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5화 〉그날 밤은 조용했네 (95/303)



〈 95화 〉그날 밤은 조용했네

대장간으로 돌아온 나는 장로와 수장이 보는 앞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해야 했다.
그들은 나의 말을 대체적으로 신뢰해주었다.
물론 내가 정확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거기다 대고 적의 수장이 나를 알더라고 이야기나 하고 왔다고 해서 내가 득을 볼게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회의는 형식적으로 진행되었고 나는 숙소로 돌아와 네네미가 준비해준 저녁식사를 먹었다.

"원래 이렇게 저녁을 준비해줘?"

"아뇨, 그렇지는 않은데, 무령님은 여러모로 대장간을 위해서 노력해 주시니까요.
제가  수 있는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주세요."


"그렇구나."

"마침 오늘부터는 시장에서도 무료로 장을 볼  있었거든요."


"그랬지. 근데 그러면  기회를 틈타서 잔뜩 물건을 사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


"애초에 매물 자체가 넉넉하지 못해서 장부로 관리하거든요.
받아가고자 하는 물건과 수량을 적어서 제출하면 그걸 보고 맞는 물량을 내주는거에요.
그렇게라도 안하면 물량 관리가 안되니까요."


"나름 체계적이네."

"그럼요. 장로님이 준비하신거니까요.
그 외에도 일일 획득 가능한 물품의 총량도 정해져있어서 무턱대고 적으면
나중에는 승인이 안나기도 해요."

"공산품을 나누는데 그게 제일 이상적이기는 하지."

"그 이상을 대장간에서는 착실히 이행할  있어요.
장기적인 건 아니지만요."


"그래서 내 저녁상에 생선조림이 올라온 거구나."

"네, 생선조림은 자신 있거든요.
이 앞바다에서 잡히는 청광어로 만들었어요."


"청광어?"

"네. 크기는 20~25cm정도 되는 생선인데 등푸른 생선이라 신선도가 중요해요.
배부분에서는 빛을 내는데, 그게 밤에 보면 꼭 물결이 어른거리는 것 같다고 하더라구요.
뼈가 굵어서 발라내기 어렵지 않고, 맛이 담백해서 조리가 쉬워요.
그리고 무엇보다 잘 잡히는 생선이라서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요.
그걸 감자, 무와 당근을 썰어서 같이 조렸어요.
돼지 지방을 살짝 녹여서 그걸로 야채를 볶다가 그 위로 살짝 구운 청광어를 놓고
물을 부어서 자작하게 졸인거에요. 양념으로는 마살라를 기반으로 산초가루 조금에 세이지가루를 사용했어요.
입맛에 맞으셨으면 좋겠네요."


"되게 맛있어 보이는데? 고마워."


나는 살짝 청광어의 살을 발라냈다.
 익어 부드럽게 떨어지는 살에는 간이 잘 배어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올랐고,
살짝 매콤한 향과 세이지의 향긋한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고소한 향을 느끼면서 입 안으로 살을 넣으면 부드러운 살이 입안에서 풀어지듯 녹아버렸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충분히 담백한 맛도 좋았지만 기름기를 머금은 생선살이
통통하게 오른 사이로 느껴지는 채소의 맛과, 마살라의 이국적인 맛이 느껴졌다.
거짓말로라도 맛없다고 할 수 없을 맛이었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게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루는 느낌이 좋았다.

"밥도 있어요. 천천히 드세요."


그렇게 말하며 네네미는 따뜻한 밥을 내밀었다.
금방 퍼서 그런지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나는 그 위로 곧장 생선조림의 자박한 국물을 떠서 섞었다.
밥알이 풀어지며 사이사이로 국물이 스며들면
나는 그걸 큼직하게 떠서 그 위에 무를 올렸다.
무는 이미 물크러질 정도로 익어버렸고 마살라로 인해서 색이 노랗게 변했다.
국물을 한가득 먹은 무는 투명해져선 노란 색으로 빛났고,
입으로 넣으면 기분좋게 부서졌다.

씹을 때마다 따뜻한 국물이 무에서 주르륵 흐르는 바람에 뜨거워서 혼이 났지만
감안하고서도 너무나 맛있었다. 밥은 금방 사라졌다. 먹을 필요도 없는데 이렇게 집착해보기는 오랜만이다.
감자와 무, 생선을 열심히 발라먹고 있자 네네미가 나를 보며 물었다.

"혹시 당근은 맛이 없나요...?"


그냥 내가 편식을 한다고 말해주려고 했는데, 눈빛이 너무 애절해보여서
눈  감고 당근을 포크로 찍었다.
입으로 가져가면 당금도 특유의 맛이 살짝 어우러져 국물이 가득 배어있었고,
오히려 너무 크면 먹기 불편할까봐 잘 잘라서 따로 간을 했다는게 느껴졌다.
오히려 달짝지근한 맛이 먼저 혀에 와 닿았고, 그 뒤로 볶인 당근에서 나오는 맛이 섞였다.
그러면서 국물이 그 뒤로 바로 치고 들어와서 맛에 여유가 없다고 느껴졌다.
당근일 뿐이었지만 졸아들때까지 익은 국물이 고스란히 들어있어서인지
맛이 상당히 좋았다.


"맛있네."

"다행이네요! 보람이 있어요!"

그렇게 말하며 네네미는 활짝 웃어보였다.
덕분에 나도 당근을 먹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국물요리에 생선도 있고, 밥을 다 먹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빈 식탁을 치우면서 네네미가 말했다.


"그럼 편히 쉬세요!"


나는 방으로 돌아왔다.
체헤게와 다시 몇 가지 이야기를 했다.
보아하니 C도 간부급에 위치해있기는 하지만 고위 간부는 아니라는 점과,
그 위로 간부가 따로  구성되어있다는 것.
교황은 차치해 놓더라도 추기경을 시작으로 대주교, 주교가 있었고,
그 밑으로 사도, 전도사, 교도가 있었다. 이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상당히 체계적이었으며,
C는 주교라고 했다.

이 근방에서 주교는 많아도 제일 열성적인건 C라고 하는  같았다.
그리고 또한 이대로 간다고 하면 마법진은 내일 정오쯤에는 완성될 것 같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전했다.
시간이 없었다. 아직 이룬게 없는데.
체헤게에게 내가  수 있는 말이라고는 몸이 수리가 끝났다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듣고도 지금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기뻐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 여자가 편지를 쓰는걸 봤다.
C는 교국의 오케스트라에 편지를 써서 기부에 대한 보답으로 연주회를 준비중이더군.
연주화는 두 달  유레크로스에서 열린다고 한다.
유레크로스에서 연다고 하니 안좋은 느낌이 들더군.]

[확실히 그렇네. 오늘 오후 11시에 C와 만나기로 했어.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 지는 모르겠는데, 곧 합류할  있을  같아.]


[그런가.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 이틀이다. 이틀 내로, 무언가 터진다.]


[기술자들은 무사해?]

[아직은 그렇다. 아직은... 그런데 하나 둘 상태가 이상해지긴 했더군.
이런 곳에서 갇혀있다보니 분열하는 자들이 나타났다.]


[분열?]

[대장간을 배반하고 교리를 따르기로 한 자들이 생겨났다.
물론 정신적으로 분열해버린 자도 있지만.
이들이 교도가  기술자들에게는 인간적인 대우를 하기 시작했다.
이미 노예로 팔려 신분이 격하된 기술자들이잖나.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지.
애초에 대장간에서는 손에 쥐지 못하던 돈을 억지로 떠다 입에 물려주니
생각보다 근질근질한게 목구멍이 허전했던 모양이지. 삼키는건 어렵지 않았나보군.
덕분에 이들끼리는 지금 서로 이단의 계급에 따라 분열해 갈등하고 있다.]

[미리타엔이랑 별반 다를게 없네.]


[다르다. 이들이 살아돌아가게 된다면 대장간에 급격히 퍼져버리겠지.]

[그럴 일은 없을걸. 시간을 되돌리는 주문진을 만들었다며?
그거 인간 몇십명 목숨값으로는 어림도 없어.
턱없이 마력량이 부족하다고. 기술자가 제일 먼저 갈려나가겠지.]

[그런가. 대장간에 황동이 떨어졌다는 건 어떻게 되었지?]

[아직 뭘 노리는지 잘 모르겠어. 대비책을 마련하지는 못한 상황이고,
그럴 시간도 부족해.]


[큰일이군.]

[일단 하던대로 계속 감시해줘.]

[그렇게 하겠다.]

나는 방에서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방에서 시간에 맞춰 대장간 서남부의 해변으로 나갔다.
그곳에는 거울을 든 C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구면이죠?"

"그러게. 상당히 스타일이 변했네?
나랑 만났을 때도 안경 쓰지 그랬어?"

"흐음... 확실히 당신은  강해졌네요.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제 정체를 알아채고 말을 놓다니 말이에요."


"뭘 그런걸로 그래. 그나저나 보자고 한 이유가 뭐지?"


내가 보채면 그녀는 조용히 안경을 벗고 그걸 접어 옷 앞주머니에 넣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인간은 세 부류가 있어요.
우선, 가치가 있는 사람이죠.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함부로 대할 수 없어 까다롭지만,
어려운 사람은 아니에요. 마치 콜린에서의 당신처럼요.
둘째로는 자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에요. 스스로 가치를 알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어렵죠.
협상에 순순히 응하지 않거든요.
그래도 마지막보다는 낫다고 할 수 있겠네요.
마지막 부류는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 사람이에요.
섣불리 거래를 신청할 수도 없는 사람들이죠.
이제 단 하나의 표적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아주 영악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고요.
그래, 지금의 당신처럼요."

"거기까지 말했으면 본론을 꺼내. 시덥잖은 이야기 들어줄 시간 없어."

"우리쪽으로 붙지 않겠어요?"

"거절한다면?"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리 없잖아요.
지금 당신의 가치는 너무나 영롱하게 빛나고 있어요.
스스로 증명해낸 가치일수록 아름답죠.
저는 신에게 그 가치를 의탁했습니다.
그래서 홀로 빛날 수 없어 손을 더럽히는거고요."


"그런 더러운 손을 내밀겠다는거야? 지금 나한테?
손을 잡자고 말하려면 적어도  전에  소독 정도는 하고 와야지."

"당신이 대장간에 오기 전에 일을 끝마쳤어야 했는데.
말해주세요. 대체 어떻게 이쪽 사정을 알고 행동하고 있는거죠?
누가 당신에게 정보를 흘리고 있나요 마녀님?"


"뭐, 그쪽 신보다 능력있는 양반이?"

"그렇게 말하면 안됩니다!!"


그녀가 버럭 소리치며 내게 달려들었다.
육체적으로는 내게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적당히 받아넘기려고 했는데
그녀는 내게 품에 숨겼던 권총을 발포했다.
탕 소리가 나면서 팔이 쓰라렸다.
스쳤다고 생각했는데 팔의 살점이 좀 찢겼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아...하아... 당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우리 실책입니다.
알잖아요? 제가 직접 여기로 나왔다는건 많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거에요.
그만큼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고요.
전에 말했잖아요? 붉은 사파이어와 루비의 이야기.
그건 당신과 나의 이야기였습니다.
둘은 너무나 비슷한 존재지만, 본질적으로 달라요.
시대에 버림받았고,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고, 누구도 믿지 않아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없어요.
하지만 당신은 아니잖아요?  이해하잖아? 내게 와요.  받아줄  있잖아..."

"네 멋대로 동질감 느끼지 말아줘. 너는 그 잘난 신에게 의탁했을때,
나는 그 신을 저주하고 도망쳤어. 현실에 순응하느니 어쩌느니 핑계를 대고
결국에 굴복해버린 너랑은 다르다고. 넌 그렇게 너의 행복을 찾아.
 불행할 권리가 있으니까."

"하아.. 당신은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넌 나랑 같이 불행해야 하는데.
왜 너만 행복해보이는건데!! 그러면서 왜 내게 행복하다고 말하는건데?
너는 왜 아직도 불행하다고 말하는거냐고!!"

"난 행복해. 불행속에서  행복을 찾았고 아주 이기적으로 그걸 관철할거야.
다른 사람의 인생을 끌어들여서라도 나는 자력으로 행복해지려고 노력했고.
아주 작은 자유를 찾을거야. 안식과 자유를 양립하는건 어려운 일이니까 타협점을 찾을거라고.
그리고 내 작은 안식이었던 카페를 망가뜨린 너에게 보란듯이 행복한 나를 보여줄게."


"아... 불행한건  뿐인가요.  가치는 신에게 맡겼는데,
왜 신을 부정한 당신이 나보다 빛나는거죠?"

"신한테 가치를 맡기는 병신이 어디있어? 은행이냐? 돈처럼 불려주게."


"불려줄거에요!  가치는 분명히 올랐다고요!"


"저런, 인플레이션이라도 왔나보다 얘. 네 가치가 배춧값이라지 뭐야.
그러게 들고 있었으면 증명이라도 했잖아?"


"하아... 당신은 이길수가 없네요. 12시가 지났습니다.
일단 저는 오늘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을게요.
내일...? 도 쉴거에요.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아서 쉬고 싶으니까요.
아마 당신은 날 죽이지 않을 테니까요.
2일간의 유예 후에 저는 예정대로 진행할겁니다."

"테팔레스 화산을 분화시키려는거?"

"그것까지도 알고 있었나요?
맞아요. 그걸 분화시킬거에요.
폭발한 용암이 대장간을 뒤덮겠죠.
하늘은 분명히 잿빛으로 덮일거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그건 우리의 짓이라고 말할겁니다.
그런 다르말록의 영향력은  커질거에요.
공포, 경외, 존경, 사랑... 그 모든걸 받으시고 다르말록은 보답하실겁니다.
그래요, 더 궁금한건 없나요?"

"황동을 없애서 뭘  생각이지?"


"어머나~ 정말 거절하는 법이 없으시네요.
돌려 말하지도 않으시고요.
이게 가치를 증명한 사람이군요. 멋져요.
까드득... 그래서 당신은 더 나락으로 떨어졌어야 하는데...
왜 당신만 미소를 쟁취한건지 이해가 가질 않지만요...
음...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으로써는 비밀이에요. 말해드릴 수가 없죠."


"걱정마, 그런거 없이도 막아볼게."

"한번... 그래보시죠....  오만하고 작은 팔이 우릴 막을  있을지 모르겠지만요...
순순히 대장간을 떠나라고 말하는데도 기어이 우리와 적대하겠다면요...
그 개같은 낯짝까지도 피범벅으로 으깨질 날을 기대할수밖에 없잖아요.
후우... 이것도 이미 아시나요? 위상거울이라는 건데요."

"공간이동장치였나?"


"네, 맞아요. 정확히는 두 개가  세트죠.
다른 거울에 비치는 상과 공간을 이어주는 아티팩트입니다.
유리에 약을 칠한 거울이 아니에요.
보이시나요? 거울에 비치는건 얼굴이 아니에요. 그 너머의 공간이지.
이래서는 거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지만요."


"깨지지도 않나?"


"물체에 접촉하는 순간 저  너머로 넘겨버리는데 어떻게 깨시려고요?
그래서 말씀드리는거에요. 포기하라고."


"그래, 거절할게. 오늘 대화는 이정도면 충분하지?"

"네. 혹시 작별 선물이 있는데 받으시겠어요?"

"응?"

그녀는 거울 너머로 발을 걸치더니 거울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거울의 상에서 빠져나온  손만이 거울을 붙잡고 있었고,
.
.
.
 너머로 수많은 교도들이 총으로 날 조준하고 있었다.


"자, 빵야!"

 말과 동시에 수많은 총탄세례가 쏟아졌고, 덕분에 만신창이가 되어
비틀거리며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예상치 못한 광경이었으니까.

"늙지않는다고 해도 총탄에는 장사 없군요? 다음생에서는 편을  서길 바래요."

무슨 의미인지 감이 잘 오지않았는데 금방 알 수 있었다.
상처의 재생이 더디다. 몸에 박힌 총탄 탓인  같은데,
아무래도 십자가와 비슷한 성분 같다.
나는 거울이 스스로를 상에 가두어 삼키는걸 보면서 뒤로 쓰러졌다.
온 몸이 쓰라리다. 아파 죽겠다고 말은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팔다리부터 가슴, 배. 아주 멀쩡한 곳이 하나도 없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다고 생각해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사방에 피가 흩뿌려졌다. 피는 모래사장에 널려 치는 파도에 따라 쓸려갔다.
어차피 어두워서 잘 보이지도 않았지만 비릿한 맛은 입에서 맴돌았다.
내가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 역시 당연한 수순이었다.
일어난 것은 약 4시간이 지나서였다.

몸에서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하나하나 총알을 빼내면
그래도 움직일 정도는 되었다.
나머지는 기술자들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상당히 실혈량이 많아서 걷는것도 어려웠다.
똑바로 걷는다고 걸었지만 모래밭에 찍힌 발자국은 기울어져 비틀린다.
취객도 나보다는 반듯하게 걷지 않을까?

"어으 마력회로 쑤셔어...."

그렇게 비틀대며 걷고 걷다가 내가 쓰러진 곳은 대장간 초입이었다.
누군가는 날 발견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던  같다.
그리고 귓가에 상당히 나이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무령!! 이게 무슨 일이오!! 정신차리시게!!"

고개를 빼꼼 들면 그가 내 얼굴을 보고 놀라서 말했다.

"아직 숨은 붙어있구려! 빨리 집으로 가세나!"

"아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 임마 숨이 붙어있으면 병원으로 보내달라고...
내 말은 전해지지 않았고 도토크가  부축하며 피범벅이 된 나를 끌고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병원이 열 시간도 아니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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