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광신도 (88/303)



〈 88화 〉광신도

어쩌다 보니 에리아와 떨어져 검은 머리의 여자를 따라나섰다.
분명히 거울은 하나였고 모두 같은 곳으로 들어왔던 기억이 있는데,
어쩐지 인원은 따로따로 나뉘어 흩어졌고, 내 앞에 있는 것은 C라는 이름의 여자 뿐이다.

'하아... 피곤하군.'

어차피 이렇게 대놓고 말해도  말을 알아들을  있는 것은 에리아 뿐이다.
그녀 외에 다른 사람은 나를 바라보는 것 조차 불가능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따라온 것이지만.


C는 상당히 침착했다. 콜린이 아닌 장소였지만 여전히 보석상을 운영하고 있었다.
음침한 외모가 반증하듯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아니라면 굳이 외출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콜린에는 그다지 많은 보석이 놓여있지 않았지만 이곳의 진열대에는 상당히 다양한 보석이 있었다.
나도 한때는 보석을  모으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젠 아득히 먼 이야기였다.

"우후후... 오늘도... 예쁘네요..."

그렇게 말하는 C는 진열장의 보석을 하나하나 꺼내 마른 수건으로 닦아냈다.

"분명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있을 거에요...
다르말록께서는 날 알아주실거에요... 그 더러운 남자 밑에서 일하는 이유는 그것 뿐이에요.
이번 작전만 성공한다면 분명 다르말록님의 신자가 늘어나겠죠.
그러면 분명히 나는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그녀의 말에 나는 명백한 불쾌를 느꼈다.
사람들을 희생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신을 말한다니.
그리고  신이 다르말록이라는 것에 쐐기를 박는다니.
나는 한때 다르말록을 믿었다. 유일신이었으니까.
신의 시대에서 우리는 신앙에 의지했고
그가 규정하지 않은 존재는 이단이며 악이었다.
나는 그렇게 마녀를 사냥하게 되었으니까.


이유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악이라는 절대적이고 확고한 사실만을 믿었다.
덕분에 에리아를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역시도 다르말록이 과연 옳았는가는 알  없게 되었다.
지금의 시대는 신을 바라지 않으니까.

다르말록은 골방 늙은이와 같이 버려졌고, 또 잊혀졌다.
이름을 숭배하는 이가 줄어들어 이제는 힘조차 발휘하지 못하는 신에게
여전히 찬양을 바칠 정도로 인류는 어리석지 않았고 또한 신앙을 중시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 한없는 미련을 안고 어리석은 짓을 하려고 하는  여자에게 조금은 반발심을 가지게 되었다.
측은함인지 안타까움인지, 아니면 동족혐오인지도 모르겠지만 현실은 그랬다.
명확한 거부감이 있다.


여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도했다.
타인의 눈을 피해서 기도했고, 사람들을 피해 저주했다.
그녀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다르말록이라는 존재에 대한 신뢰도는 계속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조명이 부족해서인지 어두운 방을 거치고 안쪽으로 나아가면 두터운 커튼이 쳐진 벽과
칙칙한 공간이 있었고, 처음 하루는 나 역시도 그 방에서 그녀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그녀는 가게를 지키고 종종 찾아오는 손님을 받을 뿐이었다.
이따금씩 어딘가로 전화해서는 제대로 하고 있느냐고 상대를 닦달하는 것이 전부였다.
제대로 하고 있느냐? 분명 거기에 실마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전화를 가지고 단서를 찾기에는 너무 전화는 금방 끊어졌다.


"후우... 왜 이렇게 시선이 느껴지는지 모르겠네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커튼을 친 후에 구석에 있는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
어디로 이어지는 것인지 의문을 가지기도 전에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이 드러난다.
계단? 스스로 수상한 티를 풀풀 내는 상황에 따라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주변을 유난히 경계하지 않는 여자 덕분에 크게 어려운 일은 없었다.
지하실에는 육망성이 그려진 커다란 원이 있었는데, 붉은 염료로 그려진 원은 아마 피 같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죽은 닭이 놓여있었는데, 목이 비틀려 꺾여있었다.
그리고 육망성의 꼭짓점에는 반쯤 녹은 양초가 하나씩 꽂혀있었고,
그녀는 그걸 바라보면서 만족스럽게 웃었다.
양동이 가득 들어있는 피를 찍어 몸에 바르면서 말했다.


"제물을  바쳐야... 닭으로 만족하지 않으실거야...
역시 한동안은 해오던대로 해야하나..."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제단으로 보이는 공간 뒤에서 두꺼운 포대기에 싸인 것을
질질 끌고 와서 싸인 천을 풀어냈다.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은 첼이었다.
이미 죽은지 상당히 시간이 지난 것으로 보이는 첼의 피부는 검게 변색되어 있었고,
다리는 잘려 피가 상당히 빠져나간 상태였다. 그러나 생각만큼 부패가 심하지는 않았는데,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포대기로 싸서 보관한 탓인 것 같았다.
포대기에는 상당히 흙이 질척하게 묻어있었다.
그러나 썩은 시취가 여전히 풍기는 것은 역겹다고 말하기 충분했다.

"참 멍청한 남자들이었죠. 죽을 줄도 모르고 서로 떨어져 다니면 잡히기 쉽다는걸 알았을텐데.
그렇잖아요? 이제와서 후회해도 동생은 살아돌아오지 않는데도, 불쌍하게 어디선가 계속 동생을 찾아다니겠죠.
후...후후..."

기억이 난다.
분명 형이 겔이었지. 에리아에게 반한 모습이 눈에 보여서 안타깝다고 생각했었다.
동생이 눈치껏 빠져주었다는걸 알고 신이 나서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곤 했었는데.
이제와서 죽었다고? 진행상황으로 보아서는 분명 그 당일날에 죽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안그래도 노안이던 첼의 얼굴은 핏기가 가시고 나니 충분히 공포스러웠다.


 이 형제가 이렇게 되어야 했는지 생각해봐도 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들이 원한을 가질 대상은 첼 겔 형제보다는 에리아가 아니던가?
분명 겔이 말했었던 내용이 생각이 날 것 같은데 나는 기억력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분명 그가 말한 내용에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콜린에서 겔이 한 말... 겔... 콜린... 아마 루나르와 마을 회관에서 지냈고,
커피를 마시러 왔었고... 미리타엔의 정보 였었나. 그 정도?


내가 생각을 정리하지 못하자 문득 생각이 난다.
그래, 나 혼자 끙끙거릴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에리아, 묻고싶은 것이 있다.]

[오, 그래? 정보수집이 생각보다  되어가는 중인가봐?]


[어쩌다보니. 여기서 죽은 첼의 시신을 발견했다. 부패 상태는 상당히 진행되어있고,
예상으로는 가게에 겔이 홀로 찾아온 날에 죽은 것으로 보인다.]


[첼이... 죽었다고? 왜... 왜지? 혹시 짚이는게 없어?]

[그래서 묻는거다. 첼이나 겔이 한 말 중에서 이들이 C에게 원한을 살 만한 이야기를 했나?]

[C...C라... 아...! 설마... 체헤게, 혹시 그 집단의 인원구성 기억해?]

[일단 확실한건 C라는 여자와 콜린의 주민들이었다.
허리춤에 구슬을 하나씩 가진 이들이지.]


[어쩌면, 어쩌면 말이야. 우리가 들었던 이야기. 겔이 말했던 거 기억해?
콜린에는 유난히 아이들이 없다. 그리고 국경지역임에도 국가로부터 지원이 없다.
그리고... 유난히 우릴 적대하던 인간과 호의적이던 인간...]

오싹해졌다. 설마... 아니길 바랐는데...

[무슨... 무슨 소릴 하는거냐...]


[어쩌면... 콜린이라는 마을 자체가 이미 종교집단의 구역이 되어버린걸지도 몰라.
우리가 알고 있던  낭설들의 주체가 변한다면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 아니야?]


[무슨 의미냐. 가설을 말해다오. 도저히 나 혼자 결론내리기 어렵군.]


[콜린이라는 마을에 처음 길드가 정착하고, 모험가들의 마을로 발전한 후에,
이상한 소문이 퍼졌다고 했잖아. 길드에서 파견된 사람이 의도적으로 강도짓을 했다고.
처음 한두번은 그게 가능하다고 쳐도 모험가가 모이고 마을을 이뤘을 때도 가능할까?
그 말대로라면 우리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정상이야.
길드 자체가 없어진 상태였으니까. 길드이름을 대고 강도질을 하다 걸리면 빼도박도 못하고.
캐스빅도 분명히 그게 8년 전의 이야기라고 못박았었지.
 이야기가 거짓말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마을 자체를 싫어하던 사람이니까.
분명 최초에는 그런 일이 있었을거야. 하지만 길드가 만든 마을이라고 했는데
이제와서 길드가 그 일을 방치할리는 없잖아. 길드에 먹칠을 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우리가 본 건 어쩌면 누군가가 길드에게 책임소재를 돌리고
마을 내부에 있었던 인원을 의도적으로 줄이기 위한 작업이 아니었을까?]

[확실히, 마을에는 길드도 상업조합도 없었다. 마을 회관이 그 역할을 애매하게 대신할 뿐.
생각해보니 길드가 만든 마을에 길드 하나가 없다? 간단한 일이라도 하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서지스까지 가야 했으니까 콜린의 마을 사람들이 불편을 가지더라도 해결이 복잡하군.]

[그러면 이제 마을에는  종류의 인간이 있게 돼.
마을 인구를 줄이고 콜린이라는 마을을 본거지로 삼으려고 하는 A집단과
마을에 원래부터 살고 있었거나 유입된 사람들로 이루어진 B집단.
A집단에서는 우리가 새로 들어왔다는 사실 자체가 달갑지 않았겠지.
B집단은 이 좁은 마을에 새로운 인원이 들어왔다는 자체가 기뻤던거고.
상대적으로 마을 주민이 그 안에 숨어있던 A집단보다는 많았던거고.]

[그럼 우리가  밤에 사람들이 연장을 챙겨서 돌아다니던 것은...]

[아마도 그 사람들이 A집단이었겠지. 그렇구나.
겔이 우리한테 했던 말은 그거였어. 이 마을에 있는 사람들 대다수는 미리타엔에서 건너온 사람들이다.
물론 그 자체만 두고 보면 그다지 의미 없는 말로 들릴  있겠지만,
미리타엔 제국에서는 초창기에 다르말록교를 국교로 두고 숭배했지..?
아르간티아가 다르말록을 봉인한 이후로 점차 규모가 줄어들었지만...
그 사람들이 내려온거라고 하면 말이 맞아.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야밤에 거기서 연장을 들고 있었지..?
뭔가를 파려고 했다? 혹은 묻으려고 했다?]


[하아... 에리아, 사람을 죽여본 적 있나?]


[알잖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다. 사람을 죽이고 그 시체를 매장하고 아무 일 없듯 사람들 사이로 섞여야 하는
그 무거운 부담감을 져본 적이 있냐는 말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


[시체는 지상보다 수중에서, 수중보다 지하에서 늦게 부패한다.
우리가 길드와 마을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만약 이 광신도 집단이라면...
아마 묻은 것은 첼이었을거다. 겔이 혼자 커피숍에 찾아온 날이었다.
그리고 방금 듣기로는 혼자 있는 첼을 노려 죽였다고 말했으니까 분명할거다.
묻은 첼을 파내려고 했던, 죽은 첼을 묻으려고 했던. 그래서 저렇게 천으로 둘둘 감은거군.]

[그 자리에서 십자가를 꺼냈었지.]


[그렇군. 아마 이미 우리가 찾아간 시점에 그들은 땅에서 시체를 퍼올리고
그걸 들고 도망간거다. 그래서 몇 명은 우리에게 의도적으로 달려와 시간을 번거고.
졸음으로 쓰러진 이들 사이에서 누군가는 도망쳤다는 의미다.]

[그때 그렇게 마을을 떴으면 안되는 거였다는 소리네.]


[C, 이 여자가 머리가 좋은거다.
우리가 십자가를 가지고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건
거기에 십자가를 넣은 것도 이 여자라는 의미지.
아마 구덩이에 아무것도 없다는걸 깨달으면 우리가 파낸 무언가를 찾으려 할 거라는걸 깨달은거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거기에 십자가를 집어넣은거다.
방해가 되는 한이 있어도 거기서 잡혀버리면 모든게 끝나잖나.]

[왜 그 생각을 못했지? 땅에 묻힌게 정말  상자와 십자가라고 한다면
헐거워져서 반 정도 열린 상자 속에 들어있던 십자가에
상식적으로 흙이 묻지 않을리가 없는데...십자가가 깨끗해도 의심을 하지 않았어.]

[나중에 다시 받아낼 생각을  거겠지.]

[하아... 그럼  마을에 있는 인원들 중에는 지금도 다르말록의 광신도가 숨어있다는 의미겠네.
한순간에 그 인원들이 사라져버릴 수는 없으니까.]


[우리에게 적대적으로 대했던 윌과 카페의 사장을 기억하나?]


[어, 당연하지.]

[마르커스를 의도적으로 공격하고 그들이 매점매석으로 폭리를 취했던  기억하나.
나는 그것도 어쩌면 C가 말했던 자본의 충당 수단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대체... 어디까지 이어지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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