 보아 아마 내부에 집을 짓고
터지지 않도록 마그마를 조절하며 작업을 하는 것 같았다.

지하 갱도와 이어진 광차에서는 철광석을 비롯한 광물이 퍼올려지고 있었고,
일정 시간마다 푸슈슉 하는 소리가 들리면 모두 하던 일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각자 지급받은 것으로 보이는 두터운 마스크를 착용했다.
안쪽에서 뜨거운 열풍이 불어 작업중에 생긴 철가루나 먼지, 돌가루를 날렸다.
그러나 마그마 만큼은 점성이 있는지 열풍에도 날리지 않았다.

나는 체헤게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과연 수장을 제외하고도 이 로봇을 수리할 정도의 기술을 가진 자가 여기 있을까.
그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스팀엔진은 이제 누가 다루지도 않을 텐데.
퇴물로 취급되는 기술이 아니었다면 좋았을 것을.

"후우..."

[온 보람이 없군.]


[괜찮아. 전 세계 어딘가에는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있겠지.
아니면 이 대장간 어딘가라도. 정 안된다고 하면, 새로운 몸을 구해보자.]


[정이 들어버려서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어도 현상은 바뀌지 않앗다.
우리 둘  지쳐가고 있을 때였다.

"아니, 자네들 아직도 여기들 있었나?"

그렇게 말하는 쪽을 바라보면 아돌퍼스가 거기 서 있었다.
그는 손에 작은 회로판을 하나 들고 있었다.
아마 복장을 보아하니 이제 준비를 마치고 작업에 착수하려는 것 같아보였다.

"그래, 기계파의 수장을 만난 모양이군. 헤세리티는 어떻던가?"

"그냥... 말이  안통했어요. 서로 입장이 달라서."

"그렇군. 스팅우스는 만나봤나?"


"스팅우스씨는 어디 계시는 분이죠?"


"기계파라네. 이 시간대면 늘 일을 하고 있을걸세. 21번 레인으로 가보시게."

그렇게 말하며 그는 아래쪽의 불타는 도관을 가르켰다.


"수고하게. 마르커스의 친구인 자네에게 박정하게 대할 자는 아마 없을걸세."

"감사합니다."

우리는 몸을 일으켜 21번 레인으로 향했다.
누가 스팅우스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7명 정도 되는 기술자들은 하나같이
체헤게의 바디를 보고 탐을 내고 있었다.

"의뢰를 하고 싶은데요."

 한마디에 다들 장비를 내려놓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스팅우스씨가 누구죠?"


 말에 두꺼운 장갑을 낀 남자가 걸어왔다.


"나요. 의뢰라면?"


"당연히 이 로봇이에요."

"아, 마르커스의 작품인가? 이렇게 깔끔하게 마감처리를 넣는건 얼마 없네.
게다가 이런 고급재를 거침없이 다룬 것도 그 다운 일이군. 피스톤 엔진이... 맙소사.
이런건 구하는것만 해도 값일텐데, 이렇게 비효율적인 인간형 기계를 만들었단 말인가.
대체 어떤 업무에 투입되기에 인간의 몸체로..."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았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싶은데 자리를 옮길 수 있을까요?"

"그러지."


그는 잠시 동료들에게 인사를 마친 후에 나를 집으로 안내했다.
집이라고 해도 갱도 내에 뚫린 천공 구멍에 문이 달린 것이었다.
거기에 우리가 들어가자 그는 문을 닫고 말했다.


"여기라면 밖에서는 듣지 못할거요."

"대장간 분들의 말투는 하나같이 비슷비슷해서 재밌네요."

"요즘 들어오는 젊은 녀석들은 그렇지 않지만, 이것도 우리의 문화라고 생각해주시오.
그래서 어떤 일이기에 주위 시선을 피할 필요가 있는거요?"


"이 로봇은 마르커스씨의 유작입니다. 이걸 고치고 싶습니다.
저는 마르커스씨의 친구입니다.
보수는 충분히 할게요. 도와주세요."

"고작 그걸 말하려고  방으로 날 부른건 아닐거고, 잠깐. 유작?"


"네. 마르커스씨는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따로 불렀습니다. 가르쳐주세요."


"하아... 결국 그렇게 되어버렸나. 나에 대한 이야기는 들은 모양이군.
그는 천재였네. 전형적인 올려다 보기 힘들 정도의 실력차를 가진 천재 말이야.
언제나 홀로 작업했었고, 제자따위는 두지 않았었네. 그래, 헬렌 그 여자를 빼면 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참... 머저리같은 친구였지 마르커스는."

"듣고 싶습니다."

"그래, 마르커스의 친구인 자네는 들을 자격이 있지.
그건 아마 그가 한창 헤세리티와 자웅을 겨루던 때였네.
다음 수장을 누구로 정할 것인지를 전대 수장님께서 고민하셨을 당시였지.
대장간의 수장직은 최고에게 승계된다는 규칙이 있네.
당연한 일이지. 자신보다 못한 자에게 명령을 들으려고 하는 자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그때 일이 터진걸세. 재클리나 베일슨이 나타난거야."


"유목민족의 딸 말입니까?"

"오, 알고 있는가?"

"이름만 들었습니다. 대장간에 진입한 순간부터 말이죠.
자세히는 모릅니다."

"그런가. 그녀는 마르커스의 연인이었네.
그녀는 마르커스를 떠나지 않으려고 했네.
대장간에 눌러살고 싶어했고, 자신의 출생을 원망했지.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은 법이라고 했던가.
그녀의 부모는 그걸 허락지 않았네. 결국 그녀는 떠나가버렸어.
마르커스는 그녀를 위해 준비한 반지를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다시 돌아오는 날에 고백하리라고 생각했다더군.
정말 아름다운 반지였네. 금으로 만들어진 반지에는 커다란 루비가 박혀있었고,
그 주변에는 작은 다이아몬드로 둘러져있었네. 고급스러운 반지였고,
그 안쪽에는 J&M이라고 쓰여있었네. 무슨 의미인지는 알거라고 생각하네.
그들은 종종 만나 밀회를 했다네. 내가 덕분에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느라 고생을 좀 했지만,
친구가 인생을  기회라는데 도와주지 않을 수 없었지.
어찌 내버려 두겠는가. 그가 처음으로 그렇게 웃고 있었는데."

그는 그렇게 말하고 상당히 붉어진 눈시울을 소매로 닦아냈다.
기름기가 얼굴에 묻어 더러워졌다.


"그녀가 다시 정식으로 대장간에 방문한 것은 1년 뒤였네.
부모를 설득한 그녀가 받아낸 조건은 마르커스가 대장간을 떠나는 것이었지.
대장간의 수장이 되어버리고 만다면 평생 대장간을 떠날 수 없는 것 알잖소.
그는 대장간을 떠나기로 결심했지. 그리고 그녀에게  반지를 작은 상자 안에 넣어 준비했고.
그러나 그걸 탐탁치 않게 여긴 자가 있었소. 전대 수장이었지."


"수장이... 말입니까?"


스팅우스는 조용히 낡은 침대에 걸터앉아 서랍에서 나배주를 꺼내들었다.
컵 없이 병을 들고 두어 모금을 마신 후에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남은 술을 한번에 목구멍 너머로 털어넣어버렸다.
벌컥이는 소리만 들리는 방에서 그는 나와 체헤게를 바라보면서 병을 비워냈다.


"참, 이거 미안하군. 맨정신에 말하려니 목구멍까지 독이 차올라서 말이야.
좀 가라앉혀야 했다네.
그래, 어디까지 이야기 했던가?"

"수장이 싫어했다고 하셨죠."

"그래. 한 사람의 인생과 종파의 존속. 어느쪽이 중요하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할 수 없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적어도, 그 종파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리고 결국 결과가 그렇게  거였다면!
적어도... 떠나겠다는 사람은 보내줘야 맞지 않은가...
내가 미쳤었지. 그의 불행은 나로부터 기인한 걸세. 내가 그를 놓아주자고 처음 수장에게 말했거든.
수장은 그 사실을 헤세리티에게 말했네. 그리고 일이 틀어져버렸네.
헤세리티. 그 미친 여자는  길로 마르커스의 방에 쳐들어갔다네.
그리고 상자에 담겨있던 반지를 훔쳤어. 그리고 마르커스가 고백을 결심한 날,
초저녁에 기계파 모두를 불러냈다네. 무슨 일인지도 모르고 집합한 인원들 한가운데서
그녀는 마르커스를 비난했소. 배신자가 우리를 버리고 대장간을 떠나려 한다고.
우리 모두의 종파를 끊으려 한다고 말이오. 여자에게 눈이 맞아 모두를 배신하려는 남자,
 휘황찬란한 반지를 보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할거요.
헤세리티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 반지를 도관 속으로 던져넣었소.
마그마가 끓고있던 그 안으로 말이지. 사람이 무너지는 걸 본 적이 있소?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 광경을 보았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