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화 〉두꺼비굴
"그나저나 아가씨, 이름이 뭔지 물어봤던가?"
"에리아에요."
"에리아... 좋은 이름이네. 마침 그 미리타엔 무령도 이름이 에리아라던데 알아?
난 그런 유명인이랑 같은 이름을 쓰면 상당히 피곤할 것 같아."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
오해하게 놔두는 것도 재미있었고.
"피곤하죠."
"그나저나 에리아는 왜 유레크로스로 가는거야? 심심한데 이야기나 해줘."
"그리 재미있는 이야기는 아닐텐데요...
교회로 가서 전할게 있어서요."
"교회? 나랑 목적지가 같구나?"
"아, 그래요? 그럼 다니엘씨도 성 테르도어 대성당으로 가시나요?"
"그런거지."
"그나저나 이 사막에 대해 잘 안다고 하셨으니 질문 하나만 할게요."
"좋을대로."
"왜 이 사막에는 선인장이 없죠? 사막에 선인장이 없다는건
조금 어색하지 않나요?"
"물론 어색하지. 일반적인 사막이라면.
그런데 분노의 화산은 조금 달라.
일단 테팔레스 화산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으니까.
선인장이 자라려면 아무리 척박하고 메마른 땅이라고 해도
식물이 어느정도 자랄 기본적인 환경이 갖추어진 상태라는 의미지.
이렇게 사방이 모래여서야 자랄 것도 죽어버리지 않겠어?"
모든 식물이 그런건 아니겠지만, 뭐 어때? 내 전공은 식물학이 아니라고."
"뭐에요,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아는거라고는 화산의 영향으로 화산탄이 날아올 정도로 불안한 구역에서
씨를 뿌릴 만큼 멍청한 건 잘 없다는 점이지. 동물이든 식물이든."
"패패루는요?"
"패패루는 고산에서도 살아가는 괴물이니까. 이리야스 산맥에서도 살아가는걸 보면 기겁할걸?
돌밖에 없는 산맥지역인데도 수직으로 벽에 붙어서 돌아다니는데.
그 녀석들 적응력은 정말 알아줘야 해. 발톱이 무슨... 긁히면 살이 파이겠더라."
"공격도 해요?"
"안하니까 식용이지. 그 멍청한 놈들은 그렇게 강한 발톱이 있는데 공격을 하지 않아.
먹이활동도 초식을 기반으로 하다가 종종 벌레나 집어먹잖아.
아마 신이 있다면 기획을 잘못 했다고 인정할 첫 번째 생물일걸."
"아니면 애초에 식용으로 만들었다고 보는게 더 타당하지 않을까요?"
"그럴수도."
잠깐 걷다가 그는 나침반을 바라보더니 멈춰섰다.
"잠깐, 멈춰."
"네?"
"아무래도 우리 잘못 들어온 것 같은데."
"왜죠?"
"저길 봐."
바닥에 엎드려 몸을 숨긴 다니엘이 가리킨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울퉁불퉁하게 불거진 바닥이 가볍게 떨릴 뿐이었다.
"뭐가 있나요?"
"자, 받아."
그는 내게 쌍안경을 내밀었다.
내가 그걸 받아들고 다시 그가 가리키는 곳을 주시하자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 보였다.
"바닥... 무늬...? 자갈같은게..."
"부분을 보지말고 전체를 봐라."
"잠깐만요, 저거 떨리는게 신기루가 아닌데요?"
"뭐가 보이지?"
"뭐냐고 해도..."
"사막의 수호신이야. 넌 그 등을 보고 있는거고.
생명활동을 하고 있으니 당연히 등가죽이 호흡에 따라 움직이지."
그제서야 깨달았다.
"저거 두꺼비인가요...?"
"그래. 자이언트 토드라고 하는 녀석이야. 독성도 상당하고.
섣불리 건드리지 않는 게 좋아. 4급 모험가 10인 이상 공대를 만들어야 잡을 수 있으니까.
미리 발견한게 행운이야. 원래는 땅 속에 파묻혀서 피부가 마르지 않게 할텐데,
이렇게 지면에 가까이 올라왔다는건 뭔가 불만이 있다는 의미다."
"불만...?"
"일단 돌아가지. 오늘 밤은 비가 올 것도 같다."
"에이~ 사막인데 비가 그렇게 간단히 올리가 없잖아요?"
왔다.
많이.
홀딱 젖을 정도로 왔다.
"하하, 내가 뭐랬나. 그러게 비가 온다니까."
"어이없어..."
"몸을 말릴 장소를 찾아봐야겠군. 전자극도를 보면..."
"거기 그런 것도 나와요?"
"북쪽 기준 42도에 16정도 나오는 곳으로 가면 되니까 출발해보자고."
"방향이 상당히 꺾이는데요?"
"비는 피해야 할 것 아냐?"
마지못해 따라가면 작은 굴이 있었다.
굴은 겨우 몸을 집어넣을 정도로 좁았는데,
바위 아래 굴이 비를 피할 공간은 제공하고 있었다.
"전자극도 생각보다 쓸만하네요?"
"그럼. 누가 그렸는데."
"누가 그렸는데요?"
"나지!"
"어련하시겠어요."
"비를 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렇게 지면에 가까이 올라온 자이언트 토드가
언제 기분이 상해서 난동을 피울지도 모르는 일이야.
전자극도가 정말 큰 역할을 한 거라고."
"일단 그 점에선 감사해요. 일단 들어온 김에 좀 쉬세요. 망은 보고 있을테니."
"부탁 좀 할게. 생각같아서는 내가 망을 보고 여자를 재워야 하는거 아닌가 싶은데,
그러기엔 내 몸상태가 말이 아니네."
"일단 쉬세요. 어차피 가야하는 길을 두꺼비가 가로막아서 갈 수도 없다면서요.
뭐 바쁜 일 없잖아요?"
"그건 그렇지."
나는 다시 비가 내리는 사막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비 때문에 모래가 젖어서 우리가 걸어온 발걸음이 살짝 지워진다.
새로 누군가가 우리를 뒤따라 온다면 바로 알아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모래언덕 능선 너머 사삭대는 샌들핀의 지느러미가 흘끔 보인다.
야생 샌들핀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만 저렇게 한 곳에서 대기하면서
사삭대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건 아무리 봐도 긍정적인 건 아니다.
아직 해가 밝은데 어딘가로 갈 생각도 하지 않고 우리를 뒤쫒는 걸로 봐서
우리가 잠든 틈을 타서 덮치려는 것 같았다.
우리 위치도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저쪽에서도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는 의미다.
"난감하네."
서로 대치만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굴을 찾은 반면, 저쪽은 비를 맞으며 버티고 있다.
한편으로는 어떤 강도가 상대가 지치고 방심하길 유도하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어이, 아가씨. 이쪽을 좀 봐줄래?"
"또 뭘 발견하신건데요?"
나는 그가 있는 곳으로 순순히 따라갔다.
그곳에는 벽에 살짝 금이 간 곳이 있었고, 그 틈으로 굴 너머에서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
"그래, 이 너머로 뭔가 있다는 이야기지."
"바위 밑으로 이어진 굴에 이어진 틈이 있다고요?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재미있지 않아? 지하에서 바람이 들어온다는건 이 너머에 공간이 있다는 건데.
이제껏 발견하지 못했던 구역이기도 해서 더 흥미로운걸."
"일단 우리 무사히 빠져나가는게 먼저 아니었어요? 비만 피하고 나가기로 했는데
이런걸 휘둘리면 안되잖아요."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이미 장비는 준비되어 있고, 난 고고학자야."
"고고학자가 탐험가는 아니잖아요?"
"때때론 고고학자가 탐험가보다 더 못말리는 법이지."
"하아..."
그는 대답 대신 가방에서 곡괭이를 꺼냈다.
곡괭이니 삽이니 하는 연장이 하나둘 드러났다.
"고고학자라더니 완전히 도굴꾼이네요. 훼손할 생각밖에 없어보이는데."
"원래 한끗차이란다. 훼손하지 않게 곡괭이를다루는거.
그게 기술이라는거야. 교수님 앞에서 꼬마가 아는 체 해도 사실이 변하지는 않아."
그렇게 말하고는 정말 곡괭이로 바위를 내리친 그는 단 네 번의 곡괭이질로 틈을 깔끔하게 키웠다.
내심 바위가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던 나와 다르게 그는 그런 걱정도 없었나보다.
그는 곡괭이를 닦아 가방에 집어넣고 대신 그 안에서 두꺼운 로프를 꺼냈다.
그리고는 튀어나온 바위에 튼튼하게 묶어서는 여러 번 잡아당겨 본 후에 말했다.
"난 내려갈건데, 같이 갈텐가?"
"아니 뭐 그러면 저는 버려두고 가려고 했어요?"
"하하! 그래, 같이가야지. 로프 받아. 원래같으면 이중으로 묶고 내려가야겠지만
지금은 두명인데다가 짐도 두배고, 너는 초보였지.
일단 로프를 잡고 내려가는 걸로 하자. 그나저나 저 입구를 지키지 않으면
로프가 끊어졌을 떄 방법이 없는데..."
"그건 알아서 할게요."
"그래. 고생하고. 끝나면 내려오라고. 먼저 내려가서 위험한게 있는지 확인해볼게."
그렇게 말하고 그가 내려가자마자 나는 곧장 굴의 입구를 모래로 틀어막았다.
사막에 널린건 모래다. 더욱이 물에 젖은 모래벽은 생각보다 무겁다.
산사태도 흙모래가 떨어져내리는 것이 나무를 뽑아내고 건물을 덮치지 않던가.
모래를 끌어다 굴 위를 덮은 바위 입구를 틀어막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우리를 한껏 기다리며 군침을 넘기던 강도단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샌들핀을 타고
거리를 벌리는 모습이었다.
빛이 차단된 굴에서 나는 가방속 헬라티움을 꺼내 물에 담갔다.
랜턴으로 만든 헬라티움을 가지고 다니엘이 내려간 쪽으로 따라 내려가면 그가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내려왔네."
"여기는 어디죠?"
"아무래도 두꺼비굴인 것 같은데. 저길 봐."
그가 가리킨 곳에는 자이언트 토드가 수십마리 모여 잠을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물론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 것 같았지만 입구쪽을 틀어막은 제일 커다란 녀석 때문에
다른 두꺼비들은 그저 뒤뚱거리며 바닥을 기고 있었다.
대장간에서 본 공동보다 더 커다란 공간에서 잠을 자던 두꺼비들이 하나 둘 깨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다니엘이 말했다.
"이건 생각보다 더 위험한 상황인 것 같아. 위쪽에서 본 두꺼비를 피하겠다고 들어와서는
정작 두꺼비 소굴로 들어왔잖아."
우리가 선 공간은 벽 사이에 난 절벽같은 깎아지른 공간이고,
조금이라도 발을 헛디디면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았다.
물론 사인은 실족사가 아니라 먹혀죽는 것이겠지만.
아직 두꺼비들이 우리를 발견하지 못했기에 망정이다.
"돌아갈까요?"
"아니, 저기 저거 보여?"
"뭐요?"
그가 가리킨 곳은 공동 반대편 벽이었다.
벽에 뚫린 구멍. 그리고 그곳에 보이는 낡은 철도.
"이건?"
"지하갱도야. 인간이 만든 흔적이지. 아마 이 공간 자체도 인간이 만들었을거야.
그걸 이 두꺼비들이 차지한거고. 저 너머로 넘어갈 수 있다면 확실히 모르는 걸 더 발견할 수 있겠지.
아주 위험하긴 하지만 도전해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넌 어때?"
"가지 말라고 해도 가실 거잖아요? 저 혼자서 유레크로스로 무사히 빠져나갈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빨리 끝내고 둘이 같이 갑시다."
"대답이 빨라서 좋은데."
도대체 누가 이런 공간에 무슨 의도로 이런 거대한 공간을 만든걸까.
그리고 저 너머 보이는 철도는 광차를 운송하기 위함일텐데.
이 사막에서 대체 뭘 캐낸 걸까.
하나도 모르겠다.
"그래도 위로 올라가서 강도랑 마주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어?"
"그럴 수도 있고요."
조심스레 바닥으로 내려가면 더 가관이었다.
이미 죽은 두꺼비들이 깔려서 부패하고 있었고,
바닥에 독샘이 터져 널브러지기도 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인간의 흔적이 있었다.
낡아 찌그러진 광차와 임시 거처로 보이는 휴게실.
이미 창이 다 깨지고 불도 들어오지 않는 것 같았다.
거기까지 도달하려면 수면중인 두꺼비를 4마리는 거쳐야 했기에 적당히 피했지만.
고고학자라더니 무슨 도굴꾼보다 날렵한 다니엘은 다리를 다치지 않았다면
혼자서 이 공간을 마음껏 돌아다녔을 것이다.
다친 다리를 끌며 최적의 길을 찾아내 나를 안내하는 그는 확실히 연륜이 돋보였다.
"원래 두꺼비는 각자 굴을 파서 지내지 않나요? 왜 다들 이렇게 커다란 공동에 모인거죠?"
"모르겠어."
바닥에서는 불쾌한 악취와 독안개가 뭉글하게 피어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색이 나빠지는 다니엘에게 나는 꾸준히 포션을 건넸다.
포션을 4병째 마시고 나서야 우리는 반대편 벽에 도착했다.
"로프가 없어서 그대로 올라가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지금 돌아가기도 힘들어요."
"큰일인데..."
"그래도 다행인건 아직 두꺼비들에게 들킨건 아닌 것 같으니까..."
"어... 내가 보기엔 방금 그것도 아니게 된 것 같은데."
"네?"
조심스레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는 자이언트 토드 한마리가 우리를 보며
눈을 꿈뻑이고 있었다.
"어...쩔건가...?"
"도망쳐야죠?"
우리를 향해 혀를 뻗은 두꺼비를 겨우 피해 달리기 시작했다.
두꺼비는 뒤뚱거리며 우리를 따라오기 시작했고 애써달려도 워낙에 체격차가 있다보니
애매하게 따라잡히게 되었다.
"어쩔거야 이거!"
"왜 나한테 그래요!"
"말이 씨가 됐잖아!!"
"그게 중요해요 지금? 내 탓이라고?"
"일단 튀어!"
"소리지르면 어떡해요!"
"여기서 한마리 더 깨나 두 마리 더 깨나 차이도 없어!"
"꾸루룩..."
"또 깼잖아요!!"
"몇마리야...? 하나... 둘.... 서이 너이..."
"앞! 앞에!"
우리는 그대로 죽은 두꺼비들이 깔린 바닥 사이로 굴렀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든 숨어들었지만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찌른다.
무엇보다 죽은 두꺼비의 끈적한 피부에 닿은 부분이 따갑다.
"어으... 따라 들어오는게 아니었는데."
"이 두꺼비들을 단체로 밖으로 내보낼 수만 있으면 좋겠는데."
"정말 그거면 돼요?"
"그럼~ 그렇게만 되면 바로 나갈 수 있을테니까."
"얘들이 어디로 갈 줄 알고요?"
"어디로 가봐야 지금보단 낫지 않겠어?"
"어휴... 이제알았는데 아저씨 정말 도움 하나도 안되는 거 알아요?"
"아까는 내 극전자도가 유용했다며!"
"그 지도가 아저씨보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이 아저씨 상처받는다."
"됐고, 가만히 잘 숨어만 계셔요."
나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죽은 두꺼비에게서 마력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대장간의 워프홀을 참고해서 분석해 알아낸 생물이나 그 유기물로부터 마력을 뽑아내는 마법.
새로 익힌 것 치고 아주 유용하다.
그렇게 두꺼비 사체 3구에서 마력을 끌어모아 마법을 발현했다.
"날씨나 자연현상을 조정하는게 얼마나 피곤한데...
일주일치는 한번에 다 뽑아낸 것 같네..."
"뭐라고?"
그렇게 말하는 다니엘에게 포션 하나를 더 넘겨주었다.
그리고 14초 후. 꽈르릉 소리가 들리더니 그야말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