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 구속된 날개와 오해
* * *
초조해진 파울은 즉시 존에게 달려갔다.
오전 훈련을 어떻게든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서.
나 역시 그들을 바라보면서 미소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왜들 그러고 있나요? 진영대로 서세요."
분명히 술렁이는 병사들이 자리를 잡고 서면 나는 다시 그들에게 물었다.
"애초에 저는 여러분들의 훈련을 담당하면서
계약 조건에 언제든 원할때 그만둘 수 있다는 조항을 걸고 들어왔습니다.
그건 여러분도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절 원하지 않으면 저도 가르칠 이유가 없습니다.
제 말이 틀린가요?"
"아닙니다!"
"여러분은 실제로 마력을 이제 막 개방한 햇병아리들입니다. 틀립니까?"
"아닙니다!"
"마력을 어중간하게 개방해서 통제하지 못하는 것만큼 꼴사납게 죽는 것도 없습니다.
차라리 손을 떼려면 지금입니다. 포기할 사람 더 없나요?"
"그렇습니다!"
하아... 안나가네.
그럼 또 굴리는 수밖에.
그렇게 나는 또 훈련을 시작했다.
일대일로 훈련을 봐주는 시간을 가지기로 하고 한명씩 체크를 하기로 했다.
"몸에 힘 빼고, 자 이게 마력을 순환시킨다는 개념이야. 알겠어?"
"몸에서 뭐가 막 돌고 있습니...우욱...! 우웨에엑!!"
"어, 처음에는 다들 그럴 수 있어."
"콜록 콜록...! 허억... 이게 무슨..."
"그 느낌을 살려서 움직이는거야. 천천히. 무리하지 않게. 그렇지."
화려하게 토악질을 쏟아내는 병사들은 그렇게 허덕이면서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렇게 한 명씩 마나를 돌려주면 반응은 대개 비슷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너는 눈 꽉 감아라. 숙련도가 부족해서 눈 뜨고 있다가 눈알 튀어나올지도 몰라."
"아...알겠습니다!"
"한번 돌려줄테니까 잘 기억해. 이 느낌을 알고 모르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니까."
"으으으...우웨에에엑!! 쿠웨엑!! 우웨엑!!"
마력을 강제로 순환시키는 것은 당연히 메스껍다. 얼마나 빠르게 돌리느냐,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돌리느냐, 어떤 마력을 돌리느냐에 따라 차이가 또 생기지만
지금은 아주 천천히 돌린 편이었다. 몸을 직접 마력이 순환하는데 그렇게 독특한 감각을 경험하고서도
스스로 마력을 다루는데 진전이 없다면 그건 다시 말해 재능의 문제였다.
적어도 느낌정도는 있어야 했으니까.
그렇게 어떻게든 내가 가르칠 수 있는 한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킬 쯤이었다.
"아니 그게 지금 무슨 말도 안되는 말씀이십니까?"
"어렵나? 난 그게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보는데."
"이건 군에서 정식으로 의뢰한 훈련이며, 군 내에서 알아서 처리할 문제입니다."
"그게 지금 군 내부에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나?
난 아닌데. 이건 유레크로스에 숨어든 마녀의 문제야."
연병장 구석에서 들리는 말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고
당연히 병사들의 훈련 역시 소란에 정지된 상태였다.
점차 그 무리가 가까워지더니 기어코 내 앞에 당도했고
장발의 남자가 내 앞에 섰다.
"어 네가 이번에 새로 훈련교관을 맡았다는 에리아인가?"
"그런데요."
"그런데요? 내가 누군지 모르나?"
"몰라요. 소개라도 해주시고 이야기하시죠."
"하... 웃기는군. 나는 나르딕 모빌세오. 이 나라에서 총리는 몇 되지 않으니 잘 기억하도록."
"아, 제국은 왕정이어서 몰랐는데 여기는 입헌군주제였죠?"
"알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나는 너따위 마녀가 군의 훈련을 주도하는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런, 아쉽네요. 저도 사정사정하기에 온건데 예쁨받진 못해도 미움받긴 싫었거든요."
"이 미천한년이...!"
짝 소리가 울려퍼졌다.
연병장의 모든 병사가 보는 앞에서 나는 나르딕 총리에게 따귀를 맞았다.
얼얼한 뺨을 쓰다듬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무슨 짓입니까!"
어떻게든 내 앞을 막아서려고 하는 파울을 옆으로 밀어낸다.
"괜찮습니다."
그러면 나르딕은 크게 웃으며 옆으로 한발짝 물러선다.
그곳에는 카르고르가 서 있었다. 나를 보면서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내 아들에게 훈련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했다고?"
"그런 적 없습니다."
"그런 적이 없다? 카르고르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했다던데 내가 잘못아는건가?"
"훈련의 일환이었습니다."
"그런 것 치고는 내 아들이 너무 멀쩡하지 않은가?
내 아들에게 제대로 된 공격도 못 한것 같다만?
하긴, 아무 계집년에게나 맞고 다닐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
오히려 교관으로서 자질이 있는가 의심스러운데."
"그러신가요?"
어이가 없었다. 두드려 맞았다고 화내놓고서 상처가 없으니까 내 자질을 논한다.
애초에 내가 잘못했다는 전제를 깔아두고 내게 시비를 걸기 위해 왔다는건 확실했다.
다만 내가 그걸 영 탐탁치않게 여긴다는게 문제라면 문제일까.
"반박도 하지 않는군?"
"교관으로서 자질이 있는가 생각했던건 저도 마찬가지니까요.
그럼 저는 여기서 교관을 그만두면 되는 겁니까? 원하시는 바가 그거라면..."
"아니, 아니지. 다르다네. 자네는 범죄자잖나?"
"범죄자요...?"
"그래, 콜린에서의 올리브 살인죄, 그리고 대장간을 붕괴시킨 죄. 추가적으로 덧붙이자면,
이단 심문의 일환으로 마녀는 척결해야겠지. 끌고가라."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병사 둘이 날 포박했다.
그리고 나를 붙들어 무릎꿇리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
"그래, 그렇게 날 올려다보는게 어울려.
나는 계집년들이 건방진게 나를 내려다보는게 속이 비틀어지게 싫거든."
"....."
"아직도 눈깔에 반항이 담겼군."
또 한번 철썩 소리가 휘감긴다.
뺨이 얼얼하다.
내 옆에서 눈치를 보던 파울이 소리쳤다.
"그만두십시오! 정식으로 판결이 있은 후에 체포해도 늦지 않습니다!"
마르딕은 그런 파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건방진 새끼가... 입헌군주제... 입헌군주제 해주니까
정말 신분이고 계급이고 좆으로 보는구나. 이래서 하등한 새끼들은...
적당히 아가리 쳐닫고 짖으라면 짖고 기라면 기면 되는거다."
그렇게 말하며 구둣발로 파울의 배를 걷어차는 나르딕은 쓰러진 그에게 침을 뱉었다.
파울은 몸을 일으켰다.
"아, 그러고보니 너도 그랬다고? 일어나는 놈을 이렇게..."
콱
"짓밟고..."
콱...! 퍼억... 빠악...!
"일으켜 세우고 말이야..."
퍼억.. 퍽 퍼억....!
"스트레스가 풀리도록 걷어찼다고."
"끄아악...!"
파울은 한번 반격도 하지 못하고 짓밟혔다.
마침내 얼굴이 짓뭉개져 멍과 피로 범벅이 되어 흙먼지가 묻은 뒤에야
나르딕은 구두를 탁탁 털어냈다.
"앞으로 훈련 교관은 내가 데려온 강사가 할 거다. 안심하고 체포당해도 된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생긴건 반반하니 잘 하면 노리개로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됐네요. 무슨 노리개는 아무나 데리고 다닌대요? 그러고 싶으셨으면 미리타엔으로 가셔야죠."
"씨발년. 끝까지 뚫린 입이라고."
나는 굳이 반항하지 않았다.
그러려니 하고 지켜보자 내 모습을 바라보던 나르딕은 포기나 체념이라 생각한건지
자신이 데리고 온 교관을 소개했다.
"이 교관이 앞으로 마도병의 육성을 지도할 것이다. 화이트 교관이다.
또한, 저 마녀가 배제한 모든 병사는 훈련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안돼!!"
내가 소리쳤다.
안된다고 빼 놓은데는 이유가 있는데 저 미친놈이...!
그러다가 마력 폭주라도 일어나면? 마력고갈로 인해서 죽는 사람이 나오면?
"시끄럽다! 끌고가라!"
나는 결국 질질 끌려가게 되었다.
내 편은 없었다.
하긴 그렇게 굴려놓고 때렸는데 있을리가 없나.
나는 그대로 끌려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다.
가방을 압수당하기 전에 숙소에 두고 와서 걸릴건 없었다.
다른 범죄자들과 같은 방을 쓰지 않은건 그나마 다행이었다.
"하아... 이번에는 또 무슨 범죄자인가 했더니 하다하다 마녀같은걸 잡아넣네."
"왜 저는 독방이죠?"
"나르딕 경이 잡아오신 거니까 대충 알겠네.
처형이거나 아니면 그 처녀충 아들내미 좆집으로 주겠구만.
처녀딱지 잘 간수하라는 거겠지."
"뭐?"
"뭐는 무슨 뭐야 임마. 하여튼 죄짓는 새끼들이 싸가지가 없어."
따악 하고 머리를 후려치는 억센 손에 머리가 울린다.
뒤통수가 욱씬거린다.
감옥 철창문을 열고 간수는 발로 차 나를 집어넣는다.
"이 동네는 인권도 없어?"
"죄인한텐 없지."
"하 참..."
그렇게 말하고 간수는 나가버렸다.
창살을 사이에 두고 범죄자들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넌 뭘로 들어왔냐?"
"야 반반하네. 좆같은 감옥에 웬일로 씨발년이 들어왔어."
"아 덜렁거리지 말고 집어 넣어,
집어 넣어! 이 개셰끼야! 그 이~으자 앞에서 매너없게 이 셰끼가."
"매너는 씨발 미시나 줏어먹다 식중독 걸려서 들어온 새끼가 아가리는."
"잡히는 보람이 있는 년이었지. 씨이발..."
"여자? 뭐? 씨발 여자가 왔어?!"
철컹거리는 철문을 붙들고 그들이 추파를 던져대는걸 굳이 볼 생각은 없었다.
철문을 사이에 두고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화장실 뿐이었고
물건이라고는 옆에 놓인 오줌 쉰내나는 시트와 이불 몇 장이 전부였다.
여기서 할 것도 없어서 바닥에 굴러다니는 깨진 콘크리트벽 조각을 주웠다.
벽에 슥슥 긁어대면 낡은 철문에 슬린 녹이 벗겨진다.
"오, 해볼만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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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걸 진짜 체포해갔다고?"
"그허흐이아..."
"어휴, 됐다. 완전히 얻어 터져서 말도 제대로 못하네.
하아.. 씨발 이거 뭐라고 말하지."
존은 그렇게 말하며 책상에 머리를 쳐박았다.
옆에서 해백이 말했다.
"아버지께는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그래 뭐 그건 알아서 한다고 쳐도 이게 맞는건지 모르겠다.
나르딕 그새끼 그거, 체포 말고 다른건 안했지?"
"해오웅 요앙응 데여아으이다.."
"뭐라는거야... 야, 글로 써."
파울은 착잡한 표정으로 펜을 받아들고 글로 적었다.
"대체 씨발 애를 얼마나 줘 패놨길래 턱이 빠지고 이가 나가서 말을 못해?
입술이며 뺨따구며 안터진 데가 없네. 그 미친 새끼가 왜 아직까지 안잘리나 몰라.
어디보자, 음... 뭐? 새로운 교관을 데려왔다고? 그리고... 마녀를 사냥한 게 자기라고...
저잣거리에 공문을 써붙였어...? 마녀 에리아를 잡았다고? 가봐야겠네..."
존은 즉시 해백을 데리고 대로변으로 나갔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에는
에리아의 이력과 죄목, 그리고 인적사항을 세세히 적은 공문이 있엇다.
"미친놈이 기어이 처형일자도 정했네."
"이건 아무래도 아버지에 대한 도전인 것 같은데요."
"그렇겠네. 빈포드경께서 직접 천거하신 교관을 떨구면서
자질을 헤집었으니 당연히 빈포드경도 피해가 크시겠군."
"나르딕 그 개새끼...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후작이었던 주제에..."
"어쩌겠나. 왕권이 불안정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총리로 발탁되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기어이 아버지를 걸고 넘어져?"
"그래서 더 자기의 입지를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 아니겠냐.
하아... 아무래도 빈포드 백작님에게 붙은 사람은 싹 정리할 생각인 것 같은데."
"그래서 더 개같은거죠."
"그래서 이 공문이 언제 붙었다는지 조사해봐라."
"오늘 오전이랍니다."
"오전...? 씨발 킬레리새끼들... 분명히 출발했을텐데..."
"킬레리요?"
"있어... 그런게."
"이제 어쩌죠...?"
"우리는 이제부터 그 교관 일은 모르는거다.
관련한 거 있으면 다 손떼. 그리고 파울도 빼내."
"파울씨는 이미 부상으로 인해 빠졌습니다. 대신 나르딕이 새로 사람을 붙였다더군요."
"그럼 너는 당장 아버지께 가서 현 상황을 전해드려라."
"아버지요?"
"그래. 빨리."
집으로 달려가는 해백을 보며 존은 착잡한 얼굴로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존은 아들을 불러냈다.
"조니, 나와봐라."
"으으... 지금은 좀 피곤한데요..."
"중요한 일이다."
"네?"
부스스 방문을 열고 나온 아들은 에리아가 교관을 그만두었음에도 상당히 많이 다쳐있었고
몸 전체에 시퍼렇게 멍이 번져있었다. 그나마 뼈는 다치지 않은 것인지 어떻게든 일어난 것 같다.
"내일부터는 훈련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하지마라."
"하지 말라고요?"
"그래. 우리는 이제부터 마도병 훈련 그 자체를 모르는 거다. 알겠니?"
"하지만 아버지... 저는...!"
"마도병이니 뭐니 다 소용없다. 네가 안전한게 제일이야.
그리고 나르딕이 데려온 자가 얼마나 잘 하겠냐."
"그건 그렇지만..."
"그럼 조니 훈련병. 오늘 훈련은 성과가 있던 것 같나?"
"있었습니다..."
"어느 부분에서?"
"에리아 교관이 마력을 순환시키고 나서 느껴지는 기운이 맑아졌어요.
조금더 선명해졌고요."
"그 이후로 실적이 있나?"
"없...습니다."
"됐어 그럼. 그만둬도 된다."
"저는 그럼..."
"원래 보직으로 돌아간다. 한동안은."
"그럼 다시 목검으로 통나무나 때리라는 말입니까?
달리고, 기초 체력단련에 검격이나 회피를 다루는 훈련병 생활로 돌아가라고요?"
"넌 훈련을 탐탁치않아 했잖아."
"그래도 이제 막 길이 보이고 나서는 열심히 했다고요!"
"그 길은 닫혔다. 현실을 봐라 조니."
"아버지..."
"잘 자렴. 내일 하루는 푹 쉬도록 해라."
문을 닫고 아들의 방을 나서는 존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리고 존의 집 담벼락을 너머 좁은 골목길에서 그 소리를 엿듣는 자가 있었다.
"역시... 하아..."
살짝 따뜻한 입김이 나는 숨을 몰아쉬면서 중얼거리는 여자.
"원점으로 돌려놓으라고 했더니... 기어이 가둬버렸군요.
일을 그르칠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래서는 소중한 부하들이 휘말릴수 있겠어요."
이제는 잔뜩 불러버린 배를 잡고 위상거울로 살며시 몸을 집어넣는 린.
그 한손에는 지도가 들려있다.
* * *