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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상처받은 이들은 누구를 위해 아파야 했나 (102/303)



〈 102화 〉상처받은 이들은 누구를 위해 아파야 했나

도토크는 알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에리아를 잡아두어야 했음을.
그러나 그 표정은 도저히 그를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눈을 하고 있는 그녀를 앞에 둔다면 아마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그는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옆에서 따라오고 있는 헤세리티 역시 착잡한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당연하게도 기술자들은 헤세리티와 도토크의 모습을 보고 경계하기 시작했다.

"저...저 로봇이 여길 왜...!"

"복수인가...!"

"막아!"


기술자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진을 치기 시작했고,
하나  인두나 드릴같은 연장을 꺼낸 이들이 모여들었다.
그런 그들을 잠재운 것은 아돌퍼스였다.


"조용! 물러나게! 장로님과 헤세리티 수장일세."

"그 말을 지금 우리더러 믿으라는거요!"

일부 부정하는 자들이 앞으로 나섰다.
물론 대다수의 기술자들도 그 말을 수긍한다기 보다는 그저 앞으로 나설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자신들이 마주한 에리아라는 인물과 그 옆을 따르던 엘 블로프니거 에스트로가 어떤 이들인지 모두 알았으니까.


"이런 식으로 돌아오게 될 줄 몰랐네. 미안하네."

침묵을 가른 것은 도토크의 목소리였다.
술렁이는 사람들이 차츰 뒤로 물러나 도구를 내려놓기 시작했다.

"나 하나를 간호해준다고 고생 많았네.
정말 미안하게 생각하네."

"아...아닙니다 장로님!!"

"길을 비켜주겠나? 헤세리티와 이야기하고 싶은 일이 있네."


"당연하죠! 장로님!"


"그래, 그대들은 아직 내가 장로같은가. 도토크라는 인물은 이미 죽었는데.
새로운 장로를 뽑아야 하지 않은가. 가서 일 보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수장직을 역임하셨던 분들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로께서 아직 살아계시는데...!"


"이젠 나도 모르겠네. 길을 터 주게."

아무도 그의 말을 막지 않았다.
도토크는 헤세리티와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장로의 집무실은 이제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니 빠른 시간내로 짐을 빼겠다고도 생각했다.

"장로님... 저와 네버브레이크도 동석하게  주십시오. 수장이지 않습니까!"

르미에르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그래, 자네들은 수장이지. 하지만 이제 내가 장로가 아니라네.
비켜서게.  기계파의 수장과 대화하고 싶은게 아니라 헤세리티와 대화하고 싶은걸세."


"그... 저희에게 장로님은 당신 뿐입니다. 대장간에는 아직 당신이 필요합니다."


"난 잘 모르겠어. 생각할 시간을 주게."


"알겠...습니다."


도토크는 헤세리티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버렸고
남은 이들은 그들을 바라보다가 함꼐 돌아온 아돌퍼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돌퍼스! 설명해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그래!   두분께서 로봇이 되어 돌아오신 거냐는 말이네!"

아돌퍼스는 먼 산을 바라보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불을 당겨 붙이고 나서 그는 질린다는 듯이 깊은 숨을 뱉었다.
담배연기가 뿌옇게 흩어진 후에야 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누구겠는가."

그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대장간에 그런 일이 가능한 사람은 없었다.
성연은 진작에 교국으로 돌아가버렸다.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욕하고 배척하던 여인 말고는 떠오르는 이가 없었다.

"....."

"그...그래도 기계에 가둔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상처를 치료해줄 수 있었잖은가! 이건 기술자들을 모욕하는 거요!"

누군가가 외친 소리는 곧 그들에게 전염되었다.

"맞네! 우리가 장로님을 간호할때는 구경만 하지 않았는가!"

"왜 장로님의 몸을 놓아두고 저런 기계속에 가둬야 한단 말인가!"


그들이 하나  화를 내기 시작할때 아돌퍼스는 담배를 땅에 지져껐다.


"자네들은 정말 그 이유를 모르나? 더 이야기  가치가 없군."

아돌퍼스는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집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그를 따라 나서지 않았다.
그저 침묵만이 깔린 사이에서 누군가 입을 열었다.

"사실, 내가 그 여자에게 장로님께 다가가지 말라고 했소."

"나 역시 그 여자에게 재앙이라고 욕했었소..."

"부정한 자라고 말한  나요."


하나 둘 고해성사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이 한 일을 말했다.
하지만 이제와서 후회해봐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장로도, 헤세리티도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그렇게 모든 기술자들을 차치하고 헤세리티만을 챙겨 방으로 들어갈리 없으니까.

"우...우리는.... 혹시... 정말 해서는 안될 짓을 한게...."

"정말... 제국의 무령이 우리를 도우려고 했단...말인가...?"


그들의 사고가 정지한 것 같았다.


"난... 뭘.... 그러고 보니... C3구역에서 아버지를 구해준 것도 그 무령이었는데..."

"정말 그 원흉이 무령이 아니었단 말이오?"

그들은 좌절했다.
르미에르도 그중 하나였다.


'나라도 그녀의 편을 들었어야 했다. 그렇게 눈을 피해서는 안되는 거였다.
아무리 이들이 그렇게 말해도 내가 진실을 알렸어야 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르미에르는 스스로가 원망스러워졌다.
그 역시 군중의 무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집무실로 돌아갔다.
집무실의 문을 닫자 조용히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오게."

문을 연 것은 네버 브레이크였다.
어쩌니 한층  말라 보이는 그가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자네는 어느 쪽을 믿나?"


"어느 쪽이라니?"

"에리아 무령이 정말 대장간을 전복시키려고 한 범죄자로 보이느냐 이 말일세."

"나는...."

"난 아직도 그 여자가 두렵네. 어떤 힘을 가지고 또 얼마나 대단한 여자인지도 알고 있네.
하지만, 스스로 그런 생각도 들었다네. 그런 힘을 가진 여자가 대장간을 정말로 끝내려고 했다면
우리가 이렇게 살아있지는 않았을거네. 아마, 이렇게 길게 버티지도 못했을거고.
나 역시 두려움에 그녀를 지지하지 못했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네.
르미에르. 자네는 어찌 생각하는가?"

"나 역시 그리 생각하네. 알고 있잖은가. 대장간을 끝내는데 동참한건 소미에르고,
그를 따랐던 아돌퍼스는 모든 일을 알고 있네. 나 또한 그녀를 따라 사막으로 향하기도 했고.
눈 앞에서 동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았네. 본인이 죽을 뻔 하기도 하면서
우리를 구해주려고 했던 모습을 기억하네."

"왜 나서지 않았나."

"두려웠으니까."

"그래... 자네도 나도 그런 비겁한 자들이군."


집무실에서 한동안 침묵이 짙었다.
네버브레이크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로파 기술자들은 몇이나 남았는가?"

"나를 포함해서 6명일세."


"아돌퍼스... 그 자가 회로파 기술자로 남아있을것 같나?"

"무슨 말인가?"

"우리는 이미 마르커스라는 인재를 눈앞에서 놓친 전적이 있네.
대장간에 실망한 인재는 생각보다 아주 간단히 대장간을 떠나버리고 만다는건
이제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 아니었나?"


"아...! 아돌퍼스! 그는 어디에 있나!"

"집으로 가지 않았겠나?
어쩌면 이미 없을지도 모르고."


네버브레이크는 그렇게 말하고 집무실을 떠났다.
르미에르 역시 곧장 아돌퍼스의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각 도토크의 집은 너무나 조용했다.
헤세리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뭐라도 말을 해 보게."


"....."

"자네도 생각이 있을 것 아닌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잘 모르겠다?"

"그 여자가 저를 정말 되살리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렇게나 심하게 대했는데."


"그것 뿐인가?"

"전..."


"알고 있네. 나도 들었으니까.
자네가 생명을 모욕하지 말라고 그녀에게 모진 소리를 했다는 이야기.
대장간에 퍼져서 이제 모르는 이들이 없을 정도였지 아마."


"저는 장로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른거 아시잖습니까."

"그래, 그랬지."

"그렇게 욕해놓고서도 제 앞에 이렇게라도 마주한다는게 기쁩니다.
동시에 저도 장로님께서도 이제 더는 사람이 아니라는게 두렵습니다.
부정한 자라고 그렇게 욕해놓고 누구보다 부정한 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저는 이제 누굴 욕해야 합니까? 누굴 욕해야 저는 편해질 수 있습니까...?"

"이미 깨끗한 자는 없었네.
나는  밖에서 떠드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네.
의심하고 증오하며 기어이 우릴 도운 이에게 날 선 말을 뱉는 이들을 보았고
기어이 우릴 도왔던 여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게 만들었네.
누가 부정한가? 나는 이미 지쳐버렸네."

"저도... 지쳤습니다. 차라리 그냥 죽게 내버려 두면 좋았을 것을...
 저를 다시 살려달라고 하셨습니까 장로님... 저는 당신만큼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아시잖습니까. 저들에게 필요한건 제가 아닌 장로님이십니다.
 평생 저를 보셨으면서 왜 모르셨습니까..!"


"내 딸아... 네가 없이 혼자 견딜 자신이 없었단다..."

"....!"


"대장간은 약하지. 누군가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존속할  없고
그러면서 자존심으로 가득해 손을 벌리는 것은 주저하는 자들이요,
기어이 명예와 자존심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배신했다.
헤세리티, 나는 대장간을 믿었고, 내가 이들을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했단다.
하지만 그 모두가 내 착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구나."

"장로님..."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전에 사과를 전해야하는 그런 이기적인 이들뿐이구나...
우리는 기술자라고 칭할 자격이 없다."

"장로님...!"


"나는 도토크다. 더는 장로가 아니지.
기술자로서 영기술에 의탁해 목숨을 구걸했고,
존재로서 생명을 모독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나는 대장간을 떠날 생각이란다.
이런 몸으로 죽을수도 없으니 대장간을 떠나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아볼 거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분을 만나면 사과를 할 게다."

"이미 정하셨군요."

헤세리티는 주먹을 쥐며 말했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도토크는 자리에 앉아 말이 없었다.


"저는 대장간에 남고 싶습니다. 당신과 함께.
안되겠습니까?"

"난... 그러고 싶지 않구나."


"잠깐 생각을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헤세리티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기술자 하나를 붙들고 말했다.

"가서 기계파 인원을 50명 모아오도록."


"가...갑자기 말씀이십니까?"


"거절할 생각인가?"

"아...아닙니다!"


그렇게 말하고 기술자는 빠르게 뛰어갔다.
헤세리티는 도토크를 놓아줄 수 없었다.
대장간에는 그가 필요했다.
그의 자유와 대장간의 존속은 저울질을 할 것도 없었다.
자신의 바람이 짙게 섞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으나
헤세리티는 애써 그것을 모른 척 했다.
기술자 50명은 금새 모였다.

"부르셨습니까 헤세리티님!"

"들어가자! 도토크 장로를 묶어  앞으로 데려와!"

"하...하지만 수장님..."

"기술자들의 우두머리는 수장이다! 실권은 내것이네!
가서 끌고 나오게!"

마지못해 들어간 기술자들은 도토크를 끌고 나왔다.
도토크는 저항 없이 끌려나왔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헤세리티. 어쩔 생각인가?"


"용서하십시오 장로님."

이미 강화부가 여러 겹 붙어있는 몸체를 부수는 일은 불가능했다.
헤세리티는 기술자들에게 눈짓했다.


"담가라. 팔다리를 모두 녹여 엔진만 뛰게 해드리게."


그렇게 말하는 헤세리티의 말에 기술자들은 머뭇대며 움직이지 않았다.

"어서 하게. 수장의 명이잖은가."

도토크는 그렇게 말하고 스스로 도관에 흐르는 마그마에 스스로 뛰어들었다.
그 무거운 몸이 녹아내리는 것을 보고 나서 놀란 기술자들이 빠르게 그를 꺼냈지만
이미 엔진 위로는 녹아내렸고, 팔도 겨우 흔적만 남아있었다.

"장로님, 앞으로도 당신은 장로로 계셔야 합니다.
이 인원을 버리고 혼자 자유를 찾는 모습은, 저는 볼 수 없습니다."

"헤세리티, 자네라면 그럴거라고 생각했네."

"왜...  저를 욕하지 않습니까...?
저는 지금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착한겁니까!
그렇게라도 속죄하고 싶다는 뜻입니까!"


"그럴수도 있네. 그리고, 내가 자네를 너무 잘 알아서이기도 하겠지."


 말이 끝나자 헤세리티는 그대로 무너졌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게 운명이겠지. 결국 우리는 누구에게도 감사를 전하지도 못하게 되었고
그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게 되었네."

기술자들은 하나 둘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으로 나선 기술자가 말했다.


"헤세리티님. 이런 말씀을 드리게 될  몰랐습니다.
저는, 더 이상 당신을 수장으로 인정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새로운 수장을 천거하게."

기술자들은 도토크를 데리고 멀어졌다.
헤세리티는 홀로 남겨졌다.

"마르커스... 난  한건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자네를 이기려고 했는데, 자네의 친구에게 상처만 입혔네.
나는 늘 이렇군. 이제 이 곳에 내 사람은 없나보군.
날 용서해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대의 걸작마저도 내가 망쳐버렸으니
그대는 날 영영 저주하겠군. 최악의 형태로 돌아왔고 이제야 그대를  알 것 같네.
나는 끝까지 이기적인 사람이라 말이네. 사람으로 살다 가고 싶어져서 말이야.
나를 비난하고 욕할 이 세상에 남아있고 싶지가 않네."

그리고 헤세리티는 용암이 흐르는 도관으로 걸어들어갔다.
그 순간 도토크와 마주친 눈이 떨렸다.


"안돼애애애애애!!!"


도토크가 그리 소리쳤지만 이미 손도 발도 없는 그는 아무 것도 할  없었고
그를 들고 가고있던 기술자 몇몇이 뒤를 돌아봤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미 헤세리티는 도관을 따라 흘러버린 이후였다.
그날 대장간은 잃은 기술자들을 추모했다.
죽은 자들의 묘비만 500개가 넘어갔다.
그들을 기릴 장소는 C3구역으로 정해졌다.
C3구역에는 수많은 묘비와 함께 그들을 기릴 제단이 지어졌다.

르미에르는 아돌퍼스를 설득하는데 성공할 뻔했으나
아돌퍼스는 장로의 녹아버린 몸체를 보고 두번다시 대장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대장간은 이후 대대적으로 홍보를 시작했다.
기술자의 인원을 재배치해야했고, 대장간은 과거의 기록에 의존해서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했다.
도토크는 의욕을 잃고 장로직을 한사코 거절했기에 새로운 장로를 선출하게 되었고
유력한 후보였던 르미에르는 회로파의 맥을 이어야 한다며 거절했다.
네버브레이크가 결국 그 자리를 이어 수장을 그만두고 허울뿐인 장로직을 잇게 되었다.
기계파에서도 땜장이파에서도 새로운 수장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그 동안 도토크는 움직이지 않고 한 자리에 가만히 놓여 있었고,
용암으로 녹은 지역 위에서 천천히 땅속으로 묻히다가
덜 굳은 지형과 함께 말라 식어 그대로 굳어붙었다.
그걸 사람들이 눈치챘을 때는 이미 하나로 굳어버린 후였다.


8년  대장간은 다시  종파를 회복하고 제자리를 찾게 되었다.
다만 규모는 도시 하나 정도로 상당히 축소되고 말았다.
도토크는 한동안 장로로 대우받다가, 이후 14년이라는 시간이 지나 그 기억조차 희미해지고 나서는
대장간의 지혜로운 파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만, 그것 또한 다른 이야기다.
다만 그 모든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장신의 남자 하나가 조용히 한마디를 뱉고 사라졌다.


"왜 저들을 용서해야 하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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