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1화 〉전제의 변동 (111/303)



〈 111화 〉전제의 변동

정말 음식을 게눈 감추듯 비워버린 우리는 손을 닦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결국 맛은 있었으니 만족하기로 했다.
대접받는 음식은 왜 하나같이 해산물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물리지는 않았으니 그러려니하기는 했는데.

"그나저나 에리아.   사이에 애인이라도 생긴거야?"

"ㅁ...뭐?"

당황했다. 솔직히 말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에스트로의 생각을 겨우 접어두고 차분하게 답했다.

"응, 뭐 그렇게 됐어. 그런데 그건 어떻게 알았는데?"

"아, 전에는 못 보던 반지가 있으니까 물어본거야.
약지에 반지라고 하면 보통은 그런 쪽이잖아."

"아, 반지구나. 이거 원죄의 반지라고 하던데, 한번 끼고 나니까 벗겨지질 않아.
반지를 보고 판단한  몰랐네. 솔직히 말하면 커플링같은걸로 판단하면 안돼.
나는 누구랑 반지를 맞추고 할 성격이 아니니까."

"확실히 그럴 것 같은 사람이긴 하지."

"혹시 이 반지에 대해  것 같은 사람은 있어?"

"원죄의 반지라... 분명 관련 자료가 없는건 아니야.

"그것도 역시 교회쪽 자료를 찾아봐야 하는건가?"

"그럴 수도있고. 원죄의 반지 자체가 아르간티아 신화에 엮인 성물이기도 하고."

"아르간티아 신화에 엮였다고..?"

"그래,  윗길로 가면 도서관이 있어. 괜찮으면 거기서 조사라도 해보지 그래?
분명 원죄의 반지와 관련해서 뭔가 정보를 얻을 수 있을거야."

"고마워. 좋은 팁이네."

그렇게 대답하고 나는 도서관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원래 계획은 제임스가 날 따라 도서관으로 안내해주는 것도 포함한 이야기였는데,
그러지는 못하게 되었다.

"선생님, 2시에 미사가 있다는걸 잊지는 않으셨죠?"

"아, 우리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뭐, 저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고 쳐도 다른 아이들은 아닐걸요."

"그랬지 참. 오늘 잘 하는 아이들한테는 사탕을 준다고도 말해뒀으니.
미안해 에리아.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하는데 내가  필요하진 않지?
나도 일이 있어서 어쩔 수가 없네. 이따가 내가 도서관으로 찾아갈게.
 다음에 같이 정부청사 건물로 가보자고.
스승님께서 널 정부청사 건물로 안내하라고 하셨으니까."

"그래, 고마워. 그럼 나중에 천천히 보자."

"아, 그리고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만약에 장신의 올백머리 남자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쳐. 교회로 돌아와. 알겠지?"

"응..? 그래. 그럴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단 수긍했다.
어쩐지 익숙한 인상의 남자가 떠오르긴 하는데.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제임스는 데니스를 먼저 교회로 돌려보내고 벤치에 앉았다.

"넌 안가?"

"가야지."

그렇게 말하고 제임스는 품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썩 좋은 담배는 아니었다. 저렴한 담배였는데, 생각보다 오래된 담배다.
저게 아마 못해도 80년 정도는 계속 나오고 있는  같은데.

"덕분에 잘 먹었네. 고마워."

"뭐가?"

"네가  금화 덕분에 넉넉하게 먹었잖아."

"난 설마 그걸 다 먹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

"여러모로 몸을 쓰는 일이니까."

"성직자가 몸을 쓰기도 하나? 뇌를 쓰는걸 잘못 말한거 아냐?"

"그런거 아냐."

"궁금하네."

"음... 그건 부외자한테는 말할 수가 없네요."

"그래, 적당히 피다가 들어가."

난 그렇게 말하고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내가 한참을 걷다가 뒤를 돌아봐도 그는 착잡한 표정으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유레크로스의 도서관은 내가 아는 도서관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크고 웅장하며 세련된 건축물.
다만 신식 건물로 지어져있었다.
여기서도 서지스  처럼 행동하면 안되겠지.
도서관의 문턱을 지나면 상당히 넓은 공간에 세션을 나눈 서적들이 빼곡했다.
장부를 적고있는 여성과, 책을 분류하는 여성 셋, 그리고 책장을 관리하는 사람들.
이 많은 인물들이 도서관을 관리하는 것 같았다.
내가 들어선 후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단정한 머리를 한 여성이 내게 다가왔다.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세요?"

"종교 서적을 좀 찾고 있는데요."

"종교 서적이요? 음, 잠시만요. 따라오시겠어요?"

그녀는 내 앞에서 침착하게 앞장섰다.
그녀를 따라가니 섹션을 둘 정도 넘은  같다.

"여기가 종교서적이 있는 구역이세요. 다 읽으신 책은 꼭 제자리에 부탁드릴게요."

"아, 네 알겠어요."

그녀가 멀리 떠나가면 나는 그제서야 책을 흝어보았다.
단순히 아르간티아와 다르말록에 관한 서적만 찾아봐도 한세월이었다.

-아르간티아론
-왜 실패한 혁명이어야 했는가
-신과 인간의 영역
-신은 종족인가?
-다르말록과 세계
.
.
.

 권씩 뽑아 읽기로 했다.
내가 결국 뽑아읽기로 한 건 아간틴이라고 쓰인 책이었다.
[Argntine] 이 아마 다른 국가의 언어라는 것은 이해했다.
번역은 상당히 잘 되어있어서 그닥 크게 어렵지 않았다.

-아르간티아가 처음 세상에 태어난 것은 도르테우스의 '권능'으로 인한 것이었다.
도르테우스 이전의 세상에는 정이라는 존재가 있었으며 그들은 기록으로 만들어진 존재이다.
기록으로 만들어진 존재와 기록되는 존재는  근본에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을 구별하는 제일 큰 개념은 바로 삶이라는 부분일 것이다.
성행위, 생식을 통해 자손을 번식하고 대를 잇는 행위 자체가 기록으로 만들어진 존재에게
불필요한 사항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호오?"

-과거 아르간티아는 '권능'을 사용해 인간을 규합했다는 점이 특징적인 연구과제다.
권능을 사용해 인간을 규합했다는 기록은 있는데,  권능이 무엇인지는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우리가 권능을 잃어버린 것인지 혹은 알고 있음에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인지
정확히 밝혀낼 필요가 있다. 인간이라는 공통점이 존재함에도 아르간티아가 신으로서 추앙받는데는
마땅한 논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인간이라는  만으로는 인간과 신을 구별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아르간티아의 '권능'과 도르테우스의 '권능'은 무엇에서 차이를 보이는가?

"권능이라... 그러면 인간이 아닌 존재로부터 내려온 권능을 받아서
다시 그걸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돌려주었다는 이야기인가?
중간에 어떤 부분적인 내용이 누락되었다고 생각하는게 타당하려나."

"그건 아닐걸요."

난데없이 들린 목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면 금발의 남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아, 전 그냥 지나가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대답하는 그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진다.
어쩐지  사람은 뭔가를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아닐 거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설명해주시겠어요?"

남자는  어깨에 손을 올렸다.
내 마력을 빙글빙글 순환시키는 감각.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 주는 미묘한 현기증이 일어난다.

"마법사...?"

"비슷하죠. 마법사는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서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마력지식이 필요해요.
고위 성직자들은 백마법을 사용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고요.
나중에 조금 더 책을 읽으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마력과 권능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건지 설명해주시죠."

"음, 그건 아직 저도 확신을 못하겠네요.
한번 스스로 생각해보세요. 하지만 단순히 전수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하나의 개인이 권능을 전해주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그 권능이 인간 전체에게 작용하고 아직까지 건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죠."

"건재하다?"

"권능으로 인간을 규합했다는 이야기는 다시 말해 인간의 번영을 주도했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기록으로 만들어진 자들은 생식이 불필요하다고 전제했어요.
권능을 받은 이들이 생식으로 종족을 이어나간다는 점은 확실하겠죠."

"그렇게 볼 수도 있죠. 그럼 생식 자체가 권능이다. 라고 이야기하시는건가요?"

"그거야 모르죠. 생식활동 자체인지 아니면 그 생식 요건을 만족시키는 요소중 하나인지.
확실한건 무관계는 아닐거라는 이야기죠. 생식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과
삶에 차이가 있다는 말은 돌려말하면 생명이 유한하지 않다는 이야기라고 보거든요."

"음... 확실히 흥미는 생기네요."

"그렇게 가정하면 도르테우스가 아르간티아에게 내린 권능과
아르간티아가 인간을 규합할 때 사용한 권능은 다른 권능일 거라는 가설이 나오죠.
아르간티아는 불로불사라는 전제가 있으니까요."

"잘 아시네요? 이쪽 분야에 관심이 많으신가봐요?"

"그런건 아니고요. 어쩌다보니 그쪽 관련해서 들은게 많아서요.
상당히 주관적인 의견이니까 너무 믿지는 마시고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남자는 사라졌다.
대화를 나누었음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남았다.

'마력이 권능과 관련이 있다고?'

확실히 종교인들은 성마법이나 백마법으로 불리는 것을 다루는 경우가 있다.
종교에는 관심이 없어서 이제껏 크게 다루지 않는 편이기도 했고,
주술과 간단한 원소 마법 정도면 사는데 크게 불편하지도 않았으니까.
백마법 계열은 치유나 회복에 주로 초점을 둔 경우가 많아서
내 몸에는 필요 없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이번 기회에 연구해볼 이유가 생긴 것 같다.
책을  읽기로 했다. 아간틴이라는 책은 대개 권능에 대해 적어놓은 책이었다.
새로운 책을 꺼냈다. '기록과 벌' 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무난히 읽을만한 책이라고 생각하고 읽고 있다보니 내 눈길을 끄는 페이지가 있었다.

-기록을 반분한 것은 다르말록에게 있었다.
이는 곧 남은 반분의 행방을 조사할 필요성이 있음을 의미한다.
 반분의 기록은 절대적인 것이었고,  기록을 그에게서 강탈하는 것은
곧 그의 존재를 강탈하는 것과 같으리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 기록의 어딘가에는 다르말록이 아르간티아와  아비에게 건 저주가 있으며
곧 모든 저주의 근간이 있는 것이다. 선악을 특정할 수 없지만 그것을 그저 존재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의 일환으로서 우리는 오랜 기간 그들을 얽매었던 저주에 대해 조사했고
이것이 곧 신에게 도전한 자의 '벌'로서 작용한다는 것을 알았다.
다르말록이 봉인된 지금 또한 그 저주가 쇠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바로 원죄의 반지다.

"원죄의 반지?"

그러고 보니 원죄의 반지는 총 5종이라고 했고 내가 가진 반지를 제외하고서도
아직 하나의 반지가  공개되었다고 했다.
그 반지는 어떤 종류인지 알아낸다면 확실히  디테일한 부분을 알아낼 수 있을것이다.
나는 책을 다시 꽂아두고 자료실 구석에 늘어선 컴퓨터의 앞으로 갔다.
벽면에 박힌 검은 화면에는  글씨가 깜빡이고 있었다.
내가 원죄의 반지를 입력하자  글씨로 그것에 대한 정보가 나타났다.

-원죄를 담은 반지라고 알려진 성물로서 문헌에 따르면 다섯 종이 존재한다.
금으로 만든 반지와 은으로 만든 반지, 백옥으로 만든 반지와 흑요석으로 만든 반지가 그것이다.
남은  종류는 아직 공개되지 않아 정보가 없다.
처음 반지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316년 공개된 역사서적, '발자취'였다.
당시 책에 적혀있던 반지는 금, 은, 백옥이었기에 당시 학계에서는 남은 반지가 루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 은, 백옥인데 루비라고 예상했다고?
그러면  원죄에 맞는 성질을 부여받았다는 건가?
금은 뭐지? 찬란함? 연성? 전성? 높은 강도? 불변ㅅ...
불변성...?"

빠르게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불변성이라면 아르간티아의 불로불사와 상통한다.
그렇다는건 아르간티아의 불로불사는 권능이 아니라 저주라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자  머리가 어지럽다.
그럼 반지가 다섯이라는 의미는 저주를 받은 사람도 다섯이라는 이야기일텐데.
아르간티아, 엘라 세리타인, 엘 블로프니거 에스트로 세 명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들린 것 같았다.

-사고를 연결하지마. 생각이 떠올라도 그냥 무시하고 지내.

이전에 들었던 에스트로의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아이씨... 왜 뭘 좀  것 같았는데 잡힐 것 같으면 새로운 의문점이 생기는데..."

나는 다시 컴퓨터의 화면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정보의 타이핑이 끝난 화면에는 아까와는 또 다른 정보가 떠올라있다.

-흑요석 반지는 본디 교국에서 보관하던 것을 유레크로스로 이송하던 와중,
습격으로 인해 도난당했다. 이 과정 중 사제62명, 주교 28명, 대주교6명이 사망,
사제 127명, 주교 1명, 대주교 2명 중상을 입었다.
당시 반지를 이송하는데 참여한 인원은 사제 200명, 주교 30명, 대주교 10명이었고,
본 사건에 책임을 지고 당시 대주교였던 제러드가 사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지 이송 당시 제러드는 반지와 사제들을 버리고 도피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흑요석 반지는 도난을 당했다는 건데... 대량학살을 동반하고 도난당할 정도면
분명히 계획적인 집단의 소행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자료가 이렇게 없다는게 말이되나?
나는 다시 흑요석 반지 습격사건에 대해 검색했다.
용의자 개요에는 익숙한 얼굴이 올라있었다.

"엘 블로프니거 에스트로..."

흑요석 반지를 훔친건 에스트로였다.
거기서 나는 컴퓨터를 끄려 했다.
피해자 개요와 결말을 읽기 전까지는.
피해자에서도 생존자 항목으로 분류된 사람은 둘 있었다.
제러드와 멜페린이 그 둘이었는데 멜페린은 박애적 성격의 소유자로,
대주교로서 유일하게 현장에 남아있었으면서도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고,
그 탓에 교회에서 추방당하고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다고 나와있다.
그리고 결말에 보이는 제러드의 항목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 사건 이후, 멜페린을 강간해 임신시켰다.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멜페린 임종 직전에 그녀의 폭로로 인해 드러났다.
둘은 결혼을 하지도 않았고, 연애 관계도 아니었기에  큰 파장을 낳았다.
멜페린은 제러드의 아들과 딸을 낳았지만 이를 혼자 감내하고 기른 것으로 알려졌다.
멜페린 사후 자녀는 제러드같은 아버지를 둔  없다고 부인했다.
자녀는 미리타엔으로 입양되었고, 각각 장남은 젤렌지, 차녀는 젤라토라는 이름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