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2화 〉부정한 자 (92/303)



〈 92화 〉부정한 자

"다음 구역으로 또 가봐야  것 같군."


르미에르는 그렇게 말하며 카트에 올라탔다.
내게 손을 내밀어 카트로 부르는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다음 구역은 C3 구역이다. 분명 무언가 단서가 남아있으리라고 믿는
르미에르의 표정이 어딘가 조금은 빛나보였다.
화사한 빛이 아닌, 암색의 조명과도 같은 잠깐의 추측이 얼굴 위로 떠올랐다 사라진다.


C3구역에 도착하면 르미에르는 내게 기대를 거는 눈빛을 하고 서있다.
 역시 지하의 공동을 찾아 그 곳으로 마법진의 좌표를 설정하고 있었다.

"갑시다."


"잠깐, 아직 아니에요. 최대한 조용히, 조용히 가야해요. 아시겠죠?"

"무슨 일인가...?"

"직접 확인해보시는게 나을 것 같은데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조용히 마법진으로 들어섰다.
내가 먼저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르미에르가 따라왔다.


"이곳은...!"

들리지도 않을 목소리로 아주 낮게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명백한 당황이 깔려있었다.
들어오자마자 풍기는 비릿한 피냄새. 그리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웅성이는 무리가 있었으니까.
우리는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벽을 등지고 숨어있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훔쳐보는 것 외에 달리 하는 일은 없었다.

"에이씨, 여기는  또 오라고 하신거야?"

"난들 아냐, 우린 그냥 까라면 까는거지."

"난 그런 싸이코는 처음 봤다고. 신이 밥 먹여 준다냐?
왜 씨발 사람을 죽여가면서 신딸을 치는거야?"

"놔둬라. 우리는 그냥  받고 나가면 되는거니까."

남자 넷이 그렇게 떠들고 있었는데, 대장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조용히 주머니에서 작은 종이를 꺼냈다.
종이에는 세세하게 그려진 그림에 설명까지 동봉된 목표물이 있었다.


"조용. 그렇게  받고 발 빼고 싶으면 우선 시킨 일부터 처리한다.
이 근처에 있다고 하셨으니 찾아보자고."


"대장, 우리가 찾아야 하는게 뭐였다고?"


"구슬이다. 보급형 유리 오브. 흔히 우리가 연락용 수단으로 지급받는 전음 마법이 등록되어있다.
오브 하나가 실종된건  일이 아니지만 그것 때문에 C께서 모두에게 공지하기가 까다롭다고 하신다.
이번에  찾아가야 한다. 이번에도 까이면 다음 번제는 우리 중에서 나올지도 몰라."


"씨발년. 나중에 꼭 따먹는다."


"아무리 여자라도  년이 우리보다 셀 걸?
우리는 뭐 용병이니까 섞여들어온 만큼 일은 한다지만,
알잖아. 그 이교도 집단은 우리 정도로 어떻게 해볼 규모가 아냐."

"그렇다고 발 빼자고?"


"그건 아니지만."

그 말에 대장이 다시 기강을 잡아세운다.


"조용. 할 일만 하자 할 일만. 아무리 미친년이라지만 설마 우리 얼굴과 이름을 전부 기억하지는 못해.
적당히 타이밍 보고 빠지면 된다. 일단은 찾아내. 이번 일의 보수는 3일 뒤에 준다고 하니까."


"맞다. 3일. 그 씨발 3일만 더 버티면 되는거지..."

그들이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원은 아직 없었지만 들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르미에르, 몰래 빠져나가서 다음 수를 노리죠."


"그거 좋...ㅅ...."

"왜 그래요?"


"혹시, 저들이 찾는다는 오브가... 이거요?"


그는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반쯤 금이간 유리구슬을 꺼내들었다.
확실했다. 나는 그에게 손으로 OK사인을 보내고 그걸 벽에 조심스럽게 파묻었다.
벽의 흙을 파내고 유리구슬을 묻어 다시 그 위로 흙을 덮고 툭툭 덮었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나가자고 신호했다.
내 말에 르미에르도 못마땅하다는 느낌으로 나를 따라 빠져나왔다.
지상으로 돌아오자마자 르미에르는 나에게 물었다.


"왜 돌아온 거요? 그 오브는  두고 나온거고?"

"오브가 사라진걸 알고 있는 집단의 우두머리가 곧장  C3구역으로 사람을 보냈다는건
적어도 오브가 C3구역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의미에요.
오브 자체에 내장된 마법 중에 위치 추적 기능이 있겠죠.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아마 정확한 위치는 특정해낼 수 없거나, 본인이 직접 찾으러 오지 않으면 찾지 못하는 거겠죠.
그럼 우리는 저 사람들이 오브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면, 나중에 직접 찾으러 올 본인을 잡으면 되는 거에요."


"하아... 나는 아무리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군."

"일단은 참아야 합니다. 저 오브를 대장간으로 가지고 돌아갔다가는 우리가 그들의 게획을 파악하고
누가 적인지도 특정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는 거에요. 물론 경고의 의미로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일말의 흔적을 남기지 않게 더 치밀하게 행동하겠죠.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해서는 잡을  없다는 의미에요.
우리의 진행 상황을 알리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어차피 대장간에서는 수장들과 장로님이 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거고요.
그 상대가 누구인지를 특정해냈느냐 아니냐가 큰 차이가 될 겁니다."

"하아... 알겠소. 그렇다면 아까 그 자들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아무 생각도 없이 돌아온건 아니에요.
일단 4명은 용병이라는 사실도 알았고요,
이교도 집단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서 제가 말한 내용이 확실해졌죠.
그리고 이교도 집단이라고 해서 구성원들이 모두 신앙으로 묶인 것도 아니에요.
내부를 두드리면 생각보다 빠르게 파훼가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용병 4명은 전부 남자고요. 우두머리의 이름은 C라는걸 알았잖아요?"

"확실히..."


"물론  C도 중간직일  있지만요. 이정도면 수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르미에르씨는 돌아가서 장로님께 이걸 전해주세요. 저는 조금 더 찾아볼게요."

"같이 가고 싶소. 대장간의 문제를 타인에게 맡기기는 염치가 없다고 생각하오.
내 형이 저지른 일이니만큼 돕게 해 주시오."

"그럼 그러세요."

머리가 생각보다 좋은 남자다. 나를 믿지 못한다는 말을 면전에서 하지 않고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자연스럽게 나를 혼자 방치하려 두지 않는다.
처음 내가 같이 가겠느냐고 제안했을 당시에는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날 따르는 것을 거절했다. 나와 대적할 정도라면 성연을 데려가는게 낫다고 판단한거겠지.
성연도 대장간의 입장에서는 외부인이기도 하니까. 그러나 내가 성연을 장로의 경호 명목으로 빼내면
나를 차라리 대장간에서 떨어뜨릴 생각으로 따라나온 것이다.
지금은 내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이렇게 나오는  같은데,
폼으로 회로를 다루는 남자는 아니다 이건가.


"르미에르씨는 마법진을 얼마나 다룰 줄 아시죠?"

"마법진? 아, 영기술 회로 말이군."


"뭐, 호칭은 편할대로 부르시고요."


"대장간에서 제일 많이 연구한건 나일거요.
공식이 정해져 있는 거니까, 연습을 하다보면 가능해지지."

마력의 발현이 기술로 나타나는 형태겠지.
하나의 일을 오래 하다보면 체내 마력을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운용하게 되니까.
물론 그 과정이나 방법은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장간은 마법을 영기술, 기술로 취급하기 때문에
이것 역시도 하나의 공식으로 정리해 버린 것이다. 그 공식은 개인 하나에게만 통하는 것일텐데.
하나의 마법을 사용하는데도 수백가지의 마법진이 나타날 수 있으니까
사실 원리와 이론 공부가 중요하다.

"우리가 찾아야 할 건 아마 그 영기술 회로일겁니다.
회로파 기술자를 납치했다는 건 그런 의미에요.
전기회로나 연료회로로 대장간에 타격을 줄 수는 없어요."

"그래서 회로파 기술자들이 선택되었다는건가?"

"그렇겠죠."


"이제 어딜 조사할 건가?"


"솔직히 말해서 전 다시 내려가서  사람들을 캐보려고 했어요."


"그 자들을?"


"네. 대장간이 가진 정보는 너무 희박합니다.
사전에 저지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준이죠.
어떤 마법을 준비하는지 알아야 대처를 하지 않겠어요?"

"마법...마법이라... 기술자들은 마법을 인정하지 않았네.
영기술이라고 어떻게든 기술의 영역으로 끼워넣으려고 했지.
그게 어쩌다보니 퍼져서 간단한 능력들을 영기술로 치부했는데,
이렇게 눈으로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느낀다오.
우리는 감당하지 못할 것을 억지로 규정하려고 했다는 걸.
좋네, 자네를 믿고 먼저 대장간으로 돌아가지.
부디 우릴 배신하지 말아주시게."

"네. 그러죠."


나는 그를 보내고 다시 지하로 내려갔다.
돌아간 곳에는 이미 그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마주하고 곧장 수상한 인물로 몰리고 말았다.

"영기술사다!"

"들켰다! 모여!"


"뭐야 씨발!"

그들은 하나씩 허리춤에서 무기를 뽑아들었다.
단도부터 한손검, 권총 등 다양한 무기가 나타났다.


"넌 뭐냐! 어디서 들어왔지!"


대장이 내게 칼을 겨누었다.
그 눈을 보면 떨리지 않았다. 다른 부하들과는 다르게 동요하지 않는다.
분명히 나에게 적의를 가지고 칼을 가져다 댄 것이다.
어쩌면 이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안녕하세요. 에리아라고 합니다. 대화를 하려고 왔어요."


"대화...?"

그 말에 멈칫하는 이들이 한발짝 뒤로 거리를 벌렸다.

"저는 당신들이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런가, 생각보다 당당하게 나오시는군. 마치 우리 소속을 아는 것 같아?"


"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나?"


"들었어요. 그래서 제안드리는 겁니다. 이쪽에 붙으세요.
지금이라면 살려드릴 수 있어요. 까짓 돈 정도는 이쪽에서도 지불할 용의가 있고요.
용병이라면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 금방 판단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대장, 어떻게 해?"

"우리도 이래뵈도 사람거죽 뒤집어쓴 놈들이라서. 꼴에 폼은 잡아야겠거든.
배신하고 빌붙어서 살아남는다니, 좀 멋없잖아?
그리고 우리는 이 일을 마치면 발을 뺄거야. 굳이 우리가 적대할 이유가 없지.
딱 3일 뒤면 우리는 이 광신도 집단을 벗어날 거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알았습니다.
당신들이 3일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곧  여자가 여유가 생기는 날이 3일차부터.
즉, 앞으로 3일 내로 지도에서 유레크로스가 지워질지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순순히 협력하길 바랍니다. 여기서 더 거절하면 금전적 지원을 철회하는건 물론이고,
강경수단을 쓰게 될 겁니다."

"유레크로스가 지워져?"


"회로파 기술자들을 대거 납치해간 C는 현재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그게 터졌다간 여러분 모두 안전하지 못할겁니다.  전에 반성할 기회를 드리는 거에요."

"반성... 미안하지만 우리도 이미 지은 죄가 많다고. 하나둘 이제와서 반성한다고 될 수준은 아냐.
반성은 지옥에서 실컷 할테니까 신경쓰지 않아도 돼."


"그래요?"


나는 빙그레 웃고 손에 마력을 모은다.
모인 마력이 툭 하고 대장을 감싸는가 싶더니 천천히 주변으로 이어진다.
눈 앞이 밝아지고 어째선지 기분이 이상하게 꺼림칙하다.


"당신의  말 한마디가 결국 동료를 죽였어요."

까드득 소리를 내며 용병 하나가 십자못처럼 몸이 돌돌 말려서 허리가 꺾였다.
그 광경에 한마디 말을 하지도 못하고 남은 세명이 멍하니 서서 그를 바로 부축했다.

"너, 뭐하는 놈이야...?"


"그건 나중에 궁금해하셔도 됩니다."

다시 손가락을 튕기면 대장의 허리가 역방향으로 뚜둑 소리를 내며 꺾인다.
그리고 곧장 허리가 끊어져 쓰러지는 위로 내가 발을 올려 지끈지끈 밟아댄다.

"으아악...!"


"다시 말해드려요? 이쪽으로 넘어오시는게 좋아요."


"안...안된다....!"


"ㄷ...대장...살ㄹ..."

"뭐...?"


대장이 옆을 돌아보면 얼굴의 피부를 얇게 벗겨내진 부하들이 괴로움에 울고있다.
눈물은 그들의 벗겨진 피부에 고통일 뿐이다.
얼굴에서 천천히 흐르는 피가 찐득하게 바닥에 떨어지고, 나는  위에서
팔, 다리 하나하나 몸에 있는 관절을 거꾸로 부러뜨려가며 다시 웃는 얼굴로 묻는다.

"저항 계속 할래요?"

"미안하다... 우리 꼭 죽으면 다시 만나지!"

"대장...!"


그 말이 끝나면 나는 대장의 목을 콱 뒤로 꺾어 부러뜨렸다.
대장의 숨이 끊긴다.
.
.
.
.
"크아악!!!"


목이 뒤로 꺾였던 대장의 눈 앞으로 다시 동료들이 보인다.
이번에는 아주 작은 단도로 살점 하나하나 얇게 저며져 포를 떠지는 동료들이 보였다.
발끝부터 뼈가 보일 때까지 도려지고 있었다.

"이..이건...?"


"다음은 뭐가 좋을까... 항복하는게 제일 좋은 선택같기는 한데."

"이...이 마녀가..."

"마녀 맞아요. 무력하게 동료들을 잃어가는 기분. 마음껏 만끽하길 바랍니다.


꼬르륵...


배에서 나는 소리에 대장은 말없이 고개를 떨군다.


"배고프시구나? 마침 그럴 줄 알고 포를 준비했는데, 육포 좋아하세요?"


"미친년... 미친년....  죽어야 한다... 널 위해 준비된 지옥이 있을 것이다...
씨발... 내 동료들이..."


"배고프다면서 자꾸 체력을 빼시네.  하세요. 먹여드릴게요."


"으아악!!"


동료들의 살점을 씹으면서 대장은 피눈물을 흘렸다.
씹고싶지 않았는데 멋대로 입이 움직이고, 목은 그걸 넘긴다.
피맛이 입에 퍼지기 시작하면 대장의 눈에는 자신들의 살점을 씹어삼킨 대장을 바라보는
부하들의 싸늘하게 변한 눈빛이 보인다.

"대장... 배... 많이 고프구나..."

"그럴 수 있지... 대장이라도 살아나가..."

"아냐.. 아냐 얘들아... 이건..."

"대장, 변명할 필요 없어. 그냥... 우린 이렇게  운명이었던거야..."

"아냐, 아니라고..."


대장의 무색한 변명에도 용병들은 하나같이  눈에서 빛을 꺼뜨렸다.
출혈로 인해 부하들의 움직임이 점점 멎어갈 때마다 대장은 더 큰 허기를 느꼈다.
왜 그렇게 된 건지는 몰라도, 자신의 눈 앞에서 단검을 들고 아름답게 웃는 여자가
아직도 자신의 눈을 바라보며 묻는다.

"계속 저항할래요?"

"차라리 죽여라..."

"원하시는대로요."


대장의 다리도, 팔도 부하들이 그랬듯 천천히 도려진다.
발끝부터 뼈만 남을 때까지 피를 뚝뚝 흘리며 쓰라린 고통을 이겨내다
결국 대장은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의식이 멀어진 것도 잠시, 대장의 귀에는 또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대장!! 도와줘!!"


"대장!!"

그가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 새 자신의 손에 들린 권총은 부하를 향해 있었다.
언제 그랬냐는  부하는 다시 멀쩡하게 살아나 자신의 앞에서 정신을 차리라며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고 있었다. 몸이 묶여 움직이지 못하는 부하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부르고 있다.

"내...내가 무슨 짓을..."

타앙.

손은 멋대로 움직이고 대장은 후회할 시간조차 받지 못한다.
영문을 모르는 것도 핑계일 뿐이라는듯 머리속으로 몰랐던 정보가 흘러들어온다.


-동료를 모두 죽이면 살려드리죠.

언제부터 알았던 정보인지는 몰라도 이제 그것은 대장의 머릿속에서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대장이 손에 든 권총으로 부하를  죽이면 부하의 이마에는 바람구멍이 날 뿐이다.
그대로 옆으로 고꾸라진 부하를 바라보며 그는 스스로 뭘 한건지 감도 오지 않았다.
몇 번이나 후회했고 소리치고 싶었다. 차라리 도망치고 싶어도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찰나의 순간 다시 귓가로 들리는 목소리.

"대장... 왜 동료를 죽인거야...?"

"정말 우리를 죽이면 살려주겠다는 말 때문이야..?"


"아냐...나는 그냥..."


"대장은 미쳤어..."


 말에 대장은 버티지 못하고 부하들을 모두 쏴버렸다.
그리고 자신 스스로도 총으로 자결한다.
머리에 둔탁한 통증이 느껴짐과 동시에 정신이 멀어진다.


"아직도 그렇게 고통을 받고 싶으시다면야 계속 그렇게 하셔도 돼요."


머릿속에 여자의 목소리는 멈추지 않고 들린다.
그건 나의 목소리다.
순수한 웃음소리가 두려워진다. 동료들이 두려워지고 자신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
고통에 몸부림치다 눈을 뜨면 다시 대장은 바닥에 쓰러져있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용서해줘 대장... 대장을 범하면 우리는 살려준다고 하잖아..."

"우리는 잘못 없는거지...? 그치 대장...?"

부하들이 기이한 표정을 하며 다가오고 있다.
상황이 빠르게 이해되기 사작한다.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 옷가지 하나 없이 방치되어있다.
그건 부하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소리야 정신차려...! 너희 아내가 있잖아!
그론! 너 다음 달에 결혼할 여자친구가 있다고 했잖아!"

"여자친구...? 걔는 모를거야... 이번 한번이니까...
결혼은 해야 하잖아? 대장 하나만 희생하면 모두 살려준다잖아..."

"윈터! 너도 아내가 있잖아! 너희  말이야! 아빠로서 부끄럽지 않아?!"


"딸... 딸한테 못해준게 너무 많아 대장...  살아서 돌아가야 해..."

"씨발... 씨발.... 씨바아아아알!!!"


그 절규를 끝으로 대장은 또 정신을 잃는다.
그리고 그 앞이 화사하게 밝아진다. 어딘가 비릿한 철 냄새.
코끝에서 찐득함이 느껴진다.

"허억...허억... 허억...."

"정신이 들어요?"

내가 그의 앞에서 미소지으면 대장은 코피를 줄줄 흘리며 눈물콧물로 범벅이 되어 말했다.

"살려...살려줘... 너희편에 붙을게..."

"그래요. 일어나세요."

나는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말했다.

"혹시 몰라서 총알은 다 빼뒀어요."


그는 권총을 만지작거리면서 약실을 열어본다.
총알은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리볼버가 빙그르르 열린다.
주변을 돌아보면 자신과 같이 허덕이는 동료들이 반쯤 정신을 잃고 허우적대며
발버둥치고 있었다.

"이들은..."


"당신처럼 환각을 보는 겁니다. 이런걸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아요.
환각의 내용도 굳이 지정하지 않는 편이고요. 좀, 그런건 취향에 맞지 않는달까."


"그런가... 하긴, 이렇게 작은 소녀가 그런걸 생각했을리가 없나..."

"뭐 일단 적당히 깨워볼까요?"


그렇게 말하고 나는 그들을 깨워 일렬로 묶은 후에 그들을 데리고 대장간으로 돌아갔다.
대장간에서 그들은 장로와 1대1로 면담을 하게 되었으나 워낙에 말단이며
애초에 용병집단이 돈벌이 수단으로 잠깐 들어갔던 지라 내부 사정을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네버브레이크가 그들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해 땜장이파 기술직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고
그들은 모두 땜장이파에 제자로 들어갔다.
서로 동질감을 느꼈느니 어쨌느니 했는데 내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다만 르미에르가 나를 존경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헤세리티는 나를 더 싫어하게 되었다.
그렇게 대장간에서 나의 별명은 부정한 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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