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화 〉폭발은 몰락을 부른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잠을 자는 일이 생각보다 아늑하다는 점에 놀라는 아침은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색다름을 선사했다.
돌멩이에 갇힌 체헤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밤을 지새우며 너무나 좀이 쑤신 것 같았다며 불평했지만
결국 그것도 내 일갈 앞에 사그라들었다.
"오늘도 할 건 딱히 없으니까 구경이라도 가야겠는데."
[확실히 하루가 지났으면 적어도 어느 정도 진척은 있어야겠지.]
"아니면 뭐라도 사건이 있지 않겠어? 우리 가는길이 조용한 적은 없었잖아?"
[마녀 아니랄까봐 말을 참 불길하게 하는군.]
"뭐 어때, 환대받은 것도 아닌데 사고 한번 터지라고 기도해 볼 수도 있는거지."
[그 비틀린 사고방식은 대체 누구에게 배운거냐.]
"배운건 아니고 아마 이렇게 만든건 너일걸."
[하아...]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섰다.
곧장 스팅우스의 레인으로 내려가면 그곳에는 스팅우스가 여전히 뻘뻘대며
체헤게의 굽은 팔을 일일이 분해해 펴내고 있었다.
본디 스팀엔진은 회로파의 도움이 없어도 숙련된 기계파라면 다룰 수 있다고 했는데
회로파 기술자들도 상당히 붙어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에리아양. 잘 오셨소이다."
"제가 이름을 말했던가요?"
"아니오이다. 단지, 우리쪽 수장이 성격이 더러워서 말이지.
작업중이던 기계파 기술자 3명을 빼가 버렸소.
나는 거절했지만. 내 의뢰를 내가 져버릴 수 없다고 했지.
그 부분에 대해서는 그녀도 건드릴 수 없는 것이니까.
하지만 직접 의뢰를 받지 않은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수장의 명령을 따라야 했소.
그들 또한 매우 아쉬워했지. 그대가 걸었던 돈은 쉽게 만질 수 있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기계파의 부재를 회로파가 메워주고 있다네.
스팀엔진은 회로파 기술자들도 조금은 다룰 수 있으니 말이네."
그의 말이 끝나면 옆에서 휘어진 팔을 두드리던 기술자 하나가 내게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그 로봇의 수리를 의뢰하신 분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땜장이파의 모르도르입니다. 그... 죄송하지만 저 부품, 아무리 두드려도 진척이 없습니다!
도대체가 어떻게 되어먹은 금속이기에... 아니, 무슨 금속을 재질로 쓰신겁니까?
몇 번이나 담금질을 해도 휘어지질 않습니다. 8년 땜질을 해왔지만 이런 건 처음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페마르도 그렇고 전추석도 그렇고. 대체 저런 로봇이 왜 존재하는거죠?
도대체 저 로봇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알아도 회로를 재현하지 못하는 동료들도 있습니다."
"그만하게 모르도르. 의뢰주께 무슨 말을 하는건가.
우리가 부족한걸세. 마르커스의 작품이라잖은가.
쉽게 다룰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우리의 실책이야.
우린 다만 5일 내로 이 로봇을 고치겠다고 호언장담한데 책임을 지면 되는거네."
"하지만 스팅우스씨... 이런걸 얼마나 더 붙들고 있으란 말입니까?
너무 가혹하잖아요! 무려 한나절을 달구고 담그고만 반복했어요!"
"포기할건가? 대장간에는 잊혀진 기술은 없다네.
누군가 이미 로봇을 만들었다면, 우리가 고작 수리하는 입장이라면.
우린 그걸 해내야 하네. 알잖은가? 물론 어렵다는 점에는 동의하네.
그래서 나는 땜장이파의 수장님을 만나뵈려고 하는데."
"네버브레이크님은 바쁘십니다."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도 알잖나.
저 철골을 펴는 것은 우리로서는 역부족일세.
오늘만 해도 나이브와 멜리송도 포기한걸 봤는데 이제 누가 있는가.
인정하게. 수장님이 필요해."
"네버브레이크님이 직접 나선 일은 보통 왕가의 부탁이나 사성의 부탁일 때 뿐입니다!
지금 네버브레이크님께서는 옥성연의 오브를 수주받으셨습니다!"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기란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나는 거리낌 없이 말을 붙였다.
"그럼 네버브레이크님을 불러주세요. 제가 대화하겠습니다.
저는 이 로봇을 반드시 수리해야 하거든요."
내 말을 들은 모르도르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어쩔 수 없다. 저 철골에는 내가 몇 중이나 강화부를 써 붙이고 연마제를 포함해
강화효과가 있는 주술이나 마법은 심심할 때마다 써붙였으니까.
저것도 체헤게가 떨어지는 바람에 자기 무게로 눌려서 휜 거지, 부러질 정도는 아니었다.
영기술 정도로 멈춰있는 마법체계에서는 당연히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네버브레이크님께 의뢰하시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은 물론이고, 그 지위 또한 어느정도..."
내 앞을 가로막은 스팅우스가 말을 덧붙였다.
"이 분은 미리타엔 제국의 무령이시네. 걱정말게."
"아... 어쩐지... 그럼 이 로봇이 그 콜로세움의 강철탱크라는 겁니까?"
콜로세움의 강철탱크? 그건 또 뭐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별명이 붙은 모양이다.
[또 모르는 이름이 추가되었군.]
[죽어서 이름을 제대로 남겼는걸?]
[확실한건, 마녀사냥꾼보다는 낫지 않나. 있어보이고.]
[아무리 봐도 그런 이름보다는 변태 유령 정도가 충분한 것 같은데.]
[그건 널리 퍼지지 않아 다행이군.]
"하아... 그럼 일단 수장님께 연락은 취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허나, 반드시 오신다고는 확답을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인사를 하자 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한다. 의문? 의아? 그런 표정을 띄운 그가
조심스럽게 내게 입을 열어 물었다.
"제국의 무령님이라고 하셨지요?"
"그런데요."
"아... 아닙니다. 제국의 귀족들과는 다른 그런 느낌이 들어서..."
"무슨 실례인가 모르도르!"
스팅우스가 대신 내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나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부탁한 체헤게의 수리를 마저 부탁했다.
모르도르는 빠르게 땜장이파의 구역으로 달렸다.
"그래서 수리가 늦어지는 일은 없는 건가요? 있다면 미리 말해주세요.
시간은 넉넉하지만, 일자는 맞춰야잖아요?"
"하아... 솔직히 말하면 나도 잘 모르겠소.
5일..? 턱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할테니 믿어주시오.
아직까지는... 땜장이파에서 수장이 와준다는 전제 하에 1주일은 걸릴 것 같소.
늦어지게 되어 미안하오."
"아뇨, 그런 솔직한 자세는 좋게 평가합니다.
수고해주세요."
"그러지."
그리고는 스팅우스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기술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뭣들 하는가! 일 하세 일! 의뢰주께서 기한을 늘려주셨다는 것은
곧 우리의 미숙이 아니었는가! 최대한 빠르게! 정교하고 튼튼하게!
이제껏 하던 것처럼! 알고 있겠지!"
"""예!!!"""
나는 빙그레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제껏 하던 대로는... 부족할걸요? 그도 그럴게, 마르커스씨의 유작이잖아요?"
"알고보니 잔인한 면도 있었구려. 들었겠지! 최선을 다하도록 하세!"
"""예!!"""
그들은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핑 도는 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상당히 즐거운가보오?"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대답했다.
"나를 위해서 이렇게나 열과 성을 다해주는 사람들을 보고 어떻게 슬퍼해."
"하아... 나도 나름 수장인데 대우같은건 바라지도 않지만 어째 내게는 갖출 예가 없는 것 같소?
그게 제국의 방식이오? 무령씩이나 되신다는 분이 상당히 옹졸하다고 생각지는 않소?"
"제국은 모르겠고, 내 방식이야. 애초에 제국 소속도 아니었거든."
"아니었다?"
"아니었지. 나는 콜로세움 우승 이후로 무령이 된 거라서."
"어째 내 생각에는 이제껏 대장간에 온 손님들 중 제일 위험해보이는군."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말에 거침이 없어."
"허허... 그래 보였소? 이거 아직 대인관계가 서툴어서."
헤세리티가 나를 바라보면서 능글맞게 웃었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게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내가 그걸 받아들자 그녀는 내 옆에 나란히 서서 말했다.
"저 로봇은 괴물이오. 아마 대장간에서도 아무나 못 건드릴 정도로.
나는 저 로봇의 수리를 돕고싶지 않지만, 확실히 마르커스의 로봇이 복원된 모습은 궁금하오.
그 종이는 내 소개장이오. 그게 있다면 아무리 땜장이파 수장이라 해도 한 번 정도는 들어줄 거요."
"그런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뭐야?"
"그냥, 선전포고요. 나는 로봇을 새로 만들겠소. 이름은 체헤렌으로 정했다네.
스팀엔진을 과감히 포기하고, 내 식대로. 전기엔진으로 만들어올테니.
한번 두고 봅시다. 어느 로봇이 더 걸작으로 남는지."
"솔직하지 못하긴."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떠나갔다.
아마 저 멀리서 달려오는 모르도르를 본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르도르는 내 옆에서 막 떠나간 헤세리티를 보고 눈치를 살피다 말했다.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습니다. 네버브레이크께선 옥성연의..."
"이걸 전해줘."
내가 그에게 종이봉투를 건네면 그는 그걸 받아들고 투정했다.
"하아... 다녀오지요. 그냥 이런 걸로 바뀌리라 생가하지는 않지만요.
돈을 얼마를 넣으셨던, 네버브레이크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그가 사라진 후에 나는 정당히 스팅우스에게 응원아닌 응원을 더하고 자리를 떴다.
내가 다시 대장간 밖으로 나오면 상당히 부산한 분위기였는데,
그 이유는 생각보다 금방 알 수 있었다.
"C3등장! C3 구역 등장! 기술자들 함몰! 니더랑 러너들은 바로 C3구역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달려나가고 있었다.
대장간 외부의 어딘가에서 문제가 터진 것 같았는데
내가 의아함을 가지고 여관으로 돌아오면 네네미가 말했다.
"아, 오셨군요. 지금은 조금 소란스러워서,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추천드려요."
"그래 보이네. C3는 무슨 의미야?"
"아, C2까지가 원래 대장간에 있던 구역이거든요.
대장간의 지리는 지금 여기. 본관이 메인지역이에요.
처음 화산을 깎아 만든 건물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대장간의 주변에는 아직 살아있는 화산인 테팔레스 화산과,
소규모의 휴화산들, 그리고 사화산이 있어요.
이상하게 화산이 많이 밀집되어있죠. 그래서 이 곳은 상공에 뭔가를 띄우지 못하죠.
그래서 더 러너의 중요성이 커지는 거고요.
테팔레스 화산 주위의 휴화산들이 종종 터지게 되면,
근처 갱도에서 광물이나 자원을 캐던 기술자나 광부는 기본적으로 그 구역을 빠져나와야 해요.
그런데 간혹 발이 느리거나, 너무 깊숙히 들어간 사람은 빠져나오지 못하죠.
그런 경우를 대비해서 모두 비상용 폭약을 가지고 들어가기는 하지만요.
하지만, 만에 하나 최악의 사태로, 화산 분화구가 그대로 함몰되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요."
"칼데라..."
"네. 칼데라에요. C는 칼데라의 약자에요.
3번째 칼데라 지역이 생겼다는 거고요.
그 근처가 함몰됨으로 인해 근처 갱도가 막혀버리는거에요.
그래서 빠르게 러너들이 그 근처에서 활로를 찾아 열어줘야해요.
매몰된 사람들을 구해야 하니까요. 물론 갱도가 화산과 거리가 있으니까,
직접적으로 마그마의 피해를 입거나 하는 일은 잘 없지만...
도관이라는건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거니까요..."
"갱도는 어디에 있는데?"
"화산 초입부에 따로 입구를 파 놓는 편이에요.
그러면 그곳에서 화산 아래쪽으로 굴을 파고 들어가죠.
어느정도 진전이 된 후에는 리프트를 달아요.
이런 경우에는 리프트를 사용하기도 어렵지만요."
"너는 상당히 차분해보이네?"
"네. 보통 칼데라사고가 나면 인명피해가 상당한 편이에요.
그런데, 이번에는 대부분 무사히 빠져나와서 매몰된 사람은 4명이래요.
그리고 휴대용 폭약으로 공간 확보에도 성공했다고 하고요.
무전으로 연락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 같아요.
다들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까 마음이 좀 놓이는거죠."
"그렇다니 다행이네. 생존률은 높은거니까.
그러면 본관은 허물어질 일이 없나? 이렇게 넓게 뚫어놨는데."
"본관은 사실상 더이상 산이라기보다는 건물이잖아요?
무너지지 않도록 총 5중으로 장치를 해 뒀어요. 내진설계도 완벽하고요.
그래서 다들 본관에서 거주하는 것 아니겠어요?"
"아무리 봐도 이곳은 마을의 규모가 아닌데?"
"하지만 결국 대장간의 시초는 아르간티아 초국에서 떨어져나온 사람들이잖아요?
정당성은 없다고 봐야죠. 그래서 세계적으로도 국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고요."
"상당히 잘 아네?"
"여관주인이잖아요? 들리는 소문이 모이는 것 하나는 확실하죠."
"그럼 옥성연이 여기에 오브를 의뢰했다는건 어떤 의미인지 알아?"
네네미는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하하... 아뇨, 그런건 몰라요. 전적으로 수장님이 담당하셨다고 하잖아요?
일반 기술자가 다루지 못하는 문제라면 여관으로 흘러오지도 않아요.
하지만 다들 걱정은 하지 않아요. 걱정은 C3에 해야죠."
"무사할거야."
"그러길 바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