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9화 〉나비효과 (99/303)



〈 99화 〉나비효과

C는 충족감을 느꼈다.
그건 체헤게를 받아들이고 나서 깨달은 것이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신이 아니라는 것을.
신이라고 오해해 거두어들인 것이었는데, 알고보니 다른 남자였다.
자신의 태반으로 거두어들인 존재가 에리아의 로봇속에 갇혀있던 존재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 없었다. 오히려 기뻤다.
에리아가 숨겼던 비밀을 자신이 탈취한 것이기에.
에리아의 행복이 어쩌면 이 남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나니
C는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그 마녀를 행복하게 만든 남자를 빼앗는 것이 신보다 가까운 해결책이지 않을까.
이미 자신은 이 남자를 얻기 위해서 처녀를 바쳤다.
비록 자신의 손으로 십자가를 빌려 찢어버렸다지만
그 책임을 물으리라 생각하고 있기도 했다.
어차피 이미 주술은 이뤄졌고 존재에 대한 모든 주박을 해주하고
그 존재를 품었다. 체헤게가 에리아와 나누었던 모든 정보는 고스란히 C에게 흘러갔다.

"당신도 버려졌던 거였어..."

-나는...대체...

"우리, 행복해질  있을거에요. 내가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게요."

-내 행복은 에리아의 곁에 있는 거였는데...

"거짓말. 난 알  있어요. 그 생각, 감정까지 모두 다 내게 흘러들어오니까.
그저 고통받았을 뿐이었어. 이제 알았네요. 우린 그저 의지할 곳이 필요한 인간들이었어.
기댈 곳이 없었던 것 뿐이었고."

-난 돌아가야 한다.

"스스로 느끼고 잇잖아요? 이미 마녀는 당신을 버렸다는걸.
인정해요. 우리 둘은 루비였던거야.
애초에 아무리 색이 같아보여도 사파이어와는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어요."

-너는 뭐가 다르지? 결국 너도  사람이다.  죽은 존재다.
나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젠 아니에요."

C는 그렇게 말하며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같이 있을테니까."

-같이...있는다라...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군."

체헤게는 조용히 의식을 내려놓았다.
하나  시야가 어두워진다.
암전된 시야 사이로는 어둠이 드리웠지만 그 이상으로 깊은 무언가를 느꼈다.
슬픔, 그리고 기쁨, 아주 오래 전의 자신을 보는 것 같은 집착.
무언가를 쫒아 자신을 증명하려고 손을 더럽히고 마침내 우상을 들이던 모습.
그건 자신이었다.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에리아가 하나  벗겨져간다.
죽지도 않았고 언제나 고고하며 순결했다.
그리고 자신을 이해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다른 차이를 느꼈다.
눈에 씌인 콩깍지는 그렇게 벗겨져갔다.
제국의 무령으로 있을 때 에리아는 행복해보였다.
자신이 로봇이라는 사실에 자격지심 또한 느꼈었다.
플로라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때도 어렴풋이 느꼈다.
결국 에리아와 함꼐 하는 것은 자신이라고 여겼던 시간들 속에서
자신을 좀먹어가던 소외감을 마주했을때
체헤게는 밑바닥 어딘가에서 떠올려냈다.

왜 에리아에게 집착했을까.
자신의 존재를 유일하게 마주하던 여자였기에.
그래서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여자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있었다.
완전무결하지도 않았고 상처를 받고 아파하며 실패하기도 하고
결국 집착에 눈이 멀었던 사람이다.

'사람이다.'

[완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완전한 [사람]이었다.
C의 오랜 기억이 체헤게에게도 흘러들어왔다.

미리타엔 제국의 고아원에서 태어난 한 어린 소녀는 유난히 말수가 적었다.
어른들은 처음에 조용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예뻐했다.
그러나 곧 오래 지나지 않아 불길하다며 그녀는 내쳐지고 말았다.
고아원에서 그녀는 언제나 혼자였다.
누구도 그녀와 엮이려고 하지 않았다.

이름없는 소녀는 7살이 되어 한 젊은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부부는 작은 골동품점을 하던 신혼부부였다.
아내는 오랜 기간 불임으로 인해 지쳐있었고 남편 역시 그녀를 더는 힘들게  수 없었다.
그들은 고아원에서 한 조용한 아이를 보았다.
유난히 말수가 적고 조용한, 그렇지만 검은 머리칼이 아름다웠던 소녀.
부부는 그 아이를 입양했고, 셰린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녀가 어릴때, 부부는 늘 아이를 사랑으로 돌보았다.
집은 가난했지만 사랑받을 가족이 생겼다는 점에 셰린느는 기뻐했다.
부부는 늘 그녀에게 말했다.

"우린 언제나 널 사랑한단다.
넌 엄마아빠한테 있어서 둘도 없이 귀한, 가치있는 아이니까 말이야."

셰린느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가치가 없어진다면 엄마아빠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물론 그런 일은 없었다. 셰린느는 자발적으로 가게 일을 도왔고, 부부는 그런 셰린느를 아꼈다.
부부는 늘 셰린느를 사랑했고, 셰린느는 부부가 그런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도 역시 오래 가지 못했다.

미리타엔 제국의 남작가에서 그녀를 탐내기 시작했다.
그녀가 아직 16살이던 해였다.
남작은 그녀를 아내로 맞기 위해서 평화롭던 골동품 가게를 처참히 짓밟았다.
처음에는 웃으며 찾아와 신뢰를 쌓으면서 뒤로는 가게의 수완을 파악하더니
점차 사람을 시켜 장사를 방해하고, 길목을 고의적으로 통제했다.
물론 그 모든 일을 부부와 셰린느가 알리가 없었다.
가게가 주저앉는 데까지는 1년하고도 3개월이 조금 안되었다.

무너진 가계에서도 부부는 셰린느 앞으로 들어온 남작의 구혼을 거절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셰린느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남작이 제시한 파격적인 조건이라면 분명 골동품점을 하지 않고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셰린느는 그런 부부의 생각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청혼을 승낙했다.
부부는 미안하다고 말하며 그녀를 떠나보내야 했다.

셰린느가 남작가로 시집을 가고난 이후에 그녀는 의도적으로 남작과의 잠자리를 거부했다.
부부를 위해 결혼을 승낙했지만 몸을 팔고싶은 것은 아니었다.
남작은 부부에게서  선물이나 편지따위를 모두 자신이 빼돌렸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딸이 잘 지내고 있다는 거짓 편지를 남겼다.

 했던 것처럼 그녀를 고립시킬 생각이었다.
2년. 그 시간동안 그녀는 혼자였다. 남작은 미리 저택 내의 모든 사용인에게
셰린느에게 잘해주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고, 그런 그녀를 위로하는 것으로
밤마다 몰래 추근덕댈 뿐이었다.
부부에게서 편지도 한 통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녀는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정말 자신의 가치가 남작이 지불한 금액보다 안되었던게 아닐까?
그래서 부부가 날 찾지 않는 것은 아닐까?

그 생각이 들자 셰린느는 밤에 몰래 저택을 빠져나와 골동품점을 찾았다.
그러나 이미 그곳에 골동품점은 없었다.
남작이 셰린느를 얻은 후에 그들에게 전해지던 지원을 모조리 끊어버리고
가정을 유지할 수 없었던 부부는 노예로 팔려가고 말았으니까.
골동품점이 있던 자리에는  터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었다.
주변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답은 한결같았다.

"그 부부라면 돈을 받고 미리타엔을 떠나버렸다."

남작이 사람을 시켜 노예들에게 지시한 것이다.
미리타엔 제국의 노예에게는  작은 한 푼의 돈이 목숨보다 귀할 수 있었으니까.
셰린느는 그날 마음이 꺾였다. 그날부로 남작의 추근덕거림에 저항하지 않았다.
남작의 손길도 명령도 착실히 이행했다.
자신은 버려진 것이라 믿으면서.

그렇게 사흘째 되던 날. 그녀는 우연히 저택  사용인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이야기였다.
병신 년, 불쌍한 년, 온갖 모욕 속에서 들은 진실은 무거웠다.
부부는 노예로 팔려가 헤어졌으며 아버지는 콜로세움에 강제로 참전해 목숨을 잃었고
어머니는 창관에 팔려가 모진 수모끝에 혀를 씹어 자결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들었다.

그날 밤 셰린느는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남작의 심장에 날카로운 가위를 찍어 죽였다.
그리고 곧장 저택의 쓰지 않는 방에 시체를 유기했다.
아무도 그녀의 소행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병신같은 년이었으니까.
범인으로 지목된 나이든 하녀장의 목이 달아나는 것을 보고 그녀는 느꼈다.

가치. 가치만을 증명해내야 한다.
그게 이 세상에서 나를 증명하는 방법이니까.
자신이 더 가치있는 사람이었다면 부부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도 행복했을거고,  나은 삶을 살았을 것이다.
자신의 가치가 낡은 골동품점의 유지비로 책정되던 순간 셰린느의 삶은 죽었다.
그녀는 자신을 린이라고 불렀다. 부부가 지어주었던 이름을 사용할 수 없었다.

남작의 부인으로서 저택의 권력을 이어받은 그녀는 곧장 저택을 처분했다.
그리고 자신을 욕하고 비웃던 자들을 모조리 노예로 팔아버렸다.
린은 그 돈으로 노예시장에 팔려온 젊은 여자와 몸을 쓸만한 남자를 구입했다.
가능한 한 구입한다고 했는데 6명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녀는 골동품점이 있던 곳에서 낡은 책을 한 권 발견했다.
종치는 자들의 기억이라는 제목의 소설이었다.
부부가 자신에게 남긴 책이라 생각하고 그녀는 그 책을 수십, 수백번을 읽었다.
그러다 어느날 깨달아버렸던 것이다. 책은 오래된 신, 다르말록의 부활을 말하는 주술서였다는 것을.
다르말록은 이미 상당히 오래 전에 힘을 잃은 신이었다.
그녀는 수소문끝에 교단을 찾았고, 가입했다.

다르말록이라는 신은 옳아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그저 추한 살인자일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다르말록을 옳게 만들기 위해서
그 손에 끊임없이 피를 묻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21살이 되던 날, 그녀는 주교가 되었다.

그녀가 구입했던 6명의 노예는 지금도 그녀의 측근이라 부를 수 있었다.
C를 린 아가씨라고 부르는 이들이 존재하는 까닭이었다.

체헤게는 말 대신 손을 잡았고, 그렇게 새로운 생명의 존재로서 C의 안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순간이었다. 한 마녀는 조용히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체헤게와 연결이 끊어졌어."

C는 체헤게를 받아들이고 나서 웃음을 머금었다.

"마녀사냥꾼이 마녀와 함께 다니는건 어불성설이죠."

-신자가 우상을 섬기는 건 말이 되는건가?

"아니죠. 엄마와 아이가 함께 다니는 것 뿐이에요."

C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섰다.
신자들의 앞에서 말했다.

"다르말록께서 제게 아이를 주셨습니다.
오늘이 적기라고 하셨어요! 여러분, 모든 계획은 전면적으로 앞당겨야겠어요.
바로 시작합시다. 이제 더는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어요."

"우와아아아아!!!"

이미 신도들은 다르말록으로 오인한 체헤게를 보았고 이들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리아마저도 휴식을 취하고 있을 시각, 지하 어딘가에서 아주 거대한 마법진에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끄아아악!!!"

"으아아아!!"

"다르말록...쿨럭....!"

수백의 사람들이 피를 토하며 죽어갔다.
노예, 기술자, 교도. 점점 죽어가는 이들의 수가 늘어갈수록
마법진은 아름다운 빛을 내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C님! 연결 했습니다!"

C는 품에서 위상거울을 꺼내 이동했다.
대장간에서 조금 떨어진 곳. 테팔레스 화산이
부자연스럽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지금의 닳고 개조된 테팔레스 화산과 달리 과거의 화산의 위용은 상당했다.
금방이라도 터져오를 것 같은 분화구에서 이글거리는 용암이 튀어올랐고,
근처에서도 느껴지는 열기에 주위 공기마저 달궈져있었다.
이마를 타고 땀방울이 하나 흘러내릴때 그녀가 말했다.

"너무 오래 있으면 우리 아가에게 안좋겠네요.
부디 아주 건강하게 나와주세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거울을 통해 다시 아지트로 돌아왔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대장간이 아닌 테팔레스 화산만을 지정해 마법진의 크기를 맞췄다.
어차피 마그마를 빼낼 공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의 화산에는 공동과 이어진 도관같은건 있을리 없으니까.
그리고 오전 7시 29분, 화산이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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