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4화 〉기술자들 (84/303)



〈 84화 〉기술자들

지상으로 올라와 광차를 타고 대장간으로 돌아가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으로 보이는 네네미가 말을 건다.


"아, 무령님. 이야기 들었어요. 기술자들을 구하셨다고요?"

"아, 그냥 뭐... 어쩌다 보니까."

"감사합니다. 역시 일반적인 제국 귀족과는 다르신 것 같아요!"

"일반적인 제국 귀족? 그건 일반화야? 일반적이라는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말할 수 있어?
나도 일단 소속은 제국 소속이라서 그런데엔 민감하게 반응해줘야 하거든? 계약상 말이야."

"아...! 죄..죄송해요..."

"아냐, 다른 귀족들한테는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일반적인' 귀족들은 너그럽지 않으니까."


"명심할게요!"

잠시의 시간이지만 체헤게의 빈자리가 느껴졌다.
덕분에 나는 마땅히 만족하지 못하고 레인을 서성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하로 내려가 체헤게의 수리를 담당하고 있는 스팅우스의 주변에서 가만히 작업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은 상당히 애를 쓰면서 작업을 진행중이었지만 아무래도 거벽에 가로막힌  처럼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 맥이  풀리는 것처럼 멈춰버렸다.
그들은 제각각의 목소리로 무능을 탓했다.
그럴 때마다 스팅우스는 그들을 조용히 채근하며 고무하곤 했다.
썩 만족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이라도 보고 있으면
적어도 체헤게의 몸체는 나와 가까운  같았으니까.
그때 등 뒤에서 서늘한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인가? 로봇을 의뢰했다는 제국의 무령이?"

내가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몸이 근육질인 드워프가 있었다.
울그락불그락하게 피부를 덮은 근육은 혈관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보호장구는 그다지 몸을 다 가리는 형식이 아니었다.
덕분에 나는 그가 드워프와 인간의 혼혈이 아니라 순혈 드워프라는걸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유난히 짙은 수염이 머리와 이어져 치렁치렁하게 늘어졌고,
그리고 갈색에 가까운 검고 어두운 피부, 그리고 작은 망치.
무엇보다도 비정상적인 신체비율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상체가 작고, 다리가 짧았다.


"네. 그런데요."

"그래, 자네로군. 나는 네버브레이크일세. 땜장이파의 수장을 맡고 있다네.
자네가  찾았다고 해서 자네를 찾아다니고 있었다네.
그나저나 놀랍군. 무령이라기에 긴장했는데, 이렇게 예쁜 처자인줄 몰랐지 뭐요."


"예쁜 처자...요?"


"그래, 완벽한 외모, 놀라운 몸매. 이제껏 옥성연을 능가하는 미인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런 순수한 모습이라니, 이건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소.
이제 보니 내 식견이 상당히 좁았다고 생각하게 되는군. 이름이 뭐요?"

"에리아에요."

"그래, 에리아양. 혹시 결혼은 했나?"

"아뇨."

"그렇군. 그럼 혹시 애인은 있나?"

"그런 이야기를 하려고 찾은건 아닌데요."


"너무 그러지 말게. 이건... 그래, 할인절차요. 조건에 부합하는 자에게는 저렴하게 해 주지.
자네도 그 저렴하게 하는게 좋지 않겠나?"


"무령이에요. 그정도 돈은 있어요."


"그 정도...  정도라... 아쉽게 됐네.
내 생각은 변하지 않으니까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알려주시게."

그렇게 말하고 네버브레이크는 내게 슬쩍 윙크를  보였다.
그리고는 허허 웃으며 내게 다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뭘 했는지 한번 보겠는가?"


그렇게 말하며 자연스럽게  얼굴을 보는 그가
상당히 즐거운듯 휘어진 체헤게의 팔을 고친 것을 내게 내밀었다.

"이건 놀랍군. 기본 금속 자체도 상당히 고가의 철이요. 철이라고 다 같은 철이 아니지.
탄소를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고 있는가? 제일 튼튼한 철에 몇 중으로 강화가 되어있다네.
이런 영기술은 기술자들 내에서도 아무나 가능한 것이 아니오. 분명 마르커스 혼자 하지는 않았을터인데.
누구인지 알면  데려오고 싶군. 게다가 이 센스는 말도 안된다네. 이 금속은 형상 기억 합금이라는 것이오.
무턱대고 달구고 때리려고 하니 안되는게지. 잘 보게. 여기 이렇게 영기술로 설정된 코드에 맞는 기운을 넣으면..."

드드득 소리를 내면서 팔이 다시 펴지는 모습을 눈 앞에서 보면서 느꼈다.
마력량을 조절해서 넣는 것으로  철을 모양대로 복원시킬  있다.
아마 설정해둔 마력량에 맞는 양을 넣어야 하는 거겠지.
아마  드워프는 그걸 알고 마력을 조절해 넣으려고 하는 것 같다.
수장이라는 자리가 장식은 아니었는지 마력량을 조절해가며 철골에 조심스레 마력을 흘려넣는다.
다만 문제라면 일정하게 마력을 흘려넣지 못해서 우그러지는 철골이 비명을 지르듯 우드득 소리를 내고 있다는것.
자연스럽게 펴져 원래의 모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휘어지듯 펼쳐지는 철골.
그걸 눈 앞에서 보여주고는 네버브레이크는 헉헉대며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허억...허억... 보았나? 이게 얼마나 대단한 기술이냐 하면..."


"이렇게 하는거죠?"


"무려 이거 하나 펴는데에 못해도 5델은...허어억...!"


그는 내 말을 듣지 못하고 헉헉대다가 내가 직접 손을 움직여 철골을 펴는 모습을 보고는 적잖이 놀랐다.
나는 원리를 알았음에도 굳이 스스로 하지 않고 돈을 낼 만큼 느긋하지 않다.
그가 불어넣은 마력량과 동일한 양을 고루 불어넣어 철골을 펴는 일은 간단했다.
처음 한두번은 우드득 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마력을 다루는데 익숙해서인지
곧 어느 정도로 조절해야 소리가 나지 않게 부드러운 수리가  지 깨달았다.
그리고 그 위로 간단한 강화 주술을 걸었다. 강도를 올리는 정도는 강화부가 없어도 조금은 가능하니까.


"이...이게...!"


주변의 시선은 이미 나에게로 모여 있었다.
수장이나 되는 남자도 겨우 헉헉대며 한 일을 너무나 간단하게 해내버린 내가
규격외의 인간이라는 것을 꺠닫기라도 한 것처럼 일을 멈추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미소로 대답했다.


"일들 하세요. 돈 받으셔야죠?"

그리고 다시 앞을 바라보면 네버브레이크는 이제껏 없을 엄청난 표정을 하고  보고 있었다.
그건 내게 있어 상당히 부담이었다. 그건 동경이나 놀라움으로 번진 표정이 아니라
숨길 생각 없이 노골적인 완전한 호의의 표정이었다. 아니, 어쩌면 성욕? 매혹?

"에리아... 호...혹시... 기술직을 해 볼...생각은... 없나...?"

말을 더듬으며 내 손을 덜컥 잡는 그가 말했다.

"그건 아무리 나라도 5일 이상은 걸리는 일이었다오.
 많은 부품을 일일히 분해해서 재련하고 다시 이어붙여 강화를 덧씌우는 일을...
그렇게 간단히 하는 자가... 대장간이 아닌 곳에서 나타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나는 그의 손에 붙들린 팔을 빼내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는 아쉬운 듯 손을 놓으며 멍 하니 서서 나를 바라보았다.
자신감이나 태도는 그렇다고 쳐도 드워프는 아니지 드워프는.
게다가 자기 의견도 제대로 피력하지 못하는 모습이라면 점수는 한없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기 마련이다.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시간 빼앗아서 죄송했어요. 고마웠고요.
아, 아까 뭐라고 하셨죠? 5델이었나? 10델 드릴게요."

내가 가방에서 10델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면 그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 것처럼
주르륵 지폐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는 꿈뻑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말 없이 돌아섰다.
그리고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바닥에 흩어진 지폐는 줍지도 않았다.
스팅우스가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혹시 어쩌면 우리 모두가 그리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마르커스의 친구라더니 역시 재능 하나는 놀랍소.
개인적으로 방금 거절하는 걸 보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도 웃기지만,
나 역시도 개인적으로 자네를 대장간으로 영입하고 싶어지는군.
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지 말게. 그냥 내 식의 칭찬이니까."


"그 정도를 구별할 능력은 되어 있어요. 고맙게 생각합니다.
마르커스씨도 종종 저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곤 했으니까요.
대장간에서 만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나중에 일이 정리되면 한번 정식으로 배워볼까 생각을 안해본 것도 아니고요.
잡설이 길었네요. 그래서 이제 땜장이파가 필요한 일은 다 된거죠?"

"그렇소. 언제든 대장간에 내가 남아있다면 환영하지.
그나저나 네버브레이크 수장이 저런 사람이었다는건 나도 처음알았군.
원래도 호색한이라는 이야기는 들렸지만 저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지 못했다네.
그의 취향을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이네."


"뭐, 긍정적으로 생각할게요. 대장간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싶지는 않으실 것 아닌가요?
아..  정확하게는 땜장이파의 이미지일까요?"
대장간은 결국 세 종파의 연합이니 굳이 퍼뜨리고 싶다거나 하진 않지만요."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그러나 이미 나도 대장간에 소속되어있다고는 하지만
소속감 같은건 없다네. 이미 할 줄 아는게 이것 뿐이라 철을 두드릴 뿐이네.
사실 나는 자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목적성이 없는 매일을 반복하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의욕을 좀 찾으려고 했더니 눈 앞에 또  장벽이 세워진 느낌이군.
대장간이 아니어도 그렇게 기술을 익힐 수가 있는 거였군.
아무튼 땜장이파 수장의 실언은 내가 대신 사과하지."

"네. 뭐 누구의 얼굴을 봐서 참는다거나 하는 그런걸 좋아하진 않지만.
놀라웠어요. 참 오랜만에 듣는 이야기였어요. 얼굴은 그렇다고 쳐도  몸을 보고 그렇게 노골적으로 들이댄 사람은.
물론 그게 기분이 좋은건 절대 아니지만 적어도 낯선 경험이긴 하네요."

"참 별난 분이시군. 그나저나 모르도르는 만났소?"


"모르도르요? 아뇨? 무슨  있었나요?"


"모르도르는 네버브레이크 수장의 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라네.
열성적인 남자야. 네버브레이크가 자네의 의뢰를 받으리라고 생각지 못한 모양이네.
네버브레이크도 아마 그럴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말일세.  편지가 없었다면 말이지.
서로 종파의 수장으로서 체면은 세워주자는 식으로 암묵적인 합의가 치뤄진걸세.
알고 있겠지만 대장간에서는 수장과 종파가 모든 것이니까.
네버브레이크가 자네의 로봇을 담당하겠다고 말하고 우리 레인으로 찾아왔을 때,
모르도르는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보였다고 생각하고 말았네.
그리고 자네에게 막대했다는 사실에 얼굴이 붉어져서 도망치듯 빠져나갔지.
자네에게 사과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나쁜 아이는 아닐세.
그래서 내가 자네에게 말을  거라네. 너무 그를 미워하지 말아주게나."

"미워하다뇨. 저는 그런 걸로 사람을 쳐내거나 하지 않아요.
사과만 제대로 받을  있으면 되겠네요."


"호쾌하고 좋군. 그나저나 헤세리티에게는 무슨 바람을 불어넣은건가?"


"네?"

"그 여자가 대장간에서 기계파의 인원을 빼가기에 나는 그저 로봇의 수리를 방해하기 위함이라 여겼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 그 여자, 새로운 로봇을 만들고 있다네.
아마 마르커스에 대한 경쟁의식이겠지. 뭐라고 했기에 그녀가 저렇게 불타오른건가?
마르커스가 대장간을 떠나고 나서는 한동안 그렇지도 않았던 여자였는데."

"글쎄요. 아마 뭐 오랜 앙금 그런게 아닐까요?"

"앙금이라...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은 하네. 요즘 작업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과거의 그 괴짜가 다시 깨어난 것 같아서 나는 순수하게 소름이 돋는다네.
시간이 난다면 한번 그녀를 찾아가보는건 어떤가? 아마 지하 5층 작업실에서 일 할 걸세."

"작업실이요?"


"지하 5층이라는 건 그만큼 깊이 내려간다는 의미네.
그리고 다시 말하면 테팔레스 화산에서 끌어오는 마그마와 마주하는 제일 심부라는 의미지.
본격적으로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와 관련해 마그마를 조절하는 공간이라네.
그래서 수장급이나 장로급이 아니라면 허가받지 않은 이들은 함부로 들어가지 못한다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작업하기에는 정말 더없이 좋은 공간이지."


"그럼 저는 어떻게 들어가죠?"

"허가를 받아내야지. 그건 어렵지 않을걸세.
지금의 자네라면 알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걱정말고 다녀오게.
이젠 정말 우리의 영역이잖은가. 물론 제일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 뿐이지,
마르커스의 설계를 따라잡는건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갈피는 잡았다네."

"알겠어요. 고맙습니다."

"수고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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