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이건 화산이야. 네가 원한 정보는 그 안에 있어.
나는 C3구역으로 향했다. 광산으로 이어지는 광물용 차가 있어서 상당히 빠르게 갈 수 있었다.
평소에 화산으로 인한 피해에 대책을 꾸준히 세우고 정기적으로 모의훈련을 진행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수월하게 구조가 가능하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의료전문 니더들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C3 구역 앞에 도착했다.
이미 정말 빠르게 천공기를 가지고 예상 지점을 추려서 구멍을 뚫고 있었다.
나는 그저 거기서 지맥을 짚은 후에 마력을 흘려보내 사람들이 있는 구역을 특정해낼 뿐이다.
천공기가 뚫고 있는 곳에서 오차범위 28m의 공간을 뚫고 있는 천공기는 상당히 정확하게 특정해낸 곳에 구멍을 내고 있다.
하지만 역시, 구하려면 핀포인트로 구해야지.
위치를 좌표화 해서 특정하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면 폭약으로 뚫은 곳으로 워프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내가 좌표를 설정해 그곳으로 통하는 마법진을 열면
러너들은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빠르게 그 안으로 이동했다.
이들 역시 내가 무슨 의도로 마법진을 그렸는지에 대한 이해는 하는 것 같았다.
"영기술사다!"
"순간이동이다!"
그리고 맨 처음 그곳에서 러너가 기절한 기술자를 업어나오면서 러너들은 하나둘 그곳으로 달렸다.
천공기는 덜덜대며 바닥을 뚫다가 곧 소리를 줄이고 멈췄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어 아가씨! 다음에 들르라고! 무상으로 해주지!"
기술자들은 그렇게들 떠들며 사라졌다.
천공기를 붙들고 작업하던 5인 1조 구성의 기술자들은 허탈하게 천공기의 전원을 내렸다.
"고맙소 아가씨. 우리가 작업할게 줄었군."
"아뇨, 사람 구하는데 고마운게 있나요."
"그럼 이제 다 구한건가?"
"아마 그럴ㄱ... 네, 다 구했어요."
"그렇다면 다행이군. 자, 돌아가세."
"아뇨, 저는 개인적으로 이 구역을 조금 더 조사해보고 싶네요."
"C3구역을? 그렇게 하게. 외지인이니까 궁금할 법도 하지.
레일따라 카트는 한 대 보내 놓을 테니 마치면 타고 돌아오게.
저녁 8시 이전에는 돌아오게. 광산 근무자는 다들 그 전에는 퇴근을 하거든.
너무 늦으면 운행을 하지 않는다네."
"아, 감사합니다."
그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나는 다시 발끝에 감각을 집중시켰다.
분명히 사람들을 찾을 때 흘려넣은 마력이 초음파처럼 다시 되돌아오는 감각.
그리고 그 끝에 섞인 지하의 공동과 수상한 사람들의 모임.
대략 10명 정도 되어보이는 사람들이 구조 요청도 없이 저 아래에서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야 했다.
알아내야 한다는 이유는 없지만, 마녀의 호기심을 자극했으니 당연한 것 아니겠어?
나는 일부러 그들의 위치 근처까지 정교하게 설정한 마법진을 다시 만들고
그곳으로 발을 내딛었다.
내가 도착한 곳은 지하 수백미터는 내려온 곳일 것이다.
흙무더기와 돌틈 사이로 들린 것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러분은 정말 잘 해주셨어요.
이 광맥에는 금을 비롯한 보석들이 다양해요.
그런걸 저런 땅개새끼들에게 뺏길수는 없잖아요.
아시죠? 스스로 여러분들은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어요.
저는 여러분의 그 의지를 존중할 수 있고요. 보수를 받아가세요."
그 말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그녀의 앞으로 줄을 섰다.
아무도 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상인 집단인가?]
[일단 듣기로만 봐서는 그렇기는 한데, 보석 때문에 지하 수백미터를 파고 내려온다고?
그리고 그런 기술력이 있는데 대장간에서 모를 수가 있어? 나는 아니라고 봐.
단순한 상단은 아냐.]
[그럴 수 있겠군. 예리하다 에리아.]
[혹시 방금 그거 개그야?]
[그럴리가.]
그 사이 앞에서는 또 유쾌한 이야기가 흐르고 있었다.
"알고 계시겠죠? 테팔레스 화산은 활화산이에요. 언제라도 터트릴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죠.
대장간을 물리적으로 고립시키고 나면 땅개들은 모두 미리타엔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해로를 통해 도망칠 수 있을리가 없죠. 땅을 밟지 못하면 불안해하는 이들이니까요.
우리는 그러면 미리 다리를 끊어버려요. 미리 대장간 서부에는 보트를 준비했어요."
"역시 마담이십니다!"
"믿고 있었습니다 마담!"
"이번 일이 끝나면 저희도 간부로 승진할 수 있습니까?"
"그건 봐야 알겠죠? 아무튼.. 파이팅이에요."
간부라는 말로 보아 조직체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다.
목적은 아마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일테고.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는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화산의 크기만 하더라도 대장간 본관을 아득히 뛰어넘는 크기이고,
페세티아의 유레크로스와 맞먹는 규모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대장간에서는 도관을 파내 용암을 빼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테팔레스 화산에서 마그마를 퍼와서 대장간 본관으로 이었고,
그것이 기술자들이 일하는 레인이다.
하지만 만약, 그게 터져버린다면. 그리고 미리 빼내던 마그마의 통제가 불가능해진다면.
고대의 분지나 티리시안 산맥으로 보호받는 미리타엔이나 안카숲은 무사할지 몰라도
일대의 하늘은 화산재로 뒤덮일 것이고, 유레크로스는 역사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무엇보다 그렇게 되어버리면 유레크로스에 있는 네메시스의 신전으로 갈 수 없게 된다.
[막아야 해.]
[왜 또 그렇게 굳이 정의를 관철하려고 하는거지? 너는 쓸데없는 일을 싫어한다고 하면서
은근히 정이 많은 타입이다.]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테팔레스 화산이 터지면 유레크로스는 지도상에서 사라져.
유레크로스에는 흥미로운게 생각보다 많거든.]
[아, 일단 그 건방진 꼬마도 유레크로스로 갔었지.]
[건방진... 아, 데니스?]
[그래,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하긴 하군.]
[일단 저 사람들을 여기서 제압하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아.
너도 전력으로 취급할 수가 없고. 여기서 실수했다가는 칼데라를 스스로 만들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이미 칼데라가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하루아침에 수십미터는 더 땅속으로 깊어지면
의심을 피할 수는 없어.]
[그럼 어쩔 생각인가?]
[뭘 할 생각인지 캐내야지.]
[아무래도 제국에서보다 더 피곤해질 것 같은 느낌이 드는군.]
[오래 쉬었잖아?]
나는 가볍게 미소지었다.
[우선 체헤게, 네가 할 일은 염탐이야. 한동안 저 여자한테 붙어다녀.
그리고 정보를 얻어서 돌아오는거야. 알겠지? 우선은 인상착의부터.]
[하아... 알겠다.]
나는 체헤게의 영혼을 돌에서 빼내주었다.
체헤게는 스르륵 여자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에리아, 이 여자, 검은 머리를 하고 있고, 안경을 썼다. 장발로 보이는데,
머리를 뒤로 묶었고, 옷은 수수한 편이다.]
[그래, 우선은 인원의 인상착의를 계속 불러줘. 들리는 내용은 나도 파악할 수 있으니까.
우선 형태적인 부분부터 잡아보자고.]
[부하로 보이는 이들은 하나같이 말라있고 수척한 외모다.
전부 통일하기로 한 건지, 대머리인데, 자연적인 탈모는 아닌 것 같다.
의도적으로 밀어버린 머리다. 그리고, 음... 다들 허리춤에 둥근 구슬같은 것을 차고있다.]
[구슬 같은 것? 흥미롭네.]
그렇게 말하면 여자가 다시 조용히 말했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활동자금은 부족한 상황이에요.
우리는 각지에서 노력해서 자금을 충당해 왔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려운 상황이죠.
그래서 더욱 이 광산에서 나오는 보석을 위주로 경제적 기반을 다지려고 해요.
벌써 우리는 세 번째 지옥을 선사했어요. 점차 이곳에서 입지를 늘리고 있죠.
이전에 우리가 직접 공수해온 성자의 십자를 잃어버렸어요.
알고 있겠지만 우리는 그들 중 누군가가 그걸 탐내 배신한 것으로 보고했어요.
하지만 그게 사실은 아니죠. 분명 그 여자가 들고 도망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동료였던 성제 올리브가 죽었으니까요.
우리는 잘 해왔어요. 이번에 다시 성과를 내면 되는 거에요."
성자의 십자. 어쩐지 익숙한 감각이 들었다.
"성자의 십자가 있으면 우리는 유레크로스의 떨거지들에게 다르말록의 위대함을 보일 수 있어요.
아르간티아, 아무리 위대하다고 해도 결국 인간이에요.
우리는 인간에게 고개를 숙이기 위해 신전을 세운게 아니에요.
알고 있겠지만, 성자의 십자는 인간의 모든 성력을 차단하는 물건이에요.
마력은 고사하고, 신성력 등, 신이 인간에게 내린 것 모두를 배제하죠.
그걸 만들어내기 위해서 이제껏 얼마나 많은 신자가 희생되었는지 알잖아요?"
[에리아, 콜린의 보석상이다! 이 여자!]
머릿속에 스쳐갔다.
자신의 이름은 C라고 소개했던 여자.
내가 분명히 마을 사람들 틈에 섞여 시체를 옮긴다는 말에 같이 처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죽이지 않았고, 소란스러운 틈을 타서 도망쳤었지.
나는 이제껏 그게 길드에서 관리하는 데 실패한 인원이 모험가를 죽이고 장비를 탈취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대외적으로 그렇게 위장된 거라면?
이 순간 그건 확신으로 변했다.
저 사람들이 길드 소속일리는 없었으니까.
이 여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여자는 아마 이전부터 대장간에 잠입했을 것이다.
목적은 유레크로스에 있는 아르간티아의 교회를 배제하기 위함인가.
교회를 찾아가지는 않았지만 다르말록이 아르간티아와 적대관계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왜 일이 이렇게 이어지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일단 확실한건 대장간에 아주 지독하게 얽힐 것 같았다.
체헤게를 수리해야 하고, C의 계획을 저지하고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를 저지해야 하고,
유레크로스에서 교회를 찾아가 대비시켜야 할 테고...
머리가 벌써부터 아프다. 누구 좋으라고 이 짓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제일 싫어했던 교회라는 존재와 성직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일을 하고
자의적으로 아르간티아라는 남자를 조사하게 될 거라고는 나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면 아마 내가 이전에 저질렀던 행각의 주체도 나라는 것을 이미 발각당한 후일 것이다.
전신에 불이나 붙이고 나타나서 사람들을 재우고 성자의 십자를 훔쳐간 것이 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올리브. 그 이름이 여기서 또 나온 것은 의외였다.
이제껏 나는 젤렌지가 조사를 의뢰한 것이 나비효과로 인해 올리브에게 닿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올리브 자체가 다르말록의 신자였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럼 젤렌지는 과연 정말 순수하게 불사를 원한것이 맞나?
나는 진정되지 않는 머릿속을 끌어안았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았다.
테팔레스 화산은 전조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래도 한가지 다행인 점을 꼽으라면 내 적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종교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교회를 지키면서 종교와 싸운다는 점이 다르지만.
아무튼 머리가 아픈건 사실이었다.
"다음 집회는 또한 3일 뒤, 그곳이에요. 늦지 않고 오시길 바라요."
[체헤게, 놓치지마. 반드시 따라붙어서 전부 흘려.]
[알고 있다. 이거 오랜만에 뭔가를 또 쫒는 것 같아 기쁘군.]
[우선 우리도 여기서 한동안 흩어져야 할 것 같네.]
[먼저 실례하지.]
체헤게는 그렇게 말하고 여자에게 붙었다.
나도 자연스럽게 사라지기 시작한 그들의 뒤를 밟았다.
여자는 품 안에서 아티팩트로 보이는 둥그런 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그 거울을 바닥에 놓더니 그 위로 뛰어들어갔다.
거울 안쪽으로 사라져버린 여자를 따라 뒤로 한명씩 한명씩 사라져갔다.
말단 하나를 붙잡아 정보를 캐낼까 생각하다가 도리어 의심을 살 수 있을 것 같아 보냈다.
정보를 캐려면 말단이 아니라 머리를 쳐야 한다.
그걸 위해 붙혀둔 체헤게니까.
마지막 인원까지 거울로 뛰어들고 나면 거울에서 양손이 튀어나오더니
거울의 양 옆을 잡고 거울 안쪽으로 끌어당긴다.
공간이 휘어지는 느낌과 함께 거울은 그 스스로를 안쪽으로 빨아들였다.
"저건 대체 무슨 아티팩트야..."
저런게 있다면 공간적인 제약은 사실상 없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내가 과연 추적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체헤게, 어디야?]
[여긴... 모르겠다. 여기가... 어디지?]
일단 미리타엔과 콜린은 아닐 것이다. 대장간의 분위기도 아닐 것이고.
어딘지 모를 장소로 사라졌다.
아마 그 근처에 본거지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나도 마법진을 통해 다시 지상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