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 이야기-118화 (118/303)

〈 118화 〉 방해자

* * *

7시에 모인 병사들은 또 한번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져질 정도로 걸레짝이 된 몸을 겨우 끌고 나왔더니 들리는 이야기는 하나.

"오늘 훈련의 마지막은 간단합니다. 제가 만든 훈련용 허수아비를 쓰러뜨리시면 됩니다.

단, 그 전까지는 끝나지 않습니다. 쓰러뜨리신 분은 바로 퇴근하셔도 좋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에리아의 표정을 보고 조니는 작은 한숨을 내뱉었다.

"아예 초장부터 박살을 내 버릴 생각이군..."

검을 빼들고 앞으로 나선 그를 바라보면서 에리아는 빙그레 웃었다.

"나올 거라고 생각했어. 준비할 시간은 줄게. 1분이면 충분하지?"

"네."

조니는 주변의 동료들을 바라보고 짧게 말했다.

"깔끔하게 첫승 올리고 올게!"

그는 그 한마디를 했을 뿐이었다.

멋대로 거기에 기대를 걸어버린 것은 동료 병사들이었다.

그러나 그 30명분의 기대는 착실하게 그에게 힘이 되고 있었다.

에리아가 준비한 허수아비는 상대를 보고 그때마다 가벼운 강화주술을 걸고 있었다.

이번에 걸린 주술은 말 그대로 방어력에 고투자한 녀석이었다.

흔히 말하는 DPS가 일정 수치를 넘지 않으면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

그리고 약 15분의 난타끝에 겨우 조니는 허수아비를 쓰러뜨렸다.

그 이후로는 몇명 정도가 더 허수아비를 부수기는 했으나

대다수의 병사들이 좌절했고 훈련시간을 꽉 채워 퇴근하게 되었다.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막사로 돌아온 존에게 부관이 물었다.

"놀랍게도 성과가 보이는데 그만두라고 하기도 어렵구만.

이거 어떻게 하는게 좋아보이나?"

"잘 모르겠습니다."

"뭐라도 이야기를 해볼 수는 있을거 아냐? 너희 아버지가 저지르신 일이시잖냐."

"저지르다뇨. 아버지 욕하지 마세요."

"야 임마 누가 욕을 했다고 그래? 너한테 아버지밖에 없는거 나도 다 아는데 자식아."

"여기 처음 굴러들어왔을 때 거둬주신 분은 아버지 밖에 없으니까요."

"그랬지 참. 아직도 그래서 이름은 숨기고 다니는거야?"

"뭐 그렇죠. 아버지야 언제든 돌아갈 수 있게 이름 정도는 기억하라고 하시는데,

이름이나 새로 지어주시고 그렇게 말하시면 또 모르겠는데 안지어주시거든요.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랑 섞여들기는 좀 애매하고 그러네요."

"고생한다 너도."

"대장님도 저처럼 이름이 류 해백이면 그런 생각 못하실걸요."

"그래 해백아. 너도 타국에서 고생하는데 내가 괜히 이상한걸 찌른 모양이다.

신경쓰지 마라."

"훈련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이에 섞여서 구르고 싶진 않아요.

성과가 어떻든간에."

그들은 그런 이야기나 하면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고스란히 한 여자의 귀에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참 유레크로스도 재미있는 동네라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흑발의 여인은 자신의 불러오는 배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했다.

얼마 전 대장간에서 에리아에게 일을 방해받은 린은 C라는 이름을 포기했다.

그리고 다르말록의 신도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당해 뒤집어쓰고 쫒겨났다.

그녀를 따르는 것은 오직 그녀가 거둬들인 하인들을 포함해 10명 뿐이었다.

이제는 정말 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그녀는 품에 숨겨두었던 위상거울로

그들에게 잡히기 전에 빠르게 도망쳤다.

그녀는 도망치며 가지고 나온 보석들을 팔아 작은 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에리아의 동향을 훔쳐들으며 기회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아... 예상에 없던 일이 자꾸 생겨서 지친단 말이에요.

저번에는 못보던 빛인데. 새로운 마력이라니."

린은 빛이 들어오는 창문에 커튼을 확 쳐버린다.

"레드. 우리 아이 출산까지 얼마정도 남았지?"

"두달입니다."

"그렇구나..."

그녀는 자신을 따르는 이들을 색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원래 이교도 집단의 두려운 점이라면 신앙이 목숨보다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들 역시 이름을 숨기기로 했다.

호칭은 레드, 오렌지, 옐로, 그린, 블루, 퍼플, 블랙, 화이트, 핑크, 브라운이었다.

큰 의미는 두지 않았다.

"아가씨, 언제까지 이렇게 숨어있어야 합니까?"

"우리 아이가 걸을 수 있을 때까지."

"아가씨! 대체 저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어떤 놈의 아이를 받으신겁니까..."

그런 이야기를 한마디씩 던지는 하인들은 그렇게 말하지만 불평보다는 린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우리 아기는 내 아이야. 가져보니까 알겠어. 모성이라는게 생각보다 중독성이 있네.

예전에 엄마가 왜 그렇게 아이를 가지고 싶어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로.

요즘은 동화율이 올라서 이전처럼 대화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느껴져.

아... 행복한 감각이 끊이지 않아... 알겠어? 소중한 것을 뺏는 감각도, 키우는 감각도

이젠 완벽하게 알 것 같아. 하아... 행복... 이게 행복이야...

내가 지시한 사항만 잘 지키고 있으면 언제든 양지로 나갈 수 있으니까 걱정 마.

다들 알고 있잖아. 맞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화이트랑 블랙을 유레크로스로 보낸거고. 틀려?"

"맞습니다. 에리아를 감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럼 너희는 날 그냥 믿고 따라와.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 말은 이렇게 해드리는게 좋겠죠?"

오히려 편안한 얼굴로 모성애를 만끽하는 그녀를 보며 한편으로는 하인들 또한

그녀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웃는 지금이 더 낫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한다.

"우리 계획이 뭐죠?"

"이대로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점거해서 강제로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래요, 그럼 그게 간단히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잖아요.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작업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도르테우스의 신전을 점거하는 건 어떻게든 한다고 해도, 문을 열다니요?

아가씨의 계획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어떤 계획인지는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십시오."

"도르테우스는 차원의 저주를 받아 유폐된 자.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통로를 연결하고, 그 어딘가에 숨어지내죠.

이 세계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 세계의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해요.

아무도 우릴 모르는 세계로 가면 분명히 평화로운 일상이라는걸 가질 수 있겠죠.

더는 숨어살지 않기 위해서 지금 잠시 숨은 것 뿐이에요."

"그럼 아가씨, 에리아의 감시라는건..."

"자세히는 모르지만 에리아는 분명히 도르테우스와 모종의 연관성이 있어요.

그걸 찾아내기 위해서 그녀를 감시하는거고, 만약 그녀가 우리 계획에서 어긋나는 일을 한다면,

다시 원래 목적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거에요. 그 여자는 어디 병사들이나 가르칠 여자가 아니니까.

후후... 그래서 이번에 두명씩이나 보낸 것 아니겠어요?"

린이 웃으면 그 앞에서 레드도 어색하게 그녀를 따라 미소짓는다.

그걸 알리 없는 막사는 조용했다.

하루는 또 그렇게 조용하게 흘러갔다.

다음날 유레크로스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내용은 대장간을 재기 불능상태로 만들어버린 미친 마녀가 유레크로스로 섞여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내용은 삽시간에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다른 곳도 아니고 유레크로스였다.

얼마 전 콜린에서 일어난 올리브 살해에 대한 범인 또한 잡히지 않았고

그것이 마녀 에리아라는 이야기가 드문드문 구설수에 오르던 시점,

대장간의 마녀 이야기는 유레크로스 전역에 퍼져갔다.

그리고 그건 군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3일차 훈련이 시작되기 20분 전.

병사들은 아직 에리아가 도착하지 않은 연병장에서 소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마녀라는거... 맞지...?"

"씨발, 아닐리가 없지. 미친년."

"또 개처럼 굴리겠지? 하..."

"미친 것도 아니고 대장은 왜 그런 애새끼를..."

그런 말들이 오가는 사이에서 조니는 가만히 생각했다.

'분명 정상적인 훈련보다는 고통과 통각에 중점을 두고 훈련을 하긴 했지만

죽이지도 않았고 회복도 제대로 시켜주고 있다. 무엇보다 발전이 눈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전투에 대한 피드백을 하는 여유도 있다.

이 사람이 정말 교관으로서 자질이 없나...?'

잠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보좌관 파울이 걸어왔다.

그가 정복을 입고 병사들의 앞에 서서 말했다.

"그런 소리할 여유가 있나? 오늘은 자신이 있는 모양이군?

확실히 상부에서 명령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앞으로도 교관은 변하지 않는다.

오늘도 개처럼 구르고 싶지 않다면 연습을 해라!"

정론이었다. 그러나 병사들은 이미 불만을 가득 품었고,

그 주축에는 나르딕의 아들 카르고르가 있었다.

카르고르는 이전부터 에리아의 훈련에 불만을 표했다.

다만 그렇게 굴려지는 와중에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하게 되었을 뿐.

그 와중에 들리는 소문은 에리아를 끌어내리기에 최적이었다.

"하지만 선배님! 지금같은 시기에 출신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은 교관의

알 수 없는 훈련을 지속하는 것은 군의 기강과 품위유지에 악영향을 줄 겁니다!

또한 교관이 범죄자였다는 것이 확정된다면 유레크로스 군은 그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겁니다!

따라서 저를 비롯한 병사들은 마도병 훈련을 그만두겠습니다!"

"카르고르! 지금 그게 무슨 소리냐! 그런다고 순순히 보내줄 것 같더냐?"

"보내주세요."

조용한 목소리가 먼저 전해진다. 그리고 태양빛을 받으며 걸어온 금발의 작은 소녀가 말했다.

"늘 말했습니다. 저는 훈련이 필요한 병사만 가르칩니다.

어제 경험해본 제 훈련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가겠다는 자를 굳이 붇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제 훈련을 거부하고 나갈수록 저는 빨리 이 유레크로스에서 떠날 겁니다.

눈치를 왜 봅니까? 좆같고 짜증나서 못해먹겠다 싶으면 때려치는거지."

"저런 저급한 말이나 뱉어대며 우리 군을 무시하는 교관에게서 배울 것은 없습니다!"

카르고르는 그렇게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동료들을 데리고 나가버렸다.

고작 4명이 나간 것일 뿐이지만 병사들은 동요했다.

그들은 나르딕을 필두로 한 유레크로스 고위직에 앉은 귀족자제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군인으로서 기사직을 받으면 본인들의 아버지에게 명을받고

가택과 영지 정도나 수호하게 될 허울뿐인 귀족.

그마저도 변해가는 세상에서는 영지의 개념도 모호해질 터다.

단지 기사라는 직위를 가지고 아버지의 막대한 부를 업은 채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자들이기에 그저 그 작위를 위해 군에 지원한 이들이다.

하지만 사정을 모르는 다른 병사들에게는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군에 지원해

자신들과 같은 고통을 나누는 존경하는 전우이자 의지할 수 있는 기둥이었다.

동요하는 병사들은 우물쭈물할 뿐이었다.

그리고 에리아는 단호하게 말했다.

"인원이 20명 아래로 내려갈 경우 저는 교관을 그만두겠습니다."

그건 파울과 존에게도 큰 딜이었다. 절대 20명 아래로 인원을 떨어뜨려서는 안되는 것이다.

유레크로스에서 빚을 지워두기는 커녕, 마녀의 심기를 불편하게 해 척을 지게 된다.

안그래도 소문의 근원을 파악하기 위해서 사람을 쓴 존과 빈포드의 입장에서는 철렁한 일이다.

그런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르고르는 연병장을 떠나며 그녀를 조롱한다.

"씨발. 군도 이제 다 됐나. 병신같은 광대년을 세워놓고 묘기나 배우라네?

영기술같은 소리하네. 누구 광대세울일 있나?"

그 모습을 보며 여과없이 웃음을 흘리는 에리아는 한손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들리는 소문에 나오는 마녀말인데, 여러분들이 많이 걱정들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부정할 생각 없습니다. 그거 저 맞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말할 의무도 없고

말해봤자 수긍할 사람도 없을테니 적당히 계속 퍼져서 대장간에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대장간에 이어 유레크로스까지 내게 등을 돌리면 이 교관직도 안해도 되겠죠."

그녀가 이렇게 말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금일 오전에 들린 이야기 때문이다.

퍼져버린 소문 사이로 섞이는 잡음.

그것은 아주 짧고 강렬하게 느껴졌다.

[세번째 원죄의 반지, 칼루스 백색의 고원에서 발견됨.]

원죄의 반지. 그것은 에리아가 찾아오던 진실에 가까워질 열쇠였다.

누구의 열쇠인지는 몰라도 분명히 의미가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기 위해서는 텔레프란으로 하루라도 빨리 넘어갈 필요가 있었고,

유레크로스 군에서 버릴 시간은 없다는 의미였다.

훈련은 고작 3일차만에 각기 다른 뜻을 품은 인물들에 의해 와해되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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