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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사제와 사제 (110/303)



〈 110화 〉사제와 사제

유레크로스는 아주 고요한 국가였다.
미리타엔과 다르게 편안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오전 시간에 나는 미리 간단히 샤워를 마쳤다.
목욕을 하고 싶었지만 각 방에 욕조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간단히 샤워로 만족해야 했다.

조식으로 나온 버터를 바른 토스트를 입에 물고 작게 기지개를 폈다.
바삭하게 부서지는 토스트는 그닥 알맞게 구운  같지는 않았다.

"맛은 있네."

사막에서 굴러서인지 어제 벗어둔 옷에서 흙모래가 상당히 많이 나오는 탓에
화장실에서 망토부터 옷가지를 탈탈 털어내야 했다.
간단히 마법으로 정리할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반지가 빠지지 않아서
오랜만에 그냥 손으로 빨래하기로 했다.
 벌이나 있는지 확인해보니 같은 망토가 3벌  있고,
옷가지도 미리타엔에서 받았던 옷이 아직 몇 벌  있었기에
그냥 그걸로 갈아입기로 하고 모래묻은 옷은 손빨래를  말려두기로 했다.

준비가 끝나고 나면 나는 바로 거리로 나왔다.
12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강도단 멤버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화제가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가타부타 말을 붙이기는 했지만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12년간 강도단으로 활동했다는 것 자체를 비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당히 큰 규모로 강도단을 꾸렸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나는 것도 시간문제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그들이 잠깐의 행복을 즐기도록 놔두기로 했다.
나는 그런 이야기를 귓동냥으로 주워들으며 교회로 향했다.

테르도어 대성당. 그 건물은 마치 거대한 예술품같았다.
하늘을 찌를 기세로 솟아있는 마천루는 고딕 양식과 바로크 양식 사이 어딘가를
절묘하게 조합해놓은 것 같은 날카로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높고 웅장한 장관을 자랑하는 교회 앞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고
 위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도 이렇게 뛰어놀았던 적이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잠깐 하다가 스스로의 모습이 우스워 자조적인 미소를 짓는다.
교회라니. 그렇게 부정하고 나서야 결국 먼 길을 돌아 이곳으로 돌아온다니.
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엄숙한 분위기의 교회는
생각보다 밝아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어서오시지요."

내게 그렇게 말하는 신부는 상당히 나이가 많아보였다.

"안녕하세요."

확실히 내가 변했음을 느낀다.
이제는 종교인에게도 말을 놓고 하대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그 근거로는 아르간티아가 내 존재와 관련이 있으리라는 의혹을
이제 막 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는 누구에게나 열린 곳입니다.  오셨습니다 자매님.
차라도 내어드리지요. 편히 쉬다 가시길."

"그... 고맙기는 한데요, 이 교회에서 제일 높은 분을 만나고 싶은데요."

"현재로서는 제가 자매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인 것 같군요.
절 만나러 오신 거라면야 안쪽으로 드시지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 성당내로 들어갔다.
아마 사제들이 지내는 공간으로 보이는 안쪽으로 들어간 그는
조용히 굳게 닫힌 철문을 열었다.
보기로는 상당히 마른 노인일 뿐인데 문을 열때 보이는 팔목은
분명히 그가 얼마 전까지도 운동을 소홀히 하지 않은 몸을 숨겼음을 말하고 있다.

"저는 피터 헤븐타임즈라고 합니다. 이 성당에서 봉사하고있는 주교지요.
그래, 자매님께서 어인일로 저를 찾으신 건지 들어볼까요?"

"다르말록의 이교들이 계획을 꾸미고 있어서 그걸 전하려고 왔어요."

"다르말록의...? 그걸 정교회에 알려주시는 이유는 필시..."

"네, 그들이 아르간티아교를 무너뜨릴 생각으로 행동하고 있어요.
다시 부활시키겠다고 하더군요.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얼마 전 대장간에서 발생한 테팔레스 화산의 분화도 그들의 짓이에요.
아마 막아내지 못했더라면 유레크로스째로 역사속에 묻혔겠죠."

"확실히 그렇겠군요. 그래서였나봅니다.
얼마 전, 정확히는 두 달 전이군요. 교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교국의 아르간티아교 본당 총회에서 누군가 성자의 십자를 훔쳐갔다는 말을 했는데...
확실히 앞뒤는 맞게 되는군요."

"앞뒤가 맞는다는건 무슨 의미죠?"

"그 말대로입니다. 성자의 십자는 다르말록의 뼈로 만들었습니다.
다르말록을 부활시키려고 한다면 반드시 필요하겠죠.
다르말록은 기록의 절반을 가진 자입니다.
 기록의 영향권 안에 있다면 어떤 것이든 무력화시킵니다."

"기록이 대체 뭐죠?"

"기록... 그것은 모든 것입니다. 저도 자세히 말씀드리기는 어렵군요."

"모든것인데 자세히 말하기는 어렵다라... 그럼 어디로 가야 기록에 대해 알  있죠?"

"그건 아마 관련 문서를 찾아보시는게 좋을 것 같군요.
종교적인 색채가 짙은 문서로 분류되어있을 겁니다.
아무래도 다르말록과 아르간티아의 이야기니까요.
우선 저희측에서도 본당 총회에 연락을 넣어야겠군요.
하아... 안그래도 바쁜데 이렇게 일거리가 늘어나버리다니..."

"따로 사람 하나를 붙여주실 수 있을까요?
유레크로스는 처음이라서 이것저것 참고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교회는 모두를 위해 열려있다면서요?"

"그렇습니다. 제 제자를 붙여드리죠.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아, 그리고 추가로 도르테우스의 신전이 어디죠?"

"도르테우스... 말입니까?"

"네.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조사하고 싶어서요."

"아마 그 신전이라면 지금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일텐데..
아마 들어가지도 못하실 겁니다. 지금은 신전이라고 부르면 아는 사람도 없을거고요."

"네? 그럼...?"

"지금은 정부청사를 찾으시는게 빠를겁니다."

"정부청사...?"

"유레크로스는 다른 국가에 비해서 상당히 진보적인 국가니까요.
언제나 최선의 방법을 찾아 효율적인 일처리를 추구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제가 꼭 정부쪽에서 나온 사람 같군요."

"발전된 국가..."

"미리타엔 제국은 인체를 개조하거나 약물을 만드는데 두각을 드러내듯,
대장간은 첨단 전기기술로 앞서나가듯,
우리 유레크로스에서는 공무처리와 정보처리에 장점을 보이는 국가입니다.
각 국가가 특장점이 없다면 지금까지 살아남기란 불가능했겠지요.
그러면 잠시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이제 저도 보고를 하러 가야겠군요.
바로 보고를 하려면... 그렇지. 교국으로 가봐야겠군요."

그렇게 말하고 노신부는 자리를 정리하고 부드럽게 웃으며 나와 함께 나왔다.
교회 예배당에 자리를 내주고 내게 우유를 탄 홍차를 한잔 가져다주고는
사제들의 사무공간으로 보이는 구역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내 앞에 나타난 건 어쩐지 익숙한 턱수염이 덥수룩한 자였다.

"오, 오랜만에 보는데 에리아씨."

"에리아씨라니, 어색한데 제임스씨?"

"어색해야지. 무슨 일이야? 가게도 빼고.
듣기로는 마녀라니 뭐니 하던데."

"숨겨서 뭐하겠어. 맞아 마녀. 나쁜 짓을  기억은 없지만."

"그래, 뭐 여전히 잘 살아있다니 다행이네.
그래서 교회에는 어쩐 일로 온거야? 오랜만에 건방진 꼬맹이 얼굴이라도 볼래?"

"아, 그 건방진 꼬맹이도 꼬맹이지만 들를 일이 있어서."

"아, 그래서 선생님께서 저렇게 분주하신건가?
말해봐, 무슨 일인데 그래?"

"다르말록의 추종자가 있더라고. 다시 다르말록을 부활시킬 생각이래.
덕분에 여러모로 피해를 봐서 말이지."

"그거라면 아예 모르는 일도 아냐. 젤렌지를 조사하던 와중에 알게 되었거든."

"젤렌지를?"

"그래, 저번에 우리가 만났던 콜린말이지. 거기서 다르말록의 징표를 찾았어.
그것도 생각보다 꽤 많이. 그러니 신부를 환영할리가 없는거지.
참고로 거기에 쓰인게 내 라이터라더군."

"아, 잃어버렸다가 몰매를 뒤집어쓴 그 라이터 말이지?"

"지문이 필요했다는 것 같아. 덕분에 내 지문이 팔려버려서
교회 측으로 서류가 날아왔지. 내 사칭을 한 놈들이 교회의 보물을 대출했어."

"교회의 보물?"

"뭐 그런거지. 교회에서 보관하는 성물같은 것들.
고스란히 갖다 바친 식으로 빼앗겨버려서 이쪽에서도 고생이라고.
 당한 피해자일 뿐인데도 여기저기서 욕을 들어먹으려니 아주 피곤하다."

"뭘 도난당한건데?"

"대단한 건 아닌데, 작은 지도를 하나 도둑맞았어."

"지도?"

"사실 교회측에서도 오랜 시간 연구를 하고는 있는데,
도무지 장소를 특정할 수가 없는 물건이라서 당장 큰 피해는 없는데,
만약에 그걸 교회보다 놈들이 먼저 알아내게 되면 교회측에서는 수치로 남겠지.
아무튼 콜린에서 내가 찾아낸 바에 따르면 제일 수상한건  보석상이었어."

"그 사람은 C야. 이름은 린이라고 하는  같던데. 다르말록의 추종자 중에서도
상당히 위치가 있는 간부였어. 주 업무는 대장간에서 보석을 캐내 팔아
자금을 충당하는 일이었고."

"자금을 충당한다라... 중요한 업무를 하긴 했네. 그럼 A나 B를 담당하는 인물도 있나?"

"그건 몰라, 하지만 확실한건 C는 대장간의 칼데라 지역을 만드는 역할을 맡아서 C야."

"칼데라...? 아, 화산지형을 매몰시켜서 분지를 만든다는 건가.
그런 짓을 굳이 하는 이유가 뭐야?"

"그 근방에 인원을 모이지 않게 하려고. 그리고 그 지하에서 보석을 캐낸거지.
추가적으로 그렇게 전체적인 지반을 약하게 만들어테팔레스 화산을 분화시켰어."

"그 연락은 나도 받아서 알고 있어. 날아온 화산탄도 증거 샘플로 수집했으니까.
그게 제대로 터졌으면 아마 나도 지금 여기 없었겠지.
이제까지는 짐작만 하고 있었는데 일이 커지는 느낌이네.
하아... 생각같아서는 이전처럼 커피나 마시면서 떠들고 싶은데 말이야."

"커피 정도야 내려줄게. 오래 걸리는 일도 아니고, 장비는 다 있으니까.
에레푸틴 좋아해?"

"아, 그거 마셔본 적은 없는데 우리 꼬맹이는 좋다고 마시더라고."

"여전하네 걘."

"하여튼 모난 돌이 정맞는다고 하는데 걔는 정을 뚜드려 맞으면서
왜 여전히 모나는지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

"풉...얼마나 봤다고 걔를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거야."

"하긴, 아무리 봐도 내 머리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은 아니지."

"그래서 젤렌지 이야기나 더 해봐. 젤렌지를 조사하다라는 말은 왜 붙는건지."

"젤렌지에 흥미가 있어 보이네?"

"당연하지. 뒤통수를 거하게 맞았거든. 돌려받을 것도 있고 말이야."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인 것 같네.
내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젤렌지는 얼마전 제국을 떠났어.
교국에서 잠시 머무르다가 말이지. 이후로 제보가 있었던 곳은 백색고원이야."

"백색 고원이라니?"

"칼루스 대륙 남부, 그리고 텔레프란 대륙 동북부지.
있는거라고는 눈뿐이야. 눈과 빙벽.
그래서 백색 고원이라고 불리는데, 왜 젤렌지가 그쪽으로 간 건지는 모르겠어.
얼마 전에 미리타엔 제국에 파견된 헌터가 교국으로 보고한 내용을
본당 총회에서 각 교회에 전달했지.
젤렌지가 해온 일들이 대부분이었어.
덕분에 교회는 젤렌지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쪽으로 의견이 모였고,
일단 잡아서 본당 총회로 보내는 걸로 정해졌어.
그런 김에 뭐, 나도 가서 거들기라도 할 생각이지."

"백색고원에 뭐가 있는지 알려줘."

"거긴 아무 것도 없어. 눈밭 뿐이지. 만약에 거기서 뭔가를 찾아낸다면
그건 정말 고고학의 영역이 아닐까?"

"흥미롭네."

"그래, 일단 밖에 나가서 걸으면서 계속 이야기할까?"

"그러자."

우리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섰다.

"밥이나 먹자. 조금 이른 점심이지만 나쁘지 않은 곳을 알아.
잠시만 기다려줘."

"너희 사제들은 사람을 세워두고 기다리라고 말하는걸 참 좋아하네."

"좋아하는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까 그렇게 되더라고.
뭐, 돈도 안받고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인데 그정도는 너그러이 봐달라고."

"말은 잘하네."

그가 그렇게 말하고 교회 마당에서 아이들을 통솔해 대화를 나누더니
그 무리를 교회 내부로 안내했다. 그리고는 다른 수녀에게 아이들을 인계하고 돌아왔다.
그 손끝에는 한 아이가 있었다. 상당히 무표정으로 걸어온 아이는 데니스였다.
데니스는 나를 보고 상당히 팍팍한 인사를 건넸다.

"반갑네요."

"표정은 전혀 안그런데?"

"그냥 인사말이에요. 오랜만에 만난 예의로."

"얘는 대체 누가 이렇게 일찍 사회에 풀어놓은거야?"

"나도 가끔 놀란다니까. 무슨 어른 앉혀두고 가르치는 기분이야.
말은  듣는데, 얘가 내 수업을 좋아는 하는지, 아니면 지루한데 참는건지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야. 가르치면서 오기가 생기는 학생이랄까."

"걱정 마세요. 나름 수업은 좋아하니까. 선생님 자체도 존경할 점이 많다고 생각하고요.
엄마나 아빠한테 배운 것보다 훨씬 유익하기도 하고요."

"하아... 난 성과경쟁을 하려고 하는게 아냐, 요 발칙한 녀석."

"그래도 제가 선생님을 싫어하는게 아니라는 이야기는 들으셨네요."

"어으, 속이 메스꺼워지려고 해."

"나도 마찬가지야. 너희 사제는 대체 뭐야...?

그들은 내 말에 적당히 대꾸하며 걸어갔다.
아마 둘은 종종 왔던 것 같은 익숙한 걸음걸이였다.
우리가 찾은 곳은 한 작은 해산물 식당이었다.
그곳에서 조개 스튜와 생선구이, 그리고 랍스타 찜을 주문했다.
랍스타는 생각보다 작은 크기로 두 마리가 나왔는데
붉은 빛으로  쪄져서 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음식을 보면서 제임스는 데니스를 바라보며 양해를 구하는  같았다.

"미안해 데니스, 선생님 지갑 사정이 여유롭지 못해서 더 주문하기가 어렵네.
넌 다음에 또 먹을 수 있으니까 이번 랍스타는 한마리 에리아 누나 주고,
우리는  마리로 나눠 먹을까?"

"선생님, 저 그렇게 어리지 않아요. 랍스타 굳이 안먹어도 되니까
그냥 선생님 드세요. 저는 조개 스튜에 생선구이로도 충분히 배가 부르겠네요."

그런 대화를 들으면서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라
가방에서 금화를 꺼내 건넸다.

"돈 걱정 하지 말고 더 시켜."

그 말에 언제 그랬냐는  표정이 밝아지는 제임스는 어째 데니스보다 아이같았다.

"자, 그럼 먹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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