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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화 〉공황 (91/303)



〈 91화 〉공황

그들이 그리는 것이 대형 마법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우리는 한  더 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규모로 만들어내는 마법진이라면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가 아니더라도
대장간을 혼란하게 만드는데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대장간이 문제가 아니다. 어떤 마법인지도 정해지지 않았기때문에 더 서둘러야 한다.
늦어질수록 이쪽의 피해만 커질 뿐이다. 예로부터 광신도들이 정말 두려운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저들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달려든다는 점일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어찌 완벽히 막아낸단 말인가.
그 비틀린 신앙심이 죽음에서 자신을 구원하리라고 믿는 저들에게는
상식의 마지노선이 통하지 않는다.

나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고 밖으로 나왔다. 이미 대장간은 혼비박산이었고
그 누구도 멀쩡히 일하는 자가 없었다. 소식은 생각보다 훨씬 빨리 퍼졌다.
그들을 규합하고 있는 것이 헤세리티와 장로였고 나는 그들에게 대비책을 일러줘야 했다.

"아, 왔군. 장로님, 이자가 제국의 무령 에리아라 합니다."

"그렇군. 만나서 반갑소이다. 도토크라 하네.
자네가 이번 사건에 도움을  수 있다고 했다던데, 자문을 구하고 싶네.
도와주겠는가? 내 사례는 톡톡히 하리다."


"사례가 없어도 할거에요. 이번 사건이 단순히 대장간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거든요.
막지 못하면 유레크로스, 아니 페세티아 대륙 전역이 위험해질 겁니다."

도토크는 진지한 얼굴로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굵은 팔로 수염을 쓸어내리면서 내게 물었다.

"내가 그대를 믿어도 되겠는가?"

"그러시죠."


좋네. 그럼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아뇨, 요구조건은 있어요."

"그래, 무엇이든 이야기하게. 들어주지."


"제가 의뢰한 로봇은 중단 없이 계속 수리해주세요."

"하아...  상황에서도 챙기다니... 귀한 로봇인가보오.
헤세리티, 남는 시간에는 가서 도와주게. 자네라면 금방 끝나겠지."


"하..하지만 장로님..."

"중요한 일이네."


"....알겠습니다. "

"지금 전담중인 자들도 그대로 일하게 두고."


"네..."


"그럼 계속 이야기해보지. 광신도들의 문제라고?"


"네. 정확히는 유레크로스에 있는 교회와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붕괴시키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성 테르도어 대성당인가... 그래서 화산을 그들이 붕괴시켰다는 증거는 있나?"


"제가 봤어요. 직접 칼데라 지역을 만들고 붕괴 현장에서 도망치는 걸요.
지금 대장간에서 회로파의 기술자들을 대거  간 이유도 아마 대형 마법진을 만들기 위해서일 겁니다."

"대형 마법진이라고?"


"영기술의 특징을 띄는 회로입니다."


"아, 알고있네. 그래서 영기술을 다루는 회로파 기술자들을 데려갔군.
그러면 우리쪽에서도 대응이 필요하겠구려.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아는가?"

"그건 마법에 따라 다르니까 우선은 인원의 대피가 먼저에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 대장간의 입구에서 탁탁하는 구둣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뒤로 르미에르가 성연 마카의 손을 잡고 달려왔다.

"성연을 데려왔습니다.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은 잠시 네네미의 숙소에 머물도록 했습니다."

"확실히. 잘했네 르미에르. 성연께서도 힘을 보태주셨으면 싶은데,
혹시 시간이 괜찮으시겠소?"

"솔직히 말해서 여유로운건 아니에요. 집합이 내려오기도 했으니까요.
그래도 일단을 자율참석이니 만큼 여차하면 가지 않아도 괜찮아요."


도토크는 그를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그에게 몇 번이나 양해를 구하고는 네네미의 숙소로 돌아가 쉬고 있으면
차후에 다시 연락을 남기겠다고 말하고 마카를 돌려보냈다.
확실히 일처리에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도토크는 차분하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나저나 네버브레이크는 어디로 갔는가? 데려와주겠나 르미에르?"

"알겠습니다."


"헤세리티 자네도 여기는 맡겨두고 우선 로봇의 수리를 하러 가게."

"알겠습니다 장로님."


수장들이 모두 걸음을 물리고 나서야 장로는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이제 보는 눈이 줄었으니 묻고 싶은데, 그 정보는 어디서 얻으셨는가?
무관한 인간이 알고 있는 정보라기에는 조금 많은 것 같소.
도와주시는 입장에 염치없는 일이라는 것은 알고 있소만 부탁하겠소.
출처를 확실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래도 기술자들도 신용하지 않을테고,
일처리에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소."

"마르커스의 로봇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아, 그 영혼 말인가. 들었지. 자네가 대장간에 온 첫날 헤세리티가 내게 와서 말해줬다네.
이런 인물을 대장간에 들일 수야 없다고 말일세. 아마 자네가 의뢰를 부탁하지 않았다면
명분이 없어 그대로 내쫒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썩 달가운 이야기는 아니네요."

"그게 그래서 정보의 출처와 무슨 연관이 있소?"

".... 별로 없어요."

"그냥 별로 말하기 싫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면 되겠나."

"네. 그렇게 해주세요."

"하아...  믿겠다고 했으니 믿기야 하겠지만, 그래서는 대중을 설득하기 어렵다네.
내가 알아낸 것으로 해도 괜찮겠는가? 자네가 정보를 주었다고 하는게 편하기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수월하게 진행이 되지 않을 걸로 보이네."


"편하실대로 하셔도 돼요."


"고맙네."

그렇게 대화를 마치면 네버브레이크가 르미에르의 손에 이끌려 나아왔다.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는데,
투덜대며 끌려오다가 나를 발견하고 멈칫 발을 세운다.


"히끅...!"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내뱉는 그의 표정을 보고 다들 살짝은 당황했지만
크게 묻지 않고 적당히 넘겨버렸다.
도토크는 그에게 물었다.

"네버브레이크, 어디에 있었지?"


"땜장이파는 지금 급격하게 밀린 주문으로 인해 바쁜 상황입니다.
납품 일자가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모든 기술자들을 동원했습니다."

"납품?"


"네, 오케스트라에  장비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기계파에서도 동일한 의뢰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기계파는 헤세리티가 로봇을 만드는데 인력이 투자되었기에..."


"오케스트라에서 사용할 악기가 뭐기에 그렇게 단체로 붙들고 있는가?"

"캐럴본 180대입니다."

"캐럴본? 그 커다란걸 말인가?"


"그렇습니다."


"하아... 그렇다고 해도 대장간의 땜장이파를 모두 동원한  치고는 너무 오래 걸리는게 아닌가?
조금 더 실속있게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현재 174대까지는 어떻게든 만들었습니다만 재료가 부족해서 더 만들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의뢰주와 연결해주게. 내가 직접 연락해보지. 지금 그런것에 시간을 쓸 틈이 없네.
자네는 이제 와서  모르겠지만 대장간의 존속이 달렸단 말이네."

그 말에 네버브레이크도 꿀꺽 침을 삼키고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이! 전화기를 가져와!"

눈 앞으로 대령해온 전화기로 꾸깃하게 접힌 종이에 쓰인 전화번호를 입력한다.
도르르르 돌아가는 태엽 너머로 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여보...세요..."

"안녕하시오, 대장간에서 연락을 드렸소이다."


"아, 대장간... 저희...지지직... 오케스트라...지직... 감사.....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의뢰하신 캐럴본 180대를 맞추지 못할 것 같소.
174대까지는 완성을 했지만, 아쉽게도 황동이 모자란다는 것 같소이다.
양해를  줄 수는 없겠소?"

"아예...지지직...동이...지직...습니까?"


"그건 아니오, 하지만 175대째를 만들기에는 모자라 만들수가 없소."

"그럼... 지지직... 완성된 캐럴본과... 황동을 모두 보내...지지직...시오."

"그리 하리다. 의뢰받은 주소로 보내드리지. 양해 고맙소."

"뭘요... 지지직... 우리가 더...지직... 죠... 하하하..."

군데군데 끊기기는 했지만 이미 이런 전화에 익숙한 것 같았다.
대처가 자연스러웠으니까.
그런 통화를 마치고 도토크는 바로 명령했다.

"네버브레이크, 들었겠지. 바로 174대에 남은 황동을 포장해 보내게."


"장로님, 그게... 그걸 보내고 나면 대장간에 황동이 남질 않습니다."

"유레크로스로 황동을 구입하라고 러너를 보내지 않았는가.
기다리면 그들이 돌아오겠지."


"그들이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아냐, 지금 고객과 약속을 먼저 져버린건 우리일세. 더 실망을 안겨드릴 수는 없지.
대장간을 한동안 닫는 한이 있더라도 우릴 믿어준 고객을 배신할 수는 없어.
바로 출발하게."


"알겠습니다. 마무리 되는대로 돌아오겠습니다."

네버브레이크는 그렇게 말하고 돌아갔다.
르미에르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뭘 하는게 좋겠소?"


"저랑 같이 C구역에서 흔적을 찾으시죠."


"그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그건 성연과 함께 다녀오시는게 낫지 않으시겠는가?
나는 짐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군."


"상당히 저를 믿으시나보네요."


"믿어야지. 내 형제가 벌인 일이니까. 부디 무사히 살아있기만 하면 좋겠는데."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로 도토크는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르미에르는 생각보다 도움이  걸세.
영특한 장인이니까 말이지."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마치고 르미에르와 함께 도토크의 앞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네네미의 여관에 들러 성연을 불렀다.
마카는 내 부름에 곧장 나타났다.


"에리아님, 역시 기술자들의 실종을 조사하기로 하셨군요."

"그래. 중요 안건이니까.
그래서말인데, 수장과 내가 사라진 이후의 대장간은 지나치게 취약해.
장로가 죽으면 모두 헛수고가 되겠지. 너는 장로를 따라다니며 보조해줘.
라이프세이버로서 누군가 하나는 남아야 해."

"알겠습니다. 맡겨주세요."


C구역으로 가는 카트를 타고 C2지역으로 도착했고 우리는 칼데라의 근원을 찾기로 했다.
땅을 파야 한다며 천공기와 굴삭기를 준비해오겠다는 르미에르를 말리고
내가 땅에 마력을 흘려넣어 진원지를 찾아냈다.
주변 토양과 다른 흙이나 암석이 밀집된 구역.
공동에 쓸려들어간 흙은 분명히 일대의 흙과 다른 성분일테니까.
그리고 그 곳의 위치를 특정해냈다.


마법진을 열고 그 안쪽으로 이동하면 그곳에는 작은 샛길이 있었다.
잘그락대는 자갈을 밟으면서 이동하는 좁은 공간은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어진
보형물로 겨우 유지되고 있었는데, 그 재질이 합성 플라스틱이었다.
하중을 견디는게 용할 정도로 아슬아슬했다.


"이런 곳에 정말 사람이 다녀갔다니 믿기 어렵군."


"하지만 보고 계시잖아요?"

"그러게 말이네. 어디 흔적이 좀 남아있으면 좋겠는ㄷ..."


그의 말이 멈췄다. 나 역시도 그 자리에 멈춰섰다.
이유를 알아내버렸으니까.

"이...이건 뭐요...?"


산산히 조각나서 토사 속에 섞인 옅은 푸른 빛으로 반짝이는 돌덩이들.

"헬라티움..."


그냥 보더라도 산산히 조각난 헬라티움이지만 저 돌덩이들이 하나로 붙어있었다고 하면
분명히 엄청나게 거대한 광석이었을 것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헬라티움 광석을 터트린겁니다.
 정도 크기라면 이런 공간을 날려버리기에는 충분하죠.
폭발로 부수적인 증거를 남기지도 않을 거고요.
이 광석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를테니까."

"대체...."

"일단 돌아갑시다. 여기서 알아낸건 폭파 방식 뿐이네요."

"폭파 방식을 설명해 줄  있소?"

"그럼 저기 있는 헬라티움 광석을 하나 집어오세요. 밖으로 나가서 알려드리죠."

"터...터지는 것 아니오?"

"괜찮아요. 터트릴 생각만 없으면 터지지 않으니까."


그는 바들대는 손으로 광석을 주워 돌아왔다.
나는 그 광석을 받아들고 C구역 밖으로 나와 그에게 시범을 보이기로 했다.
마력을 단기간에 확 불어넣어 C구역 바깥 공터로 던져버리면 날아가던 동시에 펑 소리를 내며 터진
헬라티움은 반짝이는 물빛 가루를 흩날리며 사라졌다.

"이런거에요."


"이러니 원인을 자체조사해도 알 수가 없던 거군."

"아직 알아야 할게 산더미입니다. 긴장하세요."

"그래, 그래야겠소. 자네와 함께 나오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 생각하네."

나는 가루가 되어 사라진 광석을 돌아보면서 C가 노리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어떻게 이 테팔레스 화산을 분화시킬 수 있을까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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