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허울뿐인 신을 위한 기도 (94/303)



〈 94화 〉허울뿐인 신을 위한 기도

[어떻게 됐어?]


체헤게에게 전음을 보냈다.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아, 여긴 상당히 재밌는 일이 되어버렸다.]


[재밌는 일이라고?]


[난쟁이들 수십명에 인간 수십명이 하나같이 대형 천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다.
어린이들 보육환경 외에서는 이런 장면을 본 일이 없는데.
알아낸 바로 말하면 고서에 써 있었다는군. 마법서에 적혀있던걸 확인한 모양이다.
지정 구역의 시간대를 과거로 돌리는 주문이라는데, 잘 모르겠다.
저런 대형 마법이 공격형 주문이 아니라니.  상상하는지 모르겠군.]

[아냐, 그건 대형 공격 주문이야... 테팔레스 화산을 지금 분화시키려면
땅에 뚫어버린 공동이며 분화를 대비해 만들어둔 방책을 돌파해야해.
그렇지만 화산을 대상으로 과거 화산이 분화하던 순간으로
시간을 고정해서 돌린다면, 만들어놓은게 전부 무의미해져.]

[뭐...? 그런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터트리는 이유가 있나?
다른 마법이라면 더 간단할텐데.]


[시간을 돌려버리면 수틀려도 반드시 화산이 터지고 난 이후에 대처가 시작되지.
에너지를 이용해 화산을 고의적으로 폭발시키거나 대비책을 무력화하는 것은
하나라도 실패하면 위력이 크게 줄어버리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화산이 폭발하고 나면
과거의 화력을 가지고 터지는 것과, 지금 겨우 보수하고 메워서 터지는 것과는 위력의 차이도 있겠지.
문제는 그런 고위력 마법이라면 분명 제물이 많이 필요할텐데...
마력량도 이교도 한둘로는 턱없이 모자랄ㄱ... 기술자가 위험해!]

[기술자도 문제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  있다.]


[뭐? 또 있다고?]


[그래, 이 놈들 주기적으로 분노의 사막으로 사람을 보낸다.
그리고 누군가를 죽이고 돌아온다는 것 같더군. 방금 전에도 또 나갔다.
이번에는 상당히 다수가 나가던데, 혹시 대장간에서 일어난 일 중에 아는  없나?]

[사막... 실크로드...? 아..!]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체헤게, 혹시 대량의 악기가 그쪽으로 가고 있어?]


[악기? 악기라면 캐럴본이라는 악기를 얼마 전에 C가 대량으로 기부했다.
분명 교국에 있는 성도의 오케스트라로 보냈을거다.]


[악기를 직접 사용하는건 아니라고 했지?]

[그래.]


큰일이다. 그렇다는건 악기를 굳이 대량으로 주문했던 건...
대장간에 황동을 없애기 위해서인가...
애초에 오케스트라라고만 말해서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 실책이었다.
나는 즉시 장로의 거점에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오... 무령께서 어쩐 일이시오? 그렇게 숨을 몰아쉬고..."


"당장 인원을 소집해요! 사막으로 보낸 러너들이 위험해!"


"사막으로 보냈다...? 아, 유레크로스로 보낸 니더들 말이군.
성연이 함께 있으니 괜찮을 거요. 강도 정도에게 질 분은 아니시오."

헤세리티가 그런 말을 하면서 호언장담 하지만,
그 앞을 장로가 손으로 슬쩍 막아보였다.


"이유를 알려주실 수 있으시겠소?"

"강도가 아니라 이교도들이 러너를 죽이고 있었던 겁니다.
빨리 구해오지 않으면 위험해요.
단순히 강도 정도로 치부할 정도의 인원이 아냐!"

내 말에 도토크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서서 말했다.


"먼저 출발해서 아이들을 구해주실 수 있으시오?
금방 병력을 모집해서 뒤따라 보내겠소."


"알겠어요... 하지만, 빨리 와야 할 거에요."

나는 그렇게 대답하고 방에서 물러났다.
르미에르가 곧장 소식을 듣고 나에게 찾아왔고,
회로파에서 준비해준 고속 광차를 타고 사막으로 가자고 제안했다.

"고속 광차? 이런게 있었으면 왜 평소에는 안쓴거죠?"

"전력을 상당히 많이 잡아먹소. 또한, 영기술이 들어가 있었으니까 말이오.
기술자로서는 조금 창피한 일이라고 생각하는게지."


"레일은 어디있어요? 광차라면서?"

"이건 레일 같은건 필요 없소. 말이 광차지 최첨단 운송수단이니까."

그렇게 말을 마침과 동시에 차가 달리기 시작했다.


"이건 그냥 자동차잖아!!"


"고속 광차요..."

"그래, 명칭은 어찌 부르던 됐어요..."


우리는 한참을 달려 분노의 사막에 도착했다. 광차라더니 한동안 잘 달린다 싶었더니
사막에서는 이동할 수 없다고 한다. 오프로드를 대비하지 않아서 모래라도 섞여들어가면
비싼 값을 못하게 된다고 하기에 결국 내려서 이동했다.

사막의 초입이라고 들었지만 정말 사막에 들어서자마자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는 인원이 보였다.
르미에르가 먼저 달려나가려고 하는 것을 제지했다.

"르미에르, 당신은 여기 있는게 나아 보여요.
 혼자 다녀올게요. 전력이 되지 않는 사람은 짐이 될겁니다."

"하지만,  기술자들을 구하려면..."

"구할 사람이  명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아직 우리중에 배신자가  숨어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르는데
섣불리 수장이라는 사람이 저 한복판에 발을 들이는건 성급한 일이에요.
알잖아요?"


"그럼, 난 뭘 해야 하겠소?"


"여기서 기다리셔도 되긴 한데, 나머지 인원은 제가 데려갈테니
일단 대장간으로 돌아가세요.
지금 장로님은 무방비한 상황입니다. 대장간에서 장로님이 지니는 의의를 본다면
지금 장로님 옆에는  명이라도 수장이 더 있어야 할 겁니다."


"어떻게 돌아올 생각이시오?"


"방법은  있어요."

"알겠소, 고맙군. 무사히 돌아오시기 바라오.
혹시 모르니 내 돌아가는 대로 광차를 이쪽으로 보내지."


그가 고속 광차를 타고 돌아가는 걸 보면서 나도 사막의 흙먼지 쪽으로 발을 옮겼다.


"멈춰!!"

내가 전장에 뛰어들면 그제서야 이쪽을 돌아보는 인원이 있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채로 싸우고 있는 성연과 이미 다리 한쪽이 잘려나간 남자,
그리고 전신에 무수한 칼밥을 맞고 숨만 허덕이며 모래를 피로 적시는 여자, 총 세 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어딘지 모르게 파격적인 노출의 사제복을 입은 남자들이 그 옆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도 옷의로서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제복은 붉은 색과 녹색이 조합된 옷이었는데,
상의 하의 구분 없는 로브인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다리의 활동성은 보장되어 있었고,
허벅지 부근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았다.
그 외에도, 옆구리의 잔복근, 어깨와 팔뚝, 그리고 등을  파이게 드러내놓았다.
그 곳으로 성연이 저항한 흔적으로 보이는 멍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땅에 머리를 쳐박고 쓰러져있었다.
그러나 워낙에 인원의 차이가 컸다.


"무령님!"

성연이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황동을 구하겠다고 인원을 모아 유레크로스로 파견한게 적어도 몇 시간 전이다.
내가  곳까지 오는데 걸린 시간을 생각해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으며,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보아 못해도 5시간 이상은 여기에서 버티면서 싸운 것 같다.
나는 그 가운데로 뛰어들어 이들을 붙들고 바로 주변의 사제들을 공격했다.
사막이라서 주변에 신경써야 할 건물도 없었기에 바로 주변의 모래를 일으켜
우리를 중심으로하는 모래폭풍을 만들어냈다. 풍압이 세서 함부로 발을 들이려던 사제들이
소리치며 모래바람에 찢겨나간 몸을 끌어안고 뒤로 물러났다.
그 덕분에 우리 역시 조금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수고했어. 일단 돌아가자."

"혼자라면 빠져나갈 수 있겠습니다만, 지킬 사람이 있습니다."

"저기 쓰러진 사람들이라면 그렇다고 치는데, 분명 파견된 러너가 두 명이고 니더가 하나라고 했으니까
한 명이 부족한데?러너 한 명은 어디로 갔어?"

"끌려갔습니다. 붙잡혀가는 바람에 구할 수가 없었어요."

"끌려갔다고...?"

"네."


"그럴리가 없는데...? 대장간에서 파견한 러너는 정보 수집업무를 주로 맡는다고 했고,
그 외에는 기동성 외에 담당 업무같은건 없어. 그런데 굳이 니더를 놔두고 러너를 데려간다고?
대장간에 대해서 이미 어느정도 파악이 되어있지 않으면 이 길목에서 너희를 습격할 수 없어.
굳이 러너를 데려가서 대장간의 정보를 더 파악할 필요도 없고.
정보가 필요한건 상대가 아니라 우리니까."

"그럼 대체 왜...?"

"애초에 내통하고 있었다고 보는게 맞겠지. 내부에서 결탁했거나, 아니면 저쪽에서 심은 거지.
어쩌면 대장간 내부에 이런 사람들이 더 있을 수도 있는거고."

"그런... 어떻게 나가야 하죠?"

"나가는건 마법진으로 전이해야 할 것 같아.   있어?"


"네, 10m 정도라면 가능합니다."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고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차분하게 그리는게 더 안정성은 높았지만 사방에 내가 일으킨 바람때문에
모래가 이리저리 흩날리는 탓에 그리기가 어려웠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해서 고요한  아니었으니까.
태풍의 눈이  아무리 고요하다고해도 피해가 없을 수는 없는 거니까.
결국 하다못해 짜증이 나서 물었다.

"바람을 걷어내면 저것들이랑 싸울 수 있어?"


"어려워요. 하나를 쓰러뜨리면 바로 원군이 나타납니다.
처리한 동료를 데리고 사라지면 그 인원을 바로 다른 인원이 충당해요.
막아내기만도 버거운데, 지금은 부상자도 있어서..."


"어렵겠네. 그러면 내가 막아볼테니까 너는 최대한 대장간으로 도망쳐."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지금 데리고 가면  수 있을거야. 그런데 시간이 애매하다.
이 여자는 어려울거고, 남자는 어떻게든  것 같은데.  다 가능성은 30%도 안되는건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이 사람들을 죽게 둘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먼저 가. 금방 뒤따라 갈게. 나도 이 모래폭풍을 언제까지 유지할  있을지 모르겠어.
르미에르씨가 이쪽으로 광차를 보낸다고 하셨으니까 그걸 타면 될거야.
먼저 가면 대장간 내부에 변절자가 있다고 반드시 말해야 할거고."

"알겠어요. 그럼 일단 저희는 먼저 가겠습니다."

"그래, 모래폭풍을 유지할 수 있을 때 어서 도망가."

"알겠습니다. 대장간에서 뵈어요!"


그렇게 말하고 마카는 쓰러진  사람을 들쳐업었다.
아주 잠깐 내가 모래폭풍을 물리고 나면 사제들이 준비했다는 듯 총을 들이밀고 있었다.
마카가 저 멀리 사라지는걸 확인하고 나도 자세를 잡았다.


"너희 어디서 오는거야?"

"...."


대답은 없었다.
저들의 입장에서는 그런 말을 하고 있는 내가
아무리 봐도 나이 어린 여자니까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내가 가방을 뒤적여 미리 준비한 플라스크를 들면
이미 상당히 다친 사제 하나가 말했다.


"우리는 너와 싸우고 싶지 않다."

"그게 무슨 소리지?"

"우리는 대장간과 유레크로스의 성교회를 무너뜨릴 생각이다.
이미 다 파악하고 있는 것 같으니 대화를 요구한다.
대장간과 유레크로스는 너에게 그렇게  가치가 아닐 것이다.
순순히 로봇을 고쳐 돌아가라. 우리는 그 정도는 기다려  용의가 있다."

"너는  위치가 있는 쪽인가봐?"


"위치가 있는 사제가 아니다. 그저 C님께서 너를 발견하면 그렇게 말하라고 하셨을 뿐이다.
지금 물러난다면 우리의 의견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겠다.
그러나 거절한다면 지금 나를 죽여라."


"죽이라고? 널? 제정신이야?"

"나의 목숨은 아까운 것이 아니다. 분명 그분께서 나를 다시 구원해주실것이다.
다르말록께서는 영원한 신이시고 불사의 존재이시다.  아무리 약해진다고 하더라도
 빛은 꺼지지 않을 것이고 신자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기에 모였고
그렇기에 이곳에 서 있다."

"이래서 신앙이 무섭다니까. 거절은 하겠지만 너를 죽이지는 않을거야.
싸울 생각이 없다면 돌아가겠어."


"그렇게 나올거라고 알고 있었다.
그분이 말씀하신 데에서 하나도 빗나가지 않는군."


"그분같은거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우리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있으면 그 사제들은 일렬로 차례대로 서서 나를 바라본다.
조금은 섬뜩한 느낌도 들었다. 그들이 그렇게 가만히 서있을 때였나.
그들이 허리춤에  구슬이 일제히 빛났다.
그들은 그 유리구슬을 집어들고 경청하는 자세를 보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C께서 너를 만나고 싶어하신다.
생각이 있다면 오늘  11시, 대장간 서남단의 바닷가로 와라.
그곳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다."


"얼씨구?"


그렇게 말하고는 방금 전까지 나와 대화하던 사제는 총구를 자신의 머리에 두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소리가 나고 그가 철퍼덕 모래 위로 쓰러졌다.
그러자 모래속으로 천천히 몸이 가라앉아갔다.
사막의 구조상 자연스럽게 몸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가 저 자를 모래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었는데, 섣불리 다가갈수는 없었다.


그를 시작으로 뒤에 서 있던 사제들이 일제히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쐈고,
하나씩 모래 위로 스러져 사라졌다.

"미친놈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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