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사막은 그대를 배려하지 않는다.
벌써 저녁이라고 상당히싸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사막의 밤은 언제나 그랬듯 어두웠다.
내가 걸어온 발자국만이 찍힌 바닥을 돌아보면 금새 바람이 발자국을 지워버렸다.
앞으로 걸어나가다보면 톡 톡 무언가가 튀어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소리의 정체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사막 패패루..."
하여튼 생명력도 질긴 놈들이라 어디서든 살아남는 바람에 어딜 가나 적응해서 무리를 짓는다.
조그마한 녀석들이 뗴거지로 폴짝대며 내게 달려오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내가 뜯어먹은 패패루의 육포 때문이겠지.
후각이 상당히 발달한 녀석들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나를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는 것 같다.
끽해야 몸길이 5~7cm 인 주제에 폴짝폴짝 뛰어대는 이녀석의 생김새는 그래, 귀 없는 토끼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사막에서 살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모래와 비슷한 색을 띄고 있었다.
"식용으로 쓸만하려나."
공격성은 전혀 없는 녀석들이라 잡히는대로 구워댔다.
운동능력이 한없이 밑바닥에 가까워서 4마리 잡는것도 고작이었다.
불을 피워두고 그 근처에서 쉬기로 결정한 것은 날이 어둑어둑해졌기 때문이었다.
모래가 날리는 탓에 바람막이 정도는 만들어두는게 좋을 것 같았지만
그럴 재료도 능력도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밤을 샜다.
잠 하루 정도 안 잔다고 위험해지는건 아니니까.
밤새 패패루 고기를 먹으면서 버티는건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확실히 포를 떠 말린 것보다는 갓 잡아서 구워먹는게 맛은 있었다.
내장을 일일이 떼내는 것이 피곤하기야 했지만 맛을 위해서 그정도는 할 수 있었다.
밤새 딱히 무언가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히 편안하게 보낸 것 같았다.
날이 밝으면 그제서야 나는 짐을 챙기고 슥슥 불을 꺼뜨린 후에 다시 길을 걸었다.
중간쯤 걷고 있으려니까 저 멀리서 흙먼지를 날리며 한무리의 사람들이 샌들핀을타고 달려오기 시작했다.
30명 정도 되어보이는 집단이 내 앞에 멈춰섰고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말했다.
"이렇게 험난한 사막을 혼자 지나다니는건 아주 위험합니다 아가씨. 하하하..."
"괜찮아요."
"에헤이, 우리도 같은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인데 같이 가면 서로서로 의지하고 좋잖습니까?
누가 뭐 해치기라도 하는 줄 알겠습니다 하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는 수염이 덥수룩해서 얼굴을 너른 천으로 감아둔 남자였다.
그 뒤로 보이는 인물들도 대다수는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었고,
내 짐이나 가방에 힐끔힐끔 눈길을 주면서 내가 어떤 인물인지를 파악하려고 하는 것 같았다.
"일단 사막은 위험합니다. 저희도 무상으로 지켜드릴 수는 없고, 더도말고 덜도말고 3델만 주시면 됩니다."
"아뇨, 그냥 혼자 간다니까요. 3델씩이나 드릴만큼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요."
"하아... 사막을 혼자 지나시는 분이 그정도 돈이 없다니요.
그러면 우선은 1델 정도만 받겠습니다."
"거의 금화, 은화값을 요구하시면서 이렇게 막무가내로 지켜준다고 하실 필요 없어요.
어련히 잘 지나갈 수 있으니까."
"음... 그러시다면야... 얘들아. 가자!"
내 대답에 그들은 다시 샌들핀에 올라타서 모래를 헤치며 사악 사악 소리를 내고 사라졌다.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것은 일정거리 이상은 떠나지 않고 내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단 것이다.
내가 조금 더 걸어가면 아마 그들이 야영을 한 것으로 보이는 장소가 있었다.
불을 피운 흔적, 바닥에 젖은 알싸한 지린내. 여기저기 보이는 샌들핀의 배설물이
이곳에서 저들이 휴식했음을 말하고 있었다.
느낌은 금방 왔다. 아마 사막에 터를 잡고 실크로드를 지나다니는 상인들을 겁탈하는
강도단이겠지. 내 복장이 하필 쥐색 후드라서 망정이지 조금이라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었다면
바로 내 뒤를 따라왔겠지. 아니, 이미 늦은 것 같기는 하다.
내 뒤에서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따라오는 중이니까.
뭐라도 고급스러운 걸 챙겨갈 생각인 모양인데,
사실 어찌보면 완전히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게 어지간한 옷보다는
내가 직접 주술이며 강화부를 떡칠한 이 후드가 더 고급품이다.
온기를 유지하겠다고 붙인 강화부가 3장이고 통풍기능을 위해 투자한 강화부는 2장,
자동 수복주술에 무게를 줄이기 위해 경량화 주술도 걸었다.
때타는걸 막겠다고 이것저것 방부처리에 주술을 걸었던 걸 생각하면
못해도 미리타엔의 고급 옷도 3벌은 살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들도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잠을 자면 뭐라도 해보겠다고 따라오는 것 같은데, 그래서야 진전이 없을테니.
가방을 뒤적여 내려온 커피를 꺼내 마셨다.
자리를 잡고 커피를 마신 것 까지는 좋았는데 또 날이 밝으니 사막의 찌는 열기는
도저히 김이 나는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결국 몇 모금 마시고 바닥에 커피를 흘려버렸다.
바닥에 쏟아버린 커피는 모래를 축축하게 적셨다.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모래 사이에서 무언가가 보였다.
아마 밤새 바람이 불며 모래가 날려와 그 위를 살짝 덮고 있었던 것이
내가 커피를 부으면서 드러난 것 같았다.
흥미를 느끼고 주변의 모래를 살살 파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래 속에서 고개를 드러낸 것은 화산탄과 죽은 동물의 뼈였다.
아마 염소나 산양같은 생물체의 뼈로 보였는데, 부자연스럽게 옆에 놓인 화산탄이
기분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그건... 염소군."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면 아마 탐험가 정도 쯤 되어보이는 남자가 내게 말했다.
옷이 누더기였다. 상처도 군데군데 보여 곧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보였는데,
앞뒤로 무거워보이는 남색 배낭을 맨 채로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아서 물었다.
"혼자인가?"
"네."
"그렇군... 이 분노의 사막은 여자 혼자 지나다니기에 그다지 적합한 곳이 아니야.
도와주고 싶지만 이 상처로는 불가능하겠군. 장비는... 없어보이고."
그렇게 말하더니 그는 자신이 맨 커다란 백팩을 내려놓았다.
"나는 다니엘이라고 하는데, 우연히 이곳으로 표류하게 되었어.
타고있던 비행기에서 떨어져버렸거든. 덕분에 다리가 부러졌어."
"비행기요?"
"그래. 비행기. 모르나? 하늘을 나는 운송수단인데.
아내와 스태프 하나를 대동하고 연구지역으로 날아가던 와중에
기류가 불안정한 바람에 정신을 차려보니 덜컥 떨어져 버렸다고.
다행히 다리를 부러뜨린 것 외에 크게 잘못된 건 없어 보이는데,
이런 몸으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 말이야."
"보아하니 다리만 다친 건 아니신 것 같은데요."
"눈썰미가 좋구나. 추락하자마자 운도 없게 마주쳐버렸단다.
사막의 강도단 말이지. 실크로드를 굳이 비행기로 횡단하려고 한 목적도 그거였는데
운이 없어도 너무 없었어. 나는 그들에게 지갑을 빼앗겨버렸고.
지갑 정도야 상관 없어. 그런데 이제는 스태프도 아내도 날 구하러 오기가 힘들어졌다는게 문제지."
"구하러 오기 어렵다...?"
"그래. 아쉽게도 원래 목적지는 내일까지 도착하지 않으면 수색할 기회가 사라지거든.
그 이후로부터는 구역 통제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아서 말이야."
"구역 통제요?"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난 고고학자야."
"말씀 안하셨어요."
"그래? 미안하게 됐네. 한번 정도는 넘어가자.
종종 그런 착각을 해서 아내에게 꾸중을 듣고는 하지."
"그래요. 그럼 그 배낭은 뭐에요?"
"내가 비행기에서 추락하자마자 아내가 내게 던져줬어.
내가 아내에게 내 걱정은 말고 목적지로 계획대로 가서 수색을 마무리하라고 했지.
우린 그러지 않으면 안되거든."
"그러지 않으면 안된다...?"
다니엘은 하하 너털하게 웃으면서 배낭에서 작은 단검을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뒤적이더니 막대 형태로 된 원통을 여섯 개 꺼냈다.
"이번 조사에서 성과가 있어야 하거든.
고고학자는 그런 존재야. 성과가 꾸준히 존재해야 하지.
받아둬. 그건 잭나이프야.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으라고.
그리고 이게 야간 휴대용 조명탄이라는거야.
한번 터트리면 1분 정도는 유지될거고."
"이런걸 주시는 이유가 뭐죠?"
"뭐긴, 내 몸은 지금 스스로를 지키기도 버거우니까 같이 생존해보자는거지?
난 이런 말 하기도 뭐하지만 종종 이곳에 표류된 적이 있어.
어떻게 가야 하는지는 안다는 말이지.
다만 몸 상태가 이렇게 불안정한 적이 없었으니까 도와달라는 의미고.
설마 너, 이렇게 약점까지 공개한 사람을 버리고 가는 매정한 냉혈한은 아니겠지?"
"아...아뇨, 같이 가죠."
"어휴, 역시 다행이네. 일단 유레크로스 쪽으로 빠져나가자고."
"아내분과 스태프는 그러면 고고학자라는 의미죠?"
"그래. 덕분에 각지를 돌아다녔지. 덕분에 지금도 배낭 두 개는 튼튼하지.
아, 맞다. 조명탄은 각자 3개씩 쓰자고."
"그래요. 상당히 태평해 보이시네요."
"불안은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니까. 행동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다친 다리를 절뚝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마다 그는 주머니에서 스카프를 꺼내 이마에 찍어누르면서 말했다.
"안좋은데. 혹시 너 물 있니?"
"물이요? 마실 건 있죠."
"그래? 준비성이 철저하네. 일단 지금 나는 생수 2L정도를 가지고 있어.
이걸 얼마나 아껴마실지는 모르겠지만."
"아, 저는 커피..."
"커피? 수분공급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텐데."
"수분공급은 부차적인 이유에요.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구나. 그나저나 왜 일부러 놔두는거야?"
"뭘요?"
그는 저 뒤로 따라붙은 강도들에게 눈짓했다.
"저 친구들. 둘 중 하나를 노리는 건 분명한데. 우리 중 누구일까 싶어서."
"저에요."
"스스로는 지킬 수 있지?"
"당연하죠."
"좋아. 출발하자."
"그 전에 가벼운 테스트 정도만 해볼게요.
지금 이 구역에 저 사람들이 터를 잡고 쉰 이유는 뭘까요?
여기 염소가 죽어있는 이유도요."
"그래, 낯선 사람에게는 일단 신용을 받기 전까지는 합리적으로 의심하는게 좋아.
어디서 배운건지 몰라도 상당히 잘 배웠잖아?
어떤 면에서는 내 와이프보다 까칠한 것도 같아."
"남의 사모님이랑 비교당하는 느낌은 썩 유쾌하지는 않네요."
"괜찮아. 아내가 너보다 훨씬 칼같고 까칠하니까.
그정도는 이제 너그럽게 받아줄 수 있거든."
"아내분 성함은 어떻게 되시죠?"
"이리디나라고 하는 이름인데, 그렇게 유명한 이름은 아닐걸?"
"이리디나. 기억해둘게요."
"임자 있는 여자니까 너무 적극적으로 들이대지는 말아 달라고."
"그럴게요. 그나저나 다리를 다친 것 치고는 상당히 잘 걸어다니시는데요?"
"아, 응급처치를 했으니까. 가방에 기본적인 구급팩은 있었으니까.
볼래? 여기 붕대랑, 여기 부목. 그리고 이건 회복약."
그는 가방에서 이것저것을 꺼내 보여주더니 자신의 다리를 드러낸다.
바지 아래 붕대로 싸인 다리는 확실히 불가능한 각도로 꺾여있었다.
"남의 치부를 지금 몇 개씩 보는거야? 확실히 책임져 달라고."
"임자있는 남자는 책임 안져요."
"하... 제대로 당했구만. 하하하!!"
그는 정말 이 근처를 아주 잘 아는 것 같았다.
능숙하게 길을 안내하며 슬금슬금 시계와 나침반을 확인했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이더니 커다란 지도를 꺼냈다.
"지도네요?"
"조금 달라. 사막에서 지도같은게 의미가 있을리가 없지.
나침반이 훨씬 유용할테니까.
이건 나침반을 기분으로 하는 전자극도야."
"전자극도요?"
"나침반을 놓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자기장이나 지맥류를 그리는 거지."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내게 종이를 건넸다.
"어차피 두 장이니까 내가 정리한 걸 보여주지.
한번 확인하고 돌려줘. 초보자는 읽기 힘들테니까."
지도 우측 상단에는 방위가 쓰여있었다.
이래서 나침반이 있어야 한다는 거고.
지도가 그려져있었는데, 분노의 사막을 그린 지도였다.
세밀하게 화살표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숫자나 기호가 적혀있었다.
"이건..?"
"나침반은 북을 가리키잖아? 그 각도가 정오를 기준으로 그림자와 만드는 각도,
그리고 가리키는 위치나 지형적으로 극으로 흐르는 자력같은 부분의 흐름을 그린거야.
아무리 사막이라도 일정한건 있으니까. 나침반은 늘 북쪽을 가리키지?
하지만 이 그림이 있으면 지금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가지고 사막의 어느 지역으로 이동하기가 수월한거야.
지금같은 경우는 동쪽으로 17도 꺾여서 세기가 27이지?"
"세기요?"
"아, 이건 모험가용 나침반이거든. 어떤 지역에서는 지질학적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외부영향으로
북을 가리키지 못하거나 다른 자력에 이끌리거나 할 때가 있잖아?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얼마정도로 자력에 이끌리는지 자력의 세기를 체크해주는거지."
"유용하네요."
"그래. 그런거야. 17, 27이라면 지금 이 방향으로 가면 될거야."
"고고학자라는게 정말이었군요."
"뭐야? 안믿었던거야?"
"신용이 조금..?"
"아무튼 빨리 가는게 좋아보이는데. 이 사막에서 오래 지내서 피차 좋을게 없으니까?"
"좋을게 없다는 말은 무슨 의미죠?"
"아까 물었던 질문에 답을 해주지. 염소가 죽어있던건 이 근처를 주기적으로 지나는
유목민의 염소를 죽였다는 의미일거야. 화산탄이 왜 거기 박힌건지는 모르겠는데.
흥미롭긴 하네. 화산이 터진건 아닌 것 같거든. 그랬다면 이렇게 이 분노의 사막이 멀쩡할리 없으니까.
유레크로스에서도 피해가 없는 수준이고. 의도적으로 피해를 경감한다고 해도
이정도로 줄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니까. 아마 이 근처에서 저 강도단과 유목민이 푸닥거리라도 한거겠지.
그리고 어쩌다 유목민의 염소를 얻어내서 그걸 식량으로 쓴 것 같아.
어쩌면 샌들핀의 먹이로 줬을수도 있고. 그래서 그 주변에 배설물이 널렸겠지.
사람은 고기가 아니어도 괜찮지만 샌들핀은 고기를 먹여줘야 하니까."
"그래서 뼈만 남았다고요?"
"그렇겠지. 사람은 내장을 먹지는 않으니까."
"아..."
"이 근처를 지나는 유목민은 두 부류가 있어.
하나는 안카숲을 지날 수 없으니까 실크로드를 통하는 사설 상인단이고,
이 경우에는 위험할 일은 없어. 소규모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기도 하고
떠돌아다니니까 이미 이 근처를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갔을테니까.
하지만... 다른 하나라면 조금 피곤해져..."
"다른 하나요?"
"베일슨부족이라고 있어. 무력집단이기도 하고, 텔레프란 국립 자연공원에서 주로 활동하는데,
종종 아라카스트에서 이리야스 산맥을 넘어서 대장간이나 유레크로스로 가는 이들이지.
유레크로스에서 종종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대장간에서 무기를 손질한다던데.
아마 내 생각에는 화산탄을 보고 대장간으로 가던 길을 꺾었을거야.
저런 강도단과 맞붙어서 염소 한마리로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소규모의 상인집단으로는 안돼.
그들이 돌아온다면 상당히 골치아파져. 강도단에게 피해를 받은 정도로 꼬리를 말고 참을 녀석들이 아니거든."
"하아..."
"안그래도 8년 쯤 전부턴가 상당히 공격적으로 나오던데."
"왜죠?"
"우두머리인 비고 베일슨의 하나뿐인 딸이 파혼당했으니까 그렇겠지.
딸이 파혼을 당했는데 배는 불러오니까 말 다했지 않겠어?"
"딸 이름이 뭔지 알 것 같은데요..."
"그래? 그 딸 이름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져 아는 사람도 잘 없을텐데."
"재클리나 베일슨일거에요..."
"재클리나라... 참고하지. 아가씨 그렇게 안봤는데 상당히 많이 아는데?"
"그냥... 좀 슬픈 이야기를 들어서요."
"슬픈 이야기라... 좋지. 사막은 슬픈 이야기를 많이 담고있어.
얼마나 눈물을 흘리던, 흔적도 남지 않게 해주니까. 메마른 곳이잖아?
그러니까 마음이 촉촉해지면 다들 이곳에서 울고 가는거야.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안봤는데 생각보다 괜찮은 말도 하시네요."
"그거 칭찬이지?"
"그럼요."
"사막은 사람을 배려하지 않아.
눈물을 쏟는 것도, 말라 죽는 것도 그저 방관하지.
여기서 죽으면 흔적 찾기도 힘들다고. 빨리 빠져나가자."
"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