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화 〉사막을 달리다.
두꺼비의 등가죽 위로 흘러내리는 포션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살가죽을 찢어 그 안으로 고통을 줄 수 있도록 고통의 포션을 집어던졌고,
위로 개미산과 송충이의 독을 배합한 산성 독액을 뿌렸고,
출혈이 멎지 않도록 거머리에서 추출한 히루딘을 뿌렸고,
상처 재생을 늦출 수 있도록 분해 포션을 뿌렸다.
응, 너무했네.
당연히 정신이 나가버리고 닥치는대로 쿵쿵대며 뛰어다니겠지.
문제라면 내가 그 등 위에 올라탔다는 점일까.
"우욱... 멀미나..."
"쿠에에엑..!"
빨리 얘가 누워줘야 편할 것 같은데 생명력은 질겨서 고통만 느끼고 죽질 않는다.
덕분에 덜컹거리다가 가방안에서 이것저것 떨어져내렸다.
폭신한 모래 위에 떨어진 포션들이 깨지지는 않았지만 바라화부가 팔랑팔랑 날아가는건
나로서도 큰 손실이었다.
저거 한장 한장 그리는게 얼마나 노동인데.
바닥에 떨어지자 마자 타오르고, 그게 비를 맞아 꺼지는 모습을 보면
피같은 노동력의 산물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차라리 돈이나 떨어지면 아깝지라도 않지.
한참을 날뛰던 자이언트토드는 펄떡대다가 결국 지친 것처럼 멈춰서서 헐떡였다.
원래같으면 비가 오는 시기에 짝을 찾아 번식이라도 하고 있어야 했을텐데.
불쌍하게도 나오자마자 등에 칼침을 맞고 허덕이다니.
하다못해 편하게 보내줄 수라도 있으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잠시 쉬는가 싶더니 곧 토드는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잠깐 가만히 있길래 좀 지쳤나 했더니 기어이 펄떡였고,
그럴 때마다 등에 박아둔 단검은 날을 따라 두꺼비의 등짝을 매끄럽게 찢어갈 뿐이다.
결국 나는 단도를 박아놓고도 미끄러져 녀석의 뒷다리까지 떨어졌다.
뒷다리는 확실히 몸체에 비해 가늘다보니 충격이 있었던 것 같다.
날뛰던 두꺼비가 뒤뚱대며 한쪽 방향으로만 뛰게 되었으니.
자기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걸 느낀 모양이다.
지금이라면 끝을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력을 다시 모아보았다.
손으로 집중해서 마력의 칼날을 만들어 양쪽 뒷다리를 잘라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 칼날의 마력은 손에 모이자 마자 흩어져버렸다.
내가 짐작할 수 있는건 반지였다.
이 백옥으로 만들어진 반지가 마력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꼴에 성물이다 이건가..."
화가 나서 반지를 잡아 빼려고 했지만 반지는 내 손에 딱 들러붙어 빠지지 않았다.
원래 내 몸의 일부였다는 듯 들러붙어 빼려고 해도 손가락을 잡아당기는 느낌만이 난다.
하필 왜 약지에 끼워서. 이러면 나중에 어디 함부로 돌아다니면 오해 살텐데.
이렇게 고생할 줄 알았으면 그냥 다니엘씨 따라서 고대의 분지로 가보는건데.
괜히 나는 유레크로스로 가겠다고 떨어져나온 것 같았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단검으로 두꺼비의 뒷다리를 잘라내기로 했다.
이렇게 직접 자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는데.
미끄러운 피부를 자르는 건 간단했다.
살점과 근육도 어떻게든 힘을 주면 잘라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뼈가 단단해서 잘라내지 못했고,
하는 수 없이 마력을 모은 채로 맨주먹으로 때려야했다.
마법은 사용하지 못해도 마력을 모으는 것 하나는 훨씬 매끄러웠으니까.
쾅쾅 몇번이나 내리치면 그 두꺼운 뼈도 기어이 부러졌다.
그때부터는 부러진 다리를 어거지로 끌고 걸어가며 꾸엑 꾸엑 울어대는 것 말고
자이언트 토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사막의 모래밭을 적신 토드의 붉은 피가 질펀했다.
아주 작은 소리지만 분명히 들린다.
사라락하는 소리.
사라락...사락...
그 정체는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살아남은 것으로 보이는 샌들핀 무리였다.
3마리가 피냄새를 맡고 달려온 모양이었다.
내가 발을 묶은 자이언트 토드에게 달려들어 무력화된 토드의 팔다리를 물어뜯으며
기어이 뼈째로 씹어먹는 샌들핀들은 포식 후에 독이 돌았는지 골골대며 바르르 떨어댔다.
식욕이 왕성한 동물이라지만 너무 일차원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는 수 없이 해독제를 꺼내 먹여주니 그제서야 살만한지 내옆을 빙글빙글 돌다가
폴짝폴짝 뛰기 시작한다. 확실히 사막의 돌고래라는 말이 잘 어울렸다.
바닥에 떨어진 물품을 그제서야 주웠다.
두꺼비의 피가 묻어서 상당수는 못쓰게 되었고, 쓸만한 것들만 피를 닦아내고 가방에 넣었다.
여전히 샌들핀은 신이나서 방방 뛰고 있었기에 가방에 챙겨두었던 패패루 포를 넘겨줬다.
그걸 받아먹으며 기뻐하더니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옆에 서길래
내가 조심스레 그중 한마리에 올라타면 두마리가 뒤를 따랐다.
"좋아 얘들아! 유레크로스로 가자!"
확실히는 몰라도 일단 다니엘이 가르쳐준 방향을 가리키면
알아들은 것처럼 모래를 가르며 폴짝폴짝 튀며 달리기 시작하는 샌들핀은
생각보다 아주 빨랐고, 편안했다.
원래 강도단이 기르던 녀석들이라 그런건지 고삐와 안장도 갖춰져 있어서
체감상 그렇게 많이 흔들리지 않았다.
사막에서는 샌들핀보다 빠른 생물체가 몇 없다더니 대장간의 고속 광차만큼 빠른 것 같았다.
그렇게 달려 어둑한 저녁이 와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그때쯤 되어서야 비는 멈추기 시작했다.
몸이 다 젖어서 사막의 밤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너무 추울거라는게 예상이 되었으니까.
내가 탄 샌들핀을 포함해서 세 마리의 샌들핀은 멈추지도 않고 달렸다.
한참을 달리니 그제서야 저 멀리 퍼진 두꺼비들이 보였다.
자이언트 토드들은 제멋대로 엉겨붙어 짝짓길 하고 있었다.
방해하지 않으면 그대로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중 한 마리가 짝이 없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번식경쟁에서 탈락한 생물이 앞으로 지나가는 먹이라는 조건을 그렇게 간단히 놓칠리가 없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철저히 일부일처를 유지하기 때문에 곤란하게 되어버렸다.
상황을 인지한 샌들핀들도 두꺼비의 시야를 피해 도망다니며 목적지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이동속도만 따지면 샌들핀이 빨랐지만 자이언트 토드는 풀쩍 뛰어 그 차이를 메우며
바짝추격해오기 시작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토드의 위치를 파악하기도 어려웠다.
여기서 죽여서 떨궈내야했다.
"하아..."
가방에서 발화부를 꺼내 던졌다.
맞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가 두꺼비이기 때문에 선택한 전략이었고,
보란듯이 예상은 적중했다.
무언가를 던진다는 행위자체에 집중한 두꺼비는
당연하게도 혀를 뻗어 발화부를 낼름 삼켰다.
불이 붙은 발화부때문인지 괴로워하며
혀를 모래에 문질러대던 자이언트 토드는
화가 난 듯 내 뒤를 다시 쫒아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발화부를 던져도 반응하지 않았기에 작전을 바꿨다.
빙결 플라스크를 다시 뒤로 던졌다.
모래 위에 안착해 깨질리가 없다고 판단해서 뚜껑을 열고 던졌다.
이번에도 두꺼비는 혀로 막아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덕분에 바닥에 쏟아진 액체는 빠르게 충격에 반응해 얼어붙었고,
바닥에는 빙판이 생겼다.
어차피 약품으로 인한 급속 동결이기 때문에 사막에서는 금방 녹게 된다.
하지만 무게가 상당한 생물체가 그 위로 뛰어올랐다면?
당연히 미끄러지게 된다. 쿵 소리를 내며 그 위로 미끄러진 두꺼비는
그 촉촉한 피부가 빙판에 들러붙었다.
억지로 일어나는 것까지는 성공했지만 피부조각이 뜯겼다.
그러더니 빙판을 피해 모래바닥을 돌아 다시 뛰어올랐다.
"이쯤하면 포기하고 갈 법도 한데 끈질기네 정말."
다시 달려드는 녀석을 피하는게 내가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었다.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본능의 영역.
샌들핀의 날렵함을 따라온 정도로 자이언트 토드가 빠르지는 않았다.
얼마나 더 가야 할지도 모르면서 벌써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해가 모래언덕 너머로 사그라지면
나는 할수 없이 가방에서 다니엘이 준 조명탄을 꺼내 밝힌다.
타오르는 조명탄이 타닥이며 타면
그 붉은 빛 너머로 겨우 보이는 자이언트 토드는 이쪽을 정확히 특정하고 혀를 뻗는다.
휙 던지는 조명탄을 따라 혀를 뻗는 두꺼비는 조명탄을 집자마자 걸음을 멈춘다.
조명탄에 감아던진 발화부가 타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종이를 말아서 붙일 수도 있다는걸 저 두꺼비는 모를 테니까.
혀에 화르륵 붙은 불에 또 다시 놀라서 움츠러들지만 이미 혀는 노릇하게 구워진다.
발화부만 물었다면 모르겠지만 조명탄은 엄연히 화약이 들어가는 물건이다.
화학물질이 불이라도 붙으면 펑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두꺼비에게는 안성맞춤인 무기다.
낼름 입 안으로 조명탄을 집어삼킨 두꺼비의 입에서는 펑 소리가 났다.
연기를 뭉게뭉게 입으로 내뱉고선 두꺼비는 제멋대로 뒤틀어진 울음소릴 내뱉으면서
뒤로 돌아 잽싸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진정한 샌들핀이 뒤에서 자이언트 토드가 따라붙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푸르륵 하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멈춰선다.
세마리 샌들핀이 안심한 듯 푸르륵 소리를 낸다.
"고맙다 얘들아."
"푸르르르..."
그제서야 나는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화부를 붙여두고 불을 지펴서 거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쉬었다 가자. 난 괜찮아도 너희는 자야지."
"푸르륵..."
내 말을 이해하는 듯 내 옆을 둥글게 말듯 자리하고 잠을 잔다.
아무래도 아까 먹인 자이언트 토드가 워낙에 커서인지
따로 뭘 더 먹고싶다고 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여기까지 토드가 기어오지도 않았고,
불을 지피기는 해서 그렇게 춥지는 않았다.
샌들핀이 가르륵거리는 소리를 배경삼아 쉬기로 했다.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역시나 모래바닥에서 움직이기 시작하는
패패루들이 기어올라온다.
미리미리 잡아다 구워야 내일 또 요기라도 하지 싶었다.
아무리 야행성이라지만 오늘은 유난히 늦게 올라오기에 왜인지 생각해보니
비가 와서 올라오지 않은 것 같았다.
비가 오는 날에는 확실히 별의 별 생물들이 나타나니까.
최 하위 포식자인 패패루가 버티기에는 가혹한 환경이 조성되기 떄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정작 샌들핀이며 사람이며 야영하는 공간에 기어나온 패패루를
내가 그냥 보내줄 만큼 한가하고 여유로운 상태가 아니었다.
사람이 힘들고 피곤할때 더 잘 챙겨먹어야 한다고.
패패루는 모래위로 주섬주섬 올라오는 족족 잡혀 불 위로 던져졌다.
다니엘이 준 단검은 패패루를 죽여 그 고기를 해체하고 벼를 빼내기에 유용했다.
그렇게 사냥에 기술이 생기니 확실히 어제보다는 더 많은 패패루를 잡을 수 있었다.
27마리. 그렇게 쌓은 패패루를 불에 던져 굽고 있으면
냄새를 맡은 샌들필이 하나둘 깨어났고,
겸사겸사 해서 같이 먹였다.
한 두어시간이 흐른 뒤에는 어떻게든 도망쳐온 강도단 두목과 그 부하가 찾아왔다.
불도 피워져 있고 맛있는 냄새도 나기에 걸어왔다고 했다.
어찌저찌 사냥한 자이언트 토드를 식량으로 먹었다가 배탈이 나서
한바탕 고욕을 치르고 걸어오던 차에 게워낸 속이 비어져 배가 고픈 그들에게
맛난 냄새의 유혹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나 뭐라나.
마침 샌들핀도 세 마리고 해서 적당히 식사를 마치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함께 유레크로스로 떠났다.
유레크로스까지는 4시간을 더 가야 했다.
나야 죽지 않으니 상관 없었다지만 남은 둘은 상당히 목이 말라했고
나중에는 탈수 증상도 와서 거의 실려가다시피 했다.
상당히 오래 달려야 했지만 그렇게 우리는 사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막을 벗어나 함께할 수 없는 샌들핀은 유레크로스 동물원에 맡겨지게 되었다.
나는 아무것도 할 기력이 없었기 때문에 우선 가까운 숙소를 잡아 들어가 잠을 청했다.
확실히 주변에 위험요소가 없는 환경에서의 잠은 너무나 편안했고,
일어났을 때는 하루를 통째로 날린 후였다.
오전 3시에 잠을 깨고 나서 나는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다니엘은 무사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